# < 제 46 화 >
“네. 아까 저희 가게 분석하셨다고 하셨는데 그거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너무 궁금합니다.”
“너무 기분 나빠서 듣지는 마세요.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요.”
“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일단은 가게 이름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작부터 강했다.
“가게 이름이요?”
“네. 저는 처음에 단비에게 가게 이름을 듣고 파스타나 햄버거, 스테이크 집을 생각했어요. 알로하가 미국식 가게 이름이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가게에 가고 나서 알게 되었죠. 돈카츠 집이라고 말이죠. 그것도 일본식 돈카츠. 제가 블로그도 하고 로고 디자인도 많이 맡으면서 느낀 건데 보통 가게 이름은 두 종류 중 하나에요. 아예 대놓고 무슨 가게인지 알려주던가 아니면 아예 특별한 의미를 담던가 말이죠.”
나는 그녀의 말에 무슨 의도로 이야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 가게 이름에는 판매하는 대표 메뉴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형제김밥, 땡땡카츠와 땡땡초밥, 땡땡식빵 가게 이름만 보고도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판매하는지 고객들이 생각하고 들어올 수 있다.
만약 이런 이름이 아니면 아예 가게 이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예 뜻이 있는 외국어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처음에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한 번 기억하면 특별해서 오래 기억된다는 장점이 있다.
.
“알로하가 제가 알기로 하와이에서 쓰는 환영 인사라고 알고 있는데 맞을까요?”
“네, 맞습니다.”
그녀는 언제 준비했는지 우리 가게 외부 인테리어를 보여주었다.
“여기 보시면 일본식 가게 분위기에 돈카츠 전문점이라고도 적어두시고 국내산 100% 돼지고기 사용도 적어두시고, 메뉴 사진도 있으시고 홍보물도 세워두셨네요.”
“네, 그래도 가게에서 어떤 메뉴를 파는지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저는 외부를 이렇게 홍보하신 게 오히려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게 이름이 별로라고 말씀드린 거에요. 그렇게 홍보하실 거면 차라리 정훈카츠 이게 더 어울리죠.”
그녀에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가게를 찾아온 고객들도 많이 하는 이야기였다.
가게 이름과 메뉴가 안 어울린다고 말이다.
“그래서 저는 가게 이름을 바꾸실 생각이 없다면 아예 인테리어를 심플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비주의로 말이죠.”
“심플하게요?”
“이거 보시겠어요?”
그녀는 다른 가게들을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그녀가 어떤 느낌을 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요즘 길을 다니면서 많이 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간판만 덩그러니 있고 외부는 단색으로 일관되게 칠해져 있고 통유리로 가게 내부가 잘 보이는 카페인지 식당인지 모르겠는 그런 가게 말이다.
“저도 본 것 같네요.”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인테리어 많이들 하세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음...예전에는 가게가 이름을 알리려면 손님이 많이 와서 드셔보시고 입소문을 내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 가게를 알릴 수 있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적어두죠. 최대한 많은 고객님들을 가게로 입점시키기 위해서요.”
“그렇죠.”
“그런데 요즘에는 직접 방문하지 않는 고객들에게도 가게를 홍보할 수단이 많이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블로그도 그렇고 SNS, 너튜브 등 방법은 많이 있죠.”
“그러네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에는 다른 가게와 다른 우리 가게만의 특별함이 더 중요시 돼요. SNS나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유니크한 것을 좋아하죠. 이런 식으로 통유리에 가게 내부가 보이게 인테리어를 하면 마치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다른 가게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알로하가 알려진 것은 내 선행 때문이었지만 너튜브와 SNS의 힘이 컸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가게 디자인이 인터넷에서 잘 먹힌다는 이야기니 충분히 생각해볼 만했다.
“혹시 방금 말씀하신 디자인을 저희 가게에 적용해서 스케치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케치요?”
“네, 인테리어 시공은 저희 매제가 할 건데 참고할만한 대략적인 이미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음...그려 드릴 수 있어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필요한 비용은 지급 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언제까지 해드려야 되죠?”
“토요일까지 가능할까요? 일요일에 매제를 만나기로 해서요.”
“촉박하기는 하네요.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대략 마음에 드시는 색상이나 구조를 골라주시겠어요. 그러면 작업을 좀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태블릿에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가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거기서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씩 골라내기 시작했다.
****
사무실을 나온 나는 그녀가 스케치할 가게를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밝은 조명이 가게 내부를 비추고 있으면 반대편에 로이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꿇리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 스케치 나오면 안 서방이랑 또 상의해 봐야겠지.”
다시 가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핸드폰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 엄마 >>
‘엄마가 무슨 일이지?’
생각해보니 로또에 당첨되고 용돈으로 50만 원을 보내 드린 이후로 별다른 통화를 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나는 불효자가 맞는 것 같다.’
“여보세요.”
[ 아들, 뭐해. ]
“예, 일하고 있었어요.”
[ 요새 많이 바빠? 통 연락도 없고... ]
“네, 죄송해요. 좀 바빴어요. 엄마, 아빠는 별일 없죠?”
[ 별일 없지. ]
아버지는 젊었을 때 광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셨다. 그때는 가족들이 다 모여 살았는데 내 기억에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였던 것 같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 나이가 너무 드셔서 퇴직을 하셨다.
퇴직한 후에 고향인 강진으로 귀농을 하셨는데 내 기억에 지금은 한창 농사일로 바쁠 시기였다.
“연락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해요.”
[ 아들, 이번 주에 언제 쉬어? ]
“이번 주에요? 내일 쉬는 날이기는 한데. 가게 나올 수도 있어요.”
[ 그럼 내일 내려와서 반찬 가지고 가. ]
“반찬이요?”
혼자서 밥 해 먹기가 귀찮아서 집에서 배달로 때울 때가 많았다.
엄마의 반찬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가게에 확장에 대한 준비를 생각하면 강진까지 내려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다음에 내려간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때 엄마가 말했다.
[ 아버지가 할 말도 있으시대...그러니까 시간 나면 잠깐이라도 들려라. ]
예전에도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회사를 그만 두고 가게를 차린다고 했을 때였다.
그때도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셨는데 아무래도 은정이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
엄마에게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나는 그냥 아침 일찍 강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은정이에게 전화로 확인을 했는데 가게를 넓힌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이 맞았다.
아마 이것저것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실 것 같은데 어차피 하기로 마음 먹은 거 깔끔하게 설명할 계획이었다.
‘그러고 보니 1월에 오고 처음 내려가는 거네.’
광주에서 강진까지 거리로 따지면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가까운 거리인데 생각보다 내려올 일이 없었다.
이렇게 무심한 것도 아들이라고 신경 써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용돈 좀 많이 드리고 오자.’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서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엄마, 저 왔어요.”
“그래, 오느라 고생했어.”
본래 엄마는 광주에 있을 때 일을 안 하시고 가정주부로 계셨다.
아빠를 따라서 강진에 내려오신 지 10년이 좀 지났는데 예전에는 하얗던 얼굴이 햇볕을 받아서 그런지 많이 까무잡잡해 지셨다.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잠깐 논에 물꼬 보러 가셨어. 좀 있으면 들어오실 거야. 아침 안 먹고 왔지? 배고프겠다. 들어가자.”
나는 집에 들어가는 엄마의 뒤를 따랐는데 이제 보니 집이 꽤 낡았다.
하긴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집으로 아빠가 귀농하면서 수리를 좀 하셨는데 30년은 더 된 집이니 안 낡았다고 하면 그게 이상했다.
집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아 있으니 엄마가 반찬을 하나씩 꺼내서 내 밥상을 차려주셨다.
된장국이랑 불고기, 거기에 잡채까지 어제 전화 받고 온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준비한 것을 보니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을 것 같았다.
“얼른 먹어 배고프겠다.”
“네, 잘 먹겠습니다.”
그동안 호텔 조식과 가게에서 돈카츠, 그리고 배달로 배를 채웠는데 이렇게 따뜻한 집밥을 먹고 있으니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맛이 어때?”
“너무 맛있어요.”
“그래? 은정이 것도 반찬 만들어 놨으니까 이따가 올라갈 때 은정이 집에 들러서 내려주고...”
“네. 근데 엄마는 아침 드셨어요?”
“벌써 시간이 10시다. 우리는 조금 전에 먹었지.”
엄마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밥을 먹었는데 거의 먹을 때가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 저 왔어요.”
“어, 그래.”
아빠는 나의 인사를 받아주고 일하느라 땀을 흘리셨는지 바로 욕실로 들어가셨다. 원래도 좀 무뚝뚝하기는 하셨지만 퇴직하고 서로 떨어져 살면서 더 무뚝뚝해지신 것 같았다.
나도 밥을 다 먹고 아버지가 씻고 나오자 엄마가 과일을 준비해주시고 작은 테이블에 가족이 모여 앉았는데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그때 적막감을 깨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가게 장사는 어때?”
“네, 잘 되고 있어요.”
“요새 코로나 때문에 광주는 정신없다고 하던데 확진자 다녀가고 그러지는 않았냐?”
“네, 다행히 저희 가게는 아직 온 적 없어요.”
“그래도 마스크 꼭 잘 쓰고 일하고 괜히 덥고 귀찮다고 내리면 뉴스에서 코로나 걸릴 확률 높아진다고 하더라.”
“네, 사람 만나는 직업인데 당연히 잘 지키고 있죠.”
“가게 넓힌다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회사를 그만 둘때도 뭐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도 한마디 하실 것이 분명했다.
“네, 가게 장사가 좀 잘 돼서 이번 기회에 넓히려고요.”
“장사가 잘 되면 좋은 일이지. 안 그래도 은정이 한테 이야기 들었다. 불쌍한 아이들 도와줘서 그렇게 됐다고 하던데.”
“네, 어쩌다가 도와주게 되었는데 다행히 다른 고객님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장사도 잘 되고요.”
“잘했다. 이런 시국일수록 어려운 사람을 서로 돕고 살아야지.”
가게 넓힌다고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칭찬을 들으니 조금 어색했다.
“여보, 그거 가져와.”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들고 나오셨다.
아버지는 그것을 받아서 나에게 내밀더니 말씀하셨다.
“원래는 너 결혼 하려면 주려고 했는데 일 하는 거 보니까 허튼대 쓰지는 않을 것 같구나. 가게 넓히는데 보태던지 아껴뒀다가 집을 사는 데 보태던지 네 마음대로 해라.”
아버지가 주신 것은 통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열어보았는데 생각보다 큰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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