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44 화 (여기부터 유료) >
“뭐라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을까?
내 말에 강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주변에 똥 닦아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입에서도 똥내 나니까 좀 닥치라고.”
“이 자식이 진짜! 너 뒤질래?”
이번에는 강훈이 나의 멱살을 잡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가 한 대 때려주기를 바랬다. 폭행죄로 고소하면 인테리어비 정도는 그냥 뽑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 필요했는데 잘됐네.’
하지만 이번에도 최지연이 그를 말렸다.
“본부장님, 참으세요.”
최지연은 그의 손을 붙잡고 안된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제야 강훈은 주변을 돌아봤는데 몇몇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어서 싸우는 모습을 찍으려고 대기 중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멱살을 풀고 나를 때리려던 주먹을 내렸는데 나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야, 김정훈. 꺼져.”
평소 같으면 참지 않고 바로 들이받았을 텐데 최지연의 말도 잘 듣고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 사고 치고 자숙 중인 모양이지?”
“뭐라고? 너 진짜 뒤질래?”
나는 넘겨짚어서 이야기했는데 내 말에 과민반응하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항상 사고를 치고 나서 사장인 강민태에게 혼이 나면 몇 주간은 조용히 지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았다.
“정훈 오빠, 그만 하세요.”
내가 그를 계속 자극하자 최지연이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녀는 인상을 써서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이하연을 처음에 보고 그녀가 생각났었다. 하지만 이제 최지연의 얼굴에는 그런 미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친한 척 이름 부르지 마. 나 밀어내고 같이 알바하던 동생들 뒤통수치고 얻은 게 겨우 여기 점장 자리냐?”
내 말에 최지연은 분한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비꼬지 마세요. 이제 시작이에요. 저는 더 성공할 거예요.”
“그래, 너는 계속 그렇게 살아라. 성공할 수 있는지 지켜볼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를 떠났다. 등 뒤로 강훈이 욕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개소리에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
쨍그랑
“이런, 씨발.”
강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최지연은 그를 데리고 술집으로 왔다.
강훈은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바로 원샷 하더니 그대로 맥주잔을 벽으로 던져버렸다. 벽에 부딪힌 맥주잔은 산산조각 부서졌는데 다행히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훈이 가게를 통째로 빌린 것이다.
깨진 유리잔을 한 번 쳐다 본 최지연은 아무런 말 없이 다른 잔을 하나 꺼내서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하, 생각할수록 짜증 나네. 최지연, 그 새끼 가게 망하게 만들어버려. 필요한 거 다 지원해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처음에 최지연은 김정훈의 자리를 뺐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은 본사로 가고 싶었다.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서일까? 이제는 현장에서 일하기 싫었다.
그래서 강훈을 만나서 이야기했다. 승진하고 싶다고 말이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자 강훈이 말했다. 일단은 처음은 점장부터 그다음에 성과를 내면 본사 입성. 이게 그의 조건이었다.
성공하고 싶었던 최지연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신이 처음에 승진하고 싶다고 강훈에게 이야기했을 때부터 그는 김정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본부장님, 김정훈 점장.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왜 싫어하냐고? 너도 아까 봤잖아. 재수 없는 거.”
“퇴사하기 전부터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아요.”
“아, 그거?”
“다른 이유가 있으신 거죠?”
최지연에 말에 강훈이 웃으면서 말했다.
“지연아, 김 점장 꿈이 뭔지 알아?”
“꿈이요?”
“그래, 꿈. 예전에 처음 회식하고 술 취해서 나한테 자기 꿈을 말하더라. 로이스 사장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
“김 점장이 그랬어요?”
생각해 보니 최지연도 김정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로이스에 사장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 근데 어이가 없잖아.”
“뭐가요?”
“로이스는 내 건데 왜 자기가 가지고 싶어해. 주제를 알아야지.”
강훈의 말을 듣고 최지연은 왜 그를 싫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기 것을 빼앗기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지연아, 너도 잘 기억해. 개는 주인을 보면 꼬리나 흔들고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주인 자리를 탐내고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됩니다.”
“그래, 근데 개가 좀 똑똑한 것 같아서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려고 했는데 거절하더라고 대들기도 하면서 말이야. 주인한테 이빨을 드러낸 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버린 거야. 이해돼?”
“네, 이해했습니다.”
“그래, 우리 지연이도 똑똑하니까 잘 이해했을 거야. 이제부터 너는 사냥개야. 집 나간 개가 왈왈거리는데 교육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잘 할 수 있겠지?”
***
7월 13일 월요일, 조식을 먹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왔다. 오늘은 이삿짐 센터에 스테이트힐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포르쉐를 포기하면서 집에 대해 고민도 했다. 허준석 대표의 말처럼 임대를 해서 월세라도 받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다시 집을 알아봐야 한다.
가게를 넓히고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집은 들어가서 살기로 했다.
이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다 알아서 해줬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리할 때도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짐을 채워 넣는 것은 더 빨랐다.
가구나 가전제품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말하는 곳에 짐을 잘 두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아침 9시부터 시작했던 짐 정리가 다 끝났다.
“사장님, 저희는 인제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저번에 계약금 넣어주신 계좌로 남은 잔금 넣어주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한숨을 돌리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가전제품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냉장고 이쪽에 설치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저번에 아파트 매매 잔금을 치르고 집에 와서 필요한 것들은 생각했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 등 생각해 보니 그 종류가 엄청 많았다.
그래서 일단은 가장 급하다고 생각되는 냉장고, 세탁기 정도만 주문하였다. 에어컨은 시스템으로 있어서 필요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TV도 바꾸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도 설치하고 대충 옷가지 정리를 마치고 나자 오후가 되었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
허리를 편 나는 창가로 가서 밖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창문으로 비치는 강이 너무 푸르게 보였는데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저 모습이 좋아서 여기로 이사 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 없는 일이지만 이 뷰가 좋아서 집을 구매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좋은 경치를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무언가 된 것만 같은 고양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TV에서 그 사람이 한 말이 이런 거였구나.’
TV 프로그램이었던 거기에 나왔던 게스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권력자들이 높고 큰 건물을 짓는 이유가 내려다보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순간 권력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한 번 맛본 사람은 더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제는 알 것 같다.
‘하긴 그래서 강훈이 안하무인이 된 거겠지.’
시작부터 남들보다 높은 자리, 다른 출발선, 평생을 내려다보는 것이 익숙했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에 은행 어플을 실행시켰다.
2,854,203,272
집을 사고 남은 로또 당첨금이었다. 주식 계좌에 1억 1천만 원 정도 있었으니 다 합치면 30억이 안 되는 돈이었다.
‘이 돈으로 강훈을 상대할 수 있을까?’
처음에 최지연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밀리지 않기 위해서 가게만 넓힐 생각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직장 생활을 오래 해서 일까?
강훈에 대한 생각은 퇴사하면서 거의 묻어 두었고 로또에 당첨되고도 복수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어제 강훈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트러블이 생겼으니 또 무슨 짓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쉽게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로이스는 전국 1등 돈까스 전문점, 가진 점포 수만 해도 70개가 넘었다.
더군다나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은 프레쉬푸드라는 거대 식품 기업, 30억이 아니라 300억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허준석 대표의 돈의 재생산성이라는 것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지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알로하를 계속 키워 나가다 보면 10년 후, 아니 어쩌면 20년 후에는 상대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젊음이라는 무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
“임대 계약을 빨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수요일, 건물주와 카페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계약을 빨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왜? 무슨 일 있어?”
맥다방 사장 조형우가 물었다.
“아, 저 반대편에 돈까스 전문점이 하나 오픈한다고 해서요. 거기 오픈하기 전에 공사 끝내고 싶어서 마음이 좀 급하네요.”
“아, 저기 반대편 벅스커피 옆에?”
“네.”
“음...저는 크게 여기 보증금만 내주면 되니까 크게 상관없습니다.”
내 말에 건물주는 오케이했다. 다음은 맥다방이었다.
“나는 이거 집기랑 기계들 정리해야 해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그거는 제가 알아서 정리하고 권리금을 좀 더 챙겨 드리는 거로 방향으로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까지? 언제부터 공사하려고 생각 중인데 그래?”
“다음 주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음주? 엄청 빠르네.”
“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계약 끝내고 싶어서요. 보증금이랑 권리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럼 나도 상관없을 것 같아.”
다행히 두 분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나는 가게를 빨리 넓히고 싶었고 카페 사장은 폐점하고 싶었고 건물주는 임대료만 꼬박꼬박 받으면 되니 어떻게 보면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잘 들어맞아서 합의를 빨리할 수 있었다.
“그럼 금요일에 만나서 계약하기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