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43 화 (여기까지 무료) >
퉁퉁
“형님, 이거 가벽인데요?”
“가벽?”
알로하와 맥다방을 나누고 있는 벽을 좀 두드려 보고는 안 서방이 나에게 말했다.
“네, 보통 백화점이나 아울렛이 아니면 이런 가벽 잘 안 하는데 다행이네요. 일반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서 뚫는 건 쉬울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기껏 가게를 넓히려고 마음먹었는데 안 된다고 했으면 속상할 뻔했는데 벽을 뚫기 쉽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사장님. 그럴 것 같다네요.”
나의 말에 조형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사실 말이 운영을 더 할 생각을 했다고 했지만, 자신이 배달까지 다니면서 힘겹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출이 더 떨어지기라도 하면 피 말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는데 돈까스가 장사가 잘된 덕분에 가게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 다행이네.”
“그럼 제가 건물 사장님하고 이야기해볼게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나누시죠.”
“어, 그래그래.”
나는 안 서방과 맥다방을 나왔다. 그때 안 서방이 나를 붙잡고 말했다.
“형님, 근데 굳이 벽을 없애야 하나요?”
“왜?”
“어차피 가벽이니까 연결되는 통로만 뚫어서 원래 알로하 쪽은 주방으로 쓰고 이쪽 카페는 홀로 쓰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안 서방이 이야기한 것처럼 구조를 상상해 보았다.
기존에 알로하는 주방에서 홀을 볼 수 있는 개방형 구조였다.
처음에는 바쁠 때 내가 도와줄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했는데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고객들에게 깔끔한 주방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이미지상 좋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하고 고객들의 시선도 신경 쓰면서 일을 해야 하므로 관찰당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도 있다.
그런데 기존과 다르게 나눈다고 생각하니 조금 고민이 되었다.
내가 고민하는 것 같이 보이자 안 서방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굳이 저쪽은 인테리어 크게 신경 안 써도 되니까 비용 많이 아낄 것 같아요.”
안 서방은 나에게 비용을 아끼는 방법을 권유했다. 처음에 가게를 오픈할 때 그는 나를 생각해서 그랬다.
기본 인테리어 가성비 좋은 자재들 그렇다 보니 다른 가게와 다른 색다른 인테리어를 추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돈을 아끼며 인테리어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생각 좀 해볼게.”
****
안 서방과 은정이를 보낸 나는 바로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허락만 맡으면 건물을 넓히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이 7월 12일 일요일이니까...시간이 별로 없어...’
로이스가 8월에 오픈한다고 했으니 그 전에 나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싶었다.
가게 설계부터 인테리어 및 디자인 결정, 거기에 공사까지 생각한다면 시간이 촉박했다.
“여보세요.”
“예, 사장님. 저 알로하 사장입니다.”
“네네, 사장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말씀하세요.”
“그 저희 가게 옆에 맥다방 카페 부동산에 내놓은 거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건물주 홍학성은 김정훈의 전화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건물주들 이야기 들어보면 최근 코로나로 매출이 많이 줄어서 임대료를 깎아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착한 건물주라고 해서 자영업자들을 위해 스스로 임대료를 낮추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자신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 혹시 제가 지금 가게가 너무 좁아서 그러는데 옆에 카페까지 임대해도 될까요?”
“카페 자리를요?”
“네, 어차피 나간다고 하시니까 이번 기회에 가게를 넓히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제가 아까 확인해보니까 지금 저희 가게랑 카페랑 가벽으로 막아져 있더라고요.”
“네. 거기가 원래는 프렌차이즈 커피집이었어요.”
“아, 그래요?”
나의 말에 홍학성이 가벽이 세워진 이유를 말해주었다.
“원래 6년 전에는 크게 자리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 망하고 나서 자리가 너무 커서 그런지 임대가 잘 안 나가더라고 그래서 나눴어요.”
나는 원래 하나였었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셨군요.”
“뭐, 지금 카페 임대료 똑같이 해준다고 하시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아요.”
홍학성은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로나가 장기화하는 건 당연하고 거기에 폐점하는 점포들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들어오는 임대료가 적어지면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건물값에 영향이 갈 텐데 돈까스가 확장하면 최소 몇 년은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았다.
“아, 진짜요? 그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 나누시죠. 시간 언제가 괜찮으세요?”
“다음 주 수요일 어때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그때 만나서 이야기해요.”
“네, 들어가세요.”
****
건물주와 전화를 끊고 가게 앞으로 나온 나는 웨이팅용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급발진 한 건가?’
급발진? 맞았다. 만약에 로이스가 들어온다는 것을 몰랐다면 가게를 넓히는 것을 천천히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8월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광주는 생각보다 좁은 도시라 백화점과 아울렛을 제외하면 입점할 만한 매력 있는 상권이 별로 없다.
특히 오피스 상권이라고 하면 시내 쪽과 상무지구가 전부였다.
둘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상무지구가 더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곳에 매장을 오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지연은 내가 이곳에 가게를 오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본사에서 상권분석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지방 같은 경우에는 점장들의 의견도 어느 정도 수렴한다.
특히 양혜원의 말처럼 최지연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사실상 이곳에 오픈 하는 것은 그녀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승이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나를 만만하게 본 건가?’
한승이 때문에 자신이 물 먹은 일에 대한 복수 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내가 장사하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상관없어. 오히려 잘 됐어.’
신규 오픈하는 매장, 잘 되면 점장으로서 입지를 좋은 기회지만 망한다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지연, 이곳으로 온 거 후회할 거다.’
****
“사장님, 고생하셨어요.”
“어, 하연아, 선영아. 고생했어.”
원래 오늘은 차를 보러 가려고 쉴 생각이었고 가게 넓히는 것 때문에 신경 쓰느라 낮에 별로 가게를 못 챙겼는데 선영이와 하연이 있어 준 덕분에 큰 일은 없었다.
“사장님, 저도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한승아. 너도 고생했어.”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도 가게 문을 닫은 다음에 집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로이스에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확인만 하고 갈까?’
주말이라 공사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지만 가게 크기와 들어갈 대략 들어갈 테이블 정도는 미리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로 경쟁 업체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신호등을 건너서 가게를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질주하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떤 관종이 또 까부나 보네.’
여기서 몇 블록만 위로 가면 술집이 많이 있는 유흥가였다. 그래서인지 간혹 저렇게 차를 타고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긴 나도 저런 차를 사고 싶어 했었지.’
순간적으로 나는 차주인을 욕하고 있는 내가 내로남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준석 대표의 책이나 로이스가 입점한다는 것을 몰랐다면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오늘 차를 보러 갔고 저렇게 타고 다녔을 수도 있었다.
‘그래, 괜히 모르는 사람 욕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로이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자동차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로이스 앞 도로에 멈춰 섰다.
빨간색 스포츠카였는데 왠지 모습이 낯익었다.
4974
차 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저 번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강훈의 차 번호였다.
예전에는 그냥 스포츠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녀석의 차가 포르쉐였다.
내가 본 파나메라와 다른 종류인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녀석의 차를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비슷한 녀석을 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었는데 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저 재수 없는 뒷모습, 역시나 강훈이 맞았다.
‘여기는 왜 온 거지? 가게 보러 온 건가?’
그때 강훈이 이쪽을 쳐다보면서 눈이 마주쳤다.
“여! 이게 누구야 김 점장. 잘 있었어?”
나를 알아 본 강훈은 손까지 흔들면서 인사를 했다.
‘씨발.’
순간적으로 욕이 나왔다.
저 웃는 쳐다보고 있으니 나에게 했던 짓들이 생각났다. 여기서 있어봤자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발걸음을 옮겼는데 내가 무시하자 화가 났는 지 강훈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아, 이 싀팍새끼가 너 지금 나 무시하냐?”
강훈은 달려와서 내 팔을 붙잡았는데 나는 붙잡힌 팔을 들고 그를 쳐다 보면서 말했다.
“이거 놓지?”
“뭐? 안 놓으면 니가 어쩔 건데.”
나는 순간적으로 팔에 힘을 줘서 녀석의 손을 뿌리쳤다. 내 팔을 잡고 있던 녀석이 어정쩡한 자세로 넘어질 뻔했다.
“아, 이 개새끼가.”
“이제 너 직원 아니니까? 반말하지 말아 줄래?”
내 말에 강훈이 나에게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달려들었는데 그때 그의 팔을 잡는 손이 있었다.
“본부장님, 참으세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최지연이었다. 아마 차에 둘이 같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강훈이 욕하는 소리를 듣고 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불같이 달려들던 강훈도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옷매무새를 가다 듬었다.
“오케이. 그래 이제 퇴사했다 이거지?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었지? 가게 염탐이라도 하러 온 거야?”
염탐은 맞았다. 하지만 그에게 대답할 생각이 없었는데 옆에 있던 최지연이 말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김정훈 점장 가게가 바로 근처에요.”
“뭐야 진짜야? 어딘데?”
그의 말에 최지연은 로이스 반대편이 있는 알로하를 가리켰다.
“저거? 코딱지 만 한 거?”
최지연이 가리키는 가게를 보고 강훈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더니 강훈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회사 그만두고 나가서 가게 차렸다고 하길래. 얼마나 대단한 가게인 지 궁금했었는데 겨우 저거야? 차라리 내 똥이나 계속 닦아주지 그랬어. 그럼 내가 더 큰 가게 차려줬을 텐데 말이야.”
예전에는 지위가 달라서일까?
그의 말 하나하나가 스트레스였다. 그가 뭐라고 하던지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묵묵히 참아야만 했던 내 처지가 답답했다.
그래서 일을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이렇게 그를 보고 있으니 하는 말이 유치해서 치기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호텔에서 본 영화에서 저런 캐릭터 본 적이 있었다. 가문의 배경만 믿고 까부는 어린아이 말이다.
“입닥쳐, 강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