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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장사를 합니다-37화 (37/225)

# < 제 37 화 >

나는 살면서 꿈을 꿔본 적이 별로 없다.

언젠가 TV에서 ‘꿈 없이 살아도 괜찮지 않나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조금은 공감했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은 조금 평범했는데 대학교 때 성적 역시 3.0의 그저 그런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여기저기 지원서를 많이 넣었는데 평범한 나를 쓰고 싶어 하는 기업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로이스에 합격했을 때 엄청 기뻤고 나를 받아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처음 신입사원 OJT 교육을 받기 위해 올라온 서울은 진짜 신세계였다.

광주에도 지하철이 있었지만 1호선뿐이라 별로 탈 일이 없었는데 서울의 지하철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출근을 하기 위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사람들을 따라서 나간 강남역 4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이는 빌딩 숲은 처음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의욕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등장한 전상욱 사장이었다.

당시 로이스는 강훈의 아버지인 강민태 사장이 오기 전으로 전문 경영인인 전상욱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신입사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들린 자리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여러분,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말이 생각나는군요. 이 세상 모든 것을 상실하고도 열정만 상실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신입사원의 눈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는데 말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이 뿜어내는 자신감과 힘이 느껴졌다.

“아마 일하시다 보면 업무와 영업 때문에 힘든 상황에 직면하시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마음, 그 열정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신다면 나중에 저처럼 이 자리에 서실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뒤에 보이는 화면에서는 프레쉬푸드의 사원에서 출발하여 사장의 자리까지 오른 약력이 적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마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을 꿨던 것 같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말이다.

****

“사장님! 2차 가시죠. 2차는 제가 쏘겠습니다.”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았는지 한승이는 자기가 2차를 쏘겠다면서 외쳤다.

“2차?”

“네, 가시죠.”

“아니야, 나는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너희들끼리 2차 가라.”

점장으로 있을 때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상사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요? 너희들은 갈 거지?”

한승이의 물음에 다른 두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젊어서 그런지 밥만 먹고 헤어지기에는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래, 그럼 재밌게 놀고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아, 시환이랑 소미 금요일 날 와도 되냐고 물어보던데 괜찮을까요?”

“어, 그래. 그때 오라고 해.”

“네,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에 섰다. 술을 먹어서 대리를 부를까 생각도 했지만 오는 동안 기다려야 되니 그냥 택시 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내일 올 때 또 택시 타지 뭐.’

얼마나 길에 서 있었을까?

좀처럼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그냥 전화로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생각지도 못한 전화였다.

< 지연이 >

‘최지연? 왜 전화했지?’

퇴사하고 나서 그녀에게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었다. 나에게 한 짓이 있어서 전화번호 차단 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남겨 뒀었나보다.

“여보세요.”

[ 오빠, 오랜만이네요. ]

오빠라...그녀에게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지연이는 내가 점장이 된 후로는 항상 직책으로 불렀었다.

“그래, 그런데 이제 우리가 통화하고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 한승이 거기서 일한다면서요. ]

언제가 알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한승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런데?”

[ 저도 오빠에게 한 짓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넘어갈게요. 대신 더는 애들 빼 가지 마세요. ]

“어차피 로이스 장사도 안 돼서 무급휴가 시키고 알바들 퇴직시키고 있다면서. 퇴직했으면 상관없잖아.”

[ 누가 그래요? 한승이가 그래요? ]

“그건 알 거 없고.”

[ 다른 계획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일했던 애들 데려가지 마세요. ]

“싫은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말했다.

[ 그래요,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나중에 저 원망하셔도 저는 몰라요. ]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런데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그렇게 점장이 하고 싶었냐?”

내가 본래 알던 그녀는 매장에서 일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문서나 서류 작업과 같은 업무는 싫어했었다.

그래서 자기는 점장과 같은 일이 맞지 않은 것 같다고 했었는데 왜 나를 밀어내면서까지 점장이 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무릎 꿇었던 날 기억하세요? ]

“무릎?”

[ 그때 생각했어요. 더러운 세상. 이왕 자존심 팔아 버린 거 끝까지 가보자고요. ]

“그거 때문이었냐?”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고 그렇게 적막감이 흐른 후 곧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토록 궁금했던 그녀가 변한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아이씨.”

****

“지연아, 나, 본사에 마감 서류 보내러 우체국에 좀 잠깐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점심 영업이 끝나고 정훈이 잠시 우체국을 갔는데 지연은 홀에서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잠시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누군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로이스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매장에 들어온 여자는 50대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지연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바로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자신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지 않았지만 원하는 자리가 따로 있는 고객들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주문하시겠어요?”

“우동 세트 하나 주세요.”

“네, 우동 세트 하나 맞으시죠?”

주문을 받은 그녀는 자신이 직접 주방으로 들어가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주방 직원이 있었지만, 최근에 조리 업무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직접 해보고 싶었다.

“주문하신 우동 세트 나왔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그녀는 고객의 자리에 우동을 놓고 돌아와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우동 국물을 한 번 떠먹은 고객의 인상이 찡그려지더니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저기요.”

“네, 고객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이거 너무 짠 거 같은데? 제대로 만든 거 맞아요?”

그녀의 말에 지연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레시피대로 비율은 지켜서 만들었다.

‘짠 걸 싫어하시는 고객님이구나.’

“고객님, 죄송합니다. 조금 덜 짜게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그래요. 이거는 도저히 못 먹겠네.”

그녀는 고객의 니즈에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에 우동 소스 비율을 바꿔서 다시 조리하였다.

그렇게 다시 만든 우동을 들고 고객에게 가져갔다.

“고객님,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지연의 말에 여자는 우동 국물을 한 수저 떠먹었는데 이번에는 괜찮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괜찮네. 내가 좀 짜게 먹는 편인데도 아까는 너무 짰어.”

“네, 고객님.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객님이 만족한 것 같아지자. 최지연은 안심하고 등을 돌렸는데 그때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우동이 좀 덜 익은 것 같은데?”

급한 마음에 빨리 만들어서 일까? 면이 안 익었다는 말에 최지연은 다시 고객에게 가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다시 조리해드려도 될까요?”

“국물도 미지근한 거 같은데 좀 더 팔팔 끓였으면 좋겠네.”

“네, 알겠습니다.”

최지연은 다시 우동을 만들어서 그녀에게 가져갔는데 벌써 두 번이나 컴플레인이 걸려서 그런 지 그녀에게 다가가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동을 내려놓다가 실수로 너무 세게 상을 내려놓았는데 우동 국물이 조금 튀어 그녀의 옷에 묻어버렸다.

“어머나!”

“죄송합니다. 고객님. 괜찮으세요?”

우동 국물이 옷에 튄 고객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최지연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말로 죄송합니다. 지금 닦아 드릴게요.”

당황한 지연은 행주를 꺼내서 그녀의 옷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지연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

“더러운 걸레로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이거 얼마짜리인 줄 알아?”

“죄송합니다.”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 나오라 해!”

잔뜩 화가 난 여자는 사장을 찾기 시작했는데 지연은 그런 그녀에게 계속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세탁비 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세탁비 때문에 그러는 거 같아? 너 나 거지 취급하니? 너 지금 내가 컴플레인 걸었다고 신경질 낸 거 모를 것 같아?”

“아닙니다. 고객님. 그건 정말 오해세요.”

“됐어. 너랑 할 말 없고. 빨리 사장 나오라고 해.”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래? 사장 안 부른다 이거지? 너한테는 더는 할 이야기 없고 비켜. 오랜만에 아울렛 와 봤더니 수준이 형편없어졌네. 정식으로 컴플레인 걸 테니까. 너 그렇게 알아.”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매장 밖으로 나갔는데 컴플레인을 건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최지연은 고객의 팔을 붙잡았다.

“고객님. 잠시만요.”

“너, 이거 안 놔?”

“제가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최지연은 계속해서 고객에게 사과를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다른 매장의 직원들도 하나둘씩 나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너 지금 나 쪽팔리게 하려고 이러는 거지? 이거 안 놔?”

여자의 말에 최지연은 붙잡았던 팔을 놓고 고개를 90도로 숙이면서 말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실까요?”

“그래? 그럼 무릎 꿇어.”

“네?”

“무릎 꿇어봐. 죄송하다면서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게.”

최지연은 그녀의 말에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했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그녀였지만 그냥 들이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그때 정훈이 한 말이 생각났다.

‘우리 제발 컴플레인만 걸리지 말자! 저번에 부산에서 컴플레인 걸려서 난리 난 거 알지?’

컴플레인이 걸리면 정훈이 고생할 것이 눈에 훤했다.

‘그래, 한 번만 참자. 나만 참으면 돼.’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가 무릎을 꿇자 여성 고객님도 그제야 구경하는 사람들의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너...내가 교양이 있어서 참는 거야. 앞으로 조심해.”

그렇게 여자는 떠나갔다. 컴플레인은 막았으나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눈물이 났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그동안 항상 고객님들에게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취급을 당하니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없어 보였다.

참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아까와 다르게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무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명랑했던 그녀가 이기적이게 변한 것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 자리를 비운 정훈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무시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점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점장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무시 받지 않으려면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승진하기 위한 좋은 기회도 찾아왔다.

“이제 이 매장하고도 안녕이군. 차라리 잘 됐어. 나쁜 기억도 다 지워버리는 거야.”

정훈과의 통화로 잠시 예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다시 보고서에 집중했다.

<< 2020년 7월 31일 수완점 계약 종료에 따른 폐점 및 이관 계획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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