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35 화 >
‘이게 뭐지?’
나는 주문표에 적힌 요청사항을 보고 무슨 내용인가 했다.
‘메뉴를 그냥 달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내가 이해한 것이 정확히 맞는다면 정식 메뉴인 치즈카츠를 공짜로 달라고 하는 요청사항이었다.
‘하...진짜로 이런 사람이 있구나.’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우리는 아울렛에 입점한 점포여서 배달을 하지 않았다.
로드샵의 형태로 있던 매장에서는 배달했었는데 가끔 단톡방에 이런 사람도 있다면서 해당 점장님이 보내준 내용이 가관이었다.
“사장님. 배달 들어왔어요? 주문 뭐예요?”
한승이도 주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나에게 메뉴를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에 주문 내역서를 건네주었다.
“왜 그러세요?”
주문을 받아든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나의 마음 같았다.
“이거 어떻게 해요?”
“고민 중이다.”
첫 주문부터 진상을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돈카츠를 공짜로 주는 거 상관없었다.
차라리 ‘형편이 어려우니 아이들 먹이게 돈카츠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했으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보냈을 것이다.
민국, 나라 남매를 도우면서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정도는 도움을 줄 정도로 내 마음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왠지 리뷰로 협박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꼭, ‘치즈카츠 안 보내주면 리뷰 나쁘게 쓸 거야!’라고 고객이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고객일 수도 있었다.
그냥 순수하게 리뷰가 하나도 없는 가게가 마음이 쓰여서 좋게 써주고 겸사겸사 돈카츠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물어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게 입장에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압박이다.
만약에 내가 로또 당첨자가 아니고 코로나로 장사가 안되는 가게였다고 생각한다면...상상하기도 싫었다.
장사가 안돼서 배달을 시작했는데 그 배달이 마음을 더 힘들게 하니까 말이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하연이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어, 하연아. 너도 이거 봐볼래?”
그녀는 배달을 많이 하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해 봤기 때문에 나보다 이런 것에 대한 경험이 많을 것 같았다.
“아, 요청사항이 좀 심하네요.”
“그렇지?”
“네.”
“너, 전에 있었을 때는 이럴 때 어떻게 했어?”
“햄버거 사장님은 요청사항 너무 과한 거는 그냥 주문취소 하라고 했어요.”
“주문취소?”
“네, 주문 취소하면 그 고객님이 리뷰랑 별점 못 달거든요.”
“그렇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그냥 주문을 취소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테스트의 목적이 컸으니 프로그램이 잘 되고 주문이 들어온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됐다.
주문취소를 누르고 배달의 가족 프로그램도 더는 주문이 들어오지 않게 준비 중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 홀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전화가 주문을 취소당한 고객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돈카츠 전문점 알로하입니다.”
“네, 여보세요.”
“네, 고객님.”
“아, 제가 방금 거기에 배달의 가족으로 주문을 했었는데요. 주문이 취소 돼서요.”
“아, 치평동 인성빌라 맞으세요?”
“네, 맞아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요청사항 들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주문 취소했습니다.”
“아, 그래요?”
“네, 저희가 배달을 이제 막 시작해서 리뷰 이벤트나 서비스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추후에 그런 이벤트 있을 때 배달을 이용해 주시겠어요.”
“아, 네. 저는 그냥 가게 리뷰 하나도 없길래. 별점도 좋게 주고 도와주려고 요청사항 적은 건데 사장님 서비스 마인드가 별로시네요.”
“네, 죄송합니다.”
“알았어요. 전화 끊을게요. 뭐...돈까스 가게가 여기밖에 없나.”
전화를 끊은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뒤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일부러 들리게 한 것을 보니 이 여자는 확실히 진상이라고 말이다.
아울렛에서 진상 고객을 많이 겪어봤는데 한 번 진상은 영원한 진상이었다.
‘내가 성심성의를 다하면 고객이 감동해서 바뀌겠지?’라는 순수한 생각은 입사 1년 차에 버렸었다.
고객과 우리는 철저한 갑과 을이었다.
그래서인지 회사에 다니면서 처리하기 가장 힘든 업무가 고객의 컴플레인이었다. 그게 발생이라도 하는 날은 정말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고객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사건의 빠른 해결을 원하기 때문에 내가 사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경위서, 대처방안, 사후보고, 재발 방지 계획까지 추가로 따라오는 업무도 많아서 컴플레인만 조심하자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 적도 있었다.
로이스에 나온 후 이런 것에 해방되었나 싶었는데 어딜 가나 저런 사람은 있나 보다.
남의 가게에서 일할 때도 참았는데 내 가게니까 더 참고 고객에게 잘 대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줄도 모르겠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저런 사람들의 특징이 장사가 잘되는 곳에서는 제 돈 내고 먹는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신들의 요청이 먹히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되는 곳, 관심이 필요한 곳, 그런 곳에 침투하여 ‘손님은 왕이다.’ ‘서비스 보고 판단하겠다.’, ‘그래서 장사가 되겠냐.’ 같은 말로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후벼판다.
나는 그런 협박에 굴복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지금 우리 가게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여기까지 찾아와 포장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배달 주문 고객을 홀대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상 고객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말이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이런 엄두도 못 냈겠지만 말이다.
****
“고생하셨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한승이가 활기차게 외쳤다.
“어, 그래. 고생했다.”
나는 매출 정산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승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사장님. 그런데 저희 의기투합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의기투합?”
“네, 새로운 직원도 왔고 6월 끝났으니까. 으쌰으쌰 할 겸 회식 어떠세요?”
생각해보니 보통 신입들은 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승이는 항상 회식을 좋아했었다. 알바생들이랑 퇴사 후에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회식으로 쌓아 올린 우정 덕분이었다.
“그래? 너, 하연 씨랑 어색해서 그런 거 아니야?”
“뭐, 조금 그런 거도 있고요. 사장님 없으면 선우랑 셋이 있어야 하는데...친해지면 좋잖아요.”
인제 보니 내가 없으면 어색할까 봐 미리 친해지려는 생각 같았는데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마침 하연이 옷을 갈아입고 왔는데 나는 그녀에게 물어봤다.
“하연 씨, 오늘 어땠어요?”
“네, 괜찮았어요. 근데 매장이 작아서 별로 안 바쁜 줄 알았는데 놀랐어요.”
하연은 출근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가게를 자세히 봤는데 생각보다 작은 매장 사이즈에 조금 걱정이 됐었다.
그런데 점심 영업을 마치고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이 전에 있던 햄버거 매장보다 매출이 좋았다.
“그...오늘 저녁에 일 있어요? 처음이니까 얼굴도 익힐 겸 저녁 같이 먹는 거 어때요?”
출근 첫날부터 회식이라니.
한승이 때문에 말하기는 했지만, 왠지 꼰대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그녀가 흔쾌히 받아 주었다.
“네, 좋아요.”
그녀가 괜찮다고 하자 한승이가 좋아했는데 나는 그 옆에 있는 선우에게도 말했다.
“선우도 괜찮지?”
“저도 가도 돼요?”
선우도 사실 가고 싶었는지 쭈뼛쭈뼛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흔쾌히 말했다.
“너도 알로하 식구잖아. 같이 가자.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 줘. 나는 이거 정산만 마무리하고 나갈게.”
“네.”
POS와 가게에 불을 다 끈 후 밖으로 나왔는데 다들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저 반대편에 삼겹살집 새로 생겼던데...거기로 어떠세요?”
“삼겹살?”
“별로세요? 그럼 사장님이 고르세요. 저희는 뭐.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래? 맨날 돈카츠 먹는데 무슨 또 돼지야. 오늘은 소고기로 가자.”
내가 소고기를 먹자고 하자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네? 소고기요?”
“그래, 6월에 한승이 고생했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다들 출발!”
출발하자고 해도 다들 발걸음이 머뭇거렸는데 나는 한승이와 선우의 어깨에 팔을 걸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누군가 로또에 당첨되고 좋은 점이 뭐가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더는 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이다.’
****
미포식육식당
내가 소고기를 먹자고 해서 다들 무한리필 같은 것을 상상했던 모양인데 의외로 제대로 된 전문식당이서 그런지 다들 의자 앉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다들 왜 그래. 얼른 앉아. 여기 SNS에서 봤는데 맛있다더라.”
최근에 SNS에 가게 검색을 많이 해보는 편이었는데 상무지구 맛집이라고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가게였다.
다들 자리에 앉자 나는 아줌마를 불러서 메뉴를 주문하였다.
“어서 오세요. 뭐로 드릴까요?”
“어...살치살 2인분, 꽃등심 2인분 그리고 갈빗살 2인분 주세요.”
“네, 술은 안 하세요?”
“다들 맥주 한 잔씩 괜찮지?”
나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는 맥주도 주문하였다.
“맥주도 2병 주세요.”
주문을 하고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승이가 먼저 말을 열었다.
“근데, 여기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저희는 삼겹살도 괜찮은데...”
아까부터 메뉴판을 힐끔거리더니 가격을 계산하고 있었나 보다.
“괜찮아. 사실 어제 주식으로 돈을 좀 벌었거든 그래서 기분 좋아서 쏘는 거야.”
“사장님, 주식도 하셨어요?”
“어, 한 지 얼마 안 됐어.”
“얼마나 버셨는데요?”
“150.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먹고 싶으면 더 시켜도 돼.”
나는 일부러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우, 많이 버셨네요. 다음에 저도 알려주세요.”
그제야 한승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는데 아주머니가 맥주와 잔을 가져다주자 그가 나서서 맥주를 한 잔씩 따라주었다.
“다들 짠 할까?”
나는 잔을 들고 말했는데 그때 한승이가 말했다.
“그래도 회식인데 사장님이 한마디 하세요.”
“내가?”
다들 잔을 들고 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거 예전에 강훈은 뻔뻔하게 마음에도 없는 말 잘 만하던데 나는 그런 재주는 없었다.’
“음...알로하를 위하여?”
나의 어색한 말에 다들 웃더니 잔을 가운데로 모았다.
“알로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