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33 화 >
일요일 아침에 출근한 어제 매출을 확인했다.
853,000원
내가 소개팅에 간 이후로 바빴을까 봐 걱정했는데 매출을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근무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탕
탕
“사장님, 나오셨어요.”
한승이는 연육기로 고기를 열심히 다지면서 재료를 준비 중이었는데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인사를 받아주면서 어깨를 주물러줬다.
“어, 그래. 어제 별일 없었지?”
“네, 저녁에는 좀 한가했어요. 그런데 소개팅은 잘하셨어요?”
“응?”
“어제 소개팅 때문에 일찍 가셨다면서요. 은정이 누나가 이야기해 줬어요.”
“아...”
은정이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소개팅하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말했나보다.
“어, 괜찮았어.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어제 세팅을 좀 바꾸는 걸 연구했거든? 괜찮은지 테스트 좀 해보자. 로스카츠 하나만 튀겨볼래?”
“네, 잠시만요.”
내 말에 한승이는 받드에서 등심 한 덩어리를 꺼내 빵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튀겼다. 돈카츠가 튀겨지고 있는 사이 나는 그릇들을 가지고 와서 실제 우리가 나가는 것처럼 세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바꾸시려고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맛은 있는데 비주얼이 좀 약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블로그나 SNS에도 많이 안 올리고 말이야.”
“그렇긴 하죠.”
한승이도 대충 느끼고 있었는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게에서 지금 하는 세팅은 넓적하고 동그란 접시에 돈카츠와 양배추를 올리고 오른쪽에 반찬인 단무지와 김치를 그리고 그 아래에 된장국과 밥을 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려고 어때?”
나는 다른 것은 바꾸지 않고 양배추를 한웅쿰 쥐어서 가운데 산처럼 수북이 쌓아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한승이가 놀랐다.
“네? 양배추를 그렇게 많이요?”
어제 이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은 어느 가게에서 파는 왕돈까스를 보고 나서였다.
왕돈까스, 점보라면, 대왕김밥과 같이 양을 늘리는 방법은 가게를 홍보하기 아주 좋은 수단 같았다.
처음에는 돈카츠 양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음식이 나왔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양배추를 늘리는 방법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튀겨 놓은 로스카츠를 썰어서 양배추 산에 기대 놓으니 모양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까 어때?”
“예쁜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시선이 확 가기는 하네요.”
“어차피 우리 가게 양배추 리필해주잖아. 그냥 처음부터 많이 주는 거지.”
우리 가게에서는 돈카츠를 제외한 양배추, 밥, 반찬, 장국 등은 리필이 가능했는데 의외로 양배추를 더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가져다주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양배추를 많이 주면 그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재료비가 더 든다는 것과 양배추를 작업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양배추 얼마나 있어?”
“오늘 쓸 거 밖에 없어요. 내일 쉬는 날이라 화요일에 주문했어요.”
한승이는 그동안 나에게 시간 나는 대로 발주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야채나 고기 같은 식자재도 직접 맡겼는데 양배추는 화요일에 시킨 모양이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렇게 못 나가겠네. 손님들 반응이 어떤지 테스트 해보고 싶었는데...”
“네, 봐서 하더라도 다음 주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음 주 화요일부터 하자, 그...양배추 양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사용한다고 생각해.”
“두 배나요?”
“어, 이왕 주는 거 팍팍 주게.”
“네...”
대답하는 한승이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는데 나는 이해가 되었다. 지금 주방에 있는 양배추 자르는 기계는 한 구짜리로 한 번에 하나의 양배추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입사할 때 선배들이 했던 말로는 채칼이나 칼로 일일이 다 썰었을 때도 있다고 하던데 그때 비하면 지금 기계로 양배추를 썰기 때문에 많이 발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데 앞으로 더 많은 양배추를 갈아야 하니 한승이의 그것을 생각하고 힘이 빠진 것이다.
나는 그런 한승이를 위로했다.
“걱정하지마. 손님들 반응 좋으면 양배추 기계 삼구 짜리 더 큰 거로 바꾸자.”
기계를 바꾼다는 말에 한승이가 웃었다.
“진짜요? 그거 100만 원 넘을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지금 장사 잘되고 있으니 더 투자해서 더 잘 되게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너도 좀만 힘내줘.”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파이팅!”
양손을 불끈 쥐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한승이를 보고 있으니 그를 직원으로 뽑은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파이팅.”
그렇게 인사를 하고 홀로 나가서 영업 준비를 하려는데 갑자기 한승이가 나를 불렀다.
“아, 맞다. 사장님 저희 혹시 알바생 더 뽑아요?”
“알바생? 왜?”
“시환이랑 소미, 로이스에서 잘려서 지금 다른 알바 구하고 있데요.”
“남시환, 류소미?”
“네.”
한승이의 말에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두 명 다 로이스에 있을 때 내가 뽑은 알바생들이었다.
일하는 센스들이 좋아서 거의 직원급으로 일을 가르쳤고 출근하면 항상 든든했었는데 왜 잘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잘렸대?”
“최근에 거기 아울렛에서 확진자 나왔다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엄청나게 줄었대요. 당연히 식당가 이용하는 손님도 없고요.”
“그래?”
하긴 직원이었던 한승이도 무급휴가로 돌리고 있는 판인데 알바들이 남아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면 당연히 뽑아야지. 매장으로 한번 오라고 해.”
****
월요일, 가게가 쉬는 날, 빨래와 더불어 내가 꼭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스케줄을 짜는 일이다.
로이스에 있을 때는 2주 치를 스케줄을 미리 짰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이 일요일까지 쉬어야 되는 날을 체크한 후 월요일에 짜서 단톡방에 알려주곤 했다.
이제 알바도 늘어났고 7월 1일이면 이하연도 올 예정이니 나는 가게 스케줄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고민했다.
‘일단 운영 시간부터...’
스케줄을 짜기 전에 먼저 손볼 것이 있었는데 가게 운영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가게의 운영시간은 11시 오픈, 9시 마감이었는데 최근에 시간을 변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굳이 9시까지 영업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술집에 잘 가지도 않고 손님들이 밥을 먹고 빨리 헤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그래서인지 8시 이후로는 거의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마감 시간을 8시로 바꿀까?’
마감 시간을 8시로 바꾸면 손님을 조금 놓치기는 하겠지만 인건비도 아낄 수 있고 나도 퇴근 후에 여유로운 삶을 조금 즐길 수 있다.
‘하긴 로또 당첨되고 제대로 즐기지를 못했네.’
로또에 당첨되고 집을 산 것 이외에 생각보다 가게에 신경 쓰느라 나에게 투자한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워라벨이라고 하잖아. 좀 일찍 끝내고 내 시간을 좀 가지자.’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줄일 생각은 아니었다. 시간을 줄이는 대신 항상 월요일에 가지던 정기휴무일을 없앨 생각이었다.
영업일수가 하루 늘어나면 오히려 영업시간이 줄어도 매출은 더욱 증가할 것 같았다.
직원 3명이 되면 로테이션으로 근무가 가능해져서 일주일 영업을 하더라도 이틀씩 쉴 수가 있다.
그래서 굳이 정기휴무를 가질 필요가 없다.
또 하루는 3인이 출근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날도 나의 휴무로 잡으면 나는 주 4일만 일하면 되는 아주 이상적인 스케줄이 되는 것이다.
‘그래, 이거지.’
정기휴무가 없으면 일요일에 폐기해야 하는 재료가 없으니 재료비 관리 면에서도 좋고 또 고객들에게도 항상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 가게 이미지에도 좋았다.
‘한승이가 주 5일 근무, 하연 씨가 주 5일 근무, 거기에 내가 주 4일 근무, 평일에는 은정이가 낮에 홀 도와주고, 밤에는 소미가 나오면 되고 주방에는 선우가 풀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선영이랑 시환이가 풀로 근무해주면 아주 퍼펙트하군.’
나는 소미와 시환이 출근한다는 가정하에 스케줄을 짰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정도 멤버면 아무리 바빠도 문제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아이들 밥 먹는 시간 챙겨 줘야 되지. 브레이크 타임은 15시부터 16시까지...’
그동안 브레이크 타임을 바쁠 때에 한해서 한시적으로 운영했는데 나는 이번 기회에 그냥 고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내가 매장에 있을 때는 손님이 들어오면 나 혼자 뛰어다니면 일하면 되지만 직원들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밥을 먹게 해주고 싶었다.
로이스에 있을 때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거 고객님들이 알 수 있게 알림판 만들어야겠다.’
****
“엥? 이게 뭐야!”
화요일에 출근해서 새로운 세팅으로 은정이에게 시범으로 보여줬는데 그녀가 놀라서 소리쳤다.
“어때? 오빠가 생각한 거야. 사람들이 좋아 할 것 같아?”
“음...근데 저렇게 돈카츠 나가는 집 어디서 본 것도 같아.”
“저걸 봤다고?”
“잠깐만...나 예전에 일본 여행 갈 때 맞집 찾으면서 본 것 같은데...”
“그래?”
은정이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더니 나에게 한 가게를 보여줬다.
“여기다. 여기. 봐봐. 여기도 양배추 엄청 많이 주잖아.”
나는 은정이가 보여주는 가게를 봤는데 정말이었다. 내가 세팅한 것처럼 그 가게도 양배추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오, 그러네. 근데 여기 장사 잘돼?”
“어, 여기서 먹으려고 알아봤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포기했었어.”
“그래? 그거 다행이네. 사실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거든.”
“모르지, 그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고...우리나라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은정이의 말에 한승이가 반박했다.
“저는 좋아할 것 같아요. 공짜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그래, 어찌 됐든 오늘은 이렇게 나간다. 반응보고 별로면 원래대로 하면 되지.”
곧이어 11시가 되고 가게에 첫 손님이 들어왔다.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었는데 새로운 세팅 방법으로 고객에게 메뉴를 들고 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양배추가 흘러 내릴 것처럼 덩실거렸는데 고객님의 테이블에 내려놓자 커플은 깜짝 놀랐다.
“오! 뭐야, 양배추 엄청 많다.”
“오빠, 나 이렇게 많이 주는 집은 처음이야.”
놀란 커플에게 나는 설명을 해주었다.
“양배추가 소화를 도와줘서 돼지고기와 함께 드시면 아주 좋아요. 여기 양배추 소스 듬뿍 부어서 드셔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커플이 식사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빠, 나 이거 찍어서 애들한테 보여줘야겠어. 완전 웃기다.”
“그래, 찍고 나도 보내줘. SNS 올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