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32 화 >
30대가 되면서 20대랑 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연애관이다.
남고를 나와서일까?
20대 초반에는 어떻게든 여자를 만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소개팅도 해보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번호도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여자친구가 생겼고 오랫동안 만나면서 즐겁고 재미있었다.
로이스에 들어가고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그다음에는 왠지 연애를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연애에 투자하는 열정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즐거움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중간에 몇 번 썸을 탄 적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연애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그게 좀 심했던 것 같다. 일 열심히 하고 퇴근해서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랄까.
연애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이제는 그 노력이 계산적이고 귀찮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계가 흐지부지되고 연인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성민이 왜 나에게 아깝다고 이야기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예쁘기도 했지만, 성격이 엄청 좋아 보였다. 특히 말을 편하게 잘 이끌어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쉴 때는 주로 뭐 하세요?”
“저요? 저는 주로 영화나 드라마 보는 거 좋아합니다. 단비 씨는 영화 좋아하세요?”
“네, 저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해서 혼자서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 간 게 꽤 오래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개봉 안 하던데...”
“네, 저도 그래서 주로 집에서 보고 있어요.”
“혹시 그 드라마 보셨어요? 제가 저번에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네요. 그...김희연 씨 나오는 드라마인데...”
나는 그녀의 말에 한 작품이 떠올랐다. 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였다.
“불륜의 세계 말씀하세요?”
“네, 맞아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그러셨어요? 보통 바람 피우는 남편보고 화내시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드라마잖아요.”
“그러셨군요. 그럼 단비 씨는 쉬는 날 주로 뭐 하세요?”
“아, 저는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요. 사실 소개팅 조금 고민했었는데 돈카츠 가게 사장님이라고 하셔서 살짝 관심이 생겼어요.”
“돈카츠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놀라지 마세요. 아마 광주에 맛있다고 소문난 돈카츠 집은 다 가봤을걸요.”
나는 그녀의 너스레에 웃음이 나왔다. 가끔 대화하다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 같은데요?”
“진짜예요.”
“아직 저희 가게 안 와보셨잖아요. 저희 가게도 맛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한 번 찾아가 볼게요.”
“네, 오시면 제가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단비 씨, 아까 돈카츠 많이 드셔보셨다고 하셨는데 어디가 제일 맛있으셨어요?”
나의 말에 그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음...아! 동명동에 규카츠라고 가봤었는데 엄청 맛있었어요. 고기가 완전 부드러워서 입에서 살살 녹던데요.”
본래 규카츠는 일본의 토종 소인 와규를 두툼하게 썰어서 빵가루와 함께 튀긴 메뉴를 말하는데 예전에 시장조사를 한다고 가서 먹어본 기억이 있었다.
“규카츠, 소고기 돈카츠 말씀하시죠? 저도 가봤습니다.”
“그리고 남구 쪽에 양림카츠라고 있었는데 거기도 맛있었어요.”
“양림카츠요? 거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잠시만요, 거기서 먹었던 사진이 있을 텐데...”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녀가 자신의 핸드폰을 뒤지더니 가게를 찾아서 보여줬다. 여기도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이었는데 음식이 정갈하니 맛있게 보였다.
“여기도 맛있어 보이네요.”
“네, 근데 가게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갑자기 궁금하네요. 어떤 곳일지.”
“알로하라고 합니다. 상무지구에 있어요.”
“알로하요? 그거 하와이에서 하는 인사말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돈카츠 가게랑은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왜 그거로 하셨어요?”
“아, 제가 예전에 너튜브에서 하와이 여행기를 본 적 있는데 너무 가고 싶은 여행지더군요. 그래서 돈 벌어서 거기 가고 싶다는 마음에 알로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러셨구나. 저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인터넷에 알로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 사람들 평이 엄청 좋네요.”
“그런가요?”
“네, 여기 리뷰를 다 엄청 좋게 써주셨네요.”
[ 상무지구 알로하, 사장님이 훌륭한 분이셔서 와봤는데 맛도 훌륭하네요. 앞으로 제 최애 돈카츠가 될 것 같아요!^^ ]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나에게 보여줬는데 가게를 칭찬하는 글이었다.
“너무 좋게 써주셨네요.”
“상무지구에 밥 먹으러 자주 갔었는데 전혀 몰랐네요.”
“아마 가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럴 겁니다.”
“아하 그렇구나. 겉보기에는 좀 평범해 보이는 돈카츠인데 이렇게 맛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비범한 조리법이 있으시겠죠?”
“네, 있긴 한데...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에이, 그건 당연하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맛집을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가 진짜인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 아까 말씀하신 가게들에 비하면 저희 돈카츠가 평범해 보이나요?”
나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란 듯 손사레를 쳤다.
“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별로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요.”
“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고민이 좀 있었거든요. 드신 분들이 리뷰로 좋은 평가를 남겨주시기는 하는데 블로그나 SNS에는 많이 안 올리시더라고요.”
이번에 너튜브에 관한 일 때문에 가게에 많은 손님이 찾아왔지만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 비해 사진을 찍거나 하는 고객들은 별로 없었다.
예전에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커플들이 많이 와도 별로 그렇게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혹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더라도 착한 사장님을 도와줬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 돈카츠에 관한 사진은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다.
“음...제가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서 알 것도 같은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 메뉴 사진으로 보면 예쁘거나 어떤 특징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아...그런가요?”
나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가게를 만들 때 가성비를 내세운 돈카츠 전문점이었기 때문에 비주얼 적인 면은 크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단무지, 김치, 양배추, 미소된장국, 밥 거기기에 돈카츠로 이루어진 일본 가정식 느낌.
일반적인 돈카츠 가게들이 많이 하는 구성이었다.
그 가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맛에 자신이 있다는 것인데 사진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일이다.
방문자가 많아져서 입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인터넷에 올라온 우리 가게 메뉴 사진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뭐, 정훈 씨도 잘 아시겠지만, 요즘에는 사진 찍으려고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블로그나 SNS에 손님 많은 가게 보면 예쁜 그릇이나 컵,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는 거 같아요. 사람들은 또 그런 신선한 것들을 사진 찍어서 올리고요.”
“네.”
“그런데 거기에 비하면 알로하는 그냥 동네 돈카츠집 같은 느낌이랄까? 그릇이랑 받침대, 컵도 좀 올드한 느낌이라 사진으로 찍었을 때 별로 예쁘게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찍더라도 굳이 SNS에 안 올리는 것 같아요.”
나는 그녀의 평가에 조금은 놀랐다.
가게를 만들 때 자본금이 부족하여 그릇과 같은 기물들은 저렴한 것으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그 차이를 정확히 말한 것이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요?”
“아,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켜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광주에 이름이 알려진 돈카츠 가게들과 비교해보니 기물뿐만 아니라 테이블과 의자 등의 인테리어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기물이라도 좀 바꿀까?’
검색으로 유명브랜드의 그릇 가격을 찾아보니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돈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게 오픈하고 3개월 정도밖에 쓰지 않은 물건들은 바꾼다는 것은 낭비인 것도 같았다.
‘그냥 지금 매출로 만족할까?’
바꾸지 않고 지금 정도의 매출과 나중에 배달까지 한다고 하면 직원들의 인건비와 가게 운영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왠지 아쉬움이 들었다.
‘아니야, 이왕 가게가 잘되고 있는 데 더 잘 되면 좋잖아.’
이제 곧 이사도 하는데 가게가 잘 된다고 하면 나중에 그 사실이 부모님과 동생에게 알려졌을 때 변명하기가 편해진다.
‘그래, 방법을 찾아보자. 기물이나 인테리어를 예쁘게 꾸미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야.’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면서 색다른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원래 창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도 있으니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가게에 응용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찾았을까? 하나의 영상이 눈에 띄었다.
“이거 괜찮은데?”
****
집으로 돌아온 현단비는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에 앉아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팩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을 살짝 들춰보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정훈이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 만나는 동안 코드도 잘 맞았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나누어서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번 정도는 더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에프터 신청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통 그녀의 경험상 첫 만남이 끝나고, 지금쯤이면 다음 만남을 위한 연락이 왔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설마 잠들었나?’
그녀는 정훈에게 오늘 낮에 일하고 왔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톡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정훈의 연락이었다.
‘이제야 왔네.’
< 덕분에 오늘 고민도 해결되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
< 네~ 저도 재미있었어요^^ >
< 네, 그럼 편하게 쉬세요. >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정훈의 깨톡이 오지 않았는데 단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게 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