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9 화 >
바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조금 놀랐다.
좋게 말해서 순수한 거고 좀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하긴 그러니까 아직 급여도 몰랐겠지...’
“바로 답하시니 좀 당황스럽네요. 생각을 좀 해보실 줄 알았거든요.”
“아, 애들한테 돈까스 나눠주신 좋으신 분이잖아요. 그래서 왠지 믿음이 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급은 지금보다 무조건 많이 드리겠습니다.”
“아! 혹시 거기 사장님을 사칭하신 거는 아니죠? 그럼 이거 무효예요.”
“네, 아닙니다.”
“그럼 됐어요!”
인제 보니 높은 텐션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사차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지연이도 예전에는 저랬었지.’
한때 그녀도 저렇게 밝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변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출근 물어보기는 했는데 언제부터 해야 하나요?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는 것은 다른 직원이나 알바 애들에게 미안해서 저 대신할 사람 구할 때까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괜찮습니다. 전 직장 마무리 잘하시고 저에게 연락해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 연락처 알고 계시죠?”
“어....저기 그게 사실은 어제 가시고 연락처 그냥 버렸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아, 진짜요?”
하긴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오해했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남자친구 계시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여기에 번호 눌러주세요. 그런데 사실 저 남자친구도 없어요.”
“그럼 아까는 왜 있다고? 설마....제가 그렇게 별로였나요? 거짓말을 하실 만큼?”
그녀에게 고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차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충분히 멋있으세요. 그냥 저랑 좀 나이 차가 있는 것 같아서요.”
“하연 씨,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저 26살이에요.”
“저는 이제 31살입니다. 5살 차이면 별로 안 나네요.”
“네? 거짓말 하지 마세요. 30 중반은 넘은 줄 알았는데...”
오늘 바쁘게 뛰어다녀서 머리도 약간 헝클어지고 그녀를 만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옷도 후줄근 하기는 했다.
30살이 넘고 나서 관리를 등한시하기는 했지만, 아저씨처럼 보인다니 조금은 충격이었다.
‘이제 외모도 좀 꾸며야 하나?’
****
< 사장님,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기로 이야기했어요. 거기는 7월 1일부터 출근 가능할 것 같습니다. >
< 네, 알겠어요. 출근하기 전에 연락드릴게요. 우리 앞으로 파이팅해 봐요. >
주말에 한참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하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나 정에 이끌려서 그만두지 못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야기가 잘 되었나 보다.
일요일 점심 영업이 끝나고 나는 그녀가 출근한다는 가정하에 스케줄을 짜봤는데 문제가 조금 있었다.
“1:1로 가기에는 매출이 너무 높아...”
원래 그녀가 출근하면 나와 조한승, 이하연, 이 3명이 번갈아 가면서 매장을 돌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너튜브 영상 반응이 며칠 안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단골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서 지금은 하루 평균 매출 8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매출이 높아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예전처럼 주방 한 명, 홀 한 명으로 매장을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 정도 매출이면 홀 2명, 주방 2명으로 가는 게 맞았다.
“면접 본 사람 중에서 알바를 뽑을까?”
지원서를 들고 면접 보러 온 인원들을 살폈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친구가 없었다. 이번 면접은 사실상 실패다.
“다시 공고를 올려볼까?”
그때 나의 눈에 점심 영업이 끝나고 바닥을 쓸고 있는 선영이가 들어왔다.
‘선영이가 계속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나의 욕심이었다. 그녀가 취직 준비한다고 했으니 그녀도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자꾸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선영아, 혹시 주말에는 알바할 생각 없니?”
나의 물음에 그녀는 쓸고 있던 빗자루질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주말에요?”
“어, 너 평일에 취업 준비하고 주말에 여기서 알바하는 건 어때? 시급도 올려줄게.”
“음....”
그녀도 취업하려면 면접도 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해서 평일에 알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만둔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말만 한다고 하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에는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7월부터는 주말에만 나와주라. 혹시 주말에 시험 같은 거 잡히면 말해. 그건 내가 빼줄게.”
“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그래도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다시 스케줄표에 집중했다.
“주말 홀은 해결됐고....평일이 문제인데...”
그때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정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평일? 평일에 내가 홀 해줄게.”
“네가 계속해준다고?”
“응, 아기 생길 때까지만...”
원래 은정이는 직원을 구할 때까지만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그녀도 적응이 되었는지 자신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괜찮겠어? 힘들다며.”
“이제 괜찮아졌어. 대신 시간만 좀 조정해줘.”
“그래? 생각해볼게.”
“치.”
시간 조정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매출이 늘었으니 이제 7월이 되어서 직원과 알바를 늘리면서 매장 운영 시간도 변경을 할 생각이었다.
내가 일하는 시간도 줄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은정이가 있으면 쉴 때 눈치가 좀 보인다. 이것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일이다.
남은 것은 주방이었는데 주방 같은 경우에는 칼과 불, 기름과 같은 위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친구로 뽑고 싶었다.
그때 매장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알로하입니다.”
선영이가 인사를 했는데 그 남자는 나를 발견하고 곧장 다가와 인사를 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나는 스케줄표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봤는데 얼굴을 확인하고 놀랐다.
“너는?”
“저 며칠 전에 여기 면접 봤던 장선우라고 합니다.”
그때 서글서글하고 인상이 좋아서 기억이 났다. 근데 내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였다. 머리가 검은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머리 바꿨네?”
“네, 탈색한 머리 지겹기도 해서 원래 바꾸려고 했었는데 사장님 말씀 듣고 그냥 바꿨어요. 다른 곳에 일하려고 해도 비슷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혹시 알바 뽑으셨을까요? 저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친절 말고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열정이다. 오랜만에 열정 있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주방도 해본 적 있니?”
****
일요일 영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과자와 함께 맥주를 한 캔 들이켰다.
“카, 속이 시원하네.”
어느덧 날짜는 6월 21일, 6월의 중순을 넘어섰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는데 일할 때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더 덥게 느껴졌다.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 끝날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 전에 발생했던 사스, 메르스와 같은 질병들은 피해자가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종료된 느낌이어서 별로 위험하다는 체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달랐다. 벌써 몇 달째 지속하고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확진자들을 보고 있으면 상황은 심각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코로나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기를 들어 올리니 박상현의 전화였다.
“어, 상현아. 무슨 일이야?”
[ 야, 김정훈. 너 사고 쳤다라? ]
“사고? 무슨 사고?”
[ 너튜브 말이야. 나 이제 봤다. 너한테 그런 휴머니즘이 남아 있었냐? ]
“난 또 뭔소리라고 나 원래 착했거든? ”
[ 그랬나? 어쨌든 축하한다. 댓글 보니까 요새 장사 잘된다고 하던데? ]
“어,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많이 와주신다.”
[ 그래, 이럴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거 알지? ]
“그거 잔소리하려고 전화했냐?”
[ 겸사겸사 안부 인사 하는 거지. 이번에 나 빼고 모였다면서? ]
“어, 그냥 오랜만에 얼굴 봤어. 너는 서울에서 오기 힘들잖아.”
[ 그렇지. ]
대답을 하는 상현이의 말투에서 왠지 외로움이 느껴졌다. 하긴 타지에서 지인 한 명 없이 매일 야근으로 생활하는데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왠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말을 돌렸다.
“아, 나 주식 시작했다.”
[ 주식? ]
녀석의 관심사가 나오자 목소리가 바로 변했다.
“어, 남들 다하는데 나도 돈 좀 벌어보려고...”
[ 그래? 시드 얼마 가지고 하는데? ]
“1....천만 원.”
나는 순간적으로 1억이라고 말할 뻔하다가 말을 삼켰다.
‘큰일 날뻔했네.’
[ 천만 원이면 천만 원이지 일...천만원이 뭐냐. 근데 생각보다 많이 하네? 가게 차리고 용케 돈이 남아 있었다? ]
“이 정도 비상금은 있었지.”
[ 그래, 혹시 종목 뭐 샀냐? 형이 이상한 거 매수했는지 검사해 줄게. ]
“종목? 일성전자.”
[ 엥? 일성전자 하나밖에 안 샀어? ]
“어, 네가 그거 사라고 했잖아.”
[ 그랬기는 했지만...하긴 너 같은 주린이는 일성전자 사서 존버하는 것도 괜찮겠다. ]
“그렇지? 일성전자 10만 원 가겠지?”
[ 10만 원이면 시총 2배 오르는 건데 쉽게 되겠냐? 10만 원까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7만 원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그래? 다행이네. 지금은 손해 중이거든.”
[ 너 평단가 얼마인데? ]
“나? 5만 5천 원.”
[ 어, 최근에 좀 올랐을 때 샀구나. 설마 천만 원 다 그거 샀냐? ]
“어...그렇지?”
[ 그럼 지금 한 50만 원 잃었겠네. ]
“뭐...그렇지...”
실제로 잃고 있는 돈은 5백만 원이어서 속이 쓰렸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았다.
[ 그래? 내가 괜찮은 종목 하나 추천해줘? ]
“괜찮은 종목? 그런 게 있어?”
[ 아, 아니다. 너는 돈 잃으면 나 원망할 거야. 그냥 못 들은 거로 해라. 원래 친구끼리 종목 추천하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 ]
최근에 너튜브를 통해서 추천 종목 등을 많이 보긴 했지만 정말로 이게 좋은 것인지 주린이인 나의 눈으로는 잘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상현이가 좋은 종목이 있다고 하니 관심이 생겼다.
“야, 궁금하게 말하다가 마는 게 어딨어. 원망 안 할 테니까 말해줘 봐.”
[ 그래? 정말 돈 잃고 화내기 없기다? ]
“어, 그러니까 그 종목이 뭔데?”
[ 야, 주식은 우리 주변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찾아야 해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게 뭐냐? ]
“코로나?”
[ 그렇지 대가리는 열려있네. 사람들이 코로나 걸려서 죽는게 문제 잖아. 그럼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
“치료제? 백신?”
너튜브에서 저것과 관련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는데 상현이는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그렇지, 지금부터 종목 추천 들어간다. 곧 이 회사가 코로나 치료제 개발로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될 것이다. ]
“오, 그런 회사가 있어?”
[ 있지. 선풍제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