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7 화 >
“네, 안녕하세요. 제가 아까 거기서 주문을 했는데요.”
“네, 주문하셨는데요.”
처음에는 여자의 높은 텐션에 놀랐다. 알바생을 처음에 뽑고 가르치다 보면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목소리 톤이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에서 고객님들에게 말할 때 명랑한 하이톤을 요구하는 데 그게 전달력도 좋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전화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내가 느끼기에 훈련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왔던 날 것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그리고 또 놀란 것은 여자의 응대 방식이었다. 예전에 서비스 관련 교육을 받을 때 배운 것이지만 항상 고객이 말하는 것을 다시 되묻는 형식의 대화를 취하라고 했었다.
오죽했으면 그때 교육했던 서비스 담당자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이 하라고까지 했었다.
그것이 고객을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도 줄 수 있고 또 고객의 요청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여 후에 있을 미연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요식업에서는 말로 주문받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저 여자가 하는 것처럼 다시 되묻지 않는 경우 주문 실수와 같은 컴플레인이 은근히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저 여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하고 있었다.
“불고기버거를 시켰는데 치킨버거가 왔습니다. 이거 배달이 잘 못 된 것 같은데요.”
“아이고, 세상에. 불고기 버거를 시키셨는데 치킨버거를 받으신 거 맞으실까요?”
“네, 맞습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주소지가 어떻게 되세요. 고객님.”
“여기 덕성빌입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한 1분 정도 기다렸을까?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객님. 기다리시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확인을 했는데요. 매장에 주문이 너무 많이 밀려서 다른 제품이 포장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혹시 햄버거 괜찮으시면 저희가 지금 바로 불고기 버거 조리해서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아, 혹시 다른 사람과 바뀐 게 아니라면 제가 그냥 이것을 먹어도 될까요? 다시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굳이 다시 받을 생각으로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괜찮다면 그냥 치킨버거를 먹을 생각이었다.
싫어하는 버거도 아니니깐 말이다.
“네, 그냥 드셔도 됩니다. 고객님. 그러시면 치킨버거가 200원 더 저렴해서 환불 해드리거나 다음에 혹시 저희 매장 또 주문하시면 서비스로 치즈스틱 챙겨드리려고 하는데 어떤 게 편하시겠어요?”
“그럼....치즈스틱으로 주시겠어요?”
“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에 주문하실 때 요청사항에 오늘 있었던 일 적어주시면 저희가 확인하고 꼭 치즈스틱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네, 고객님. 치킨버거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전화를 끊은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서비스인가?’
솔직히 나도 5년 동안 요식업에 있으면서 많은 컴플레인을 겪어보고 이제는 대응을 거의 마스터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만큼 할 자신이 없었다.
고객이 거는 컴플레인은 참 당혹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해서 떨려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물론 이렇게 응대해도 간혹 끝까지 트집 잡는 1%의 진상들이 있지만 내 기준에 100점짜리 응대라고 말하고 싶다.
“저렇게 말하면 화내려고 전화했다가도 화 풀리겠네. 아마 직원이나 사장이겠지?”
보통 일반 알바생들은 저 정도까지의 고객 응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만약 그녀가 직원이면 월급을 좀 많이 줘도 아까울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사장보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니까 말이다.
“우리도 내일 저런 알바생 왔으면 좋겠다.”
****
2020년 목요일 오후 3시 오늘도 점심에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점심 영업이 끝나고 은정이와 선영이, 그리고 한승이는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사장인 나는 쉴 틈이 없었다.
지금부터 알바생 면접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3시 10분부터 10분 단위로 오라고 연락을 했는데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알로하입니다. 고객님. 한 분이세요?”
“네. 알바 면접 보러 왔는데....”
조용히 들어오기에 고객인 줄 알았는데 알바 지원자였다.
“아, 그러세요.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나는 비교적 매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그녀를 안내하고 맞은 편에 앉았다.
“이름이 박한나 맞으세요?”
“네....”
이번에 알바를 뽑을 때 용모단정이라고 적어두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보통 서비스업에서 이런 문구를 많이 적어두는데 본래 용모단정이라는 뜻은 복장이나 두발, 염색, 문신, 수염, 피어싱 등 고객에게 불쾌감이나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신 같은 거 예쁘게 하면 멋있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을 비롯한 많은 직업군에서 문신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문신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모단정의 의미는 단순히 문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잘생겼는지 예쁜지 보겠다는 말이다.
‘씨발, 이제 일하는데 얼굴까지 보네.’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한 여자가 밤늦게 길을 걷고 있는데 어두침침한 인상의 남자가 뒤를 따라온다고 가정해보자. 이 여자는 혹시 치한이나 괴한이 아닐까 걱정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남자가 잘생긴 훈남이라고 한다면? 자신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길 기다릴 수도 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어떤 여자가 서빙하는데 자신에게 음료를 엎질렀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이 여자가 별로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화를 내 거나 세탁비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약 이 여자가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남자는 세상 쿨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죠. 물티슈 좀 가져다주시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현재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웹툰의 인기 키워드가 여신, 외모 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외모에 진짜 신경을 많이 쓴다.
물론 지원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나의 외모는 평범하다. 대신 나는 알바생들에게 없는 친절함을 가지고 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알바생들이 친절한지 안 친절한지는 면접으로 알 수 없다. 그래서 외모를 보는 것이다.
웃기만 해도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외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눈앞에 있는 면접생은 외모로만 보면 합격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어 보니 너무 소심했다.
지금도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식업에서 소심한 것은 고칠 수가 없는 병이다. 자신 혼자 소심한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고객님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전에 어디서 일해보셨어요?”
“예전에 편의점에서....3개...월 정도 했었....어요.”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녀의 면접 결과를 생각했다.
그 뒤로 몇 가지 더 형식적으로 물어보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녀는 탈락이었다.
“오느라 고생하셨고요. 면접 결과는 주말쯤에 알려드릴게요.”
“네....수고하세요...”
탈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녀 앞에서 바로 말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른다. 앞으로 찾아올 사람에 비하면 그녀가 인재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면접 결과는 항상 다 끝나고 말해야 한다.
****
면접을 끝내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면접 보기로 한 다음 지원자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씩씩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는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 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넵.”
얼굴도 훈훈하게 잘생겼고 이 정도면 외모도 합격이었다. 남자는 자리에 앉으면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는데 나는 그의 머리를 보고 나지막한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애쉬그레이 색깔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나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그도 탈락이었다.
“장선우 씨 맞으세요?”
“네, 맞습니다. 사장님. 저 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꼭 시켜주십시오.”
적극적인 것이 마음에 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나는 이번에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머리 때문에 알바는 힘들 것 같아요.”
“염색 때문인가요?”
“네, 제가 보기에는 너무 예쁜데 가끔 고객님들이 과하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네...”
“약간 갈색 정도만 염색하셨어도 제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텐데 너무 밝은색이라....여기까지 오셨는데 너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제가 머리가 검은색이면 합격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면접을 다 본 게 아니어서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본분들 중에서는 제일 인상이 좋으셨어요.”
“네....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사장님.”
탈색 같은 경우에는 머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알고 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있는데 알바 때문에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다음에 혹시 이 근처 오면 그냥 가게 와요. 내가 미안하니까 돈카츠 서비스로 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알바생 면접을 다 마치고 나는 지원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시급이 높아서 그런지 경험 있고 괜찮은 친구들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 친구들도 감사하다고 알바를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아쉬웠다.
아마 어제 S급 직원을 만난 뒤여서 그럴 것이다.
높은 텐션을 가진 그녀의 서비스를 겪고 나니 괜찮아 보이는 알바생들도 너무 평범해 보였다. 눈이 높아진 것이다.
“잠깐 생각해보니 직원으로 뽑아도 괜찮지 않나?”
지금 우리 가게는 너튜브 효과로 인해서 손님들이 몰리고 있었다. 이제 이 손님들을 단골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맛은 자신 있었다.
만약 지금 가게에 어제 통화한 그 직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무조건 단골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단골 손님이 늘면 매장 매출이 늘어나니 굳이 알바생을 쓸 필요가 없이 직원을 써도 된다.
그러면 내가 일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그래, 일단 가보자. 혹시 사장이면 포기하고 직원이나 알바면 스카우트를 시도나 해보자.”
요식업에서 스카우트는 생각보다 흔하게 이루어진다. 보통 전 직장에서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이 일을 잘해서 직접 스카우트하는 경우도 있다.
퇴근한 나는 일단 행운버거 용봉점으로 향했다. 어제 내가 햄버거를 주문한 곳이었다.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어제 통화한 그 여자가 있는 지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을 수 있었다.
“133번 고객님, 주문하신 데리버거 라지세트 나왔습니다아아아~!”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얼른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솔직히 얼굴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밝고 통통 튀는 그녀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예쁜 얼굴이었다.
주문한 버거가 나오자 먹으면서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한동안 유심히 지켜봤는데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 경험상 그녀는 사장은 아니고 직원인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저기 혹시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