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6 화 >
“바로 접는다는 건 아니고 지금 임대 계약이 얼마 안 남아서 고민 중이야. 이걸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야.”
나는 가게를 개업한 지 3개 월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또 로또에 당첨되었기 때문에 매출 감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일한 사장님은 코로나로 인하여 매출이 감소를 몸소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계약 언제까지 신데요?”
“우리? 8월 말.”
8월 말이면 사장님 말씀대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그만둔다고 하지 않은 이상 임대계약이 연장되기는 할 것이지만 연장한다고 해서 장사가 잘 될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 코로나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얼마 안 남으셨네요.”
“그러니까. 지금도 알바 안 쓰고 우리 둘이 일하고 있는데 매출이 간당간당해 차라리 가게 접고 어디 알바하는 게 더 많이 벌 것도 같고.... 요새 최저 시급도 비싸잖아.”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2명 정도의 알바를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매출 저하로 이제는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곧 날씨 더워지면 사람들이 시원한 음료 먹으러 올 거에요. 사장님 커피 잘 만드시잖아요.”
“그래, 힘내봐야지. 그래도 어제 돈까스 때문에 커피 좀 팔았어. 고마워. 나도 애 엄마한테 보고 영상을 봤는데 정말 좋은 일 했더라.”
아마 가게가 바쁜 것을 보고 찾아봤던 모양이다.
“여기 주문한 바닐라 라떼 4잔 나왔어.”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생하세요.”
나는 커피를 들고 가게를 나왔지만 왠지 눈치가 보였다. 원래 자영업을 하면서 가장 고통 스러운 순간은 우리 옆집이 장사가 잘되는데 우리 집이 파리만 날릴 때라고 하지 않는가.
그나마 우리 가게에 온 손님들이 카페로 가서 커피를 사주어서 다행이지만 그동안 서비스로 커피도 많이 주셨던 분들이기에 같이 장사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
가게로 가서 9시에 출근한 한승이에게 커피를 전달해주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정이가 매장으로 출근했다.
“어, 은정아. 왔어.”
“응, 근데 바쁘다는 이야기가 진짜인가 보다?”
“왜?”
“아니, SNS에 누가 여기 돈까츠 집 다녀갔다고 올렸더라고. 들어보니까 오빠가 좋은 일 한 것 같은데 맞아?”
SNS 계정조차 없는 나와 다르게 여동생은 그런 것에 빠삭했다.
“그래?”
“봐봐, 여기 이 사람은 너튜브 영상도 올렸잖아. 이거 사연 오빠 가게 맞지?”
은정이가 보여준 SNS에는 우리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었다.
“어, 맞아.”
“웬일이야? 오빠, 원래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어떤 거?”
“남 도와주고 그런 거 말이야. 예전에 그것 때문에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잖아.”
“내가 아빠한테 혼났다고?”
“어. 오빠 고등학교 때인가? 아빠한테 대들어서 혼났잖아.”
은정이의 말에 나는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서 말하면 근면 성실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려고 힘쓰셨다.
물론 그렇다고 가진 것을 막 퍼주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셨지만, TV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어려운 아이들에게 3,000원 후원 같은 것을 보시면 꼭 전화하시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TV를 보면서 밥을 먹다가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요즘 세상에 밥도 못 먹고 사는 아이들이 있다고 아빠가 걱정스러워하면서 ‘너희들은 엄마, 아빠도 있고 밥도 굶지 않고 잘 먹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라.’ 같은 꼰대 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가 극에 달해 있을 때여서 반항심에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아빠 논리대로면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 불쌍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소리 좀 그만 해요. 지겨워 죽겠네.”
나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밥상을 엎으시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매를 드셨다.
아마 은정이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나 보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친하게 지냈지만 그때 그 일 이후로 아빠와는 왠지 서먹해졌고 지금은 그냥 다른 아들들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그 때문에 중간에 엄마가 많이 난감해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 내가 불쌍한 아이들을 도왔다고 하니 은정이가 놀란 것이다.
물론 로또에 당첨되고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변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운 것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가게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너는 별걸 다 기억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SNS에서 보니까 반응이 좋아. 오빠 말대로 진짜 사람들 많이 올 것 같아.”
“많이 온다니까. 내가 오죽하면 널 불렀겠냐. 오늘 각오 단단히 해야 해.”
“알았어. 나 예전에 공대 카페 커피머신으로 불렸던 김은정이야. 그저 그런 알바생으로 보면 곤란해.”
은정이는 대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했는데 그때 불렸던 별명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오늘 머신이 녹슬었는지 그대로인 지 한 번 확인해보자. 일단 POS기 어떻게 하는지부터 알려줄게.”
****
2020년 6월 17일 수요일 영업이 끝났다.
확실히 3명이 하던 일을 4명이 분담하니 어제보다는 덜 힘들었다. 나와 한승이 그리고 선영이는 어제보다 훨씬 편하게 일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은정이었다.
나는 밖에 손님들이 두고 간 쓰레기들을 정리 정돈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비틀거리면서 매장 밖으로 나왔다.
“오빠, 너무 힘들어.”
자신을 기계라고 자랑하던 은정이는 점심 영업이 끝나자 녹슬어 삐걱대기 시작했고 저녁 영업을 마치자 완전히 퍼져버렸다.
“나, 내일은 못 할 것 같아.”
녀석은 하루 일하고 바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악독 사장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오늘 일당도 없음.”
“뭐?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지. 오늘은 착한 동생이 오빠 하루 도와줬다고 생각할게. 고마워.”
“아, 진짜! 나 노동부에 신고할 거야. 인건비 떼어먹는 악덕 업주가 있다고.”
“그래라. 엄마가 알면 좋아하겠네. 동생이 오빠 고발했다고.”
내 말에 은정이는 한숨을 쉬더니 지지를 쳤다.
“아, 알았어. 내일도 나올게. 대신 이번 주 일 하면 돈 줘. 이 스트레스 쇼핑이라도 해서 풀어야겠어.”
“알았어. 이번 주 일한 거 주급으로 챙겨줄게.”
“대신 진짜 많이 줘야 해. 적게 주면 그땐 오빠도 뭐고 없어.”
은정이와 한 차례 실랑이하고 있을 때 가게 안에서 한승이가 나와서 말했다.
“사장님. 주방 정리 다했어요.”
“그래? 이제 들어가자. 오늘도 다들 고생했다.”
****
“오늘은 1,200,500 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켜서 매장의 매출을 정리했다. 어제보다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테이블 6개의 매장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매출이었다.
매일 매출 현황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 두었는데 로이스에 있을 때부터 항상 하던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보려고 정리해두고 있었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강훈의 지시로 당일 영업이 끝나고 매일 보고를 했었다.
오늘은 왜 매출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또 어떻게 고객을 늘릴 건지, 위생 상태는 어떤지, 프로모션은 어떤 것을 기획하는지에 관한 보고를 끊임없이 깨톡으로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어차피 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으...보고 안 하니까 살 것 같다.”
어디서 보니까 직장인들의 가장 스트레스가 퇴근 후 깨톡으로 업무지시라고 하지 않는가. 사장이 되니 그런 것이 없으니까 좋았다.
매출을 정리해두고 다음에는 알바 구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지원서를 뽑기 위해서다.
그동안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면접을 보고 싶다고 알바생들에게 전화가 왔었다.
시급을 다른 가게보다 높은 9,000원으로 적어두었는데 효과가 탁월했다. 내일 오후 3시부터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제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 금요일 면접을 보고 주말에 생각을 좀 한 다음에 알바생을 뽑으면 다음 주부터 일을 시켜볼 생각이었다.
지금 매장이 바쁘기는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일이 바쁠 때가 배우기 좋을 때라고 생각한다.
“친절하고 밝은 알바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처음 생각한 대로 용모단정하고 친절한 알바생을 뽑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알바생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배달이 안 오지?”
집에 도착하고 밥을 해 먹기 귀찮아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햄버거를 시켰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있었다.
배달의 가족에서 말한 도착 예정 시간을 이미 10분 정도 지난 상태였다.
“전화해볼까?”
핸드폰을 찾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누군가 원룸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는 문 앞으로 달려가 소리쳤는데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배달입니다.”
“아, 네 지금 문 열어 드릴게요.”
문을 여니 배달 기사가 포장지를 들고 있었는데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배달이 조금 밀려서....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현재 시각이 10시. 한참 야식 주문이 몰릴 시간이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나는 이런 것으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 그럼 오늘은 어떤 것을 보면서 맛있게 먹어볼까?”
TV를 보면서 햄버거를 먹을 생각을 하자 엔돌핀이 막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포장지를 뜯고 햄버거를 집었는데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응? 뭐지? 나는 불고기 버거를 시켰는데?”
불고기 버거를 시켰는데 내가 집은 햄버거 포장지에는 치킨버거라고 적혀있었다.
“혹시....포장을 잘 못 했나?”
나는 불고기 버거에 치킨버거 포장지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포장지를 뜯어 보았다.
하지만 두 개의 빵조각 사이에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이것은 치킨버거가 맞았다.
“설마 내가 잘 못 시켰나?”
나는 포장지에 붙은 주문 명세를 살펴보았는데 내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불고기 버거라고 적혀 있었다.
“매장에서 실수 했나보네.”
같은 요식업 종사자로서 이런 상황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예전에 고객님의 주문을 잘 못 입력하거나 다른 테이블 음식이 나간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물론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황은 알려줘야겠지.”
아마 다른 사람이 치킨버거를 주문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불고기 버거가 갔을 것이다.
나는 뭐 다른 걸 먹어도 크게 상관없지만 다른 고객은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나는 이것을 말해주기 위해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
통화연결음이 들리고 브랜드 홍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게 패스트푸드인가 수제버거인가. ]
한참이 지났을까?
통화연결음이 끝나고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아아! 행복이 가득한 행운버거입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지? 이 미친 텐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