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5 화 >
[ 일?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
“너, 내일 시간 되지? 가게에 나와서 알바 좀 해라.”
[ 알바? 왜, 알바가 갑자기 그만뒀어?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무 바빠서 사람이 필요해.”
[ 뭐? 바쁘다고? ]
“어, 내일 나와 줄 수 있지?”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때 가족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은정이는 대학교 때 카페알바도 해봤던 경험이 있는 만큼 급하게 와주더라도 한 사람 몫은 할 것이다.
애초에 처음에 알바생이 안 구해질 때 은정이와 같이 일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 가능하기는 한데....저번에 가보니까 매장 자그마하던데 그렇게 바빠? ]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 은정이는 부모님과 와본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작은 규모에 실망감을 드러냈었다.
“아니야, 매장에 일이 있어서 손님들이 좀 늘었어.”
[ 그래? 그거 다행이네. 근데 오빠 괜히 장사 좀 된다고 일 귀찮아서 사람 막 쓰는 거 아니지? 그러다가 망하는 사장들 많이 봤다. ]
나는 은정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평소에 그녀가 나보다 부모님에게 듬직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는 했지만, 오빠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아, 싫으면 관둬. 오빠가 특별히 알바비 두둑이 챙겨 주려고 했는데.”
관두라는 나의 말에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 아니야, 나 할게. 요새 안 서방 카드 쓰느라 눈치 보였는데 오랜만에 오빠한테 용돈 받는 셈 치지 뭐. ]
“안 서방 카드?”
[ 어, 나 일 그만두고 생활비 안 서방한테 받아서 쓰고 있잖아. 마음대로 사고 싶은 거 사라고 하는데 그래도 혼자 버니까 눈치 보이네. ]
“그래? 안 서방은 잘 있고?”
“요새 주말 부부 하는 중이야. 전주로 출장 갔거든.”
“전주? 거기는 왜?”
“거기에 새로 건물을 짓고 있나 봐. 그래서 숙식하면서 지내고 있어.”
은정이의 남편인 안 서방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가끔 다른 지역에 일이 있을 때면 저렇게 출장을 다니곤 했다.
“그러면 잘 됐네. 평일에 우리 가게 나와서 일하면 되겠다.”
[ 어, 대신 시급 많이 줘야 해. 알지? 나 고급인력인 거. ]
“걱정 마. 설마 이 오빠가 동생한테 최저시급을 줄까?”
[ 알았어. 내일 가게에 몇 시까지 갈까? ]
“10시까지 오면 돼.”
[ 오케이, 내일 봐. ]
전화를 끊자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한승이와 선영이가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은 동생이 와서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오늘 저녁만 좀 힘내보자.”
“네, 사장님.”
“정말 다행이에요. 내일은 사람 한 명 더 있으니까. 좀 여유가 있겠네요. 그래도 저는 바쁜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요 며칠 매출이 별로 안 좋아서 가게 괜찮을까 걱정했었거든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 이번에 바쁠 때 열심히 해서 단골 좀 만들어 보자.”
“네!”
한승이가 말을 안 했지만, 장사가 안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나 보다.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
“사장님, 배달의 가족 프로그램 설치는 다 되었습니다.”
“벌써요?”
내가 오후에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려고 한 이유가 또 있었는데 오늘 배달 앱 담당자들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원격으로도 설치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직접 사람에게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여기 보시면 준비중이라고 되어 있죠? 아마 아침에 오셔도 POS기 켜시면 배달의 가족 프로그램에 자동으로 시작되고 설정해 둔 영업 시작 시간이 되면 영업중이라고 바뀌면서 주문이 가능하실 거예요.”
“아, 그렇군요.”
“메뉴 이미지는 저에게 보내주시면 제가 넣어 드릴 거고요. 처음에는 저희가 가격이나 이런 거 등록해드리는데 배달의 가족 사장님 사이트가 있거든요. 거기서 수정이 가능하세요.”
“이미지 넣은 다음에 영업 시작하면 되는 건가요?”
“네, 일단 메뉴 가격만 넣으면 판매가 가능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미지가 없으면 고객님들이 주문을 안 하시니까 별 소용 없으실 거예요.”
“그렇군요. 메뉴 이미지가 집에 있어서 저녁에 퇴근하고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메뉴판을 만들 때 찍어둔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배달의 가족 이미지로 쓸 생각이었다.
“네, 그럼 저녁에 보내주시면 제가 아침에 수정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부터는 배달 영업 가능하실 거예요.”
“그 배달 지역 설정은 어떻게 하나요?”
“그것도 사이트에서 수정 가능해요. 여기가 치평동이니까 치평동만 설정하셔도 되고요. 좀 더 넓게 하시고 싶으시면 다른 곳도 설정하시거나 아니면 깃발을 다시는 방법도 있으세요.”
“깃발이요?”
“네, 배달의 가족 추가로 하나 더 가입하셔도 다른 동에 이름을 좀 다르게 해서 설정하는 건데요. 노출효과가 좋아서 사장님들이 많이 이용하세요. 알로하 치평점에 하나 다른 동에 알로하 상무점으로 하나 등록을 해두는 거죠. 실제로는 하나의 가게인데 사람들 눈에 확 들어오는 장점이 있어요.”
“아, 그런 게 있군요.”
생각해보니 같은 치킨 브랜드가 집 주변에 엄청 많다고 생각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깃발이었던 모양이다.
“네, 많이 하시는 사장님들은 5개에서 10개도 하시고 그러세요. 어떻게 깃발 하나 해 드릴까요?”
“그거는 얼마에요?”
“월정액하고 똑같이 8만 8천 원이세요. 가게 하나 더 만드는 개념이라.”
확실히 고객들에게 노출 효과가 2배가 된다면 배달이 더 많이 들어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곧 그만두기로 했다.
조금 있다가 저기요도 설치하러 오기로 했고 조금 배달에 적응 된 다음에 상황을 보고 추가해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오늘 같은 매출이 지속하기만 한다면 배달을 안 해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요, 그건 다음에 배달 좀 해보고 설치하던지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더 궁금하신 거는 없으세요?”
“아, 라이더는 배달의 가족 라이더 이용해야 하나요?”
“저희 라이더 이용하셔도 되고요. 아니면 사설 배달 업체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거는 자유롭게 가능하세요. 저희 라이더 이용하시면 건당 배달비 발생하시고 뭐....그런데 사설 사용하시는 것보다 안전하고 친절하게 배달해 드릴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더 궁금한 거는 지금은 생각이 안 나네요.”
“혹시 궁금한 것 있으시면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 하시면 되시고요. 아니면 배달의 가족 고객 센터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배달의 가족 담당자가 나가자 저녁에 쓸 반찬을 담고 있던 선영이가 와서 물었다.
“배달하시게요?”
“어, 장사가 너무 안돼서 한 번 해볼까 했는데 며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배달하기는 힘들 것 같아.”
“근데 그럼 포장 용기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지금 시키려고. 배달은 나중에 할 생각인데 매장에 와서 포장으로 주문하는 고객님은 받을 예정이야. 선영이도 그렇게 알고 있어.”
“네, 안 그래도 오늘 포장 많이 물어보셨어요.”
매장이 너무 바쁘고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그냥 떠나보낸 고객님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분들에게 돈까츠를 못 팔아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너튜브 보고 오셨는데 그냥 보냈다는 것이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포장은 바로 시작할 생각이다.
‘그럼 포장 용기를 주문해 볼까?’
배달 앱 시장이 커지고 배달과 포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배달 용기도 택배를 통해서 편하게 주문이 가능했다.
물론 로이스 같이 브랜드가 있는 점포는 자사의 로고가 박힌 포장용기를 특별 주문 제작을 해야 하지만 우리 같은 영세 업장에서는 시중에 규격화 돼서 파는 포장 용기를 이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나중에 장사가 더 잘 되면 우리 가게 로고 적힌 포장지랑 용기 만들고 싶긴 하네.’
****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너희 오늘 진짜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
“네, 내일 뵙겠습니다.”
원래 셋이서 근무하는 날이면 나는 조금 일찍 퇴근했지만, 오늘은 영업 마감 시간인 아홉 시까지 가게를 지켰다.
저녁에도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쉬는 동안 준비를 해둬서 그런지 점심보다 바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승이가 선영이가 집에 간 후 매장에 혼자 남은 나는 POS기로 오늘 매출을 정산해 보았다.
1,311,000원
아까 중간에 매출을 잠깐 찍어봤을 때 70만 원을 넘겨서 오늘 매출 100만 원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며칠 매출에 가까운 금액을 하루에 벌어들이니 감회가 새로웠다.
“기분이 좋긴 한데....힘들다.”
나이가 서른을 넘겨서일까?
로이스에 있을 때는 이렇게 뛰어다닌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이들 앞에서는 티 내지 않았지만 다리가 아프기는 했다.
‘하긴 그동안 좀 쉬기도 했지.’
로또에 당첨되고 한승이가 출근하면서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고 휴무도 가지면서 좀 놀았는데 바로 몸이 편함에 적응해버린 것 같다.
‘너무 갑자기 바빠졌어. 당분간 쉬지도 못하겠네...’
사실 한승이도 오고 내가 없이도 매장을 오토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매출 수준을 기대해서 배달도 시작하려고 한 것인데....너튜브 때문에 바빠져도 너무 바빠졌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 가게가 그렇게 한가했던 모양이네....아이들이 걱정할 정도로 말이야.’
물론 조금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번 일이 희미해질 때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아이들이 그런 편지를 써줬다는 게 고마웠다.
‘너희들은 아저씨가 돈까츠 평생 공짜로 준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식자재 마트에 들려서 한승이 퇴근하기 전에 알려 준 부족한 재료들 좀 사고 매장에 도착했다.
야채와 계란 등 재료를 매장에 대충 놔둔 후 커피를 사기 위해 나는 옆의 가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맥다방입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장님이 인사를 했는데 오늘은 남편인 남자 사장님이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돈까스 사장님. 오셨군요.”
“네, 바닐라라떼 4잔 주시겠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보통 다른 카페들이 10시가 넘어서 문을 여는 것과 다르게 여기 사장님은 8시부터 문을 열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회사원들을 상대로 커피를 팔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아침에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남편의 차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커피를 만드는 남자 사장님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는데 궁금증이 생겨서 이유를 물어봤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물어보자 카페 사장님은 그때 서야 내 눈치를 보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응? 아, 미안해요. 장사하는 사람이 한숨 쉬면 안되는 건데 나도 모르게 나왔네.”
“괜찮아요. 근데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아프기는 장사가 안 돼서 그렇지...”
“장사가 안되세요?”
“어, 어제는 돈까츠 사장 때문에 장사가 좀 됐는데 저 반대편에 벅스커피 생겼잖아. 우리 단골 손님들 다 그쪽으로 간 것 같아...”
“아, 그렇군요.”
벅스커피는 커피 전문점 중에 가장 유명한 브랜드였다. 최근에 맞은편 도로에 입점한 것을 봤었는데 그것 때문에 매출에 영향이 큰 모양이다.
“코로나가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장사 그만할까 고민중이야.”
“네? 가게 접으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