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4 화 >
어제 드라마를 본 영향 때문인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왠지 그 대사를 따라 해보고 싶었다.
“뭐지?”
“저거 그 무슨 드라마 대사 아니야?”
“사장님이 재미있으신 분이네.”
어그로 끄는 데 성공한 나는 기다리고 있는 고객들에게 말했다.
“고객님들 저희가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인데···. 죄송하게도 저희 매장에는 테이블이 6개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인원이 한 번에 다 들어가시기 어렵습니다.”
나의 설명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게는 누가 봐도 크기가 자그마한 가게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오신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아무렇게나 있었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누가 자신보다 먼저 왔는지 늦게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가게에 온 순서대로 번호표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다 나눠 준 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기다리고 계시면서 밖에 있는 메뉴판을 보시고 미리 주문을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먼저 조리를 해서 바로 주문한 메뉴를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메뉴판을 보면서 어떤 것을 먹을까 고르기 시작했는데 그때 한 커플이 다가와서 물었다.
“사장님, 혹시 여기 있는 메뉴 포장은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직 포장 용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사장님, 그럼 저희는 다음에 올게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다음에 들려주세요.”
“네, 수고하세요.”
사실 죄송한 것은 나였는데 오히려 젊은 커플은 매장에서 식사하지 못해 미안한 듯한 자세를 취했다.
‘배달 대비해서 포장 용기 좀 사둘 걸 그랬나...’
매장에 포장 용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매장에서 식사하시고 남은 돈까츠를 포장해주는 용도라 크기가 작았다.
그것을 식사 포장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여기에 집중하자.’
“1번 고객님, 혹시 메뉴 고르셨을까요?”
****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더욱더 많아졌다.
기존에 우리 가게에서 식사하는 손님들 그리고 너튜브를 보고 찾아온 손님 그리고 그 손님들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 지나가다가 멈춰선 손님까지 가게 밖은 시끌 벅적하였다.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지니 마음이 급해졌지만 이럴수록 사장인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실수를 하면 전체가 꼬여버리니까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손님이 몰릴 때는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능률이 높다.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번호에 맞게 주문을 받는다. 받은 주문은 함께 주문을 넣어 한승이가 조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한승이는 메뉴를 만들고 바로 식사가 나갈 수 있게 세팅도 마친다.
식사를 다 마친 테이블이 나오면 선영이가 계산하고 테이블을 정리한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로 기다리는 고객들을 안내하고 선영이는 한승이가 준비한 메뉴를 가져다주면 된다.
언뜻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중간중간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전화가 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따르르
가게 입구에서 손님들을 받고 있던 나는 계산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돈카츠 전문점 알로하입니다.”
[ 안녕하세요. 배달을 시키려고 하는데요. ]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 가게가 아직 배달은 안 하고 있습니다.”
[ 아, 진짜요? ]
“네, 곧 배달 앱에 등록할 예정인데···. 추후에 이용해 주시겠어요?”
[ 그럼 어쩔 수 없죠. 근데 거기가 너튜브에 나온 그 돈까츠 가게 맞죠? ]
“네, 맞습니다.”
[ 사장님, 좋은 일 하고 너무 멋있으세요. 다음에 꼭 시켜 먹을게요. ]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아침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너튜브의 힘은 정말로 대단한 것 같다.
솔직히 그동안 두 달 가까이 영업하면서 이렇게 전화로 배달을 찾는 고객님들은 한 손에 꼽았는데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다섯 건이 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장님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네, 선영 씨, 2번 테이블에 단무지 좀 가져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영이도 연신 땀을 흘리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바쁜 것이 처음이라 걱정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에 열중하고 있는 와중에 뜻밖의 고객님들도 많이 있었다.
“사장님, 저희는 돈카츠 안 먹고 결제만 하고 가겠습니다.”
“네? 결제만 하고 가신다고요?”
“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어려우신데···. 어려운 아이들에게 돈카츠도 그냥 주시고 혹시 그 아이들 다음에 오면 저희가 결제한 돈으로 맛있는 돈카츠 만들어 주십시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손님은 기어코 카드를 들이밀면서 10만 원을 결제하고 가셨다.
코로나로 인하여 경제가 어려워 퇴직자들이 늘어나고 인심이 팍팍하다고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후 2시가 넘어서자 기다리는 손님들은 거의 다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식사하시는 고객님들만 나가면 전쟁과도 같았던 점심시간이 어느 정도는 마무리될 것도 같았다.
“휴, 이제 주방인가...”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한승이가 홀로 외로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한승이는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사장님, 다행이다. 안 그래도 나갈 그릇 없어서 힘들었는데 설거지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어, 그러려고 들어왔다.”
상황을 살피려고 주방을 빠르게 훑어보았는데 이미 아침에 준비한 재료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설거지할 그릇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대로 영업을 계속하는 것은 힘들겠어.’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 밖으로 나온 나는 선영이에게 가서 말했다.
“선영아. 지금부터 손님들 오시면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말씀드려. 그리고 지금 있는 손님들 나가면 우리도 좀 쉬자.”
“브레이크 타임이요?”
브레이크 타임.
휴식 시간이라는 뜻으로 보통 식당에서 점심 영업을 끝내고 저녁 재료 준비와 직원들 식사를 위해 잠시 문을 닫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가게에 브레이크 타임은 없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 5시까지 손님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하나 안 하나 큰 차이가 없었기도 했고 장사가 잘 안되니까 그 시간에 오는 손님이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받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시 그 사람이 단골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 주방에 재료가 다 떨어져서 더 하는 건 힘들 것 같다. 혹시 언제 다시 시작하냐고 물어보시면 5시에 한다고 말씀드려.”
“네, 알겠습니다.”
그녀도 많이 지쳤던지 손님들이 다 나가고 나면 쉰다고 이야기하자 얼굴에 잠깐 잃어버렸던 웃음이 돌아왔다.
주방으로 다시 들어온 나는 한승이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한승아, 지금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다. 부족한 거 있으면 재료 준비해라.”
“휴, 다행이다. 근데 고기를 더 시켜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저녁 장사하면 내일 부족할 것 같아요.”
“그래?”
이건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미 점심시간에만 우리 하루 일 매출을 월등히 뛰어넘었기 때문에 이따가 확인해볼 생각이었는데 한승이가 말해줘서 일이 줄었다.
“혹시 고기 말고 다른 것도 부족한 거 있으면 이따가 말해줘. 저녁에 퇴근하고서도 사 오게.”
“네,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핸드폰을 열어 고기를 납품해주는 사장님에게 내일 추가 배달을 해달라고 문자를 넣었다.
<< 네, 알겠습니다.>>
답장을 받은 나는 이제 앞치마를 둘러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
설거지를 어느 정도 마치고 홀로 나오자 어느새 시간은 3시가 넘어 있었고 가게에 있던 손님들도 모두 나가고 없었다.
카운터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는 선영이와 나는 눈이 마주쳤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사장님, 이렇게 바쁜 거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런가?”
“네, 예전에 오픈 처음 한 날도 이렇게 안 바빴어요.”
“그래, 고생했다. 선영이 점심 뭐 먹을래?”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입맛도 없어요...”
“그래? 김밥 먹을래?”
“네, 네, 그거 먹을래요.”
“그래, 그럼 나가서 김밥 사 올 테니까 주방에 설거지한 거 그릇 정리 좀 해줘.”
“네~”
가게를 나온 나는 김밥을 사기 위해 동성이 형님의 형제 김밥으로 향했다. 일이 바쁘고 지쳤을 때 김밥만큼 간단하게 먹기 좋은 음식은 없다.
내가 김밥집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에 앉아서 쉬고 있던 동성이 형님이 소리쳤다.
“야, 정훈아. 잘 왔다. 너희 가게 무슨 일 있어? 내가 아까 화장실 가다가 봤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하던데? 궁금해서 물어보려다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그냥 왔다.”
“아, 착한 일을 좀 했는데 사람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착한 일?”
“네, 얘기하면 좀 길어요.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우선 참치김밥 여섯 줄만 싸주세요.”
“아씨, 궁금한데···.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금방 싸줄게.”
“이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그때 주방에서 동성이 형님의 동생 동준이가 나오면서 돈까스 사연이 나온 너튜브 영상을 틀었다.
“야, 야, 여기서 잘 나오게 보여줘 봐.”
동성이 형님은 김밥을 싸면서 너튜브 영상을 시청했는데 사연을 내가 듣고 있으려니 좀 민망한 기분도 들었다.
영상을 다 본 동성이 형님은 나를 보고 칭찬을 했다.
“야, 동준아, 내가 정훈이 처음 봤을 때부터 싸가지가 있는 놈인 것 같다고 그랬지! 내가 이런 대형사고 칠 줄 알았다.”
“형이 그랬어? 나는 왜 비실거리게 생겨서 힘을 못 쓰게 생겼다고 이야기한 것만 기억나지?”
“내가 언제 그랬어!”
형제의 말에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나는 키가 178cm로 작은 키는 아니지만, 몸이 날씬하여 그렇게 약간 왜소해 보이는 편이다.
근육질인 동성이 형님이 보기에는 부실한 몸뚱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정훈아, 여기 김밥 나왔다.”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김밥을 가지고 가게로 돌아온 나는 한승이, 선영이와 늦은 점심 식사를 시작하였다.
“사장님, 그래도 이렇게 쉬니까 완전 꿀맛 같아요.”
선영이는 김밥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근데 지금도 사람들 계속 들어오는 거 보니까 브레이크 타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한승이의 말처럼 김밥을 먹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양해를 구하고 돌려보냈다.
“둘 다 고생했어. 5시까지 쉴 거니까. 이거 먹고 테이블에 앉아서 잠깐 쉬어.”
“그래도 돼요?”
“어, 낮잠이라도 한숨 자라. 그래야 저녁에 또 바쁘게 일하지.”
“저녁에도 사람 많이 올까요?”
저녁에 바쁘게 일한다는 나의 말에 선영이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녁? 앞으로 며칠은 이렇게 계속 바쁠 것 같은데?”
아까 동성이 형님 옆에서 너튜브 영상을 볼 때 벌써 조회 수가 15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영상의 인기가 계속되는 한 가게에 오는 손님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요? 내일은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요.”
한승이의 말처럼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어떻게든 셋이서 버텼지만 이게 며칠 지속한다면 지칠 것이 분명했다.
알바공고를 올리고 몇 명은 면접도 보기로 했지만 지금 당장 쓸 사람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지. 지원군을 불러야겠다.”
“지원군이요?”
핸드폰을 열어 지원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 은정아. 오빠랑 일하나 같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