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1 화 >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 그래. 한승아. 저녁에 마무리 부탁 좀 할게.”
“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다. 친구들은 내가 9시에 일이 끝나니 그때 보자고 했지만 한승이가 매장을 봐주면 되기 때문에 시간을 7시로 앞당겼다.
‘매장 장사가 좀 잘 되면 한승이 월급도 올려줘야겠다.’
그래도 믿을 만한 한승이가 매장을 지켜 준 덕분에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신입 직원이었으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장 사정이 좀 나아지면 한승이의 월급을 올려줄 생각이다. 감사의 인사는 뭐니뭐니해도 머니로 하는 것이니까.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친구 녀석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 주호영!”
“어, 정훈아. 왔냐.”
“뭐야, 너 혼자 도착한 거야?”
“아니야, 애들은 벌써 왔어. 잠깐 담배 좀 피려고 나왔다. 한 대 줄까?”
“됐다. 너는 친구가 담배 끊은 지가 언제인데 잊어 먹고 맨날 물어보냐?”
“아, 맞다. 그랬었지. 이것만 피고 같이 들어가자.”
주호영은 영업맨으로 시내 쪽에 있는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지금 가입되어 있는 자동차보험과 운전자보험도 호영이를 통해서 가입한 것들이다.
“담배 끊는다고 하지 않았냐?”
“그래야지. 근데 실적 생각하면 담배 생각이 절로 난다.”
녀석은 보험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대학교 다닐 때보다 담배가 늘었다.
대학교 때는 나도 같이 담배를 많이 폈었는데 지금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로이스에 입사하고 매장이 금연구역인 아울렛 안에 있었기 때문에 흡연을 하려면 바깥에 설치 되어 있는 흡연구역까지 나가야 했었다.
그게 귀찮아서 끊어버렸는데 그게 벌써 4년이 넘었다.
“다 폈다. 들어가자.”
“그래.”
성민은 결국 내 핑계를 대면서 약속 장소를 고급 횟집으로 잡았는데 분위기나 인테리어를 보니까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게 누구야.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오는 건가?”
예약된 방 안으로 들어서자 강성민이 너스레를 떨면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너는 정훈이한테 왜 그러냐. 원래 맨날 늦는 놈은 성민이 너잖아. 오늘 웬일로 일찍 왔다고 생색내는 거냐?”
나를 대신해 성민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친구 민현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현호의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조용히 그의 말을 거들었는데 녀석의 이름은 정은기다.
강성민, 민현호, 주호영, 정은기, 거기에 지금은 서울에 있는 박상현까지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로 20살 때부터 친하게 지낸 베스트 프랜드들이다.
“그래, 이제 정훈이도 왔으니까 음식 달라고 하자. 배고프다.”
성민은 예약하면서 미리 주문을 해뒀는지 직원을 불러서 음식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근데, 제수씨는 아직 안 오셨어?”
오늘 자리는 청첩장을 받고 성민의 와이프를 소개해주기 위한 자리였는데 그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물었다.
“아...일이 있어서 좀 시간 걸릴 것 같아. 우리끼리 먼저 먹고 있자.”
“그래?”
“일단 한 잔 하고 시작할까?”
성민은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소주와 맥주병을 따더니 글라스에 섞어서 붓기 시작했다.
“첫 잔은 당연히 쏘맥이지.”
5개의 잔에 쏘맥을 한 잔씩 말은 성민은 잔을 들면서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니까 내가 한마디 하겠다.”
“그래, 성민이가 멋지게 씨부려 봐라.”
“음...결혼과 죽음은 미룰수록 좋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하지만 너희들은 늦게 해라.”
“미친놈. 그게 곧 결혼하는 놈이 할 이야기 맞냐?”
“자자, 짠.”
나와 친구들은 성민의 말에 웃으면서 잔을 기울였다. 예전부터 성격도 비슷하고 코드도 잘 맞아서 친구들끼리 싸운 적도 없고 잘 지내왔다.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안주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부터는 자유로운 근황 타임의 시작이었다.
“청첩장은 이따가 신부 오면 같이 줄게. 다들 어떻게 살고 있냐? 정훈이 장사는 잘 돼?”
“장사?”
“그래, 저번에 갔을 때는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코로나 확진자도 많이 나와서 가게 하는 사람들 힘들다고 하던데 어때?”
가게를 처음 오픈하고 친구들이 매장 매출을 올려준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나름 바빴는데 확실히 그때와 지금은 다르기는 했다.
“괜찮아. 먹고 살만은 해.”
“그거 다행이네. 현호야, 너는 어때?”
“씨발, 나는 요새 허리 끊어질 것 같아. 코로나 터지고 더 바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민현호는 택배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배달 물량이 늘어나서 단톡방에서도 매일 밥도 못 먹고 택배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을 많이 했다.
“그거 안 됐네. 근데 너는 어차피 허리 쓸 일 없잖아.”
“뒤질래? 근데 아까 보니까 성민이 너 차 산 거 같던데 맞냐?”
“어, 이번에 하나 뽑았다.”
성민이 자동차를 뽑았다는 말에 나는 관심이 갔다. 차 때문에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무시 받은 경험도 있고 오래 되기도 해서 나도 바꾸려고 생각 중이었기 때문이다.
“야, 강성민. 차 바꿨다고? 뭐로 바꿨어?”
“K7. 아, 이제 결혼하니까 인사도 다녀야 하고 또 어른들 태우고 다닐 일도 생기는데 언제까지 준중형 타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 바꿨다.”
“그래? 그거 잘했다. 내가 진즉에 바꾸라고 했잖아. 우리도 이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큰 차 타고 다녀야지.”
성민의 말에 차에 관심이 많은 주호영이 호응을 해주었다.
“나도 차 바꿀까 생각 중인데...K7, 괜찮하냐?”
사실 바꿀 생각만 했지 차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애들한테 어떤 차가 좋은 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오, 장사 진짜 잘 되나보네? 차도 바꾼다고 하고...K7 나쁘지 않은데...솔직히 돈 좀 더 있었으면 그랜져 샀을 것 같아.”
“그랜져?”
“어, 나는 그랜져가 더 이쁜 것 같더라고...”
“그래? 그럼 그랜져로 살까?”
내가 그랜져를 산다는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주호영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아니, 무슨 환갑 넘은 아저씨도 아니고 요새 누가 그랜져를 타냐! 성민이 이 새끼 차알못이네. 그랜져 살 돈이면 차라리 제네시스를 산다.”
“제네시스? 그거 요새 예쁘게 잘 나왔다고 이야기 들어봤어. 그게 더 좋은가 보네?”
내가 주호영의 말에 호응하자 이번에는 민현호가 나섰다.
“야, 아무리 정훈이가 차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해도 사실은 정확히 말해줘야지. 제네시스 살 바에는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독일 3사 3시리즈나 C클 사지.”
“그거 외제차 말하는 거지?”
“그래, 타고 다녀봐. 간지 좔좔 흐른다.”
“하긴 나도 외제차 타고 싶기는 하다.”
그때 성민이 갑자기 손을 들면서 나를 말렸다.
“외제차 좋지. 나도 처음에 3시리즈 생각 안 해본 거 아니다. 근데 요새는 3시리즈 끌고 다니면 다들 카푸어인 줄 알어. 그런 외제차는 타고 다녀도 욕먹는다니까. 외제차 탈 거면 5시리즈나 E클은 타야지.”
이번에는 그 말에 발끈하여 주호영이 말했다.
“야, 너희 둘다 모르면 닥치고 좀 있어라. 5랑 6이랑 별로 차이도 안 나는데 뭔 5시리즈를 권유하고 있냐. 차라리 그 돈이면 6시리즈 타면 된다.”
“와, 주호영, 이 새끼 말로만 차 아는 척하고 완전 호구였네. 6시리즈 구형이라 언제 풀체인지 나와도 이상하지 않는데 그걸 이 타임에 추천 한다고? 차라리 괜찮은 딜러 구해서 7시리즈 할인 풀로 받아서 사고 말지.”
“그래? 그럼 외제차 중에 7시리즈가 괜찮은 거야? 그거 살까?”
“근데 솔직히 좋은 차 하면 S클이지. 나도 능력만 되면 S클 타고 싶다. 내가 지금 개같이 택배 나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차 타기 위해서지.”
“와, 이 새끼들 하다 하다 S클까지 추천을 해 줘버리네. 왜 좀 더 보태서 포르쉐 파나메라 사라고 하지.”
“파나메라는 인정. 그 정도 광주에서 끌고 다니면 완전 간지 나지.”
“누가 들으면 파나메라가 옆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알겠다.”
“왜? 그렇게 비싸?”
“비싸지. 옵션 넣으면 2억에서 3억 하지 않나?”
“그럴 걸?”
“그래?”
나는 친구들이 말한 차에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야, 근데 정훈이가 살만한 걸 추천해줘야지. 정훈아, 돈 얼마나 있냐? 형이 제대로 견적 뽑아 줄게.”
“어...아니야. 지금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 나중에 사게 되면 물어볼게.”
“그래? 혹시 살 거면 나한테 꼭 물어봐라. 저 새끼들은 내가 보니까 차 잘 모른다.”
나는 주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잘 빠진 검은색 포르쉐가 나와 있었는데 왠지 마음에 끌렸다.
‘이거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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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들과 근황을 이야기 하면서 술을 한 잔씩 하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면서 한 여성이 들어왔다.
“어! 유진아. 왔어?”
“아, 미안해. 오빠 내가 너무 늦었지.”
“이쪽으로 앉아. 애들아, 이쪽은 나랑 결혼할 와이프 최유진이야. 유진아, 여기는 내 친구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었죠. 웨딩스튜디오가 갑자기 사진 수정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아, 저희는 괜찮습니다. 야, 강성민! 너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그동안 숨기고 있었어!”
민현호의 말에 강성민이 웃었다.
“숨기기는 누가 숨겼다고 그래. 아 그리고 유진이 우리 과 후배야. 후배.”
“진짜? 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희들은 아싸잖아.”
생명공학과. 우리가 같이 다닌 과 이름이다. 학교 다닐 때 나와 친구들은 학과 생활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붙어 있어도 즐거웠기 때문에 친구들끼리만 놀았었는데 그래도 성민은 일찌감치 연구원으로 진로를 잡아서 학과에 얼굴도 비추면서 활동을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11학번 최유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어...그래.”
그래도 재수씨이고 처음 보는 사이라 좀 어색했는데 그래도 학과 후배라고 하니 그래도 조금은 더 반가운 느낌이었다.
“내가 많이 말하기는 했는데 아직은 누가 누군지 잘 모르지? 내가 알려줄게.”
“어, 오빠, 그래도 몇 분은 본 적 있는 것 같아.”
“그래? 누구?”
“은기 선배님 맞으시죠? 저희 학번에서 유명했어요. 잘생기셨다고.”
최유진의 말에 정은기가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웃었다. 은기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한 편이다. 그리고 잘생겼다.
뭐...나도 못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은기에 비하면 평범한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놈이 우리랑 어울리는지 이상할 정도로 잘생겼다. 신입생 때 같은 학번 친구와 선배들 포함 5명 정도가 저놈을 좋아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학과에서도 잘생긴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은기를 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우리 은기가 잘생기기는 했지. 지금은 조금 맛이 가려고 하지만...”
“그리고 정훈 선배님 맞으시죠?”
나는 은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녀가 내 이름 말하자 놀랐다.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어...맞는데. 날 어떻게 알어?”
“예전에 MT 때 오시지 않으셨어요? 그때는 안경을 안 쓰셨던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