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20 화 >
“아저씨, 여기 돈까스 너무 맛있어요.”
아이는 입에 돈까스 소스를 묻히고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 가게 돈까스를 칭찬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이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칭찬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꼬마야, 이름이 뭐니?”
“어...제 이름은 나라에요. 신나라.”
“그래, 예쁜 이름이구나. 혹시 더 먹고 싶으면 말해. 아저씨가 또 만들어 줄게.”
“네!”
나라는 즐거운 듯 콧노래도 하면서 오빠가 잘라주는 돈까스를 포크로 콕콕 찍어 먹었다.
나는 혹시나 아이들이 체할까봐 냉장고 문을 열어 캔콜라 두 개를 꺼내 빨대와 함께 가져다 주었다.
“이거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라의 오빠는 콜라를 따서 컵에 따라 주었고 동생은 컵을 들어 콜라를 한 모금 크게 들이키더니 말했다.
“오빠, 우리 다음에 오빠 생일에 또 오자.”
나라의 말에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진짜? 또 올 거지? 그럼 약속!”
“약속.”
남매는 다정하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있었는데 사이좋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흐뭇 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 생일이니?”
“네, 오늘은 나라 생일이에요. 그래서 오빠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나왔어요.”
나는 아이의 말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 것 같다는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의 생일에 그 정도밖에 해줄 수 없을 정도로 집이 가난하다는 말이니깐 말이다.
아니, 어쩌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진짜로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나라는 좋겠네. 이렇게 착한 오빠를 두어서.”
나는 나라에게 말하면서도 가끔씩 오빠의 반응을 살폈다. 녀석은 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눈빛에서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 오빠를 보고 나는 결심했다.
‘그래, 이왕 인심 쓰는 거 조금 더 쓰자.’
나는 카운터로 가서 지갑을 챙기고 선영이에게 말했다.
“선영아, 잠깐만 가게 좀 보고 있어, 어디 좀 금방 다녀올게.”
“오래 걸리세요?”
“아냐, 금방 올거야. 혹시 손님 들어오시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려.”
“네.”
“그리고 혹시 아이들 집에 가려고 하면 돈 받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가게를 나온 나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빵집으로 향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아이에게 케이크를 사주기 위해서다. 생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홈베이커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케이크 사려고 왔는데요.”
“이쪽에서 골라주시겠어요.”
진열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들이 있었는데 나는 크기가 좀 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골랐다.
“이걸로 포장해주세요.”
“네, 35,000원이세요. 혹시 초는 몇 개나 필요하세요.”
생각해보니 나라의 나이는 모른다. 그래도 10살은 안 넘었을 것 같아서 작은 초로 10개를 달라고 말했다.
가게로 돌아 온 나는 아이에게 케이크를 건넸다.
“자, 이거 아저씨가 주는 생일 선물이야.”
“우와, 케이크다!”
남매는 이제 돈까스를 다 먹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건네주는 케이크를 받고 깜짝 놀랐다.
나라는 케이크를 보고 엄청 기뻐했지만 오빠는 갑작스러운 나의 선물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거 아저씨가 오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라고 사주는 거야 알았지?”
“네, 아저씨, 감사합니다. 저 오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아이가 케이크를 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오빠가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돈까스도 많이 주시고 케이크도 사 주시고...”
“괜찮아. 나도 동생이 있는데 내 동생이랑 닮아서 사주는 거야.”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5천 원...”
나라의 오빠는 아까 꼭 쥐고 있던 5천 원을 나에게 건넸다. 그것을 본 나는 받지 않고 다시 녀석의 손에 쥐어 주었다.
“돈은 됐어. 다음에 동생이랑 돈까츠 먹고 싶으면 또 와.”
“아니에요. 사장님. 케이크도 사주셨는데 이러면 너무 죄송해요...”
내가 돈을 안 받는다고 했지만 나라의 오빠는 계속해서 나에게 돈을 내밀면서 어떻게든 돈을 내려고 했다.
나는 계속 거절하다가 녀석의 어깨의 손을 올리고 물었다.
“이름이 뭐니?”
“민국입니다. 신민국.”
“그래, 민국아, 살다 보면 이런 좋은 날도 있는 거야. 아저씨도 얼마 전에 그런 날이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그때 받은 행운을 지금 너에게 나눠주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마.”
“그래도...”
“그리고 사실 이거 공짜로 주는 거 아니야. 오늘 맛있게 먹은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 가게 맛있다고 자랑해 주라고 아저씨가 로비하는 거야. 로비 알지?”
“네...”
“그러니까 다음에 돈까츠 또 먹고 싶으면 부담 가지지 말고 동생이랑 손잡고 와 아저씨가 너희 남매, 우리 가게 VIP로 등록시켜 줄 테니까.”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선영이에게 말했다.
“선영아, 혹시 나 없을 때 VIP 고객님 또 오시면 서비스로 해드려 알겠지?”
“네, 사장님.”
나의 말에 민국이는 고개를 떨구더니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오빠, 울어?”
나라는 그런 오빠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는데 민국은 바로 팔로 눈물을 훔치면서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꼭 갚을게요.”
“그래, VIP 고객님이니까. 당연히 우리 가게에 돈 많이 써야지. 아저씨가 기대하고 있을게.”
****
가게를 나가고 집으로 향하는 민국과 나라 남매는 몇 번이고 가게를 돌아보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오늘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500만 원을 잃는다는 생각에 우울했었는데 재료비와 케이크값을 합하면 대략 5만 원 정도의 돈을 쓰고 좋은 기운을 얻은 것이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주식계좌에 들어가 있는 돈을 다 잃는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직 아까 저 소년이 들고 있던 5천 원에 몇백 만 배에 달하는 돈이 남아 있다.
남매에 비하면 여전히 행복한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나는 핸드폰을 열어 나의 주식계좌로 미수금 8천만 원을 입금하였다.
손절이 아닌 존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원래 2천만 원만 가지고 하려던 주식 시드가 1억까지 늘어났지만 아까보다는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 원래 2천만 원까지는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잖아. 오를 때까지 버티자. 돈이 급한 것도 아니니깐...”
한껏 편해진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깨깨오톡에 엄청 많은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어플을 열어 채팅을 확인해보니 나랑 가장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무려 200개가 넘는 신규 채팅이 있었다.
“미친놈들 또 쓰잘대기 없는 농담 따먹기 하고 있나 보네.”
일하고 있을 때 자꾸 알람이 울리는 게 신경이 쓰여서 채팅방을 무음으로 해두고 가끔 들어가 내용을 확인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많은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면서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단톡방 멤버 중 한 명인 강성민이었다.
“여보세요.”
“야, 이 쒸불년아.”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친구의 정다운 안부 인사에 나도 대응을 해줬다.
“왜, 개새끼야.”
“너 왜 깨톡 확인을 안 하냐? 뒤지고 싶냐?”
“일하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너 내일 우리 만나기로 한 거 알고 있냐! 모르냐!”
“내일? 우리 내일 만나기로 했냐?”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저번에 청첩장도 주고 와이프도 소개시켜 준다고 친구들 다같이 금요일날 보자고 했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바빠서 대충 들었는데 내일이었나 보다.
“쏘리, 그게 내일이었냐? 내일 가면 되잖아.”
“형님이 일부러 가게 때문에 바쁜 너를 위해서 상무지구로 약속을 잡았는데 너는 왜 투표를 안 하냐.”
“투표? 무슨 투표?”
“아니다. 너는 그냥 나한테 말해라. 소고기 먹고 싶냐? 회 먹고 싶냐? 내일 뭐 먹을지 정해야 할 것 아니야.”
이제보니까 저걸 정하느라 단톡방에서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지금 2:2거든 네 결정에 달렸다.”
녀석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소고기랑 돼지고기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기를 매일 먹다시피 해서 신선한 회가 끌리기는 했다.
하지만 회는 내 돈으로 사 먹을 때도 있지만 소고기는 내 돈으로 사 먹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본래라면 무조건 소고기를 골라야 맞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소고기도 그렇게 비싼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고를 수가 없었다.
“아, 빨리 말해. 시간 없엉. 예약 해야 돼.”
“음...나는...아무거나!”
“아이씨, 아무거나충 극혐. 너 때문에 삔또 상해서 회로 정한다. 수고.”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벌써 부터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바빴는데 내일은 애들 만나서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라의 생일 축하합니다.”
나라와 민국의 할머니인 김순심 여사는 케이크에 초를 밝혀 놓고 노래를 부르는 손주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나뿐인 아들이 사고로 죽고 애들 엄마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애들을 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부터 손주들을 맡아서 기르고 있었는데 생활이 많이 여유롭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가끔 구청과 시청에서 하는 공공근로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면서 공공근로 일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 덕분에 가뜩이나 어려웠던 형편이 더 어려워져 손녀의 생일에 가진 돈 5천 원을 쥐어서 보냈다.
그렇게 애들을 보내고 내심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있었는데 아이들이 밝게 웃으면서 들어온 것을 보고 사정을 물었다.
“진짜 착한 사장님이네. 민국이 나라도 공부 열심히 해서 사장님처럼 좋은 사람이 되렴.”
“네, 할머니. 그런데 걱정이 돼요.”
“뭐가 말이니?”
“아까 보니까 가게에 저희 말고 아무도 없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안간다고 했는데...사장님도 사실은 어려우신 것 같아요.”
“그거 안 됐구나...”
“저희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손주의 말에 김순심 여사는 아침에 들은 라디오 방송이 생각이 났다.
TV가 고장 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낮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연을 접수 받는다고 했었다.
“음...방송국에 편지로 사연을 보내 보는 건 어떨까? 혹시 방송을 듣고 한 사람이라도 사장님 가게에 찾아 간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오, 할머니. 그거 좋은 생각 같아요. 지금 당장 편지 쓸래요.”
“그래, 그래. 이 할미랑 같이 써보자.”
책상에 앉은 민국은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방송국에 보낼 사연을 적기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상명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오늘 너무나 좋으신 사장님을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