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19 화 >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목요일 오후 2시, 점심 영업의 마지막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야, 여기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엄청 맛있다.”
“그러게 저번에 그 맛집이라고 갔던 곳보다 여기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오늘은 한승이가 쉬는 날이어서 내가 주방을 담당했다.
메뉴가 안 들어올 때 틈틈이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칭찬일색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맛있게 바뀐 돈까스를 먹을 고객님이 줄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고 최근에는 사망자까지 증가하면서 저번 주와는 또 다르게 고객들이 줄어든 것이 체감이 되었다.
“배달을 좀 빨리 시작해야 되나...”
본래 한승이가 어느 정도 매장과 새로운 레시피에 적응을 한 다음에 배달을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의 매출 감소라면 당장 시작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배달을 시작하든지 홍보를 하든지 해야겠다. 맛있게 재료를 준비해도 먹을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잖아.”
사실 그동안 가게를 알리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다. 일단 저번 달까지 신규 매장 오픈빨로 지인들과 손님들이 제법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SNS나 블로그에 광고 문의를 해볼까...?”
비록 코로나 시국이지만 아직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식당들이 많이 있다.
이런 식당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인데 하나는 부모님부터 자식에게로 이어져가면서 입소문을 탄 맛집들이다.
이왕 밖에서 외식을 하는 거 맛이 검증된 식당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집들은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더 잘되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두 번째는 SNS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예쁜 배경이나 인테리어를 갖춘 감성이 풍부한 카페와 맛집들이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행사, 영화, 공연 등 많은 볼거리들을 즐길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예쁜 카페나 식당에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카페와 맛집을 찾기 위해 젊은 세대들은 SNS와 블로그를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보니 꽤 유명한 SNS나 블로그에는 서로 자신의 가게를 홍보 해달라고 요청이 쇄도 한다고 들었고 그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효과도 좋아서 광고 한 번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하니 메뉴에 자신 있다고 한다면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 광고료 얼마나 받는지 알아나 보자. 생각보다 싸면 한번 맡겨 보는 거지.”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알바도 새로 구해야 하네.”
선영이가 이번 달까지 해준다고 했으니 여유가 좀 있기는 했지만 공고도 올리고 면접도 보고 교육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1. 토요일 아파트 매매 계약
2. 일요일 알바 공고 올리기
3. 화요일 배달 앱 담당자 만나보기
4. 수요일 SNS, 블로그 광고 문의
“맞다. 집, 계약하면 이사도 알아봐야겠네...”
어떻게 된 것이 정리를 하면 할수록 새롭게 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승이가 있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승이가 없이 이 일을 모두 처리 했어야 된다고 생각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급하게 말고 하나씩 천천히 처리해 나가자.”
솔직히 떨어지고 있는 가게 매출을 생각하면 천천히 하나씩 처리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나가서 전단지라도 돌려야 할 상황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로또 당첨금이 있다. 인생을 천천히 즐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녀석 말이다.
“하긴 지금 제일 급한 것은...나의 주식계좌지.”
아침에 출근할 때 보기는 했지만 주식 계좌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일성전자가 내가 산 뒤로 계속 떨어져 마이너스 5%, 500만 원의 손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에 대해 공부하면서 종목토론방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서 연신 사람들이 10만 전자 가자고 외치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주가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소리만 치고 사지는 않는 것 같아...아니면 나처럼 다 손실 중인 사람들인가...”
오늘은 증권사 상담사가 말한 미수 사용 마지막 날이었다. 주식 장이 끝나는 3시 30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500만 원의 손해를 보고 미수금을 매도할 것인지...아니면 예수금 8천만 원을 더 넣어서 존버할 것인지 말이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주린이인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수 십 억의 로또 당첨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맨정신으로 마이너스 500만 원의 매도 버튼을 누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첫 날 마이너스 50만 원일 때 팔 걸 그랬나...’
지난 날의 후회도 밀려왔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였다.
‘그래도 아직 시간 있으니까...오후에 조금 올라주지 않을까?’
아까 점심시간 손님이 있을 때는 그나마 조리를 하고 있어서 주식에 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일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앉았다.
밖에는 혹시나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대기용 의자를 놔두었는데 아직 웨이팅이 걸릴 정도로 바쁜 적이 없어서 이렇게 내가 잠시 휴식을 취할 때나 쓰곤 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가게 왼쪽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홍보용으로 세워 둔 배너 앞에 2명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한 명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한 명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등교하지 않고 쉬는 학교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오빠, 나 돈까스 먹고 싶어.”
이제 아홉 살이나 되었을까?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애는 오빠로 보이는 소년의 손을 잡고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로 오려나...들어가서 준비해야겠다.’
밥을 먹으러 들어올 수도 있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왠지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오빠는 미동도 하지 않고 배너에 적힌 메뉴들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세히 바라보았는데 소녀의 손을 잡고 있는 반대 손에 5천 원짜리 한 장을 꾹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5천 원 밖에 없는 건가?’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행색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부모들이 혹시나 우리 아이 기죽거나 왕따 당할까봐서 좋은 옷, 좋은 가방, 좋은 신발 등을 사주고 꾸며 준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 가게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때 소년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혹시나 소년이 어색해 할까봐 밝게 웃어줬는데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소년이 입을 꽉 다물고 나에게 와서 물었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어, 내가 사장인데...무슨 일이니?”
“저...혹시...돈까스 5천 원어치는 판매 안하시죠?”
녀석의 말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이라고 말이다.
로이스에 있을 때나 여기 알로하에 일하면서 학생들을 많이 겪어봐서 알고 있다. 보통 학생들은 엄마나 아빠의 카드를 사용한다.
간혹 카드 한도가 넘거나 잔액이 부족한 경우에 부모님에게 전화하여 돈을 부쳐달라고 하거나 사장인 나에게 직접 전화를 연결하여 계좌이체를 한다.
지금 저 소년처럼 말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는 손에 5천 원을 꼭 쥐고 말하는 그의 말에 그가 동생을 위해서 큰 용기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여동생 은정이가 생각났다. 예전에 어렸을 때는 단둘이 손잡고 분식집에도 가고 했었는데 지금은 같이 밥 먹은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다정히 손을 잡고 있는 남매를 보고 나는 인심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가능하지. 들어와. 아저씨가 맛있게 돈카츠 튀겨 줄게.”
소년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동생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래?”
나는 아이들에게 테이블을 안내 해주고 주방으로 들어가 돈카츠를 종류별로 하나씩 튀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5천 원어치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은정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돈카츠를 튀기면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왜 로또에 당첨되고 기부를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로또에 당첨되고 삶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말이다.
나도 솔직히 로또 당첨금이 없고 그냥 장사가 안 되서 밖에 멍하니 서 있었다고 하면 저 소년의 물음에 흔쾌히 가게로 들어 오라고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 살기도 어려운데 누구를 챙긴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부터 기부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지금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이런 소소한 도움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카츠를 튀겨서 홀로 나가니 기다리고 있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양에 오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생 것 뿐만 아니라 내가 2명 분의 돈카츠를 넉넉히 튀겼기 때문이다.
“사장님, 저는 5천 원어치만 시켰는데...”
신난 동생과 다르게 오빠는 걱정이 되는 듯 나에게 물었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 우리는 원래 이렇게 팔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된다.”
이미 밖에서 메뉴판을 보고 들어온 오빠는 내가 배려하여 많이 준 것을 아는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래, 맛있게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