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16 화 >
마지막 문자를 뒤로 하고 내가 연락을 더 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전화와 문자가 왔다.
그녀는 화가 나서일 수도 있고 매매를 계속하기 위해서 연락을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그녀와 연락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오바 했나?’
사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지 그냥 무시했으면 될 일이었다.
굳이 통장 잔고까지 보여주면서 그녀와 자존심 싸움까지 한 것은 과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고 난 후 이성적으로는 당첨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당첨 사실을 자랑하고 티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그냥 평범한 자영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입학, 졸업, 취업, 승진, 성공, 임신, 출산 등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
더군다나 지금 나는 좋은 집과 자동차는 물론 옷과 악세사리 등도 살 예정이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사는 이유?
자기만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집에 산다.’
‘이런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이게 나의 능력이다. 어때? 부럽지?’와 같은 과시욕을 보이면서 말이다.
적어도 내가 배운 서비스업은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허세심을 채워주는 직업이었으니까 말이다.
로또 당첨은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이야기였으니 나도 모르게 그것을 순간순간 말하고 싶은 욕망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친구는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숨겼지만 중개사의 말 한마디가 트리거가 되어 나의 이성의 끈을 잠시 풀리게 만들었다.
나 돈 많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게 말이다.
아마 그녀와 나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고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바보 같은 짓을 했네?’
엄밀히 말하면 이건 감정 컨트롤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면 남은 인생이 편해진다는 것을 모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의사와 변호사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바로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때로는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좋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보다 다른 직업을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조절에 실패해서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 통장 잔고까지 보여준 것은 나의 실수가 맞았다.
광주는 생각보다 좁은 도시...다음에 그녀를 다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inner peace.”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말을 읖조리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마음의 평화라는 뜻으로 예전에 로이스에 다니던 시절 상대하기 어려운 진상 고객님들을 만났을 때 항상 저 단어를 가슴 속에 떠올리면서 참았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마음 속으로 외치고 나니 정신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래, 이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티내지 말자. 나는 가게하고 주식으로 돈을 번 거야.”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게 되면 부모님과 여동생도 언젠가는 내가 어느 정도 돈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해서 가게 매출도 올리도 주식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가게 매출은 맛을 향상 시키고 배달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주식이었는데 며칠 책과 너튜브를 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익혔으니 이제는 실전으로 해볼 차례였다.
“내일은 진짜 주식을 해봐야겠다.”
****
“사장님, 여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오후가 되자 나는 집을 보기 위해 다른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네네, 올라가실까요?”
아침에 만났던 공인중개사 때문에 혹시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걱정과 다르게 이번에는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여기가 총 36층까지 있는데 엘리베이터도 2대씩 있고 그 63빌딩 같은 고층 건물에 들어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라 속도도 엄청 빨라요.”
“오, 진짜 엄청 빠르네요.”
“뭐,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제가 다 설명해드릴게요.”
오후에 보기로 한 아파트는 은정이가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스테이트힐 아파트였다.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알아보니 지금 광주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고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아파트라는 말이 있었다.
< 1801호 >
“집주인은 낮에 출근하셔서 안 계시다고 해서 저희보고 그냥 안에 들어가서 보라고 하셨거든요.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가지런히 있는 신발장과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이 오전에 봤던 KS뷰 아파트 보다 훨씬 넒어 보였다.
“여기가 35평 맞죠?”
“네, 맞아요.”
KS뷰 아파트가 33평이었는데 불과 두 평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아줌마가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여기가 다른 곳보다 면적이 넓게 빠졌어요. 35평이라고 해도 다른 곳 40평 대랑 느낌이 비슷하실거에요.”
“네, 거실이 넒어서 좋네요.”
“방 3개에 화장실은 거실에 하나, 안방에 하나 있고요. 방마다 시스템에어컨 다 들어가 있고요. 그리고 펜트리가 있어서 물건 저장하기도 좋고 안방에 보시면 옷방도 따로 있어서 따로 장롱 같은 가구도 필요 없을 거에요.”
아줌마의 설명을 따라 집을 둘러 보았는데 엄청 세련되게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구나.’
“여기 보시면 대피공간도 있어서 화재 같은 거 일어나도 걱정하실 필요도 하나 없고요.”
“그렇군요.”
“그리고 또 여기가 광주에서 최초로 5G 아파트로 선정되어서 생활하기 편하실거에요.”
“5G 아파트가 뭐죠?”
“어...요새 TV에 보면 인공지능 AI 이용해서 난방하고 에어컨 틀고 TV 켜고 끄고 또 집 밖에 있어도 문도 열어줄 수 있고 세탁기 돌릴 수 있고 뭐...그런 것들이 스마트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되요.”
“오, 신기하네요.”
“아까 여기 우리 문 열어준 거도 집주인이 인터폰으로 우리 얼굴 확인하고 열어 준 거에요.”
아줌마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여기 지하로 가면 헬스장, 샤워장, 탁구장, 골프장, 독서실 까지 부대시설 없는 게 없고요. 또 아파트 주변으로 영산강 산책하기 너무 좋아요. 저도 밤마다 운동 삼아 돌고 있는데 공기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야.”
“그렇군요.”
“어때 마음에 들어요?”
“네, 괜찮은 것 같네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동으로 가보죠. 거기는 여기랑 구조가 조금 다른데 또 색다른 느낌이 들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아줌마를 따라서 이번에는 옆 동으로 이동했는데 거기는 또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여기는 30층이었는데 아까보다 훨씬 높아서 그런지 아래를 내려다 보니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오우, 여기는 엄청 높은데요?”
나는 고소공포증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 무서운 곳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놀이기구고 잘 타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다.
창문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니 약간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좀 살다 보면 금방 익숙해 질 거에요.”
“그런가요?”
“여기는 어때요?”
“여기도 마음에 드네요. 여기는 얼마라고 하셨죠?”
“아까 거기가 6억 4천에 나왔고 여기는 6억 6천이에요. 아무래도 층수가 있어서 여기가 좀 더 비싼 편이고 혹시 관심 있으시면 내가 집주인에게 말해서 오 백에서 천 정도는 네고 해볼게요.”
솔직히 말해서 KS뷰보다 여기가 좀 더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면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크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거실에서 보는 뷰였다.
KS뷰 아파트에서는 거실에서 호수를 볼 수 있어서 나름 운치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파트 단지 내부가 보였다.
중개사 아줌마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전에 좋다고 하셨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이가 없다.
“그...SNS에서 보니까 저쪽 영산강이 보이는 곳도 있던데 거기는 어느 동인가요?”
“아, 거기는 103, 104, 105동인데 거기는 42평이에요.”
아파트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여기 입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거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은정이의 말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이 아파트를 보려고 했다.
“그렇군요. 42평은 매매가가 얼마나 하죠?”
“거기는 제가 알기로 기본 7억 5천 넘을 거에요.”
아파트를 사기로 생각했을 때 37억에서 7억 정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었다. 7억 5천이면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42평도 한 번 봐보시겠어요?”
“아, 지금 볼 수 있는 곳 있나요? 볼 수 있으면 온 김에 보고 싶네요.”
“잠시만요.”
내가 집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자 아줌마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저번에 104동 매물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거 나갔어? 어...아직 안 나갔어? 그럼 그거 지금 볼 수 있을까? 우리 고객님이 지금 보고 싶어하셔가지고...그래, 집주인에게 확인하고 바로 연락 줘.”
혼자서 사는 건데 33평 아파트도 많이 넓은 감이 있었데 그런데 42평이라니 여러모로 과했다. 하지만 이왕 집구경을 온 거 어떤 느낌인지 실제로 보고 싶었다.
잠시 기다리자 집주인의 허락이 떨어졌는지 아줌마가 나를 104동으로 데리고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3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구조는 33평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거실로 간 나는 창문이 커튼으로 덮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제쳤다.
그리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보는 강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저런 모습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아줌마는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고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이 집 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