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14 화 >
“어이, 김 점장, 인사과에서 퇴직원 냈다고 연락왔던데!”
퇴직원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이기 때문에 전화는 받는 나의 말투가 썩 친절하지는 않았다.
“김 점장, 그러니까 내가 서울로 오라고 했을 때 말 들었으면 얼굴 붉힐 일도 없고 좋잖아. 왜 일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어...”
처음에 그가 서울로 오라고 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갈 마음이 있었다. 그가 승진을 시켜준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회사에 들어온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강 팀장의 권유에 따라 서울로 간 직원들의 끝이 전부 다 퇴사와 횡령 등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회사에 열정이 있을 때라 퇴사하기 싫었던 나는 좋은 말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트집과 강도 높은 업무 지시였다.
내가 그가 말하는 것들을 수행하지 못하자 결국 나를 다른 지역의 부점장으로 좌천시키려고 했고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퇴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가 지연이를 점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강 팀장은 자주 광주로 출장을 왔었는데 회식을 하고 내가 집에 가고도 단 둘이 술을 마셨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도 나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바보 같았다.
퇴직원을 내고 바로 일사천리로 지연이가 점장으로 발령되고 나를 슬슬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문점이 생겼고 추궁한 끝에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지연이가 점장을 하고 싶다고 했으면 다른곳으로 보냈어도 되지 않나요? 왜 저한테 그렇게까지 하셨죠?”
“그것까지는 알 것 없고...회사를 떠나는 기분이 어때?”
사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로이스는 광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매장이 많이 있었는데 강 팀장은 그곳에서도 애인을 두고 있었다.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동기들과 연락을 하면서 알게 된 정보였다.
지역마다 여자친구를 한 명씩 두고 출장을 다니면서 즐기는 그야말로 황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나는 더이상 회사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강팀장을 보면 미래가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할 말 없습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아, 잠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혹시 다른 회사 알아보고 있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자네의 그 상관에게 대하는 뻣뻣한 태도에 대해서 말해 줄 예정이거든 그거 말하려고 전화했어.”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화가 났다. 로이스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이직을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왜 이렇게 까지 하시는 거죠?”
“방금 말했잖아. 상관에게 대하는 뻣뻣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고생 좀 하면서 마음을 좀 다스리라고 혹시 알아? 나중에 좀 숙이고 들어오면 내가 다시 받아줄지 말이야.”
****
잊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일을 회상하니 화가 올라 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쌍욕을 하고 전화를 끊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직을 하기 위해서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번번이 컷 당하고 나서야 나는 그가 한 말이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로이스는 돈까스 브랜드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업계에 나름 영향력이 있는 회사였고 강 팀장은 거기에 후계자였기 때문에 인맥이 넓었다.
상황을 받아들인 나는 이직을 포기하고 나만의 가게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가 그것까지는 방해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로이스를 능가하는 가게를 만들어야지 같은 꿈도 있었다. 하지만 곧 현실을 깨달았다.
신용대출까지 끌어모아서 만든 작은 가게로는 로이스를 상대하기에 체급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까 말이다.
또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강 팀장 지연이에 대한 생각도 지워졌었다.
그런데 로또 당첨으로 어떻게 보면 기회가 왔다.
당첨금을 모두 투자하여 점포를 늘리면서 로이스를 겨냥하면 어쩌면 펀치 한 방 정도는 날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통해서 로이스가 쓰러진다면 강 팀장이 바닥에 다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비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리스크가 컸다.
로또 당첨금을 모두 투자한다고 해도 로이스의 규모가 훨씬 컸으며 대적하기 위한 인적 자원도 너무 부족했다.
조금만 마음을 다스리면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복수심에 사로잡혀 일을 크게 벌리는 것은 나의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다.
실패시 나는 로또 당첨금을 모두 날리고 많은 빚도 생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접었었는데 한승이가 오고 나서 강 팀장과 지연이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자 작은 목표가 생겼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잡혀 있자 한승이가 나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아니야, 그거 좋은 생각 같다. 한승아.”
“어떤 거요?”
“우리 가게의 목표를 찾은 것 같아.”
“어떤 거요?”
“우리 규모에서는 밀려도 맛에서는 로이스에 밀리지 말자.”
“맛에서요?”
“그래, 최소한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로이스보다 맛있다는 이야기 하게 만들고 싶어졌어.”
“오, 그거 괜찮은데요. 근데 그러려면 재료비랑 더 많이 들어갈텐데...가게에 부담되지 않을까요?”
“그거는 걱정하지마. 너는 조리에 집중하고 나랑 같이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만 연구하자.”
“네, 알겠습니다.”
****
한승이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준 나는 홀로 나왔다. 대부분의 일이 로이스에서 했던 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위치와 장소만 익숙해지면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카운터로 간 나는 핸드폰을 열어 매장에 고기를 대주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알로하 사장님. 한영 축산입니다. ]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잠시 전화 통화 괜찮으세요?”
[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고기가 벌써 떨어지셨어요? ]
원래 나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업체에서 고기를 받는다.
간혹가다가 고기가 급하게 부족할 일이 생기면 이렇게 전화해서 주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장님은 그 이유 때문에 전화한 줄 안 것 같았다.
“아닙니다. 오늘은 여쭤볼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사장님 돼지고기 1등급 말고 그것보다 높은 것도 취급하시죠?”
[ 당연히 하고 있죠. 1+등급으로 필요하세요? ]
“네, 저희 좀 더 좋은 고기 써보려고요.”
[ 어떻게 다음주 화요일부터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럼 다음주 화요일부터 항상 쓰시던 양으로 1+ 등급 돼지고기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맞으시죠? ]
“네네, 그렇게 해주세요.”
[ 사장님, 돈까스 가게 아니었나요? 1+등급은 돈까스로 잘 안 쓰던데... ]
“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메뉴 연구차 한 번 좋은 고기 써보려고요.”
[ 아,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
“혹시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날까요?”
[ 음...사장님 것은 등심과 안심 따로 제작 해야 해서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들어가는 양으로 하면 한 번 들어갈 때 한 2만 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 차이 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괜찮으시겠어요? ]
일주일에 2번 고기를 받고 최소 8번 정도 들어오고 거기에 추가 주문까지 생각한다면 한달에 한 20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의 재료비가 더 들어가는 것이다.
‘뭐...어제 넣은 적금 이자를 재료비에 투자한 셈 치지 뭐...’
로또에 당첨되기 전 한 달에 25만 원이라고 하다면 부담이 크게 느껴져 꿈도 꾸지 못할 생각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주 화요일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
전화를 끊고 나서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한승이가 말한 텐더라이즈도 주문을 하였다.
로이스 보다 맛있는 돈까스를 만들기 위해서지만 솔직히 어떤 맛의 변화가 있을지 나도 기대가 되었다.
딸랑딸랑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선영이 안녕.”
고기 주문을 마치고 카운터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마침 선영이가 출근을 하였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그때 선영이가 나를 붙잡았다.
“사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응? 무슨 말?”
그녀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저...이번 달까지만 하고 알바를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대충 그녀가 할 말이 있다고 할 때 눈치를 채기는 했지만 역시나 알바를 그만둔다는 말이었다.
“그래...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나한테 서운한 거 있는 거 아니지?”
“아...아니에요 사장님. 이제 취업 준비 좀 제대로 하려고요. 평일에 면접보고 준비하려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 달까지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나이 25살로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우리 가게로 들어왔다.
원래 처음에 뽑을 때부터 돈 모을 때까지 3개월 정도 일 할 것이라고 그녀가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별말이 없어서 계속하는 줄 알았는데 올 것이 와 버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럼 6월 말까지 일하는 거로 하자. 괜찮지?”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그만 둔다고 말까지 해주고 선영이 정도면 착한 알바생이었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닌데 붙잡을 수도 없다.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열심히 일해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이거...사람을 또 구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