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13 화 >
“형님, 저 왔습니다.”
토요일 일찍 나와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한승이가 도착했다.
“한승아, 9시까지 천천히 와도 된 다니까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사장님한테 잘 보이려면 일찍 일찍 다녀야죠.”
나는 출근 시간으로 뭐라고 하는 꼰대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에 점장으로 일할 때 직원이나 알바들에게 5분이나 10분 정도는 일찍 나오거나 혹시라도 늦을 것 같으면 연락이라도 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외식업의 높은 퇴사율 때문이었다.
외식업의 특성 상 일이 점심과 저녁 시간에 몰리고 고객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버티고 그만 두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미리 말하고 그만두는 경우는 양반이었고 무책임하게 당일에 출근을 안 해서 연락하면 그냥 못 나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되면 3명이 해야 될 일을 2명이 하게 되고 또는 쉬고 있는 다른 친구가 출근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를 많이 겪다 보니 좀 일찍 출근해서 혹시나 안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안 하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혹시나 못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비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저번에 선영이를 빨리 집에 보낸 것처럼 영업이 빨리 끝날 때면 먼저 퇴근 시켜 주는 경우도 많았었다.
뭐...어떻게 보면 한승이와 내가 지연이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방법도 이거와 비슷하기 때문에 내로남불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거는 우리가 당한 것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유지하도록...”
“그런데 옷은 어디서 갈아 입어요?”
“옷은 그냥 주방에서 갈아 입어야 해. 탈의실이 따로 없다. 쏘리.”
예전에 아울렛에서 근무할 때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17평에 불과한 작은 매장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알바생 선영이 같은 경우도 따로 근무복이 없이 그냥 사복에 앞치마만 두르고 일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근데 이거 옷 입어도 되겠죠?”
< 로이스 >
녀석이 가지고 온 근무복을 보니 옷에 선명한 로고가 박혀 있었는데 바로 나와 한승이가 전에 일하던 돈까스 프렌차이즈 회사였다.
사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근무복도 로이스에서 일하던 주방복이었다.
오랫동안 입었던 옷이라서 그런지 이게 편해서 계속해서 입고 있었는데 녀석도 마찬가지로 그 옷이 편했는지 입고 싶어 했다.
“어, 나중에 돌려 달라고 하면 분실했다고 돈으로 준다고 해. 내가 사줄게.”
본래 퇴사자들은 입었던 근무복은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무복의 경우 그렇게 세세하게 재고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분실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연이라면 한승이가 갑자기 그만둬서 악감정이 있을 테니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나오면 그냥 돈으로 지불해 버리면 된다.
“일단 그것부터 떼어내자.”
나는 홀에서 칼을 가지고 와서 한승이의 가슴에 붙어있는 로이스라는 로고를 떼버렸다. 칼로 몇 번 긁어내자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는데 속이 시원했다.
로이스...어떻게 보면 나에게 애증이 있는 회사였다.
젊었을 때 청춘을 바친 회사였고 회사를 위해서 야근도 하고 쉬는 날에도 나가서 일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짓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열정스럽게 일을 했다.
솔직히 강 팀장이 아니었다면 내가 받은 부당함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 팀장은 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사고 치는 아들 자리 하나 만들어주고 회사에 정착 시킬려고 했던 생각 같은데 선을 넘는 일을 많이 했었다.
그게 나에게 까지 닿았고 나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었다.
“다 했다. 그럼 출근해서 하는 일들 어떻게 하는 지 설명해줄게.”
회사에서는 메뉴얼 북이라고 하여 업무를 전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어 내가 구두로 설명을 해줘야 한다.
알바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 A4 용지로 간단하게 만들어서 코팅해 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한승이는 직원이니 조금 더 자세하게 알려 줄 생각이다.
“일단 출근해서는 처음에 홀 오픈 좀 도와주면 돼.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11시에 출근하거든? 그러니까 그 전에 어느 정도 네가 홀 오픈을 해두는 거지.”
“넵, 알겠습니다.”
나는 홀 오픈 하는 방법을 녀석에게 설명해주고 다음은 주방으로 넘어갔다.
머리가 멍청한 녀석은 아니니 홀 오픈 하는 방법 같은 경우는 며칠 하다 보면 익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주방이었다.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녀석에게 여러 가지 기물의 위치, 재료의 위치부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주방 같은 경우는 도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헐, 여기는 망치 쓰네요?”
“망치?”
한승이는 주방 도구 중에 망치를 보고 신기해 했는데 연육다지기, 연육망치 등으로 불리는 돈까스를 다질 때 쓰는 망치였다.
“어, 하긴 로이스에 있을 때는 안 썼지? 너는 처음 보겠다.”
로이스에서도 내가 처음 입사 했을 때는 바로 이 망치를 사용했다.
망치를 사용하는 이유는 돈까스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인데 초창기에는 점포에서 망치로 고기를 일일이 다졌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점포가 많아지면서 한승이가 입사하기 전 즈음에는 매장에서 고기를 다지지 않고 공장에 맡겨 다진 다음에 냉동 포장된 형태로 주문을 받아 그냥 빵가루를 묻혀서 튀기기만 하는 형태로 업무가 간단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가게의 규모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하나씩 다져서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는데 녀석이 보기에는 신기한 과정일 것이다.
“저도 이거 알고 있어요. 돈까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망치로 때리는 거잖아요.”
“오, 알고 있구나. 내가 좀 있다가 어떤 식으로 하는 지 보여줄게.”
“네, 그런데 요새는 망치말고 텐더라이저라고 해서 연육기 많이 쓰던데 그거는 없으세요?”
“텐더라이저?”
나의 반응에 한승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모르셨어요?”
“응, 그게 뭐야?”
녀석은 핸드폰을 열어서 텐더라이즈를 검색해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미트 텐더라이즈라고 고기 연육기의 한 종류인데 미세한 칼날이 고기 사이를 파고 들어서 힘줄까지 잘라주거든요. 이거 사용하면 망치로 치는 것보다 훨씬 고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래?”
“네, 형님, 퇴사하고 회사에서 이거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다른 점포에서 건의 나왔었거든요. 뭐, 이미 공장에서 다져서 포장하는데 두 번 일할 필요 없다고 강 팀장이 컷 했지만 말이에요.”
“그랬었구나...”
나는 한승이가 검색한 텐더라이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격은 2만 원 정도로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를 사용해서 고기를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다면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주문 해야겠다. 다음 주에 한 번 사용해보고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혼자 있을 때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한승아, 지금처럼 매장을 운영하는데 좋아 보이는 거 있으면 나한테 언제든지 말해라. 가게 장사 더 잘 되게 해서 매출 늘려야지.”
“네, 알겠습니다. 근데 연육기만 바꿔서 써도 로이스보다 훨씬 맛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냉동고기도 아니고 생고기 사용하잖아요.”
고기는 얼렸다가 녹으면 육즙이 많이 손상되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점포가 많은 로이스는 유통 과정의 편리함을 위해 고기를 얼리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로 인해서 초창기 맛을 잊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지...근데 고기 차이가 있어서 맛은 크게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어.”
“고기 차이요?”
“로이스는 1+등급 돼지고기 사용하거든...우리는 1등급 이고...”
“아...”
쇠고기에도 등급이 있듯이 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다. 1+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등외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쇠고기에 비해서 돼지고기는 등급이 맛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로이스는 이 중에서 1+등급을 사용하는데 보통 일반 음식점들이 1등급 고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좋은 고기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내가 이 가게를 차릴 때 추구한 운영 방식이 가성비 좋은 가게이다.
지금 포털사이트에 적지만 올라와 있는 가게 평점이나 리뷰를 보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ㄴ가성비 괜찮은 돈까스 집이네요.
ㄴ간단히 한 끼 식사하기 괜찮은 듯.
ㄴ회사 근처라 가끔 먹는데 나쁘지 않음.
그렇지만 이게 다였다. 간혹 가다 맛있다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평은 가성비 좋은 나쁘지 않은 가게인 것이다.
“그럼 우리도 1+등급 고기 사용하면 로이스 보다 맛있는 돈까스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한승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가는 듯한 말로 말했는데 그 말이 왠지 내 가슴을 울렸다.
“로이스보다 맛있는 돈까스라...나쁘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