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장사를 합니다-9화 (9/225)

# < 제 9 화 >

여동생과 나는 2살 차이가 난다.

어렸을 때는 내 말도 잘 듣고 오빠라고 존중도 해줬었는데 나보다 먼저 취직해서 사회생활도 시작하고 결혼도 하면서 대가리가 커졌다고 해야 하나? 말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했다.

“뒤질래?”

“나한테 왜 그래? 오빠가 오랜만에 연락하니까 그러지.”

“뭐가 오랜만이야 저번에 전화 했잖아.”

“저번에? 설날에 언제 내려갈꺼냐고 물어본 거 말하는 거야?”

“그때 이후로 안 했었나? 너랑 최근에 통화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저번에 가게 오픈 축하한다고 전화한게 마지막이었어.”

은정이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래도 하나뿐인 동생인데 그동안 별로 챙기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 그랬어? 쏘리, 원래 가족끼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야. 괜히 연락해봤자 사고 터진 이야기만 나 온다고 하잖아.”

“그래서 나한테 연락한 거야? 사고 친 거 아니지? 장사는 잘 돼? 또 알바가 필요해?”

처음에 가게 오픈 할 때 알바가 너무 안 구해져서 그녀에게 일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은정이는 결혼하고 아이를 준비 중이어서 잠시 일을 쉬고 있었기 때문에 권유했었는데 그녀도 진짜 알바가 안 구해지면 말하라고 했었다.

물론 그 후로 선영이를 알바로 구해서 은정이가 가게에서 일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야, 장사는 나쁘지 않아. 오늘은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 했어.”

“궁금한 거?”

“어, 요새 광주 아파트 어디가 인기가 많냐?”

“아파트? 갑자기 왜?”

그녀에게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고 말하려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녀가 아파트에 대해서 잘 알 것 같아서 전화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녀를 비롯한 가족들은 내가 로또에 당첨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직장 다니면서 모아둔 돈과 대출까지 받아서 가게를 차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을 산다고 이야기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냥 나도 결혼을 하려면 집 한 채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어디가 인기가 많은 지 궁금해서...”

“그래? 그런데 그런 거는 결혼할 여자친구를 먼저 만들고 나서 고민해야 되는 거 아니야?”

갑자기 팩폭하는 그녀의 말에 전화를 끊어 버릴 뻔 했지만 한 번 꾹 참았다.

“자꾸 속 긁는 소리 할래?”

“쏴리, 근데 인기 많은 아파트는 알아도 오빠가 돈 모아서 사기는 힘들걸?”

“그래? 그 정도야?”

“어, 나도 결혼할 때 집 사서 정말 다행이야. 광주 집값이 장난 아니게 올랐거든 내가 작년 9월에 이 집 샀잖아. 그때 2억 2천이었는데 지금은 2억 6천이나 한다니까.”

“와, 많이 올랐네?”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지 투룸에서만 살고 있어서 별로 체감하지 못했는데 은정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많이 오르기는 했다.

“근데 이것도 우리 아파트가 지어진 지 7년 된 아파트라서 이 정도야 이제 막 지어진 신축 아파트들은 장난 아니야.”

“그래? 그런 것들은 얼마나 하는데?”

“뭐, 좀 알아주는 1군 브랜드 아파트들은 4억 그냥 넘어갈 걸? 쌍암동에 있는 스테이트힐은 6억 넘어간다고 하던데...”

“비싸기는 하네...”

“당연히 비싸지. 그런데 이것도 서울이나 경기도에 비하면 양호한거지. 사실 대출이자 너무 비쌀 것 같아서 더 좋은 아파트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집값 오를 줄 알았으면 대출 최대한 땡겨서 더 좋은 곳으로 갈 걸 그랬어. 내가 원래 눈 봐둔 아파트가 있었거든? 거기는 6개월 만에 8천만 원이나 올랐어.”

“그래?”

“대한민국 사람들 내 집 마련에 꿈이 강하잖아. 더군다나 광주는 아직 대출도 집값의 70%까지 해주고 말이야. 다른 광역시들은 너무 올라서 다 조정지역 들어갔대.”

“조정지역? 그건 뭐야?”

“뭐야, 그런 것도 모르다니 우리 오빠 인생 헛살았네. 모르면 나중에 인터넷으로 따로 찾아봐. 나도 설명해주기는 귀찮다.”

“크흠...그래.”

“에이구...나도 로또나 당첨 됐으면 좋겠다. 그럼 스테이트힐 바로 살텐데 말이야.”

갑작스러운 로또 이야기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로또?”

“어, 나랑 영호씨 월급 모아서는 절대 못 살 것 같아.”

순간적으로 내가 로또에 당첨된 걸로 의심하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거기가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광주에서 요즘 1등으로 뽑히는 아파트인 걸...”

“그래? 그럼 나도 거기를 목표로 해야겠다.”

“아서라. 거기 살려면 최소 2억 이상은 현금 들고 있어야 하는데 1년에 천만 원씩 모아도 20년이나 걸려. 오빠는 그러지 말고 투룸에서 월세 내지 말고 차라리 그 돈 대출이자로 내고 전세나 좀 싼 매매로 알아봐.”

“어, 나도 이제 좀 그렇게 살아 보려고. 그래서 너한테 전화 했잖아.”

“오, 우리 오빠가 왠일이지? 예전에 이런 이야기 하면 귀찮다고 그랬었잖아.”

“야, 이제 나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이제부터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그래? 그거 다행이네. 이번에 내려가니까 아빠랑 엄마가 걱정 많이 하더라. 코로나인데 장사 잘 될까 모르겠다고...너도 무심하게 하지 말고 연락 자주 드려.”

“안 그래도 엊그저께 엄마한테 전화했다. 너 잔소리 점점 심해지는 거 보니까 이제 전화 끊어야겠다. 니 목소리 듣기 별로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래, 나중에 조카 생기면 말해. 축하 선물로 좋은 거 사줄테니까.”

임신을 준비 중이어서 그런지 선물을 사준다는 말에 이 전까지 투덜대던 말투와 다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진짜?”

“어, 진짜.”

“알았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데 더 노력해볼게.”

“그래, 다음에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볼게.”

“오케이.”

두서 없는 통화 내용이었지만 그녀와 전화를 통해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은 수요가 계속 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잘 모르고 살아왔지만 이왕 이사가기로 결정한 거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

“네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변동 사항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지난밤 은정이와 전화를 끊고 여러 가지 조건들은 맞춰서 몇몇 아파트들을 후보리스트에 올렸다.

은정이가 깨톡으로 광주 부동산에 관한 정보가 많이 나와 있는 포털사이트를 알려주었는데 거기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으로 내가 생각한 최대 집값은 7억이었다. 총 37억의 당첨금에서 7억 정도를 집에 투자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매매가격에 맞는 후보군들 중에서 가게에 출퇴근하기 편한 곳들을 골라내자 몇몇 아파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는 동안 인근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돌려 다음 주 가게가 쉬는 월요일에 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알고 보니 최근 한 3개월 동안은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거래가 잘 안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인지 전화하는 공인중개사들 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물들을 어필했다.

쾅, 콰득

“오우씨, 뭐야.”

가게가 있는 건물 지하주차장에는 건물에 입점한 가게 주인들을 대상으로 월 정액권만 끊으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전화 통화 하느라 차 문을 조금 세게 닫았는데 먼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서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어보았다.

확인해보니 안전벨트가 너무 길게 내려와 있어서 안전고리가 문에 걸려 소리가 난 것이었다.

“깜짝 놀랐네.”

안전벨트를 조심 스럽게 들어 올려보니 안으로 말려들어가지 않고 덜렁대고 있는 것이 고장 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차도 오래 탔군.”

2012년식 포르테.

5년 전 직장을 처음 구하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중고차 매장으로 가서 24개월 할부로 가져온 녀석이었다.

그래도 처음 가져올 때는 그 전 주인이 많이 타지 않아서 깔끔했었는데 지금은 가죽 시트도 조금 찢어지고 많이 낡은 모습이었다.

그 전에 나는 집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차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차는 그저 출퇴근 수단으로 이용한 게 전부였고 그저 때가 되면 서비스센터에 가서 엔진오일정도를 바꿔주는 정도랄까?

차를 겁나게 아끼는 친구 정인이는 그런 나를 보고 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중고로 산 차였고 별다른 신경 쓰지 않아도 고장도 없이 잘 굴러 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는 야채 같은 것을 많이 싣고 다녔는데 지금도 트렁크에는 흙이 묻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그 생각을 조금은 바꿀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집에는 좋은 차가 어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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