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7 화 >
“아우, 역시 집이 편하기는 하구나.”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눕자 화가 났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 들었다.
비록 자그마한 투룸이었지만 그래도 오래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이곳이 편하기는 했다.
“그런데 생각할 수도 어이가 없단 말이지.”
나는 아까 전의 일을 떠올렸다.
월세 35만 원.
상황을 보아하니 건물이 오래되어서 방이 잘 안 나가니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방을 싸게 내 놓은 것 같았다.
뭐 상황은 이해가 된다.
건물 주인인 아줌마도 무료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돈 벌려고 임대료를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방을 비워 두는 것보다 싸게라도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몰라도 자신이 여기서 산 기간만 5년이 넘는다.
식당도 단골이면 서비스라도 주는 법인데 5년 동안 꾸준히 밀리지 않고 월세를 낸 나에게 고맙다고 새로운 사람들과 동급으로 월세를 깎아 준다고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안하는 것이겠지.”
물론 오늘 저녁에 만난 새롭게 이사 온 아줌마부터 임대료를 낮게 책정했고 아직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원래 월세를 내는 날이 6월 10일이었으니 그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말이다.
“일단은 좀 기다려 보자. 만약에 10일까지 아무 말도 없으면 그때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
솔직히 로또에 당첨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에 대해서 생각했었는데 그 중에 좋은 집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고는 하지만 나는 집에 대한 욕망이 그렇게 없기 때문이다.
원래 집에서 하는 생활 패턴이 TV, 컴퓨터, 침대로 단순했고 집에서는 요리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주방도 별로 필요 없었다.
괜히 집이 넓어봤자 청소하기만 귀찮고 거기에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고 이사 준비하고 하는 것들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은 나중에 혹시 결혼을 할 때 쯤이나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좀 덥기는 하네.”
서울에 다녀오면서도 어느 정도 느끼기는 했지만 여름인 6월에 들어서서 그런지 5월과 다르게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이제 슬슬 에어컨을 켤 때가 됐네.”
작년 여름에 에어컨을 사용하고 청소 후 곱게 덮어두었는데 이제 슬슬 켜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에어컨 커버를 벗기고 리모콘으로 작동을 시켜 보았다.
띠딩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에어컨에 불어오고 바람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켜두고 이불을 덮고 잘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미지근한 바람만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리모컨 동작을 잘못했나 싶어서 냉방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가 꺼보고 온도도 더 낮게 조절해 보았지만 차가운 바람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고장 났나?”
분명히 작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이 사용했는데 갑자기 안 되는 것을 보니 아마 노후화 돼서 고장난 것 같았다.
“하긴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으니 이것도 벌써 5년이 넘었겠구나.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해야겠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에어컨 수리에 관해서 이야기도 하고 겸사겸사 월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면 되니 말이다.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
나는 보통 9시까지 가게로 출근을 한다.
알바생인 선영이가 11시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내가 홀과 주방 오픈 준비를 모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알바로 나가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내가 일찍 출근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짰는데 이제는 이것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은 홀 오픈 준비이다.
포스기를 켜고 테이블에 메뉴판을 두고 돈카츠를 먹는데 필요한 소스들을 테이블에 정리한다.
그리고 점심 식사에 필요한 밑반찬과 샐러드를 어느 정도 준비해 두면 된다.
여기에 쌀도 씻어서 밥통에 취사를 눌러두고 손님들에게 제공될 따뜻한 미소된장국을 끓여 놓으면 홀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된다.
그렇게 홀 영업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다음은 주방인데 전날 대충 준비를 마쳐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돈카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빵가루, 밀가루, 계란물을 준비한다.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때문에 자주 나가는 메뉴들은 어느 정도 빵가루를 묻혀서 준비를 해두어야지 점심시간에 원활히 식사가 나갈 수 있다.
거기에 돈카츠와 같이 먹으면 맛있는 우동과 메밀을 만들기 위한 소스도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이렇게 재료 준비와 매장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게 되는데 선영이가 출근하는 11시가 바로 우리 가게의 정식 오픈 시간이다.
“음...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나?”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나는 밖으로 나가서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로 갔다.
우리 가게가 있는 건물은 7층 짜리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로 카페는 물론 식당도 여러 개 있었고 서점과 치과, 피부과, 약국, 학원을 비롯해 필라테스까지 많은 점포들이 들어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맥다방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머,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바닐라 라떼로 드릴까요?”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일하고 있던 카페 여사장이 아는 척을 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아 보이고 부부가 같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게를 오픈하고 나도 이 가게로 커피를 사러 몇 번 왔고 그녀도 우리 가게로 밥을 먹으로 온 적이 있어서 인사를 하고 지내고 있었다.
“네, 바닐라 라떼로 2잔 주세요.”
나는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흡연자였던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항상 선임들이 담배를 필 때마다 따라가 믹스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게 습관이 되어 대학생 때도 차가운 믹스커피를 거의 매일 마셨는데 카페에서 마시는 바닐라 라떼가 그것과 가장 비슷한 맛이라 선호했다.
“여기 있습니다. 오늘도 장사 파이팅하세요.”
“네, 사장님도 수고하세요.”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매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선영이 출근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 온 커피를 건냈다.
“선영아, 이거 마셔라.”
“오, 사장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몇 번 그녀에게 커피를 사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익숙한 듯 커피를 받아서 한 모금 빨아 넘겼다.
“저도 이제 사장님 때문에 바닐라 라떼에 중독될 것 같아요.”
“자주 먹으니까 먹을 만 하지? 홀 오픈 준비는 내가 거의 다 했는데 그래도 혹시 부족한 거 있으면 마무리 해줘.”
“네, 알겠습니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커피를 마시고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이제 아줌마한테 전화를 해볼까?”
어제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띠리리리
통화 연결음 소리가 들리다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303호 학생. 무슨 일이야?”
처음에 이 투룸을 구할 때는 막 대학교를 졸업했던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줌마가 학생으로 불렀는데 아직도 주인집 아줌마는 나를 학생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어어. 괜찮아. 말해.”
“이제 여름이라 어제 시험 삼아 에어컨을 틀었는데 작동이 안 되더라구요. 이거 어떻게 할까요?”
“에어컨이 안 된다고? 아예 작동이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닌데 차가운 바람이 안 나와요.”
“아, 그거 수리기사 불러서 수리하면 괜찮을 거야.”
“그런가요? 그럼 제가 수리기사 불러서 수리할게요.”
“응응, 난 또 뭐라고...”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 나는 수리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수리비는 어떻게 할까요?”
“어떤 거?”
“수리비요! 수리기사 부르면 출장비랑 달라고 할 것 같은데 아줌마 연락처 알려드리면 될까요?”
“호호호, 학생. 그거를 왜 내가 내. 학생이 사용하다가 고장 났으니까 학생이 내야지.”
“네? 제가 수리비를 내야 한다고요?”
“어, 원래 우리는 그렇게 해. 원래부터 하자가 있으면 내가 고쳐주기는 하는데 이렇게 사용하다가 고장 난 경우에는 임차인이 수리해야지.”
아줌마의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나는 원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용하던 세탁기가 고장 나서 수리기사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를 때라 내가 고쳤었다.
하지만 나중에 원룸이나 투룸처럼 풀옵션으로 들어있는 집들은 사용자의 부주의가 아닌 노후로 인한 부품 고장 시 임대인이 물건을 고쳐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때는 수리비가 얼마 나오지도 않았고 이미 결제를 해버린 상태라 아줌마에게 따로 알리지 않았는데 월세 때문에 약간 화나 있던 나의 마음에 그녀가 불을 지폈다.
“아, 그렇군요.”
“그렇지. 혹시 수리하면 뭐가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려주겠어? 그래도 원인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 근데 그럴 일 없을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소리야?”
“수리 그냥 안 할 생각이에요.”
“수리를 안 한다고? 이제 곧 여름이라 더울텐데...선풍기로 생활하려고?”
“아니요, 저 이번달 까지만 살고 집 나가겠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여기서 더 살아야 되나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아줌마의 반응을 보니 월세 이야기는 꺼낼 것도 없었다.
집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학생 갑자기 왜 그래? 에어컨 수리비 때문에 그래? 수리비 많이 나오면 내가 좀 내줄게 너무 걱정하지마.”
“아니요, 원래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허...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이번 달까지 산다고 하면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 구할 시간은 줘야지. 사람이 정이 없게 말이야. 내가 에어컨 수리 책임지고 해 줄테니까 다른 임차인 구할 때까지 있어 주라. 우리가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 섭섭하게 이럴 거야?”
어차피 다른 임차인을 구하려면 그녀는 에어컨을 고쳐야 한다. 그거를 선심 쓰듯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가 말하는 정이 다 떨어졌다.
‘그래, 이제는 돈도 있으니 이런 투룸보다 나도 좋은 집을 한 번 살아보자.’
“아, 원래 저는 그렇게 합니다. 계약서 보니까 이사 가기 한 달 전에만 말씀드리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7월 10일까지 투룸 비워 드릴테니 그때까지 보증금 준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