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6 화 >
“가게에서요?”
“응, 사실 이번에 주방 직원을 한 명 구하려고 생각했거든 어때?”
“음...예전에 제가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는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승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한승이도 내가 퇴사할 때 회사를 같이 그만두고 싶어했다.
일단 회사를 다닐 때 나에게 일을 많이 배워서 친해진 상태였고 내가 퇴사하면 남은 최지연의 성격상 잡다한 일들을 조한승에게 떠넘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고생길이 훤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렸었다.
회사를 그만 둘 당시 나는 가게를 차릴 생각보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좀 쉬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생각이었다.
한승이를 직원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이득이 보는 방향으로 권유했는데 당시 그는 입사 한지 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그만두기 너무 아까웠다.
회사에서는 근무한 지 1년이 지난 직원들에게만 퇴직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상황이 그랬지...지금은 가게를 하고 있어서 너에게 이런 제안도 할 수 있고 또 너도 1년 넘어서 이제 퇴직금 받을 수 있잖아.”
“그렇기는 하죠.”
“어때? 생각 있어?”
“저야 점장님이랑 같이 일하면 마음이 편하기는 한데...근데 벌써 직원을 쓸 정도로 장사가 그렇게 잘 돼요?”
솔직히 말해서 직원을 쓸 정도는 아니다.
아마 로또에 당첨 되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뭐, 지금은 괜찮은데...손님 떨어지면 그때는 사이 좋게 망하는 거지.”
“네?”
내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쉽게하자 한승이는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걱정마. 망하지 않게 잘 해볼 생각이니까.”
“음...당연히 그러시겠지만...혹시라도 제가 가게에 들어가서 장사가 그 전보다 안 되면 죄송하잖아요. 점장님 큰 돈 투자하셨을 텐데...”
녀석의 말에 나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승이는 지금 괜히 직장을 옮겨서 실직하는 것보다 자기 때문에 내 가게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밑에 부점장이었던 최지연보다 입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한승이를 더 아끼고 많이 가르쳤던 이유도 바로 저런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직원으로 오면 열심히 일해줘야지.”
“왠지 그 말이 더 무서운데요?”
“뭐, 나도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야. 며칠 고민해봐. 어차피 무급휴가로 쉬고 있다면서...”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강하기는 해요. 근데 괜히 점장님한테 피해갈까봐. 그러죠.”
“음, 그럼 내가 우리가게에서 일하면 좋은 장단점을 이야기 해줄테니까 나에 관한 건 생각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생각해봐.”
“장단점이요?”
“어, 퇴사하고 우리가게 오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말이야. 뭐부터 들을래?”
“음...단점부터 들을게요.”
“일단 역시 회사랑 자영업자의 차이는 복지차이가 크지 알다시피 우리 가게는 영세업장이라 상여금, 경조사비 등 복리후생비가 네가 회사 다닐 때만큼은 챙겨줄 수가 없다. 연차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물론 급한 일이 있어서 말하면 스케줄 조정해주기는 할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개인 가게니까 그거는 당연하죠.”
“그리고 같은 이유인데 영세업장이다보니 회사처럼 재료나 물건 소모품 발주하는 과정이 좀 복잡할거야.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거든...”
그 전에 회사에서는 발주시스템을 이용해 쇼핑하듯이 물건을 주문하면 되었기 때문에 편리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아, 그거는 생각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치, 그리고 지금은 월요일을 정기휴무로 쉬고 있는데 만약 네가 직원이 되면 휴무 없이 너랑 나랑 돌아가면서 쉬면서 일을 할 생각이라...내가 없을 때는 약간 점장이나 사장 같은 역할도 어느 정도 해줘야 돼.”
“그거는 변수 인데요?”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마지막으로 가게가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게 되면 너도 실직자가 된다는 것 정도가 단점 이겠네.”
“지금 일부러 저 겁주시는 거죠?”
물론 가게 운영이 좀 안 좋아지더라도 로또 당첨금이 있기 때문에 가게를 유지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한승이를 데려온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억지로 가게를 운영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진짜로 한승이와 헤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럼 이제 장점을 이야기 해볼까? 너 회사에서 일할 때 세금 떼고 월급 얼마나 받았어?”
“200만 원 정도 받는 것 같아요.”
“200?”
요식업과 서비스업이 원래 다른 직군에 비해서 연봉이 낮기는 하지만 입사한 지 이제 1년 밖에 안 돼서 그런지 내 생각보다 월급이 더 적었다.
“그럼 내가 4대 보험료 떼고 250만 원 줄게 어때?”
“그럼 저야 감사하죠.”
사실 원래 한승이가 아니고 다른 직원을 구하더라도 그 정도의 급여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고민없이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위생점검, 서비스 교육 같은 귀찮은 것은 안해도 된다.”
“오우, 진짜요?”
“어, 매장 깔끔하게 관리 잘하고 시청이나 점검 나올 때 대비해서 위생법만 잘 지키면 돼.”
아무래도 그 전에 다니던 회사는 프렌차이즈 회사였고 나와 한승이가 있었던 점포의 위치 역시 아울렛 이어서 그런지 안전점검, 소방점검, 위생점검, 서비스점검 등등 갖가지 점검과 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제 기본 적인 관리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깨끗한 이미지만 주면 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회사보다는 편했다.
“그리고 점장이 지연이가 아니라 나라는 거?”
“그거 진짜 마음에 드네요. 지금 바로 퇴사 한다고 전화 할까요?”
약간 농담식으로 말하기는 했는데 녀석의 반응을 보니 내가 퇴사한 후에 생각보다 더 지연이에게 시달린 것 같았다.
“일단 지금 생각나는 거는 이 정도인데 어차피 결정은 네가 하는 거고 너의 인생이니까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며칠 고민 좀 해봐,”
“넵,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봤는데 밥이나 같이 먹을까? 저녁에 약속 없지?”
“네, 없습니다.”
“그럼 여기 있지 말고 말고 밖에 나가서 커피 한 잔하고 밥도 먹자.”
“사실 그럴 생각으로 오기는 했어요. 가게에 있을 때 맨날 밥 사주셨는데 오늘은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점장님.”
“괜찮아. 아직 너한테 얻어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 회사 그만뒀는데 점장님 말고 형이라고 불러.”
“그럴까요. 형님.”
****
“와, 진짜로 피곤하다.”
이틀 연속 술을 먹고 서울에 다녀와서 그런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승이랑은 밥만 먹으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결국 반주를 걸쳤다.
한승이가 며칠 고민해 본 후 답을 준다고 했으니 그가 진심으로 우리 가게에서 일한다고 한다면 나도 가게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로또 당첨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덕성빌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빌라가 바로 보였다. 상현과 마찬가지로 나도 투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대학교 때는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별로 집이 필요하지 않았고 처음에 회사에 취직했을 때 바로 이 투룸을 구해서 들어왔다.
그게 벌써 5년이 넘었으니 이곳에서 산지도 꽤 되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나름 깔끔했었는데 이제는 지어진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서 그런지 낡은 티가 나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1층의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아줌마가 등장했다. 문이 열리고 계단으로 올라가자 아줌마도 따라서 들어왔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는데 아마 이 건물에 사는 주민 같았다.
303호
내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섰는데 갑자기 따라 들어온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303호 살아요?”
저 아줌마가 누굴 보고 아저씨라고 하는 거지?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일요일 날 저기 301호로 이사왔어요.”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새로 이사 온 사람이었나보다. 일요일에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층에 이사를 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 그러시군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궁금하게 있어서 그러는데 그 쪽은 월세 얼마나 내세요?”
“월세요? 왜 그러시죠?”
“아니, 여기 주인 아줌마가 싸게 해준다고 했는데 건물이 좀 오래 되기도 했고 해서 이게 진짜로 싼 건지 애매한 것 같아서 다른 분들은 얼마나 내나 궁금하더라구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여기 들어온 이후 연장 계약을 몇 번 했지만 한 번도 월세가 변하지 않았다.
아줌마의 말을 들으니 나도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 그러시군요. 월세 얼마 내세요?”
“저는 30만 원에 계약 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비싼 것 같아서요.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이 정도면 28만 원도 가능하다는 것 같은데 말이죠. 호구 당한 걸까요?”
아줌마의 말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호구는 현재 월세 35만 원을 내고 있는 나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