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5 화 >
“벌써 3시가 넘었군.”
나름 서둘러서 가게로 온다고 했는데 시간을 살펴보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뭐야, 저번에 간판 불을 안 끄고 갔네?”
로또 당첨금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그런지 일요일 날 영업을 종료할 때 간판 불을 끄지 않고 간 것을 이제야 확인했다.
불이 켜져서일까? 낮 인데도 불구하고 간판이 선명하게 눈에 잘 들어왔다.
< 알로하 >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나의 가게 이름이다.
하와이에서 인사 대신에 쓰는 말로써 예전에 너튜브에서 하와이 여행기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꿈에 그리던 여행지였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그곳에 가자는 생각으로 알로하라는 이름을 지었다.
물론 이제는 돈이 많이 생겨서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가 끝난 다음에 말이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자 어제 하루 쉬었을 뿐인데도 왠지 오랜만인 기분이 들었다.
테이블 6개, 17평에 불과한 작은 매장.
자그마한 사이즈의 가게임에도 보증금 3천에 권리금 2천, 거기에 인테리어 비용까지 하면 총 8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갔다.
회사에 다니면서 모은 5천만 원, 거기에 퇴직금 천만 원, 거기에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가게를 차렸다.
“오후에 나와서 그런가? 좀 생소한 기분이네. 얼른 일 마무리 하고 들어가야겠다.”
나는 바로 근무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가게의 주메뉴는 돈카츠다.
내가 원래 일하던 회사가 돈카츠 전문 프렌차이즈 회사였고 그 경험을 살려서 돈까스 가게를 차렸다.
처음에는 돈카츠와 비슷한 치킨집을 차릴까도 생각했지만 경쟁이 너무 심하고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익숙한 메뉴로 결정했다.
가장 많이 나가는 메뉴는 기본 돼지고기 등심, 안심 돈카츠와 치즈카츠인데 돼지고기를 소금, 후추 시즈닝 후 하루 정도 숙성을 시켜야 맛이 있고 빵가루가 잘 붙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준비하기 위해 가게로 나왔다.
탕
탕
탕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돼지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망치로 두들긴 후 준비한 받드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고기 준비를 마치고 다음은 냉장고를 열어 손질이 필요한 야채나 부족한 재료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저번주 일요일에 확인하기는 했지만 간판처럼 혹시나 깜빡 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부족한 건 없군.”
대략적으로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홀로 나와서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이제 월 말 정산을 해볼까?”
사실 오늘 가게에 온 이유가 또 있었는데 바로 5월 달 매출을 정산해 보기 위해서다.
원래 매월 1일에 하는 일이어서 어제 했어야 했는데 서울에 다녀오느라 하지 못해서 오늘 할 생각이다.
“일단 총 매출부터 뽑아 볼까?”
계산대에 있는 포스기에 불을 켜고 한 달 동안 총 판매한 금액을 뽑아냈다. 그리고 카운터에 보관중이던 영수증 파일도 같이 꺼내왔다.
영수증 파일에는 한 달 동안 매장 운영에 필요한 월세, 관리비, 재료비, 소모품비, 가스비, 수도세 등 영수증을 모아두었는데 이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돈이 바로 나의 이번달 순수 이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선영이 알바비도 빼야겠지.”
우리 가게는 월요일 휴무에 오전 11시 오픈, 저녁 9시 마감으로 주 6일 매장을 운영한다. 알바생은 선영이 한 명만 쓰고 있는데 최저시급으로 계산하지만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상당히 많은 알바비를 가져간다.
“이번 달 벌어들인 돈은 350만 원 조금 넘는 건가?”
저번 달에는 400만 원을 넘겼었는데 확실히 코로나의 여파로 수익이 줄어들었다.
물론 이것도 직장 다닐 때에 비하면 많이 벌고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들어가는 고생과 투자금을 생각한다면 조금 아쉬운 수치기는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좀 더 벌었을 거 같은데 아쉽네.”
뉴스에 보면 코로나가 장기화로 접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하던데 이정도라도 장사가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우리 가게 상권이 오피스 상권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직장인들이 많이 있어서 그래도 낮에 12시부터 1시까지는 밥을 먹으로 오는 수요가 꽤 있었다.
그것 때문에 권리금을 2천만 원이나 주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잘 한 선택 같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은행 앱을 켠 후 가게 매출 통장을 조회하였다.
“250만 원 정도 모인 건가?”
예전에 직장 다닐 때도 매월 80만 원씩은 적금을 넣었었다. 그 돈으로 가게 차릴 돈도 마련한 것이고 말이다. 가게 오픈하고 두 달 영업해서 생활비랑 식비 등을 빼고 나니 250만 원 정도 모였는데 직장 다닐 때보다 많이 모으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37억이 있으면서 300만 원 보고 좋아하고 있다니 나도 어이가 없군.”
나는 이번에는 은행앱으로 로또를 받은 계좌를 조회 했다.
3,728,000,152
은행에서 확인차 만 원을 뽑고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드려서 돈이 좀 줄어 들기는 했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보고 있으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1년에 1억씩 쓴다고 해도 37년이 걸려...은행 이자까지 생각한다면 잘 나눠서 쓰면 죽을 때 까지 쓸 수 있을거야...”
사실 로또에 당첨되고 나서 가게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이자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힘들게 가게를 운영해야 할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에 다녀 오면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다.
가게는 계속해서 운영하기로 말이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되고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아서 아까운 것도 있었고 아무래도 로또 당첨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숨기고 지내야 하는 입장으로서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위장할 수 있는 좋은 은신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직원을 구하자.”
가게는 운영하되 내가 일하는 시간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직원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매장의 순 수익으로 나 대신 일할 직원을 쓴다고 해도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100만 정도의 수익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아도 용돈 벌이 정도는 될 것이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이 있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직원을 써서 용돈 벌이가 아닌 수익이 마이너스로 전환 된다면 아예 가게를 폐점하는 것이 더 좋을 테니 말이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밖에 휴무라는 팻말을 걸어놓기는 했지만 오늘은 원래 가게 문을 여는 날이니 못보고 들어온 손님 같았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오늘은 가게 사정상 휴무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객님께 정중히 양해의 말을 했는데 남자가 갑자기 나를 아는 척했다.
“점장님, 저 한승이예요.”
“응?”
한승이라는 말에 나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잠깐 못 알아 봤지만 한승이가 맞았다.
“어, 한승아.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한승이는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내 밑에서 일하던 부하 직원이었다.
매장 내 단 둘 뿐인 남자 직원이기도 해서 내가 일을 많이 알려주기도 했었고 나를 많이 따르기도 했었다.
“가게 오픈하셨다는 이야기 듣고 궁금해서 한 번 와봤어요.”
사실 회사를 별로 좋지 않은 일로 퇴사 했기 때문에 근무하던 직원들에게는 가게를 오픈한다고 알리지 않았다.
다만 매장에서 근무하던 다른 친한 알바생들이 물어보기에 답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어, 저번 달에 오픈 했어. 이제 막 자리 잡아 가는 중이지.”
“2월에 퇴사하시고 바로 준비하신 거예요? 엄청 빨리 오픈 하셨네요.”
“놀고 있으면 뭐하니.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장사는 잘 되세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너는 무슨일이야? 오늘 휴무야?”
휴무라는 말에 녀석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 졌다.
“뭐 비슷하기는 한데 휴무는 휴무인데 무급 휴가예요.”
“무급휴가?”
“네, 요새 코로나 때문에 매장에 손님들도 없고 직원들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니까 무급휴가로 직원들 돌리고 있어요.”
“진짜? 그 정도로 손님이 없어?”
원래 내가 근무하던 매장은 아울렛에 들어가 있던 매장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고정적으로 손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급휴가를 쓸 정도라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뭐, 손님이 없기도 한데 지연 점장이랑 강팀장이랑 서로 손잡고 쇼하는 거죠. 우리 매장은 이런 식으로 인건비 관리한다고 말이죠.”
“지연이랑 강팀장?”
“네, 점장님 나가고 나서 요새 매장 완전 개판이에요. 지연 점장이 다 자기 스타일 대로 바꿨어요.”
내가 회사를 퇴사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저 두 사람 때문이었다.
나도 퇴사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팀장과 지연이는 오피스 와이프, 즉 내연관계였다.
강팀장은 부점장이었던 지연을 점장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고 걸림돌이 되는 나를 서울의 다른 지점으로 발령시키려고 했다.
거기에 내가 반발하자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아서 괴롭히더니 결국 다른 지방의 좌천 급 발령을 내버렸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장본인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었다.
“지연이가 욕심이 많기는 하지. 근데 왜 네가 무급으로 쉬는 거야? 자기가 아이디어 냈으면 지가 쉬어야지.”
“아, 그냥 제가 한다고 했어요. 지연 점장이랑 잘 안 맞기도 하고 요새 매장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해서 휴가다녀 온 셈 치려고요.”
한승의 이야기에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둘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래? 차라리 잘 됐네. 너 이번 기회에 그냥 우리 가게에서 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