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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장사를 합니다-3화 (3/225)

# < 제 3 화 >

“네, 알고 있습니다.”

로또 당첨을 확인했을 때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의 당첨금이 수령 가능한 지는 포털사이트에 나와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네, 혹시 농협 은행 통장 가지고 있으세요? 있으시면 그쪽으로 당첨금 이체 해드리겠습니다.”

“음...하나 가지고 있기는 한데...그냥 새로 하나 만들어 주시겠어요?”

원래부터 농협 은행이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에 계좌를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가게에 관련된 공과금이나 매출 등을 관리하는 통장이기 때문에 당첨금 전용 계좌를 따로 하나 가지고 싶어서 직원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은행 CMA 통장 하나 만들어서 그 쪽으로 당첨금 지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말과 함께 책상 서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거기에 체크 된 부분에 개인정보 작성해주시면 되시고요. 체크 카드도 같이 만드실 거죠?”

남자의 말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쪽에 표시해주시면 되시고요. 이체 한도는 어떻게 설정하시겠어요?”

“최대로 설정해주시겠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농협 통장의 1일 이체 한도는 처음에 100만 원이었다.

예전에 통장을 만들 때 멋 모르고 그렇게 설정했었는데 직장 다닐 때는 100만 원 이상 이체할 일이 별로 없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가게를 오픈하고 여러 가지 공사 대금을 결제할 때 생각보다 큰 금액을 보내기 어려워 많이 불편했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이번에는 가능한 최대한 많이 설정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1일 이체 한도 1억 원, 1회 오천만 원 인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이 부분에 그걸 적어주시면 되시고요. 다 쓰시면 저한테 주시겠어요.”

나는 주소와 연락처 등 다른 세부 사항을 적은 다음 남자에게 넘겨주고 잠시 기다리니 남자가 컴퓨터로 얼마 간의 작업을 마치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거 받으시겠어요?”

남자가 건네주는 종이를 열어보니 거래 내역 확인증이라고 적혀있었고 거기에는 로또 1등, 당첨금, 소득세, 그리고 내가 받는 실 지급액 등이 적혀 있었다.

3,728,510,152

확인증에는 무수히 많은 숫자들이 적혀있었는데 저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그거는 당첨금을 수령했다는 확인증이구요. 돈은 이쪽 통장으로 이체해 드렸습니다. 통장하고 카드 받으시겠어요.”

남자에게 통장을 받아서 열어보니 내 이름으로 된 계좌와 함께 확인증에 적혀 있는 돈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적혀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첨금 지급은 완료 되셨구요. 저희가 효율적인 자금 운영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자산 관리사의 컨설팅을 준비했는데 시간 괜찮으시죠?”

“컨설팅이요?”

“네, 아무래도 대부분의 당첨자들이 갑작스럽게 많은 돈이 생기다 보니 돈을 관리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다 소진해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저희가 그 부분에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는 핸드폰을 걸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강 기자님, 접니다.”

내가 전화를 들어 갑자기 통화를 하자 직원이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네, 지금 당첨금 수령했습니다. 그런데 로또 당첨자 인터뷰는 오후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자산 관리 컨설팅을 해준다고 해서 좀 들어 보려고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직원은 듣지 않는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에 집중했다.

나는 입을 가려서 안 들리게 조심하는 척 하면서도 적당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네? 펀드나 연금에 강제로 가입시킬 수도 있다고요?”

사실 나는 지금 진짜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로는 로또 당첨금 수령까지 최대 5시간이 넘게 걸린 적이 있었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이 컨설팅 때문이었다.

자산 관리라는 면목 하에 로또 당첨자들에게 자사의 펀드라 연금에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고액의 금융 상품들을 홍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에이, 설마 요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혹시 그런 일이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 님이야 소스 하나 더 생기고 좋지 않을까요?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내가 전화를 끊자 방금 전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마치 아무 것도 듣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었다.

“죄송합니다. 원래 약속이 있어서 혹시 오래 걸릴까요?”

“아...아닙니다. 약속이 있으시면 이제 그만 가셔도 됩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컨설팅은 자산 관리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꼭 들으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럼 컨설팅은 듣지 않아도 될까요?”

“네, 그러셔도 됩니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오자 남자도 따라 나오면서 마지막 축하 인사를 건냈다.

“다시 한번 로또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 농협 은행 많이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는 ATM 기기가 보였는데 나는 바로 그 쪽으로 갔다.

체크 카드를 꺼내서 ATM 기기에 넣고 바로 돈을 출금해 보았다.

“출금 되었습니다.”

경쾌한 알림과 함께 ATM 기기가 열리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이 보였다.

나의 로또 계좌에서 정확히 만 원이 출금 된 것이다.

마음 같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여기서 춤을 추고 싶었지만 은행 오픈 시간을 지나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업무를 보고 있어서 눈치가 보였다.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 이 기분을 만끽하면서 만 원을 지갑에 넣고 은행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이런 나의 마음을 축복해주는 것일까?

하늘은 너무 나도 맑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고 나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20살 대학교에 입학하고, 22살에 군대에 다녀오고 26살에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5년 하다가 올해 그만뒀다.

그동안 학교, 직장, 그리고 이제는 가게까지 시작한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빠듯하게만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 그동안 너무 갑갑하게 살았어. 이제는 인생에 여유를 좀 가져보자.”

이제는 그럴 능력이 되었으니 말이다.

****

“어, 상현아. 여기야.”

미리 자리를 잡아둔 가게 문이 열리고 한 녀석이 들어왔다. 바로 나의 대학교 친구인 박상현이었다.

“야, 김정훈, 네가 서울에는 무슨 일이냐?”

사실 로또 당첨금을 수령하고 바로 내려 가려고도 생각했지만 저 녀석을 만나려고 가게도 하루 더 쉬었다.

“아, 서울에 일이 있어서 잠깐 올라왔어.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내려 가려고.”

“그래? 무슨 일인데? 심각한 거야?”

“아니, 가게에 필요한 물건 볼 게 좀 있어 가지고...”

“맞다. 너 가게 오픈 했지? 씨발 존나게 바빠 가지고 연락도 잘 못했네. 장사는 잘 돼?”

녀석과 나는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로 녀석은 나름 대학 다닐 때 성적이 좋고 공부로 잘해서 바로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잘 풀린 케이스였다.

지금 경영지원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가끔 친구들이 있는 단체 깨톡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밥 먹듯이 야근을 하는 것 같았다.

“장사 그럭저럭 잘 돼지. 너는 어때? 그래도 다행히 오늘 저녁에는 시간이 됐다?”

“우리 팀장 님이 휴가 갔거든 아니었으면 이번 주도 내내 야근 할 뻔 했어.”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냐?”

“처음에는 대기업이라고 돈을 많이 준다고 좋아했거든? 근데 이게 생명수당이더라.”

“그 정도야?”

“그래, 나 투 룸 사는 거 알지? 얼마 전에 월요일에 거기 화장실이 막혔거든? 근데 뚫을 시간이 없어서 일요일 날 쉬는 날까지 내버려 뒀다니까?”

“헐, 미친 그 정도냐?”

“그래, 근데 음식 뭐 시켰어?”

“아니, 너 오면 시키려고 먹고 싶은 거 시켜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아서라, 자영업자 요새 코로나 때문에 힘든 거 다 아는데 돈이 어딨냐? 내가 사줄게.”

상현이는 친구 중에 가장 먼저 취직했는데 항상 이렇게 맛있는 것을 잘 사주었다.

우리 중에 가장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잘 모으는 근면 성실하고 붙임성이 좋은 친구였다.

“아니야, 그래도 오늘은 내가 사줄게. 저번 달에 장사 잘 됐어.”

“그래? 그럼 비싼 거 시켜야지. 당연히 소주도 한 잔 할 거지? 오랜만에 한 잔 먹고 푹 자야겠다.”

“그래, 너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

잠시 후 주문한 안주가 나오고 술도 몇 잔 돌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녀석을 만난 것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가게를 오픈하고 제대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가게를 안정 시켜야 했고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가게에 조금 덜 집중해도 살아갈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너는 회사 생활 말고 뭐하고 지내냐? 너도 서울에서 혼자 심심하자나? 여자친구 있어?”

“여자친구? 야근 맨날 하는데 그런 게 있겠냐?”

“그렇지? 나도 없는데 네가 있으면 안 되지.”

“근데 요새 여자친구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하고 있기는 하지.”

“더 재미 있는 거? 그게 뭔데?”

“주식.”

“주식?”

“어, 돈 버는 재미를 알아 버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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