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97화 (198/200)

119장: 찬란한 어둠(3)

“건방진!”

가이덴은 분노했다.

그리고 재차 달려들었다.

화아악!

단, 그 혼자서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소드마스터들과 함께였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다.

콰우우우!

물론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분노해서 앞뒤 못 재고 혼자 미친놈처럼 달려들든, 내심 겁을 집어먹은 채로 합공을 가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의 선택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저 부질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것을 증명해 갈 작정이었다.

쿠과과과과!!

만물을 집어삼키는 어둠으로.

“컥……!”

“커윽!”

일단 두 잔챙이는 사실상 존재 자체가 무의미했다.

짓누르는 중력의 힘으로 인해 나를 타격할 수 있는 범위까지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

범위 밖에서 자신들을 뒤덮는 어둠에 피를 토해 가며 저항할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유의미한 저항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콰르르릉…….

그나마 가이덴의 존재가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사실상 그 혼자 어둠을 감당하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어둠의 완전한 잠식을 저지하고 있었다.

“크으읍……!”

하나,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가이덴이 하는 것은 어둠의 잠식 시간을 약간 지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도 현재 반격을 꿈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반격은커녕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주르륵.

코와 입, 귀 등으로 흘러나오는 피가 그 방증이었다.

억눌린 채 새어 나오는 고통 가득한 신음 역시도.

콰우우우우!

콰르르…….

심지어 그 시간마저 시시각각 타들어 갔다.

가이덴의 힘과 오러 블레이드가 점차 영역을 상실해 가는 중이었다.

즉, 어둠의 잠식에 가속이 붙고 있었다.

앞으로 길어 봐야 10초 정도?

그 이상은 힘들었다.

“크으으…….”

가이덴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의 표정에 분노와 부정을 넘어선 절망이 깃들고 있었다.

그것이 훤히 보였다.

타다다닷!

이윽고 그가 또다시 선택을 내렸다.

이 선택은 표정에 깃든 감정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후퇴.

앞서 내렸던 그 선택을 재차 반복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고 현실을 부인한 때로부터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앞서와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아, 안 돼!”

아니, 그 이상의 결과였다.

가이덴과 제국의 입장에서 아주 참혹한 쪽으로.

콰우우우우!!

나머지 두 명은 빠지지 못했다.

그런 두 명의 소드마스터를 어둠이 뒤덮었다.

여백 하나 없이 완벽하게.

애초에 가이덴의 힘에 기대 버텨 나가던 이들이었다.

유의미한 저항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 채 앞선 동료를 따라갈 뿐이었다.

“쿨럭, 쿨럭.”

이게 다가 아니었다.

“쿨럭, 크웨엑!”

가이덴 또한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가까스로 물러난 그였으나, 몸은 이미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피를 토해 냈다.

내장 조각까지 섞인 각혈이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풀어낸 힘을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가이덴에게 다가갔다.

“쿨럭, 쿨럭.”

이에 가이덴이 피를 토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쿨럭, 끝나지 않았어.”

그런 그의 눈에는 아직 불씨가 살아 있었다.

다만, 이것을 의지의 불씨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승리에 대한 갈망이나 투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맹목, 혹은 아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정의 불씨라고 봐도 좋을 듯했다.

제국이 처한 절망적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본인의 패배에 대한 부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듯 애매한 불씨로 가득 찬 가이덴의 동공이었다.

“이대로는 끝낼 수…….”

“끝입니다.”

“아, 아직…….”

“이미 끝났습니다. 직접 보시죠.”

그것을 굳이 두고 볼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살짝 주의만 환기시켜 주면 그만이었다.

그와 제국을 향해 불어닥치는 태풍의 존재를 인식할 수밖에 없도록.

스륵.

이에 오직 나에게 꽂혀 있던 가이덴의 시선이 돌아갔다.

우리를 둘러싼 전장, 아비규환의 한복판을 향해서였다.

“아…….”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게 된 그였다.

그리고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쿠우우우~!

그의 시선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진짜 폭풍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전장을 헤집는 하이엘프 아인한드라의 폭풍.

그를 막아서는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없지는 않았다.

분명 한 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폭풍을 막기에는 심히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아인한드라의 표홀한 움직임에 밀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다.

화르륵!

드드드드!

화염의 향연과 대지의 준동 역시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에릭스와 다이너, 브란부르크 부자의 활약이었다.

이들의 뜨거움과 단단함이 전장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촤르륵!

피의 축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뱀파이어 퀸 카밀라의 핏빛 강기가 수시로 제국군 진영을 헝클어 놓았다.

안개화 된 그녀의 신형에 제국 실력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쿠과과광!!

웅대한 마력의 운용 또한 결코 놓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놓치기에는 그에 수반되는 파괴력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으니까.

6서클 대마법사 사제 듀오가 시전하는 대단위 마법.

이것이 제국군 진영 중간중간에 부자연스러운 공백을 심어 놓았다.

절대적인 공포와 절망을 선사하는 그런 공백이었다.

철컥! 콰광! 철컥! 콰광!

슈슈슈슉!

“싹 쓸어버려!”

마지막으로 드워프의 철포와 엘프의 화살, 그리핀 군단의 돌격까지.

전장의 모든 상황이 제국군을 찢어 놓고 있었다.

최강이라 불리던 제국의 전사들을 좌절과 고통으로 울부짖게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가이덴의 시선에 잡히는 것들이었다.

또한 그가 처한 현실이자, 제국이 맞이한 운명이었다.

끝이라는 운명 말이다.

“아아…….”

결국, 가이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제국 앞에 더는 어떠한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희망이란 것을 찾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버팀목인 그마저 제국의 악몽이라 불리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이덴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되려 가이덴에게 도와달라 애원하는 이들뿐이었다.

실제로 가이덴의 손길이 없으면 당장 죽어 나자빠질 이들뿐이기도 했다.

“아아아…….”

그렇기에 거듭 탄식을 내뱉는 가이덴이었다.

이것 말고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끝입니다, 공작. 당신도, 그리고 제국도.”

그런 가이덴에게 쐐기를 박았다.

이는 절대 제국이라 불리던 로만을 향해 박는 쐐기이기도 했다.

스륵.

이윽고 가이덴의 손에 힘이 풀렸다.

챙그랑~

그리고 그의 검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동공 속 불씨의 소멸과 함께.

끝내 전부를 내려놓은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지?”

잠시 후, 가이덴의 입이 다시 열렸다.

공허한 눈으로 다음을 묻는 그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황도로 진입할 겁니다.”

“쿨럭, 바로 황궁으로 갈 생각인가?”

끄덕.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어차피 수순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황도를 점령하고 황궁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다시 대면하는 것.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었다.

“다만, 진입은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군요.”

“쿨럭, 쿨럭. 늦어져……?”

“같이 들어갈 분이 계십니다. 황제를 보는 일은 그분과 함께할 생각입니다. 물론 황제가 도주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아마…… 쿨럭, 생각조차 않으실 거야.”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아이단 그자라면 그리하겠지요.”

어둠으로 관조한 아이단은 도주 같은 걸 시도할 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도망쳐 후일을 도모할 성격 자체가 못 됐다.

제국의 황제에서 일개 왕국의 국왕 혹은 그보다 못한 신분으로의 전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에는 대륙을 좌지우지하던 황제로서의 자아가 너무나도 강했다.

“물론 시도한다 해도 상관없고 말입니다.”

설령 내 판단이 틀렸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도망친다 해도 카오의 속도와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기까지 도달한 이상 그는 이미 내 손아귀 안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이제 대륙에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몰아치겠군.”

“글쎄, 그게 혼돈일지 아닐지는 지켜봐야 알겠지요.”

“제국이 유지해 온 질서가 100년이 넘어. 그게 무너지면…….”

“제국이 유지해 온 질서가 아니라 제국이 유지해 온 입맛입니다. 제국 바깥에서는 제국의 입맛에 따라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어차피 황도에만 붙어 있던 당신이야 별 체감을 못 했겠지만.”

“…….”

황제와 제국이 몰락한다.

이는 곧 로만을 중심으로 편성됐던 에펜시아 대륙의 질서가 무너짐을 뜻했다.

혼란이 찾아올 가능성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로만의 질서하에서도 대륙에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되려 국지적인 면은 더 잦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모든 것이 황제와 제국의 입맛에 따라 조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는 과정의 혼란이 꼭 기존의 그것보다 크리란 법은 없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 슈라우드에는 더 큰 기회로 작용할 것이고 말이다.

“의미 없는 논쟁 같은 건 그만두고 이제 끝낼까 합니다. 계속하겠습니까?”

무엇보다 가이덴과의 이런 대화 자체가 무의미했다.

대륙의 질서니 뭐니 하는 것들은 레나 왕녀나 사네, 그래플 같은 이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또, 내가 아는 그들이라면 누구보다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 갈 터였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가이덴이, 더욱이 오늘 이곳에서 끝을 맞이할 그가 신경 쓸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끝내지.”

이내 가이덴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떨어뜨렸던 검을 다시 그러쥔 채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저 몸을 일으켰을 뿐이고, 사실상 검은 손에 그냥 얹어 두었을 뿐이다.

불씨가 꺼진 동공은 오직 공허만으로 가득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싸우고자 하는 투지는 보이지 않았다.

콰우우우!

그럼에도 나는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하여 심연 위로 한 줄기 찬란한 어둠을 휘감았다.

일종의 예우였다.

전대 최강자이자 절대자,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거대한 벽이자 목표가 되어 준 선배에 대한 예우.

가이덴이라면 그런 예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오게.”

“잘 가시길.”

슈아악~!

그렇게 가이덴을 향해 검을 뿌렸다.

가이덴은 이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고.

콰우우우우!!

이내 찬란한 어둠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전쟁의 종식과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써.

* * *

로만 제국의 황도, 로마니움.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에펜시아 대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온 곳이었다.

그만큼 크고 웅장했으며, 절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고고하고 우아한 도시였다.

허튼 이물질 따위 터럭만큼도 용납지 않는 품격 넘치는 도시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로마니움에 지금 이물질이 잔뜩 끼어 있었다.

단순히 미관을 망치는 수준의 이물질이 아니었다.

아예 도시 자체의 존망을 결정지을 심각하고도 중대한 이물질이었다.

그것의 정체가 슈라우드 군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이틀 전, 제국군을 섬멸하고 황도를 점령한 바로 그 무적의 군대 말이다.

“곧 귀한 분께서 오신다. 절대 경거망동하는 일 없도록.”

“함부로 도시를 어지럽히지 마라. 우리가 그분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슈라우드 군이 도시를 그저 점거하고만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반항하는 자들을 제외한 도시 내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았다.

보통의 점령군이 벌이는 극악무도한 짓은 눈곱만큼도 벌이지 않는 것이다.

대신 기다릴 뿐이었다.

그들의 주인이 오기만을.

“카오오오~!!”

이윽고, 그 시간이 도래했다.

4만 슈라우드 군의 주인이 당도했다.

다른 곳도 아닌 로만 제국의 심장부에.

당당한 승리의 날갯짓과 함께.

“추웅!!”

이에 4만의 군대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주인이자 슈라우드의 주인이며, 이제 곧 대륙의 주인이 될 여제를 향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