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장: 찬란한 어둠(2)
지이이잉!
네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나를 향해 겨눠졌다.
아무리 나에게 어둠이라는 무기가 있다 해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숫자였다.
특히 네 개 중 유독 크고 환하게 빛나는 하나를 고려하면 더더욱.
내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다 해도 저 하나조차 간신히 버텨 내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아아아~
단, 지난 전투까지의 나라는 전제하에.
콰아아아~
지이이잉!
다이너와 가이덴에게 장담했다.
오늘의 나는 다를 것이라고.
이는 단순히 말뿐인 장담이 아니었다.
지금 막 뽑아 올려진 어둠이 그 방증이었다.
콰우우우우~!
그것은 한층 더 깊고도 짙어진 어둠이었다.
동시에 찬연하고 찬란한 어둠이기도 했다.
깊고도 진하지만 찬연하고도 찬란한, 모순으로 가득 찬 하나의 거대한 어둠.
그런 어둠이 심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적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오로지 주인인 나의 의지에 따라.
“으음…….”
가이덴은 곧장 뭔가를 눈치챈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대륙에서 나 말고 유형화된 어둠을 가장 많이 관찰한 이는 가이덴이었으니까.
어디 관찰뿐이겠는가?
직접 검을 맞대 보고 그 끝없는 탐욕에 흠칫한 횟수만 족히 수만 번은 넘었을 터.
변화를 눈치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파앗! 파앗! 파앗!
물론 이것이 충돌이라는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가이덴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의 뒤편에 있던 소드마스터들이 일제히 발을 굴렀다.
그리하여 동시에 세 방향에서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자로 잰 듯한 합공이었다.
슈악~! 스악~! 슈아악~!
그들의 오러 블레이드도 함께였다.
세 명의 소드마스터로부터 도출된 세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각각 어깨와 허리, 무릎 쪽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데, 그 타이밍이 심히 절묘했다.
세 검격의 속도에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어깨, 허리, 무릎 순으로 느리게 날아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인 것도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의 초월적인 육감이 아니면 감지조차 불가할 만큼 극히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미세함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차라리 동시 공격이면 쉽게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경우, 잘만 하면 움직임 한 번으로 전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하나, 짓쳐 드는 타이밍의 차이로 인해 이것이 힘들어졌다.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 이상의 움직임이 필요했다.
혹은 적어도 한 개는 직접 방어하든가.
완벽한 회피는 사실상 힘든 것이다.
쿠구구구!
단,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지난 전투까지의 나를 전제한 경우였다.
오늘의 나는 분명 달랐다.
삐끗.
까각.
움찔.
나를 향해 짓쳐 들던 세 소드마스터의 중심, 이것을 흔들었다.
세 명의 것을 전부 동시에.
수단은 늘 그랬듯 어둠의 중력이었다.
“……?”
“헛!”
“어엇?”
그렇다고 이것이 그냥 중력은 아니었다.
깨달음의 서포트를 받음은 물론이요 오러에 의해 강화까지 된 중력이었다.
우선 깨달음.
지난 전투를 마친 뒤,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벽을 넘어섰다.
나와 가이덴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 바로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벽이었다.
가이덴의 다이너 기습이 그 단초가 돼 주었다.
다이너를 잃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선명하고 느릿한 감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나는 그곳에서 가이덴의 중심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하여 전투 종료 후, 이에 대한 정리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 단초를 바탕으로 검에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라인하트 검법의 핵심은 결국 한 가지였다.
무게중심.
사실상 이것이 전부이며, 검법의 경지는 이를 확장해 가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좋았다.
본격적인 검사라 칭할 수 있는 익스퍼트 단계에서는 자신의 중심을 느끼고 다루는 일에 전념한다.
여기서 나라는 한계를 깨는 단계가 바로 마스터의 경지였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검을 맞댄 상대 혹은 근접한 상대의 중심도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의 단계는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발자국, 아니 족히 수십 발자국은 더 나아간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 등 개개인이 아닌 영역의 수준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내 영역이 미치는 범위 내 만물의 중심을 느끼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나의 의지대로 조정한다.
이것이 라인하트 검법을 통해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뛰어넘는 핵심이었다.
가이덴이 던져 준 단초를 바탕으로 현재 내가 도달한 경지이기도 했다.
또한, 이 깨달음의 한계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나와 이로부터 파생된 오러, 마력 등 비물질적인 것들을 포용했다.
보이지 않는 중력에 오러를 가미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저벅.
그렇기에 단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절묘하다 여겨지던 합공을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데에는 말이다.
후웅~ 휘악~ 스라락~
결국, 세 개의 검격 모두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강화된 중력이 각자의 중심을 흔들었고, 이로 인해 검격의 날카로움마저 흐트러지고 만 것이다.
날카로움이 제거된 검격은 그것이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지녔든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하등 의미 없는 헛손질에 불과했다.
“……!”
동시에 이는 치명타의 전조이기도 했다.
온몸이 빈틈투성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실력자 간 승부에서 이는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헛손질의 주인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부릅뜬 소드마스터들의 눈이 이 사실을 뒷받침했다.
콰우우~!!
이내 찬란한 어둠이 떨어져 내렸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실력자들의 머리 위로.
잔뜩 굳어 버린 표정들이 그들의 다급함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슈아악!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어둠은 헛손질의 주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린 것이 아니었다.
목표는 그 뒤에 있었다.
대륙 최강자이자 제국의 마지막 버팀목, 가이덴 드라이슬러.
나를 향해 짓쳐 드는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어둠을 내리그은 진짜 이유였다.
쿠과과과!!!
이내 충돌이 일었다.
엄청난 충격파를 생성시키는 무시무시한 충돌이었다.
또한, 벌써 수천 번 넘게 반복된 그림이기도 했다.
“큿……!”
“커헉!”
“크읍!”
충격파가 야기하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일대에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다.
심지어 소드마스터들조차 억눌린 신음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위력으로.
콰우우우!!
쿠르르릉!!
그만큼 압도적인 힘 대 힘의 대결이었다.
나의 어둠과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는.
콰우우우!!
쿠르르르…….
그런데, 수천 번 반복된 이 그림 속에서 어딘가 어그러진 부분이 생겨났다.
바로 양상이었다.
어둠과 오러 블레이드가 펼치는 대결의 양상.
지금껏 반복되어 온 것은 일관된 어둠의 열세였다.
넘치는 오러 블레이드의 힘을 어둠이 가까스로 버텨 내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콰우우우!!!
쿠르르…….
하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정반대의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정반대라는 표현조차 정확하지 못했다.
어둠이 오히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를 집어삼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오러 블레이드에 대한 어둠의 잠식이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크으읍……!”
이 또한 상당히 낯선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와 가이덴의 대결에서 짓눌린 신음은 항상 내 것이었으니까.
지금처럼 가이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콰우우우우!!!
이윽고 완벽한 압도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어둠이 오러 블레이드를 대부분 잠식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소멸뿐인 지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타다닷!
그러자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 펼쳐졌다.
가이덴이 후퇴한 것이다.
대륙 최강자라 불리는 그 가이덴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순수하게 상대의 힘에 밀려서.
지금껏 그의 후퇴는 전황의 불리함이 원인인 경우가 전부였다.
개인의 불리함이 원인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역사가 최초로 뒤집혔다.
또다시 나라는 존재로 인해.
“안 돼! 아, 안……컥!”
콰우우우!!
이는 단순히 개인적 역사의 반전으로 그치지 않았다.
실질적인 전황의 변수로까지 이어졌다.
억제기를 제거한 어둠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고.
쿠과과과광!!
이내 먹잇감 하나를 집어삼켰다.
미처 몸을 빼지 못한 소드마스터 하나가 끝내 어둠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이렇다 할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스으으~
잠시 후, 전장을 뒤덮었던 먼지가 걷혔다.
그리고 세 사람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대놓고 경악하는 두 명과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한 명.
두 명의 소드마스터와 한 명의 그랜드 소드마스터는 그렇게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전투가 잠시 중단된 사이, 가이덴이 질문을 던져 왔다.
당황 못지않게 해소할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당신 덕분에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한 수 위의 상대와 워낙 많은 실전을 펼쳐 왔으니까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만큼 벽이야 넘어설 수 있어. 하지만…….”
“힘의 차이를 말하는 겁니까?”
“…….”
가이덴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만으로도 요지는 충분히 전해진 상태였다.
가이덴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충돌에서 드러난 그와 나의 힘 차이에 대해서.
이해는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로서의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방금과 같은 일방적인 격차는 납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실라티 평원 전투 이후 보름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말인즉슨 깨달음을 얻은 시간 역시 최대 보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
따라서 벽을 넘어섰다 한들 그 수준은 아직 초입에 머물 것이 분명했다.
정면대결에서 일방적인 결과는 도출이 힘든 조건인 것이다.
“정령력이 있다 해도 이건…….”
설령 정령력을 고려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예시들을 떠올리면 이처럼 큰 격차는 말이 되지 않았다.
과거 나를 상대하던 소드마스터들도 밀리기는 하되 버티는 정도는 가능했다.
하여 그들이 수비적으로 나오면 나도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중력과 인력을 활용했다.
정면대결만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압도하는 모습은 딱히 보인 적이 없었다.
물론 유형화된 어둠이 있기는 하나, 이 또한 가이덴의 힘에는 미치지 못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벽을 넘었다 해도 버틸 수 있으리라는 것이 가이덴의 계산이었을 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이전까지 내가 했듯 물고 늘어지는 방식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 이 모든 계산이 무너졌다.
내가 뿜어낸 찬란한 어둠에 가이덴은 압도당했다.
어둠이 지닌 힘을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버텨 내지 못했다.
제대로 버텨 보기도 전에 어둠에 허무하게 잡아먹힐 뿐이었다.
“간단합니다. 강화했으니까요.”
“강화?”
“오러로 어둠을 강화했습니다. 당신 덕에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강화된 어둠의 힘이었다.
깨달음 덕분에 중력에조차 오러를 가미할 수 있게 되었다.
유형화시킨 어둠에 역시 가미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이를 수행했으며, 그리하여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를 힘으로 찍어 눌렀다.
열세일지언정 기존의 어둠만으로도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 비비던 참이었다.
이런 어둠에 그랜드 소드마스터로서의 오러가 가미된 것이다.
더욱이 오러의 가미는 쉼 없이 뻗쳐 나가던 어둠의 탐욕마저 안으로 갈무리했다.
그럼으로써 이조차 집중된 힘으로 전환시켰다.
아무리 가이덴이라 한들 압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지이이잉!!
“……그렇다 해도 인정할 수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는 아니야.”
하지만 가이덴은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악귀처럼 찌푸려진 얼굴과 함께 다시금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 올리는 그였다.
지잉!
지잉!
그의 양옆에 선 소드마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주어진 현실을 부정한 채 발악을 준비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을 살려 둘 생각도 없었으니까.”
물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오늘 당신은 로만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겁니다, 드라이슬러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