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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95화 (196/200)

119장: 찬란한 어둠

“툭 치면 쓰러질 것같이 헤롱헤롱하더니 좀 괜찮아진 모양이네?”

옆에 선 다이너를 보며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지금 제가 어딜 봐서 괜찮아 보입니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 안 보이세요?”

그러자 다이너는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가리키며 대거리했다.

실제로 그곳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는 상태였다.

“그거 식은땀이었어? 난 또 근육 돼지라 더워서 흘리는 줄 알았지.”

“하아, 내 팔자야. 어쩌다 이런 양반을 상관으로 모시게 돼서는…….”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 젓는 다이너.

나는 그런 다이너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흐음, 그 상관이라는 양반이 네 형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 모양이야. 지금 그 팔자 발언, 내 동생을 만난 것도 후회된다, 뭐 이런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부분인가?”

“아오, 해석이 왜 또 그런 쪽으로 빠집니까? 나중에 에일린한테 저만 욕먹습니다, 저만.”

“그러게, 오해 살 만한 말은 아예 하지는 말았어야지. 누가 하래?”

다이너를 놀려 먹는 재미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언제 어디서든 놀려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나였다.

타격감도 찰진 다이너이니만큼 그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거, 아픈 사람 이렇게 가지고 놀아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것도 이제 막 전투 시작되려고 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오히려 더 빼먹지 말고 가지고 놀아 줘야지. 긴장도 풀 겸 해서.”

장소와 시간 같은 것은 딱히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로만 제국의 황도 앞, 마지막 전투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 해도 말이다.

“하아아…….”

다시금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 다이너였다.

더는 당하기 싫다는 듯 아예 시선까지 돌려 버렸다.

역시나 놀리는 맛이 있었다.

사아아~

단, 이 놀리는 맛과는 별개로 다이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맨눈이 아닌 어둠까지 동원한 관찰이었다.

다이너의 컨디션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이너는 아직 가이덴에게 당한 기습의 여파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괜히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흐음.”

그렇게 마지막으로 관찰한 결과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정양이 더 필요했다.

“또 왜요? 이번에는 또 뭘로 볶아 먹으시려고요?”

“이번에는 딱히 그럴 생각 없었는데. 왜, 아쉬워? 한 번 더 볶아 먹어 줘?”

“아오, 쫌!”

하여 마지막 권유에 들어갔다.

“그보다 다이너, 너 어차피 내 말 안 들을 거지?”

“제가요? 제가 군단장님 말씀을 언제 안 들었습니까? 너무 잘 들어서 매번 이렇게 들들 볶아 먹히고 있구만.”

“그래, 그렇게 잘 듣는단 말이지? 그럼 몸도 안 좋으니 오늘 전투는…….”

“크으~ 군단장님, 하늘 좀 보세요. 전투하기 딱 좋은 날씨 아닙니까?”

물론 씨알도 먹힐 리 없었지만.

“……쉬거나 뒤로 조금 빠지는 것도…….”

“이런 날 빠지면 그게 어디 기사입니까? 그냥 꼬랑지 말은 한 마리 개새끼지.”

다이너는 권유 자체를 원천 차단해 버렸다.

그런 녀석의 시선은 오로지 화창한 하늘과 개떼처럼 모여 있는 반대편 제국군 진영을 오갈 뿐이었다.

눈에 보일 듯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투기와 함께.

“……대신 무리는 하지 마라. 난 내 동생 과부로 만들 생각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저도 없습니다. 제가 우리 에일린 두고 가긴 어딜 갑니까? 군단장님이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절대 못 가요.”

설령 내가 강제로 뺀다 해도 빠질 녀석이 아니었다.

아마 몰래 따라와서는 되려 더 미친놈처럼 전장 한복판을 누빌 터.

내 손으로 다리라도 분질러 버릴 게 아닌 이상, 차라리 시야 안에 두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리고 지금 군단장님이 남 걱정하실 처지입니까? 오늘 제국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가 벌써 눈에 훤하구만.”

그리고 이런 걱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향한 걱정이 더 컸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럴지도.”

“그럴지도가 아니라 그런 거죠. 저쪽에 군단장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드마스터들만 몇인데.”

제국군에 동맹국들의 소드마스터가 추가된 상태였다.

그것도 무려 네 명이나.

핵심 전력인 마스터의 숫자 차이가 확 벌어지게 된 것이다.

전처럼 성벽을 끼고 싸우는 게 아닌 이상 극복하기 어려운 전력 차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난번 드라이슬러 공작이 한 짓을 보면……. 어쨌든 오늘 정말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절대 무리하시면 안 돼요.”

이렇게 벌어진 차이가 집중될 곳은 너무나도 뻔했다.

가이덴이 자존심을 버리기로 한 이상 타깃은 나뿐이었으니까.

다이너의 염려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무리라……. 그래,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확실히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가이덴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여분의 소드마스터들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쉬울 리 만무했다.

여태까지의 양상대로라면 낭패를 면치 못할 터였다.

아니, 낭패 수준을 넘어 패퇴와 몰락이 자명했다.

“근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무리할 생각 없으니까. 그럴 이유도 없고.”

단, 여태까지의 양상대로라면 말이다.

낭패와 패퇴, 몰락은 내가 가이덴 하나에 쩔쩔매던 지난 전투까지의 상황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그런 것 없이도 보게 될 거야. 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러나 이번 전투부터는 아니었다.

줄곧 성립되어 오던 전제는 이제 과거로 남게 될 터였다.

바로 오늘, 내가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다.

* * *

철컥! 콰광! 철컥! 콰광!

슈슈슈슈슉~!

드워프의 철포가 불을 뿜고 엘프의 화살이 대기를 갈랐다.

그리하여 진영을 뭉개고 찢어 버렸다.

지옥과도 같은 화염이고 칼날의 비였다.

적어도 제국군에게는 그리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뭉갬과 찢김의 대상은 결국 저것들을 몸으로 받아 내야만 하는 제국군이었으니까.

“막아! 저 미친놈들이 못 밀고 들어오게 막…… 커헉!”

“도, 돌파당한…… 크아악!!”

화염과 화살 비에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미친놈들의 돌격이 이어졌다.

전투에 미친놈들, 그리핀 군단이었다.

철포와 화살에 엉망이 된 제국군 진영에 그리핀 군단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완전히 짓이겼다.

회복이 불가할 만큼 철저하게.

제국군 입장에서는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의 연속인 것이다.

스윽.

그럼에도 가이덴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담담한 눈으로 한번 스윽 둘러본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이마저도 매우 짧았다.

이내 작금의 모든 상황에 관심을 꺼 버렸다.

그러고는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그였다.

“왔군.”

“왔습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였다.

제국의 재앙이자 검은 악마라 불리는 숙적이 그의 앞에 당도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당연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 존재였다.

“설마 이게 다인가?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 듯한데.”

다만, 꼭 라이오넬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 역시 이유가 됐다.

가이덴이 라이오넬에게 묶여 있는 사이, 그의 측근들과 그리핀 군단이 제국군을 일방적으로 유린한다.

기분 더럽긴 해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라이오넬의 재등장 이래 늘 반복돼 온 패턴이었으니까.

“전부를 쏟아부은 지 오래입니다. 여력 같은 걸 남겨 둘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지라.”

“물론 알지만, 그래도 의외야. 어떻게든 다른 수를 준비할 줄 알았거든.”

그렇다면 오늘은 추가적인 무언가를 준비했어야 했다.

더럽고 거지 같은 이 패턴을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 말이다.

그게 아니고는 슈라우드에게 희망이 없었다.

“혹시 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것인가?”

“네 왕국의 소드마스터가 합류한 소식이라면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소드마스터 추가 소식 역시 전해진 상태였다.

라이오넬도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한데 아무런 준비를 안 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그럼에도 이렇다 할 대응책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지난번과 같은 전력, 같은 전략을 활용 중인 슈라우드였다.

이것이 당장은 제국군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속은 불가능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라이오넬의 건재를 기반으로 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라이오넬이 쓰러진다면?

그리하여 가이덴이 자유롭게 풀려난다면?

그때는 엘프고 드워프고 그리핀 군단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가이덴 앞에서는 평등했다.

모두 평등하고 깨끗하게 쓸려 나갈 터였다.

“난 이미 충분한 시그널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가능성을 꼽자면 가이덴의 자존심 정도가 있겠으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가이덴은 이미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이는 철저히 실리를 따르는 길이었으며, 그 끝은 오로지 제국을 향해 있었다.

제국의 안위와 영광 말이다.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라이오넬도 모르지 않았다.

지난 전투에서의 선언과 기습을 통해 의지는 충분히 전달된 상태였다.

“안다고 하니 더더욱 이해가 안 돼. 대체 무슨 속셈이지?”

“속셈 같은 건 없습니다.”

“하면? 그냥 자포자기라도 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이오넬이었다.

100년 넘게 대륙을 호령해 왔으며, 현 황제에 이르러서는 그 힘이 절정에 달했다 평가받던 제국을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바로 그 라이오넬.

그런 그가 이제 와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 거였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을 자였다.

가이덴이 아는 라이오넬이라는 인간은 분명 그러했다.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답은 간단하니까.”

“……?”

“자신감입니다.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

“…….”

역시나 가이덴의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단지, 라이오넬의 행동이 그 범주를 넘어섰을 뿐.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이군.”

“덕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신감을 가질 만하지. 그 나이, 그 실력에 벽까지 넘어섰다면 말이야.”

라이오넬이 벽을 넘어섰다.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수 위 상대와의 생사결을 밥 먹듯 반복했는데, 넘어서지 못한다면 되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만해.”

그럼에도 가이덴은 동요하지 않았다.

타이밍이 절묘하기는 하나, 어찌 됐든 그 또한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오늘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반대로 그가 버티기에 들어갈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난 이미 선언했어. 가이덴 드라이슬러라는 인간의 전부를 다하겠다고.”

그러나 오늘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설령 라이오넬의 힘이 그의 예상치를 웃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 내가 할 건 승부가 아니야.”

어차피 오늘 가이덴이 하려는 것은 라이오넬과의 대결이 아니었다.

그런 정정당당함은 다이너 브란부르크에 대한 기습과 함께 버린 지 오래였다.

“사냥이지.”

대신 그는 사냥할 작정이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라는 제국의 적을, 검사가 아닌 철저한 사냥꾼의 입장에서.

척, 척, 척.

지체할 생각도 없었다.

시간 끌어 봤자 늘어나는 것은 제국의 손해뿐이었다.

하여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편으로 세 명의 소드마스터가 내려섰다.

가이덴과 함께 라이오넬 사냥에 나설 세 명의 사냥꾼들이었다.

“약속하겠네. 자넨 오늘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

지이이이잉!!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하나가 아닌 무려 네 개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그러고는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겨눠졌다.

쿠우우우우~!!

당연히 기세도 함께였다.

세 명의 소드마스터와 한 명의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동시에 뿜어내는 기세.

무엇이든 찢어발기고도 남을 이 기세가 오늘의 사냥감, 라이오넬 라인하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약속 잘 받았습니다.”

스릉.

그러자 사냥감 또한 발톱을 꺼내 들었다.

가이덴이 지겹도록 마주한 예의 그 검은 발톱이었다.

“그 답례로 나도 약속 하나 하죠.”

사아아아아아~!!

“오늘 모든 게 뒤집힐 겁니다. 황제와 제국, 대륙의 질서까지 전부 다.”

그런데 이 발톱, 어딘가 꺼림칙했다.

검었다.

무저갱을 연상시키듯 깊고도 진하게.

“그리고 그 시작은 당신이 될 겁니다, 드라이슬러 공작.”

동시에 찬란했다.

지금껏 경험한 그 어떤 종류의 빛보다도 더.

가이덴조차 감히 시선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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