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장: 라이오넬의 힘
황도 앞 제국군 본영.
제국의 명운이 걸린 전투를 앞둔 이곳의 분위기는 심히 무거웠다.
진중한 무거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 무거움은 침울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연이은 패전과 패퇴, 그리고 이로 인한 침울함.
이 극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진영 전체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현재 우리 전력을 고려하면 길게 끌 필요는 없소. 단번에 섬멸도 가능한 만큼 이번 전투는 농성이 아닌 야전이 될 것이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작전 회의는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침울하기에 오히려 더 철저하게 진행되는 측면도 있었다.
더 이상 뒤가 없는 제국이었다.
승리를 위해 전부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이덴의 직접 브리핑 역시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었다.
최강자인 그가 회의를 주도하며 쓸데없는 잡음을 최소화하는 중이었다.
“특히 말했다시피 소드마스터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니, 각국의 마스터들은 이 점을 유의해 주기 바라오.”
“그런데 말입니다.”
단, 이 침울한 무거움이 회의를 이롭게 하지만은 않았다.
역으로 심각한 균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말씀하시오, 즈리가 후작.”
라투이드 왕국의 올랜도 즈리가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가볍게 툭 던졌다.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진정 그리도 무서운 실력을 지닌 겁니까?”
“무슨 뜻이오?”
“무슨 뜻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라이오넬 그자 하나에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많은 힘을 투자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될 수밖에요. 그것도 무려 로만 제국이.”
분명 말투는 심히 가벼웠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달랐다.
가벼운 말투와는 반대로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어쩐지 말에 뼈가 있구려.”
제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이었다.
제국씩이나 돼서 그동안 대체 라이오넬 하나 처리 못 하고 뭐 했느냐, 얼마나 못났으면 고작 그 하나 처리하는 데 동맹국 마스터들까지 지원받느냐, 뭐 이런 의미인 것이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사실상 대놓고 비꼬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당사자인 가이덴을 가장 노골적으로.
화악~!
이는 제국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언사였다.
제국이 어떤 곳인가?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에펜시아 대륙을 호령해 온 국가였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대륙은 황제와 제국 수뇌부의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절대적인 위세를 자랑하던 제국이었다.
그리고 이런 제국을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지주가 바로 가이덴이었다.
대륙 최강의 절대자, 그랜드 소드마스터 가이덴 드라이슬러.
그야말로 제국을 제국답게 만드는 긍지요 자랑인 것이다.
한데, 이런 긍지와 자랑, 자존심이 노골적으로 무시당했다.
그것도 가이덴을 비롯한 제국의 요인들이 전부 모여 있는 제국군 진영 한복판에서.
불과 1년 전, 아니 6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에 대한 불경이고 절대자에 대한 모독이었다.
이에 제국 측 요인들이 일제히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감히 입을 함부로 놀린 라투이드의 건방진 소드마스터를 향해.
“아아, 그럴 리가요. 오해이십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즈리가 후작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어차피 같은 소드마스터들이 쏟아 내는 기세였다.
일국을 대표하는 후작이자 실력자인 그가 이런 압박에 굴복할 리 만무했다.
또한, 과거의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기세를 뿜어내는 이들은 지나간 영광에 취한 과거의 잔존물들에 불과했다.
더구나 제국에 약점을 잡힌 것도 라투이드 왕실이지, 후작 본인이 아니었다.
무조건 접어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너무들 과민반응하는 것 같군요. 그래도 명색이 제국을 돕기 위해 온 사람인데 말입니다.”
되려 더 강하게 나오는 후작이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한 줄기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어쩐지 비릿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미소였다.
“세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무래도 나와 같지 않을까 싶은데.”
나아가 다른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와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각각 크레이드, 말라, 하이센다크 왕국의 소드마스터들.
후작의 질문에 이들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그게 그리도 궁금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궁금하긴 합니다. 대체 그자가 어느 정도이기에 대륙 최강이라 불리던 공작 전하께서 여태 처리를 못 하신 것일까 하는, 뭐 그런 궁금증이랄까요?”
화아악~!
제국 실력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배는 더 강렬해졌다.
이쯤 되면 기운만으로 사람 하나 찢어 죽여도 이상할 것 없는 기세였다.
스윽.
“그만.”
화아아…….
하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가이덴의 만류에 의해서였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폭발할 것 같던 기세가 잠자코 내려앉았다.
“후작 말이 맞소. 제국을 돕기 위해 온 것인데, 궁금한 게 있으면 당연히 알려 줘야지. 그래,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얼마나 강하냐고?”
그러고는 가이덴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단, 휘어진 입가와 달리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채였다.
“그렇습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대륙 사람 전체가 궁금해하는 바일 겁니다. 다들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을 테지요.”
“그럴 테지. 당장 내 귀에 들려오는 것만도 적지 않으니 분명 그럴 거야. 흐음…….”
가이덴이 엄지와 검지로 턱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 아! 이러면 되겠군.”
다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2~3초 정도?
짧은 고민 직후 곧바로 검지를 펴는 그였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더니 네 사람을 순서대로 가리켰다.
“저희 말씀입니까?”
“그렇소, 이렇게 네 사람.”
공작이 가리킨 사람은 즈리가 후작을 비롯한 각 왕국의 소드마스터들이었다.
“네 사람 정도면 얼추 맞지 않을까 싶소.”
“……?”
“놈과 말이오, 라이오넬 라인하트. 아마 이렇게 넷이 한꺼번에 덤비면 놈과 얼추 비슷할 거요.”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라이오넬이 지닌 강함의 정도.
즉, 질문에 대한 답을 준 것이다.
매우 직관적인 예시를 들어서.
빠득.
단, 질문자에 대한 모욕도 함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네 사람은 곧장 답변의 진의를 알아챘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즈리가 후작의 질문 이상으로 노골적이었으니까.
자연스레 이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들 인상을 찌푸리시오? 그대들이 궁금해하길래 순수하게 답변을 준 것뿐인데. 너무들 과민반응하지 마시구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농담도 정도껏 하셔야지요. 저희는 제국을 돕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무리 공작 전하시라지만 어느 정도 선이라는 걸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농담? 선?”
가이덴의 답변은 선 넘은 농지거리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적어도 라이오넬을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이들에게는 그러했다.
네 사람 모두 불쾌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중이었다.
“어째서 농담이라 치부하지?”
“그럼 아니라는 겁니까?”
“물론.”
그러나 가이덴에게는 일말의 거리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답변에 있어 단 한 마디의 농담도 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진실만을 전달해 주었을 뿐이다.
수십, 수백 차례의 반복을 통해 깨달은 경험법칙을 말이다.
“후작, 그대의 눈에는 저들이 전부 거짓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나?”
가이덴만이 아니었다.
네 사람을 제외하고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후작의 말에 진중한 반응을 내비치고 있었다.
“으음…….”
어쩌면 그것은 진중함을 넘어선 침울함이라고 봐야 했다.
애당초 제국군 진영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던 바로 그 침울함.
이것이 라이오넬의 강함에 대한 언급과 함께 저절로 증폭된 것이다.
곧장 반박하려던 후작이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다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다 보니 과도하게 겁을 먹은 것이겠지요. 아무리 그자가 세운 업적이 크다 해도 우리 넷과 한꺼번에 비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박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즈리가 후작은 여전히 납득을 거부했다.
“그건 설령 그랜드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크흠.”
선까지 넘었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가이덴을 건드린 것이다.
헛기침으로 중간에 말을 끊었다 할지언정 이 자리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바보는 없었다.
화아악!!
잠시 가라앉았던 제국 측 인사들의 분노에 다시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그것이 이제는 정말 폭발할 기세로 타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만하라니까.”
이에 또다시 가이덴이 나섰다.
그가 임계점에 다다른 기세에 제동을 걸었다.
“그렇지만, 전하!”
“아무리 도움을 주러 왔다지만 저건 너무 건방진 언사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아무래도 쉬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모양새였다.
그러기에는 즈리가 후작이 선을 너무 세게 넘었다.
그런데,
우우웅!!
“그만.”
화아아…….
결국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이덴의 힘이 이 모든 기세를 일거에 짓눌러 버렸으니까.
“이해하시오, 후작. 다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니.”
“흠흠, 아닙니다. 저 또한 다소 과했습니다. 공작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 역시 한 명의 검사인지라…….”
그럼에도 끝내 납득은 하지 않는 즈리가 후작이었다.
“그럴 수 있지. 하면 차라리 이러는 건 어떻겠소?”
가이덴도 더는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후작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는 거요, 라이오넬 그놈이 지닌 힘을.”
“어떻게 말입니까?”
“이렇게.”
쿠우우우!
제안에 대한 답은 듣지 않았다.
듣지 않고 강요했다.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도록.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 가이덴의 기세가 즈리가 후작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커윽!! 이게 무슨……!”
“라이오넬의 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소? 그것을 간접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지. 네 사람 전부 다.”
대상은 즈리가 후작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 의문을 제시하던 나머지 세 사람도 함께였다.
그들 모두 가이덴 후작이 내뿜는 기세에 짓눌리는 중이었다.
“한번 힘을 합해서 대항해 보시오. 그럼 대략적으로나마 체감이 될 터.”
“크으으……! 후회할 겁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쿠우우우!
우우우웅~!
갑작스레 봉변을 당한 동맹국 네 소드마스터의 기세가 하나로 뭉쳐졌다.
그러고는 가이덴의 그것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콰장창창!!
회의장 내부가 남아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모든 가구와 집기들이 종잇장처럼 휘날리고 찢겨 나갔다.
초인들의 기세 싸움은 그만큼 압도적인 것이었다.
쿠우우우우!!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압도적이었다.
“이, 이게…….”
“커헉……!”
“크으윽!!”
“크읍……!!”
압도적으로 한쪽에 쏠려 버린 결과였다.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왕국 소드마스터들은 가이덴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했다.
감당은 고사하고 일방적으로 짓눌리기만 했을 뿐이다.
고통 어린 신음과 가이덴을 향해 꿇린 무릎들이 그 방증이었다.
“크으으으…….”
“그, 그만…….”
스으으.
이내 사위를 압도하던 가이덴의 기세가 가라앉았다.
상황 종료였다.
더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가이덴의 압승으로.
“어떻게, 버틸 만했소?”
“…….”
입조차 벙끗 못하는 왕국의 소드마스터들이었다.
“라이오넬은 버티더군. 혼자 힘으로, 그것도 간간이 역습까지 섞어 가면서.”
이로써 충분히 전달되었다.
라이오넬이 지닌 힘의 크기와 그 무서움이.
“그래서요, 놈에게 상식 이상의 방법을 쓰려는 것은. 하니, 군말 말고 따라 주시구려.”
동시에 설득력 역시도.
“예정대로 내일 우린 라이오넬 라인하트, 오직 그놈 하나에 전부를 쏟아부을 것이오.”
내일, 가이덴은 슈라우드와의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작정이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슈라우드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그를 무조건 끝장냄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