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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92화 (193/200)

116장: 중심 포착

문제는 내가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당장 쓸 수 있는 힘이란 힘은 다 쓰고 있었다.

단순히 내가 보유한 정령력뿐 아니라, 공명을 통해 증폭되는 어둠까지 전부 다.

그렇게 확보한 힘은 분명 만만치 않았다.

웬만한 소드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쯤은 간단히 찜쪄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쿠르르르릉!!

하지만 상대는 웬만한 소드마스터도, 그런 소드마스터의 평범한(?) 오러 블레이드도 아니었다.

대륙 유일의 그랜드 소드마스터였으며, 그런 이가 발산하는 최강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아니, 오러 블레이드조차 뛰어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무언가였다.

당연히 어둠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 왔던 것이 오늘이라고 해서 갑자기 달라졌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그 이상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현재의 나로서는 쥐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콰우우우…….

그렇게 어둠은 속절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 위치하고 있는 다이너 쪽으로.

이제 그 거리가 채 한 뼘이나 남았을까 싶은 순간에 도달했다.

뭘 어찌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기도 했다.

끼릭.

‘……?’

그런데 그때였다.

부지불식간에 어떤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극도의 느려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극도의 선명함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끼리릭.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보인다는 점이었다.

모든 것이 보였다, 아주 선명하게.

압도적인 힘에 밀려 비산하는 어둠의 파편, 이 파편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게걸스레 집어삼키는 오러 블레이드의 파도, 자신에게로 들이치는 파도를 보며 마지막을 직감한 듯 침잠한 다이너의 표정, 그리고 본인의 뜻대로 흘러감에도 자꾸만 미세한 떨림을 보이는 가이덴의 동공까지.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극히 느릿한 움직임으로.

‘이건…….’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실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경험이었다.

지금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경험.

모든 것이 선명하고 느릿해지는 이 감각,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이 감각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틀림없었다.

잊으려야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인 동시에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굴타르 산.’

라인하트 자작령 내에서 가장 사람의 발길이 뜸한 그곳, 굴타르 산.

사시사철 서늘하고 음침하며 음습한, 하여 정식 지명을 놔두고 귀신 산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곳에서 느낀 감각이었다.

회귀 직전, 제국의 소드마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던 그 순간 말이다.

그때도 그랬다.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었다.

파괴된 정령석에 당황을 금치 못하는 카일 이반의 눈빛부터 이에 분노하는 소드마스터의 검격, 그리고 파괴와 동시에 나를 덮쳐 오는 어둠의 장막까지, 전부 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 모든 순간이 너무나 선명하고 지극히 느릿했다.

한 손에 꽉 잡히기라도 할 것처럼.

‘이게 최후의 순간이라고?’

과거의 경험에서 이 감각이 가져온 결과는 명확했다.

비극이었다.

감각의 발현은 결국 나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마무리됐었다.

그리고 흐름 자체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고 치명적이었다.

나보다 더 소중한 내 사람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

절대로 그리 둘 생각은 없었다.

내 사람들을 위해 살고자 시작한 걸음이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끝에 다다른 지점이었다.

한데 이 끝에서 내 사람을 잃는다?

그것도 바로 내 눈앞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으윽.

또, 가능성이 없지만도 않았다.

굴타르 산에서와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의 진행 와중에 끼어든 제3의 변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는 그저 선명하고 느릿해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이에 대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선명해진 것을 건드리지도, 느릿해진 것을 움켜쥐지도 못했다.

‘보여.’

하지만 오늘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였기 때문이다.

변수라고 할 만한 제3의 무언가가.

‘확실히 보여, 가이덴의 중심이.’

그것은 중심이었다.

그토록 흐릿하던, 하여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던 가이덴의 중심.

시시각각 변하고 이동하는 그것의 위치가 또렷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굳이 이전이랄 것도 없었다.

당장 10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보지 못하던 상태였으니까.

경지의 차이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 모든 것의 무게중심을 보고 느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었다.

설령 상대가 소드마스터라 해도 내 검이 뻗치는 범위 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라인하트 검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묘용이었다.

한데, 가이덴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어도 그저 어디쯤이리라는 대략적인 감지가 전부였다.

마치 깨달음을 얻어 소드마스터에 오르기 전의 그때처럼 말이다.

스으윽.

그러던 것이 지금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느려진 세상 속 선명해진 인지와 함께였다.

다른 사람들의 중심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흔들렸다.

차이라면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드높은 격이 그것을 감싸고 있다는 점 정도뿐.

‘잡을 수 있을까?’

하면 이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떤 계기가 됐든 일단 보이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것만으로도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었다.

이동하는 상대의 중심에 맞추면 수월한 대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방어에 국한된 이야기.

역공을 위해서는 잡고 흔들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가이덴에게도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해 보는 수밖에.’

굳이 고민할 필요 없었다.

또,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해 보면 됐다.

어차피 뭐라도 해 보지 않는 이상 정해진 결론은 비극뿐이었다.

지이잉~

그렇게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가이덴에게 흘려보냈다.

원래는 그에게 닿지 않아 방어 용도 외에 쓰지 않고 있던 힘이었다.

그런 것을 처음으로 역습 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과연 먹혀들지는 아직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지잉!

하나, 이 의문은 눈 깜박할 사이에 해소되었다.

오러는 가이덴의 힘을 파고들어 갔다.

그리하여 그의 힘이 지닌 중심에 도달했다.

여타 검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저항을 맞이했으나, 결국 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였다.

우우우웅!!

중심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도록 세차게 흔들어 대는 것.

움찔!

‘된다.’

효과가 있었다.

가이덴의 중심이 흔들렸다.

비록 약간 움찔하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어찌 됐든 흔들린 것은 분명 흔들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약간의 흔들림이 가져온 차이는 상당했다.

콰가가각…….

우선 낙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사실상 어둠을 집어삼키듯 무자비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던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그런 오러 블레이드의 낙하를 어둠이 본격적으로 막아서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소멸당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

나아가 가이덴의 당황도 이끌어 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저항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거의 다 끝나 가는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순간적인 당황은 더 큰 흔들림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콰가가각……!

단, 아쉬운 점 역시 공존했다.

이 또한 시점의 문제였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필이면 힘의 파동이 다이너에게 거의 다다른 상황이었다.

지나치게 늦어 버린 저항 시점은 상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역시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가이덴이 느끼는 감정보다 몇 배는 더 큰 쪽으로.

지이이잉!!

콰우우우!!

그렇게 대등해진 두 힘이 얽혀 들어갔다.

이 얽힘에는 한 치의 양보도 존재하지 않았다.

파괴하려는 힘과 지키려는 힘, 양자 간의 치열하고 처절한 공방전만이 존재할 뿐.

쿠과과과과광!!!

그리고 이내 터져 나갔다.

전장 전체를 뒤덮는 어마어마한 충격파와 함께.

* * *

“그…….”

물끄럼.

“흠흠.”

레나가 물끄러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그러자 상대는 헛기침과 함께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민망함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 보겠어요? 뭘 원하신다고요?”

“그러니까 그…….”

그러나 레나는 상대의 민망함 따위 눈곱만큼도 고려해 주지 않았다.

고려는커녕 되려 더 노골적인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짙어질 대로 짙어진 입가의 미소와 함께 말이다.

“그게…… 우리 왕국도 진격을 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

“흐음, 바이젠이 진격을 한다라. 설마 또?”

“오, 오해요. 우리가 언감생심 어떻게 슈라우드를 노리겠소?”

“그럼?”

“제국 말이요, 제국. 우리 왕국도 슈라우드의 대의에 한 손 보탤까 하여 찾아왔소이다.”

상대의 정체는 자리아트너 코마누스 바이젠.

바이젠 왕국의 국왕이었다.

그가 레나에게 자국군의 제국 진격을 허락받고자 찾아온 것이다.

“그런가요?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네요. 전하께서는 워낙 전적이 화려한 데다, 이미 제 제안도 한 번 거절하신 바가 있다 보니.”

“크흠, 그것은…….”

코마누스 국왕은 계속해서 민망함을 숨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여기에는 그와 바이젠 왕국의 처지도 한몫했다.

국왕은 슈라우드에 여전히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왕국 안팎의 모든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레나의 재가가 필수적이었다.

자국군의 진격 여부를 레나에게 묻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다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국왕의 거절이었다.

반년 전, 레나는 코마누스 국왕에게 이미 한 차례 제안한 바 있었다.

슈라우드의 제국 침공에 동참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면 바이젠이 물어야 할 배상금 삭감은 물론, 공로에 따라 바이젠이 확보한 영토도 일부 보전해 주겠다고 말이다.

하나, 국왕은 레나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당시만 해도 제국 침공은 무모함을 넘어 미친 짓이라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 다시 기회를 청하는 그였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레나와 눈을 맞추지 못함이 당연했다.

“왜, 그때와 상황이 너무 달라졌나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러니까 그게…….”

대의가 슈라우드와 레나에게 있다느니, 그때는 왕국 사정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었다느니 등등 코마누스 국왕은 갖가지 이유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도 알고 레나도 알고 대륙 전체가 다 알았다.

지극히 기회주의적인 변명과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

“늦었습니다.”

그리고 레나는 이것들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국왕의 요청 역시도.

“남은 거라고는 이제 황도뿐인데, 지금 와서 참전을 원한다?”

“…….”

실라티 평원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슈라우드는 최종 목적지를 코앞에 두게 되었다.

로만 제국 황도, 드디어 그곳에 다다른 것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마지막 한 걸음, 황도 점령뿐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여기까지 온 이상 도움은 필요치 않았다.

되려 방해였다.

괜히 추후 영토 문제로 시끄러워지기만 할 터.

아직 승패가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지금까지처럼 조용히 관망만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그래도 아직 제국의 주력이 무사하고, 드라이슬러 공작도 굳건히 버티고 있지 않소? 무엇보다 다른 왕국들도 한 다리씩 걸치려 슬슬 눈치를 보는 중이고…….”

그러나 승냥이들이 가만히 두고만 볼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숟가락 하나씩 얹어 보고자 달려들 것이 자명했다.

실제로 제국에 대한 선전포고의 움직임이 포착된 국가들도 몇 있는 상태였다.

승패가 어떠하든 이제 제국과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여론이 급속도로 팽창 중인 것이다.

“차라리 귀국과 마이바크, 테네시아에 우리 바이젠까지 더해 확고한 축을 세웁시다. 그러면 다른 왕국들도 쉬이 눈독을 들이지 못할 거요.”

“그 축에 바이젠을 포함 시켜야 할 이유는요? 지금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물론 슈라우드의 힘이 막강하다는 건 잘 아오. 하지만 전쟁의 장기화로 내부가 취약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니오? 그 부분을 우리 바이젠이 메꿔 줄 수 있소이다. 그러면 정말 최고의 시너지가…….”

“필요 없네요.”

이에 레나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그깟 시너지, 필요 없답니다.”

“우, 우리 바이젠이 아니더라도 다른 왕국들이 분명…….”

“해 보라고 하세요, 얼마든지.”

허세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필요치 않았다.

“정 그렇게 라이오넬 라인하트를 만나고 싶다면 말이죠.”

슈라우드는 대륙 최강의 억제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이젠 국왕을 통해 그 효용성까지 입증한 최고의 억제기를 말이다.

“하지만 그는 드라이슬러 공작을 묶어 둬야 하지 않소? 그것만으로도 버거울 터인데……?”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레나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져 갔다.

그 안에 깃든 분명한 자신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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