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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91화 (192/200)

115장: 인간 가이덴

대결을 마무리 지을 때면 가이덴은 항상 강한 일격으로 나를 묶어 놓았다.

그러고는 최대한 안전하게 병력을 뒤로 물렸다.

분명 같은 패턴이고 매번 반복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했고, 그렇기에 매번 통했다.

나는 언제나 이 일격을 해소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제국군을 그냥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내 어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슈라우드군도 활약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같은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가이덴의 말마따나 전세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4만도 채 안 되는 슈라우드군이 전장을 완전히 헤집어 놓고 있었다.

15만의 제국군은 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승패 자체는 이미 결정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따라서 지금 가이덴의 행동 역시 후퇴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사아아아~

지이이잉!

하여 나도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커 가는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 맞춰 어둠을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여기에 오러 또한 가미했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렸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콰우우우우!!

그리하여 한 자루 거대한 어둠을 만들어 냈다.

위용만으로는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밀리지 않는 그런 어둠이었다.

다만, 아직은 겉으로 보이는 위용뿐이었다.

실질은 여전히 가이덴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거대한 어둠을 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극한의 방어.

적어도 가이덴을 상대함에 있어서만큼은 이것이 정답이었다.

여태껏 그래 왔고, 오늘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내가 새로운 깨달음이라도 얻지 않는 한은 말이다.

“자네와 검을 겨룰 때마다 항상 그런 생각이 들더군.”

“……?”

한데, 오늘은 마지막에 와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충돌을 앞둔 시점에 가이덴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말 자체야 많이 걸었던 사람이기는 했다.

절대자의 고독을 나와의 대결 및 대화로 풀던 그였으니까.

단, 우리가 선을 넘기 전까지.

가이덴은 나와 슈라우드군이 국경을 넘어선 뒤부터 태도를 달리했다.

말수를 부쩍 줄이고, 대신 검격의 횟수를 대폭 늘렸다.

여유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전과 달리 조금의 틈도 없이 나를 몰아붙여 온 가이덴이었다.

또,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만 제국이 전례 없는 치욕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가이덴 본인의 지휘 아래에서.

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라 한들 조급해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했다.

“내가 자네 나이 때는 어땠는지, 지금 그 나이로 돌아가면 이렇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뭐 그런 것들 말이야.”

“굳이 그런 생각에 빠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각자 처한 상황과 입장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렇긴 하지. 다만 이미 대륙 전체에 재미난 안줏거리로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나? 나름 적잖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부하지만, 사람의 본성 자체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야. 세간의 가십거리에 이래저래 귀가 기울여지는 걸 보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상황상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늘 전투에서 제국이 유리하다거나 혹은 그럴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제국은 여전히 불리했으며,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질질 끌려다닐 예정이었다.

그리핀 군단과 엘프, 드워프를 필두로 한 슈라우드군의 기세는 그만큼 매서웠다.

적어도 오늘 전투에서 제국군이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은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다.

“인정하는 걸세, 자네라는 사람을.”

그렇다면 이런 태도를 보일 이유도 없었다.

괜히 시간을 끌어 봤자 제국군의 피해만 더 누적될 뿐이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나를 압박한 뒤 최대한 빨리 병력을 물리는 편이 나았다.

“자네가 나보다 나아. 자네 재능은 분명 나를 뛰어넘었어. 아마 곧 있으면 실력도 나를 앞지르게 되겠지.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야.”

“대체…….”

“이상하게 볼 것 없어. 그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니까. 또, 그간의 연을 생각해서 미리 경고도 해 주고.”

“경고?”

“말했다시피 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네. 해서 지금부터는 정말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그러니 자네도 조심하는 게 좋아.”

“지금까지 발휘한 게 전부가 아닌가 보군요.”

“아니지. 그것들이 가이덴 드라이슬러라는 인간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

가이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힘을 간신히 버텨 내는 정도, 딱 그 정도까지였다.

가이덴과의 무수한 대결 덕에 무언가 보이는 듯도 하지만, 아직 한계를 넘지는 못하고 있었다.

간질간질한 이 감각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전세는 얼마든지 반전 가능한 것이다.

가이덴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사아아~

그리고 가이덴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비록 어딘지 모르게 애매함은 남아 있으나, 적어도 거짓은 없었다.

어둠을 통해 전해지는 바는 분명 그러했다.

“…….”

무려 가이덴 정도 되는 이가 내비치는 진심이었다.

무언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긴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콰우우우우~!!

하여 방어태세를 더욱 굳건히 했다.

여기서 내가 무너져서는 안 됐다.

내가 무릎 꿇는 순간, 4만의 군대는 물론이거니와 슈라우드라는 왕국 자체가 끝이었다.

현재로서는 내가 곧 슈라우드인 것이다.

가이덴의 전부가 무엇이 됐든 반드시 버텨 내야만 했다.

“그럼 가지, 내 전부를 다해서.”

이윽고 가이덴이 움직였다.

그의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륙을 호령하는 절대자의 진심 가득한 일격이, 정확히 내 머리를 향해서.

처억!

당연히 나 또한 최선의 대응에 나섰다.

어둠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림과 동시에 몸 자체의 중심은 최대한 낮췄다.

당장 반격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저 일격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막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반의 태세로 자세를 잡았고, 곧 이어질 어마어마한 충격에 대비했다.

‘음?’

그런데 그때였다.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지이이잉~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 모양을 변화시킨 것이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 의외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자율성을 갖췄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가이덴과의 대결에서 나를 수도 없이 괴롭히던 부분이었다.

단, 현 상황과의 결합을 거친다면 이 의외성이란 것이 창출됐다.

지금은 가이덴이 진심 어린 일격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최선이자 최강의 형태로 공격해 들어옴이 당연했다.

그것이 검이나 둔기류의 고정된 형태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고 말이다.

‘굳이 지금?’

그런데 굳이 지금이었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예의 그 채찍 형태로 변화하는 타이밍은.

이는 그의 선언과 부합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하겠다는 그의 선언대로라면 강공의 형태가 옳았다.

채찍 류의 부드러운 형태로 나를 귀찮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압도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도 경험이거니와 나 역시 어둠의 형태 변환이 얼마든지 가능했으니까.

그럼에도 가이덴은 굳이 지금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었다.

얼핏 이해가 어려운 선택이고 행동인 것이다.

화아악!

“……!”

하지만 단 한 순간이면 충분했다.

가이덴은 단 한 순간에 개연성을 확보했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보인 순간적인 방향 전환과 그것이 향하는 새로운 목표 지점.

이것들이 그의 선택과 행동에 그럴 듯한 이유를 부여해 주었다.

스아아아~!

그의 오러 블레이드는 더 이상 내 쪽을 향하지 않았다.

나를 빗겨나 내 왼쪽을 향했다.

새로운 목표 지점이 위치한 곳으로.

‘다이너!’

다이너였다.

한창 제국의 소드마스터와 혈투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는 그가 새로운 목표인 것이다.

채찍 형태로 변환된 오러 블레이드가 눈부신 속도로 다이너를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진심이란 게…….’

이렇게 되면 나는 처음부터 그른 판단을 내린 셈이었다.

가이덴이 말한 진심은 검사 가이덴으로서의 최선이 아니었다.

검사 가이덴이라면 타인의 등을 노리는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대륙 최강 검사로서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였으니까.

정체성의 동요라는 것이 검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누구보다 가이덴이 가장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덴은 그렇게 했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아닌 다이너를 노렸다.

자신보다 몇 수는 아래인 다이너의 등을, 절대자의 칭호와 어울리지 않는 암습의 형태로.

물론, 이것이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검사가 아닌 한 인간, 권력과 명예 따위에 좌우되는 세속적인 존재로서는 충분히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사실 제국과 가이덴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최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제국은 현재 개국 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최대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이대로면 패권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 자체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위기의 중심에 가이덴이 서 있었다.

대륙 최강인 그가 나를 막지 못해 발생한 위기였다.

모든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야 없지만,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에 따라 가이덴은 오늘 한 인간으로서 내 앞에 섰다.

그리하여 인간 가이덴의 전부를 내보였다.

검사로서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서슴없이 이행함으로써.

‘젠장.’

이런 그의 선택이 유발한 효과는 지대했다.

욕지기를 금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가이덴이 이런 짓을 벌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가이덴이었다.

대륙 유일의 그랜드 소드마스터이자 최강의 검사, 가이덴 드라이슬러.

모든 검사의 우상인 그가 검사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린다?

누구라 해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일 터였다.

특히, 벌써 반년 넘게 하루가 멀다 하고 그와 검을 맞대 온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낌새조차 없었다.

적어도 오늘 전까지는 눈곱만큼도.

콰우우우~

나도 최대한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어둠의 형태를 변환하여 오러 블레이드의 뒤를 쫓았다.

다이너에게 경고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했다면 모르되, 가이덴의 암습이 시작된 뒤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더구나 다이너는 현재 제국의 소드마스터를 상대 중이기에 함부로 몸을 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내가 막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중심을 완전히 낮춘 상태에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를 전환하며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를 따라잡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또,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따라잡는다 해도 문제는 여전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콰가가가가각!!

“크읍……!”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인 힘에서 밀리는 조건이었다.

순수 어둠만으로는 완벽한 방어가 어려웠다.

하여 그동안은 최대한 자세를 잡고 버티는 식으로 불리함을 모면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급하게 따라잡느라 오히려 가이덴보다도 자세가 불안정했다.

힘의 차이도 나는 상황에서 그 전달마저 가이덴보다 원활치 못한 것이다.

최악 위에 또다른 최악이 겹친 상황이었다.

지이이이잉!

콰아아아…….

“헛!!”

그제야 다이너도 눈치를 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는 이미 다이너의 지척에 다다른 상태였다.

여기에 미리 약속된 부분인지 다이너를 상대하던 제국 소드마스터는 벌써 몸을 빼고 있었다.

그나마 늦게라도 알아챈 다이너가 검을 들어 올리는 중이기는 했으나, 너무 늦었다.

‘안 돼…….’

이대로면 끔찍한 상황을 면하기 힘들었다.

다이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다.

검밖에 모르던 나를 끝까지 챙겨 준 형이자, 사랑하는 여동생의 배필이며, 평생 내 등을 지켜 준 동지였다.

언제나 나에게 위안을 주는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한데 지금, 그런 다이너가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바로 내 눈앞에서.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 때문에.

‘안 돼, 절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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