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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88화 (189/200)

112장: 마지막 스퍼트

“오늘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공작.”

라이오넬이 작별을 예고해 왔다.

오늘 전투의 마무리를 알리는 신호였다.

한데, 이는 심히 광오한 언사라고 볼 수도 있었다.

감히 대륙 최강자를 앞에 두고 내뱉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자가 먼저 끝을 입에 담기도 전에 말이다.

“…….”

그럼에도 대륙의 최강자 가이덴 드라이슬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행동으로 보여 준 것도 아니었다.

광오한 라이오넬의 시그널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사실상 무언의 긍정과 함께.

정확히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의 침묵을 강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고개만 살짝 돌려봐도 알 수 있었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분명 제국군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구도였다.

한데, 지금은 오히려 슈라우드 군이 제국군을 가둬 놓고 패는 중이었다.

제국군이 슈라우드의 공세를 간신히 막아 내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이마저도 제국군이 요새를 끼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말이다.

입장이 완전히 반대가 된 양국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슈라우드에게 침략을 허용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은 여전히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전투 역시 나로움 요새를 그 전장으로 삼고 있었다.

제국군은 아직도 슈라우드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하나, 문제는 이 구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가이덴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반년이나 갈 수 있을까 싶었다.

제 땅을 찾기 위한 슈라우드의 공세가 그만큼 매서웠고, 제국군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기본 병력이야 여전히 제국군이 크게 앞서고 있었지만, 핵심 전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마스터 급 실력자의 전력 차가 뼈아팠다.

가이덴을 제외하더라도 정령 소드마스터 넷에 그냥 소드마스터 하나, 그리고 6서클 대마법사 한 명을 보유하고 있는 제국군이었다.

슈라우드 군 역시 숫자 자체는 제국군과 같았다.

브란부르크 부자, 하이엘프, 6서클 대마법사 사제, 용병왕, 그리고 라이오넬 라인하트까지, 이렇게 총 7명인 것이다.

단, 숫자는 같더라도 개개인이 지닌 힘의 차이가 문제였다.

특히 하이엘프 아인한드라.

폭풍을 부리는 이 규격 외 실력자가 자꾸만 전장의 균형을 깨고 있었다.

혼자서 무려 정령 소드마스터 둘을 마크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실력자는 물론이거니와 전장 전체를 커버하는 마녀 베로카의 서포트까지 더해졌다.

순수 마스터들만의 대결로는 반반 싸움조차 힘든 여건인 것이다.

심지어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핀 군단은 미친놈들처럼 날뛰며 제국군을 학살했다.

또한, 엘프의 정령력이 가미된 화살은 제국군 중간 간부들을 정확하게 요격했다.

나아가 드워프의 강력한 철포는 마법 없이도 제국군의 방어대형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마지막으로 이 압도적인 강점들에 라이오넬의 광역 디버프까지 더해졌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제국군 내에는 이 셋의 조합을 상대할 만한 전력이 부재했다.

굳이 꼽자면 그랜드 소드마스터인 가이덴이 있겠으나, 그는 라이오넬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본국에서 전력을 더 충원해 오기도 어려웠다.

현재 제국에 남아 있는 마스터 수가 다 해서 10명에 불과했다.

즉, 세 명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머무는 셈인데, 이들을 빼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각각 황제 호위, 동부 마이바크 왕국 전선, 남부 테네시아 왕국 전선 등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기본 병력의 월등한 우세와 농성의 이점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버텨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 또 보죠.”

“하루도 거르지를 않는군.”

“어떻게 거르겠습니까? 강도들이 우리 땅을 제멋대로 점거하고 있는데. 적어도 강도들을 축출할 때까지는 단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 겁니다.”

“…….”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불그름히 내려앉는 저녁노을과 함께 라이오넬이 멀어져 갔다.

온종일 요새만 두들겨 대던 슈라우드 군을 이끌고서.

힘겨웠던 오늘의 전투 역시 어찌어찌 버텨 낸 것이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런 라이오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이덴이 낮게 읊조렸다.

고민과 번뇌, 탄식 따위를 가득 담고 있는 그런 읊조림이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한 가지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제국의 악몽에게로 말이다.

라이오넬과 연관되어 죽은 제국 마스터의 수만 무려 14명이었다.

사실상 왕국 5개분의 전력이 라이오넬 손에 날아간 것이다.

비단 실력자 숫자에서만 그치지도 않았다.

라이오넬은 아예 제국 전체를 뒤집어엎고 있었다.

전쟁을 장기화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세 자체를 역전시켰고, 동맹국들이 제국을 공격하게끔 만들었으며, 동시에 혼자 힘으로 제국 북동부를 처참히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로 인한 병력 손실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고, 제국의 사회·경제적인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슈라우드 왕국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제국 역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털썩.

이런 풀리지 않는 고민과 함께 가이덴이 지휘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몸을 눕히다시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러모로 피곤한 그였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전투부터 답이 보이지 않는 전황, 그리고 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부침까지, 모든 면이 답답했다.

자타공인 제국의 수호자라 불리는 가이덴 입장에서는 더더욱.

“공작 전하, 폐하께서 전하를 찾으십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였다.

지휘부로 들어온 부관이 그에게 마법 통신구를 건네왔다.

아이단 황제의 호출이었다.

“찾으셨습니까, 폐하?”

-그렇소, 공작. 오늘 전투는 어땠습니까? 진전은?

“……송구합니다, 폐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결국, 오늘도 손해만 입었다는 얘기군.

황제라고 현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가장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을 인물 중 하나였다.

어쩌면 전장에 있는 가이덴보다도 한층 더.

그 누구보다 가장 큰 처지의 변화를 겪은 이가 바로 황제였기 때문이다.

현재 황제는 황궁에 있지 않았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안일하게 황궁에 있다가는 어떤 꼴을 겪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당장 라이오넬이 반나절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비상사태가 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하여, 슈라우드의 국왕과 레나 왕녀처럼 비밀 안가로 몸을 숨긴 황제였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처지가 아닐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권좌만큼은 비우지 않던 로만 제국이었다.

항상 위압적이면서도 고고한 자세로 대륙을 경영해 오던 제국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제국의 주인이 고고함이고 권좌고 죄다 내버린 채 음지로 숨어들었다.

숨기 싫어도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고작 코딱지만 한 왕국 하나, 그 왕국의 일개 검사 하나 때문에 말이다.

이보다 더한 굴욕이 존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비단 추상적인 자존심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이는 실리의 문제이기도 했다.

제국의 패권이 요동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덤벼드는 슈라우드, 마이바크, 테네시아만이 아니었다.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여타 왕국들의 눈초리 역시 심상치 않았다.

이제는 짙어지다 못해 겉으로 분출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대륙 각지에서 올라오는 정보가 영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가 됐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 전쟁, 공작은 어떻게 보시오?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작이 대답 못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여기는 모양이구려.

“…….”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라 한들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전부 되게 해 왔으나, 적어도 라이오넬에게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합시다.

그래서였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철군하시오, 전군.

에펜시아 대륙에 본격적인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은.

* * *

성벽 위에서 나로움 요새 내부를 빙 둘러보았다.

그럼으로써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요새 내에는 어떠한 조짐이나 낌새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꼼꼼히 확인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실히 물러났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막 올라온 정보에 따르면 제국군이 국경에 다다랐다고 하네요. 이걸로 철군 움직임 자체는 분명해졌어요.

이를 전하자, 통신구 너머에서 역시 확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군의 움직임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레나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제국군은 철군하고 있었다.

단순히 간만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경을 넘어 자신들의 나라로 말이다.

즉, 제국군의 슈라우드 침략이 일단락된 것이다.

제국의 패퇴이자 슈라우드의 승리로.

“이대로 끝일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죠. 황제가 어떤 인간인지는 라이도 잘 알잖아요. 탐욕으로 가득 찬 그 작자가 여기서 끝낼 리 만무해요. 제국의 입지까지 걸려 있는 이상 절대로.

다만, 이것이 진정한 끝일 리는 없었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제국이 그들의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 개인의 야욕뿐 아니라 제국 입장에서도 절대 할 리 없는 선택인 것이다.

-제국의 동맹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어요.

“그들이요? 제 습격 가능성을 그들이 배제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배제 못 하죠. 대신 그들도 저나 황제 같은 방법을 쓰려는 모양이에요. 공식 석상에서 아예 모습을 감춰 버리는 거. 이와 관련된 정보원들의 보고가 하나둘 올라오고 있어요.

“아무리 동맹이라지만 그런 무리한 요구를 잘도 들어주는군요.”

-말만 동맹이지 사실상 속국에 가까우니까요. 특히 현 국왕들이 전부 정통성 면에서 황제에게 약점을 잡힌 상태에요. 무리한 요구라 하더라도 최소 한 번은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나로 인해 주춤했던 제국의 동맹국들이었다.

이들은 바이젠 국왕 납치 사건 이후 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들 역시 언제 같은 꼴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만 끌 수는 없게 된 모양이었다.

아마도 벼랑 끝에 몰린 황제의 압박이 강하게 들어갔을 터.

국왕들이 모습을 감추는 무리수까지 강행하며 다시금 출정에 나서려 하고 있었다.

“제국도 더는 체면 차릴 여유 같은 건 없나 봅니다.”

-라이에게 입은 피해가 얼마인데, 그럴 수밖에요. 이제는 저들도 철저히 실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아마 동맹국들과 병력을 규합해서 연합군의 형태로 밀고 들어오겠죠.

“버티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게 아니라 안 돼요. 전투야 라이의 힘으로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전쟁은 질 게 뻔해요. 재정이 거의 한계치에 다다랐고, 바닥까지 쥐어짠다 해도 앞으로 최대 반년에 불과하니까.

바이젠은 빠졌다지만 여전히 무려 네 개 왕국이었다.

이들을 감당하려면 장기전이 필수인데, 현재 왕국 재정 상태로는 어림도 없었다.

여기서 제국과 휴전이나 강화를 할 게 아니라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만 했다.

“그럼?”

-그래요, 라이. 우리 쳐들어가요. 황제, 그 작자 잡으러.

그렇기에 결단을 내리는 레나였다.

슈라우드 역시 국경을 넘기로.

다른 곳도 아닌 제국의 국경을 말이다.

황제를 잡아 이 모든 상황을 종결짓기 위해서.

“명 받듭니다.”

나로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령이었다.

따라서 일말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모든 행보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번째 삶을 오롯이 바친 목표이자 내 사람들을 위협하는 원흉, 황제 아이단.

마침내 그의 목을 향한 마지막 스퍼트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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