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85화 (186/200)

110장: 칠흑 같은 암운(2)

어설픈 비유 같은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였다.

정말 칠흑 같은 암운이 트라인 요새 상공에 드리웠다.

“……?”

모두의 시선이 이 암운으로 향했다.

슈라우드 군과 제국군 가릴 것 없었으며, 병사부터 기사, 그리고 마스터 급 실력자까지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전장의 지배자인 가이덴의 고개 역시 이쪽을 향해 돌아갔다.

갑작스레 등장한 칠흑의 암운을 향해.

사아아아아~

“아아…….”

“드디어!”

그리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감격과 기쁨, 환희 등으로 어우러진 그런 탄성이었다.

또한, 모두 라이오넬의 사람들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기도 했다.

“으으…….”

“젠장!”

반대로 제국군의 입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공포가 심어 준 깊고도 진한 트라우마 말이다.

스아아~!

칠흑과도 같은 암운을 뚫고 나타난 한 사람.

이 한 사람 때문이었다.

탄성과 탄식 모두 오직 이 사람으로부터 도출됐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슈라우드의 등불이자 제국의 악몽,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간 모습을 감췄던 그가 등장했다.

칠흑 같은 암운의 한복판에서.

“카오오오~!”

슈아아~

타닷!

그리핀과 함께 등장한 그가 이내 바닥에 내려섰다.

착지점은 당연히 가이덴의 바로 앞.

성 밖이라 하나 상관없었다.

절대자와 절대를 노리는 자의 영역이었다.

이 영역 안에 감히 발 들일 생각을 지닌 미친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라이잔 영지에서의 그때처럼 사실상 둘만의 장이 형성됐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요, 드라이슬러 공작?”

“오랜만이라……. 자네 상태로 보면 오랜만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군. 훨씬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니면 아예 나타나지를 못하든가. 벌써 이렇게 내 앞에 나설 정도면 다 회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지?”

“적어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은 될 겁니다.”

가이덴의 물음에 라이오넬이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고는 실질적인 대응을 이어 나갔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것은 이미 결집돼 하나의 거대한 기둥으로 화해 있는 상태였다.

이에 맞설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콰아아아아~

그 무기란 당연히 어둠이었다.

다만, 이 어둠의 무기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차이를 보였다.

원래는 공명이 우선이었다.

아군과의 공명을 통해 증폭시킨 어둠을 밖으로 불러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데, 이번에는 이 과정이 생략됐다.

공명 없이 곧바로 어둠을 집결시키는 라이오넬이었다.

이에 따라 요새 상공을 가득 채웠던 칠흑 같은 암운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라이오넬의 손에서 그 무한한 탐욕을 뽐내고 있는 심연의 검신으로.

콰우우우!!

그리하여 어둠의 검 한 자루가 탄생했다.

가이덴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의 거검이었다.

라이오넬은 이것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 겨누었다.

“뭔가 달라지긴 달라졌군.”

“말하지 않았습니까? 최소한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은 될 거라고.”

“결과까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이걸로 당신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장담 못 하겠습니다. 당신은 분명 지나치리만치 강하니까. 대신.”

“대신?”

“오늘부로 슈라우드는 로만을 넘어설 겁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라이오넬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똑바로 한 방향을 향하는 중이었다.

가이덴, 그리고 그 뒤에 늘어서 있는 제국군에게로.

“말장난하자는 건가? 어차피 자네가 날 넘지 못하는 이상, 슈라우드는 질 수밖에 없어.”

“아니,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그리핀 군단!”

라이오넬이 외쳤다.

단, 이번에는 그 방향이 앞선 미소와 정반대였다.

그의 등 뒤, 성벽 위에 서 있는 그의 군단을 향하고 있었다.

“오우!”

이에 대한 화답은 즉각적이었다.

단 한 치의 지연도, 오차도 없었다.

“이 시간부로 수성을 접고 야전에 돌입한다.”

“오우! 오우!”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라이오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이행에 돌입하는 그들이었다.

“밀어붙여!”

이때부터 전장에는 비정상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공성탑이나 공성용 사다리는 말 그대로 공성을 위한 것.

성벽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 사용됨이 당연했다.

그것이 원래 이 물품들의 제작 목적이었으니까.

두두두두.

“어어?”

“뭐, 뭐야? 이런 미친……!”

한데, 이 목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공성탑이나 사다리 등 요새 성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것들이 되려 반대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타고 내려가는 용도 말이다.

그리핀 군단이 일제히 그것들을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직 그들의 주인을 향해서.

“아인한드라, 타로쉬핸드. 부탁한다.”

비단 그리핀 군단만이 아니었다.

엘프와 드워프 역시 곧바로 반응했다.

슈슈슉!

철컥! 콰광!

이들 또한 그리핀 군단처럼 치고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엘프의 화살이 대기를 찢고, 드워프의 철포가 전장을 울렸다.

그리고 제국군은 이를 막지 못했다.

막기는커녕 강력한 흐름에 밀려 아래로 도미노처럼 굴러떨어질 뿐이었다.

“정말 해보겠다는 거군.”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할 거였다면 당신 앞에 다시 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라이오넬은 반격을 노리고 있었다.

단, 여기에 무슨 기상천외한 수가 동반되지는 않았다.

그저 힘 대 힘의 정면충돌.

방금 그가 내린 명령과 지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만 놓고 보면 분명 그러했다.

“설마 내가 지난번에 밑바닥을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단, 이를 위해서는 가이덴을 완벽하게 묶어 둘 수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정면충돌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가이덴의 영향력이 라이오넬이라는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반격은 무력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우, 슈라우드 입장에서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수성의 이점마저 스스로 내버린 꼴이 된다.

즉, 정면충돌은 오히려 최악의 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있다?”

가이덴의 되물음은 이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 그에 수반되는 절대자로서의 압도적인 자신감 역시도.

“얼마든지.”

콰우우우우!!

그럼에도 라이오넬은 멈추지 않았다.

머뭇거림 없이 앞을 향해 전진할 뿐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그의 사람들과 함께, 칠흑의 암운을 한 손에 그러쥔 채로.

* * *

가이덴에게 일격을 당한 후, 나는 곧장 카르가디아 산맥으로 향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했다.

정신을 거의 놓다시피 한 상태로 그저 본능에 따랐을 뿐이니까.

더욱이 방향을 잡은 직후에는 아예 의식을 잃었고 말이다.

그렇게 카오에 실려 카르가디아 산맥에 도착한 이후는 한층 더했다.

그 시점부터는 이성의 영역 자체가 완전히 배제됐다.

그저 내 안의 무언가가 시키는 바를 무작정 이행할 뿐이었다.

이 무언가의 정체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어둠.

검사로서의 나와 함께 내 본질을 양분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아가 내 또 다른 본질인 이 녀석이 시키는 바 역시 간단했다.

먹어치워라.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없었다.

사실 그런 것 자체가 필요치도 않았다.

어둠이 원하는 것은 그저 먹어치우는 것뿐이었으니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그래서였다.

카르가디아 산맥이 개미지옥으로 뒤바뀐 것은.

몬스터라는 개미를 끝도 없이 집어삼키는 거대한 개미지옥 말이다.

의식을 잃은 사이, 본질이 시키는 바에 따라 몬스터가 품고 있는 어둠의 정수를 미친 듯이 집어삼켰다.

종이나 격에 따른 구별도 없었다.

오우거든 고블린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울 뿐이었다.

몬스터들의 저항?

테페슈의 증언에 따르면 그런 것은 존재가 불가했다.

뱀파이어 퀸조차 넋을 놓게 만드는 절대적인 어둠이었다.

기껏해야 찌꺼기에 불과한 것들이 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벌벌 떨며 천운과도 같은 자비를 구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물론, 탐욕으로 가득 찬 어둠은 터럭만큼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지만.

어둠은 오로지 탐하고 또 탐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카르가디아 산맥 전체를 텅 비워 버리고 말았다.

주인이나 다름없던 몬스터들의 씨를 말린 것이다.

따라서 카르가디아 산맥은 더 이상 몬스터의 천국이라 불릴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혹 개척이라도 시작된다면 영원히.

쿠구구구!!

그럼에도 어둠의 지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맥의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집어삼킨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그 장소와 대상,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아으윽……!”

“무,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어!!”

카르가디아 산맥에서 트라인 요새로, 무식한 몬스터는 빌어먹을 제국 놈들로, 정수째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 찍어 눌러 버리는 형태로 말이다.

심지어 이 지옥은 나를 중심으로 전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 전체를 커버한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스각! 서걱! 슈슈슉! 콰광!

“케겍!”

“아, 안 돼!”

“살려…… 컥!”

“크아악!”

…….

이어지는 상황은 당연히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인 전투력에서 월등한 그리핀 군단이었다.

여기에 기사단보다 강력하다고 평가되는 엘프와 드워프 일족도 함께였다.

대륙에 현존하는 최강의 돌격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이런 최강 돌격대의 상대는 광역 디버프까지 맞고 있었다.

전투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차라리 전투가 아닌 학살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사아아아아~

정령력의 진일보 덕분이었다.

카르가디아 산맥에서의 포식을 통해 벽을 넘어선 것이다.

우선 기존의 특성들이 발전했다.

현재 증명되고 있는 바와 같이 중력과 인력의 강도 및 범위가 비약적으로 증폭됐다.

나아가 감정 컨트롤 능력 역시 전과 비교가 민망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마디로 어둠이 지닌 능력의 모든 면이 심화된 것이다.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지?”

“특별히 뭘 의도해서 한 건 없습니다. 그냥 치료만 했을 뿐이죠.”

쿠과과과과!!!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인데, 정령력에도 그런 게 존재했던 것인가?”

“형태는 달라도 정령력 역시 결국 힘의 한 종류니까요.”

두 번째는 어둠 그 자체의 진화였다.

원래 내 어둠은 형태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불이나 물 등 여타 원소들처럼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중력이나 인력 혹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이베리아 평원 이후 유형화를 쓸 수 있기는 했으나, 이는 감정의 공명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보는 편이 옳았다.

자원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반쪽짜리였던 셈이다.

콰르릉! 쿠과광!!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내 어둠은 더 이상 반쪽짜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더는 감정의 공명 같은 전제 조건도, 정신력 소모 따위의 제한도 고려할 필요 없었다.

오러 블레이드처럼 원하면 언제든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됐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어둠은 이제 그 자체로서 온전히 존재하게 된 것이다.

“……확실히 달라졌군. 빈말은 아니었어.”

나와 가이덴의 대결 양상이 그 방증이었다.

어둠의 오롯한 존재와 함께 양상 역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