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장: 절대자(4)
유형화된 어둠이 여정 위로 우뚝 솟아올랐다.
아예 하늘마저 뚫어 버릴 듯한 기세는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외양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게 마지막 무기겠지?”
“…….”
“아쉽군. 자네 정도 되는 상대는 정말 만나기 어려운데 말이야.”
그럼에도 가이덴은 여유만만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 그였다.
동시에 아쉽다는 기색 역시도.
자신이 넘치는 것이다.
내 마지막 무기를 깨부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 또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이.
“…….”
나는 이런 가이덴의 여유를 부정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형화된 어둠의 기세가 아무리 좋다 한들 결국 역부족이라는 것을.
절대적인 파괴력 면에서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카오오오~!”
“음?”
하여 여기서 가이덴을 이길 생각도 없었다.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수라는 것은 결국 인정이었다.
패배의 인정, 그리고 후퇴.
이 상황에 더 버티려 하는 것은 멍청하고 쓸데없는 아집에 불과했다.
나와 내 사람들이 쌓아 온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짓거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물러나야만 했다.
그것이 레나를 비롯한 내 사람들과의 약속이었다.
“설마 자네……?”
가이덴이 대응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됐다.
아무리 카오라 해도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는 피하기 어려웠다.
녀석이 당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난감해질 수밖에 없고 말이다.
따라서 그가 하강 중인 카오에게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콰우우우우~!
고민하거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응집된 어둠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카오의 등장 의미를 알아챈 가이덴에게로.
“어딜!”
쿠과과과과과과!!!
그렇게 나의 어둠과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정면충돌했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충격파를 불러일으켰다.
라이잔 영지 전체가 휘말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위력의 충격파를.
“주, 주인님…….”
인간 기사 기준으로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인 테페슈였다.
그런 그가 충격파의 위력에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카오오오!!”
오죽하면 최상급에서 마스터 사이인 카오마저 휘청일 지경이었다.
녀석이 죽을 힘을 다해 하강 중이었지만, 균형을 잡기까지 약간의 시간은 필요할 듯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이다.
“크으읍……!!”
그러나 현 상황에서 가장 쉽지 않은 쪽은 따로 있었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자칫 삐끗하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존재 자체가 지워질 판국이었다.
바로 나, 이 막대한 충격파의 두 근원지 중 하나 말이다.
여태껏 가이덴과 충돌을 이어 오기는 했다.
다만, 이것을 힘 대 힘의 정면충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일방적인 수세를 취하며 최대한 물러나고 가능한 한 흘려보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게 했음에도 급속도로 도지는 내상을 막지 못한 참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물러나거나 흘려보낼 수조차 없었다.
그랬다가는 가이덴의 공격이 카오에게로 향할 터.
무조건 다리를 박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즉, 가이덴과 힘 대 힘의 정면충돌을 이어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좋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가이덴의 검격이 아니라 내상으로 먼저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만큼 가해지는 부담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일단 어떻게든 버텨 내는 방법뿐이었다.
“이게 대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둠이 지닌 의외성이었다.
가이덴이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힘 때문일 리는 없었다.
어둠이 꾸역꾸역 버텨 내고 있기는 하되, 순수한 파괴력은 여전히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압도 중이었으니까.
대신 다른 것이 그랜드 소드마스터로 하여금 당혹성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둠의 탐욕성.
제 주인의 정신조차 갉아먹는 것이 어둠이라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정면으로 맞붙은 상대를 가만히 놔둘 리 만무했다.
가이덴의 정신을 미친 듯 파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가이덴 정도 되는 이가 여기에 잡아먹힐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라 해도 이런 종류의 공격은 처음일 터.
당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대치 국면이 쉬이 끝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쿠과과과과과!!
그렇게 어둠과 오러 블레이드의 다소 기울어진 공방전이 계속됐다.
다행히 아직까지 균형의 붕괴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가이덴도 알고 있었다.
이 구도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선 어둠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까스로 유지되던 반반 구도는 이미 깨진 상황이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어둠의 영역을 게걸스레 집어삼키고 있었다.
앞으로 기껏해야 20초 정도?
그 이상은 버티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를지도 몰랐고 말이다.
“카오오!”
하나, 구도 붕괴의 예측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다기보다는 방금 막 생긴 참이었다.
카오가 도착한 것이다.
덥석.
끝끝내 균형을 잃지 않은 녀석이 가까스로 내 뒤에 도달했다.
그러고는 제 앞발로 내 몸통을 움켜쥐었다.
내가 버티는 사이 나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함이었다.
스스스스.
이에 맞춰 테페슈 또한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노스페라투는 전부 어둠으로 환원된 상태임을 고려하면, 이걸로 준비 자체는 모두 마친 셈이었다.
남은 것은 실제 이행뿐이었다.
탈출 계획의 이행.
“가게 놔둘까 보냐!”
승부처는 여기서부터였다.
가이덴이 허수아비도 아닐진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의 강도가 한층 더 짙어졌다.
“크으읍!!”
나 또한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다.
죽자사자 버티는 것.
나머지는 카오를 믿고 녀석의 비행 실력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콰르르르르!!
하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두 다리를 땅에 굳건히 받치고 있는 상태에서도 버거워하던 가이덴의 힘이었다.
그런 힘을 카오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받아 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어둠을 삼키는 오러 블레이드의 잠식 속도가 대폭 향상됐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다다랐다.
오늘 승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것이다.
“죽어라, 라이오넬 라인하트!”
콰르르르르릉!!!
그렇게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세기의 대결이 마무리되었다.
라이잔 영지에 내려앉았던 어둠의 완전한 소멸과 함께.
* * *
“확실히 공작의 검에 맞았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폐하. 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느낌이 확실했습니다.”
가이덴이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이단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수행한 비밀임무에 관한 것이었다.
“놈이 죽을 가능성은?”
“실력이나 특이한 이력을 감안하더라도 80% 이상입니다. 설령 죽지 않는다 해도 십중팔구는 폐인이 될 수밖에 없고 말이지요.”
라이오넬을 처리하는 것.
가이덴은 방금 막 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최소한 금방 복귀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운명의 신이 농간을 부린다면 혹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적어도 1년 이상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겁니다.”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 놓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핀을 놓치는 바람에 라이오넬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이덴은 확신하고 있었다.
라이오넬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마지막 순간,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가 어둠을 완전히 잠식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아직 그리핀이 가이덴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시점이었다.
즉, 라이오넬의 탈출 시도는 사실상 실패한 셈인 것이다.
가이덴이 날갯짓하는 그리핀을 향해 재차 오러 블레이드를 내지르는 순간까지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한데, 그 지점에서 최후의 발악이 고개를 들었다.
무력화됐다 여겼던 라이오넬이 다시 검을 든 것이다.
그러고는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
물론, 말 그대로 받아 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의 검 위에는 더 이상 한 치의 어둠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 위에 씌워진 것이라고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옅은 오러뿐.
방어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가이덴의 오러 블레이드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리하여 라이오넬의 검을 두 동강 냄과 동시에 그의 가슴팍을 정통으로 그어 버렸다.
그사이 그리핀은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했고, 가까스로 가이덴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 이미 늦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라이오넬의 회생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것이 당연한 상식이며, 당사자인 가이덴의 확신이기도 했다.
“공작이 그렇다면야 그런 것이겠지.”
황제 또한 가이덴의 확신을 믿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륙 최강자의 보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곧장 다음 계획을 진행하는 그였다.
“그럼 다음 일도 부탁하겠소, 공작.”
“으음, 제가 꼭 가야만 하겠습니까? 폐하의 곁을 너무 오래 비우는 것은 좋지 않을진대…….”
“그래야 하오. 라이오넬 처리 직후인 지금이야말로 슈라우드를 단숨에 무너뜨릴 최고의 기회니까.”
그 계획이란 지극히 간단했다.
가이덴을 슈라우드로 보내는 것.
이게 전부였다.
하나,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었다.
가이덴이 슈라우드의 전선에 등장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게임은 끝이었다.
특히 라이오넬의 무력화 직후인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 하이엘프 노예 놈도 그렇고, 슈라우드에는 여전히 규격 외의 강자들이 버티는 중이오. 마이바크와 테네시아를 생각하면 일단 슈라우드부터 빠르게 정리해야 하는데, 지금 전력만으로는 이긴다 해도 시간이 오래 끌릴 수밖에 없소. 공작이 가야만 합니다.”
“폐하의 말씀이 백번 옳기는 합니다만…….”
“공작이 내 안위를 걱정한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그냥 내 말을 따라 주시오. 어차피 유일한 위협인 라이오넬도 없는 데다, 공작을 대신해 전선에서 마스터 한 명을 불러오면 되는 일이니.”
지금 로만은 기로에 선 상황이었다.
로만이 대륙 유일의 패권국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지가 결정되는 중대 기로 말이다.
여기서 자칫 시간을 잘못 끌었다가는 판도가 이상해질지도 몰랐다.
제국에 직접 반기를 든 세 왕국뿐 아니라 여타 왕국들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대한 빠른 상황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를 위해 황제는 가이덴을 무조건 전선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슈라우드행이 결정되었다.
하필이면 라이오넬이 없는 이 타이밍에, 라이오넬이라는 폭풍을 손수 잠재운 절대자가 직접.
그렇게 에펜시아 대륙의 정세는 다시 한번 뒤집히기 시작했다.
제국을 전복하는 방향에서, 제국이 정복하는 방향으로.
* * *
대륙의 정세가 뒤집히기 시작한 그 시각, 에펜시아 대륙 북부의 한 울창한 산맥 속.
덜덜덜덜.
이 산맥의 주인으로 행세해 오던 몬스터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사아아아아아!!
산맥을 감싸 안기 시작한 거대한 어둠의 존재에.
그것이 내뿜는 탐욕과 음습함, 그리고 압도적인 포악함에 짓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