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장: 절대자(2)
가이덴 드라이슬러 공작.
제국의 수호자이자 대륙 제일 검.
대륙의 최강자라 일컬어지는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내 앞에 다가와 섰다.
그러고는 인사를 건네왔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는 태연한 목소리로.
“폐하의 즉위식 때 보고 처음이지 아마?”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난 자네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야. 뭐랄까, 적어도 연에 한 번씩은 꼭 얼굴을 본 사이 같다고 해야 할까?”
대화 내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황과는 맞지 않게 차분했으며, 은근 친밀하기까지 했다.
나를 향하는 가이덴의 눈빛 또한 노골적인 적대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어쩐지 반갑다는 기색마저 느껴지는 중이었다.
“정말 이상하지? 분명 즉위식 이후로 처음인데 말이야. 심지어 그날 본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 왜 그런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한번 해 봤네.”
“답은 나왔습니까?”
“그렇네. 생각보다 쉽게 나오더군.”
“뭡니까, 그 답이?”
“간단해. 내가 자네를 좋아해서야.”
“……?”
“이번에 곰곰이 생각해 보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는데, 내가 자네에게 적잖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 뭔가? 자네 얘기가 들려오면 괜히 한 번 더 찾아보고, 또 그때마다 어떤 활약을 했는지 담당자에게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고.”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가이덴은 실제로 나를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뿐 아니라 나를 향하는 말투와 태도 모두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바였다.
“더구나 자네에 관한 이야기가 좀 많았나? 폐하 곁에 있으며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듣게 되더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더 깊어진 모양이야. 더불어 자네에 대한 기대감도 날이 갈수록 더 커졌고.”
“기대감?”
“어쩌면 자네가 내 앞에 서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것이 항상 나를 설레게 하더군. 자네쯤 되면 이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나?”
이해가 됐다.
절대자로서의 고독감.
그 휑하고도 삭막한 감정이 가이덴으로 하여금 나를 주시하게 만든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와 검을 맞대어 줄 숙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말이다.
“그렇군요. 이해는 됐습니다. 다만, 공감은 되지 않습니다.”
“음?”
“나는 당신과 입장이 다르니까요. 내게는 항상 당신이라는 목표가 존재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거대한 벽으로서.”
“아아, 그런 것인가?”
“그런 겁니다. 대신 이거 하나만큼은 같다고 볼 수 있겠군요. 나 또한 당신을 만나고 싶었다는 거, 언젠가 맞이할 오늘 같은 날을 학수고대해 왔다는 거 말입니다.”
분명 기대의 분야는 달랐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그렇기에 서로가 이 만남을 학수고대해 왔다는 것.
이것이 나와 가이덴의 서로를 향한 감정이었다.
나아가 현재 우리 둘 모두의 입에 걸린 옅은 미소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좀 더 뒤에, 좀 더 그럴듯한 곳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예를 들면, 황궁 같은 곳 말인가?”
끄덕.
“나도 그리 생각하기는 했었네. 내심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 컸고. 하지만 어쩌겠나? 자네는 너무 날뛰었고, 폐하께서는 그런 자네를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하시는 것을.”
다만, 예상했던 기대의 충족일이 오늘은 아니었다.
계획대로라면 나와 가이덴이 지금 만나서는 안 됐다.
내가 가이덴을 철저히 피해 다니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레나와 사네를 비롯한 내 사람들이 짠 플랜은 그러했다.
하여 그들은 황궁과 황제, 그리고 가이덴의 감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혹여라도 가이덴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당신이 황제 곁에 있다고 들었는데, 대역을 쓴 겁니까?”
“그렇네. 완벽한 대역을 찾느라 시일이 좀 걸렸어. 왕녀의 눈이 워낙 매서워야 말이지.”
그러나 역시 제국은 제국이었다.
슈라우드로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놓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일로 레나와 사네를 탓하기는 어려웠다.
더는 슈라우드 혼자 버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동맹국들의 참전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제국의 흔들림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즉, 나의 제국 침투는 어떤 식으로든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단지, 우리의 정보와 감시 능력이 제국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 것일 뿐.
“제국답지 않게 모험수를 뒀군요.”
“어디 모험수뿐이겠나? 폐하께서는 치욕도 감내하기로 하셨어. 지금쯤이면 왕녀처럼 어디 안가로 몸을 숨기셨을 걸세.”
“…….”
“그만큼 자네를 인정하신 게지. 그러게 좀 적당히 하지 그랬나?”
심지어 황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황제는 절대로 몸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제국 로만이 지켜 오던 절대 명제였다.
그 어떤 위협도 제국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의 표출이랄까?
한데, 이번에 아이단이 이 명제를 깨뜨렸다.
가이덴을 보내며 공식 석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로 한 것이다.
이는 제국이 전통과 명예를 뒤로한 채 현실에 수긍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제국에 대한 대륙의 인식이 급전직하할 수밖에 없었다.
단, 그 대가로 제국은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최고이자 최강의 카드를.
“처음부터 적당히 할 수 없게 만든 건 황제였습니다.”
“하긴, 자네나 왕녀는 애초에 폐하의 웅지를 수용할 만한 인사들이 아니었지. 폐하께서도 최근에야 그 사실을 인정하신 것이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예정돼 있던 운명을 조금 더 일찍 받아들이는 수밖에.
“또, 내심 자네도 원하던 바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무엇보다 내 솔직한 심정은 가이덴의 말대로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 개인의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하여 이제는 한 번쯤 붙어 보고 싶었다.
내가 넘어야 할 최후의 벽과.
그 높이가 얼마나 높으며 또 얼마나 단단한지, 나아가 내가 넘을 수 있을지 등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짙어지는 내 미소가 그 답변이었다.
“역시.”
물론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은 없었다.
상대는 무려 그랜드 소드마스터였다.
이런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승리를 자신한다면 그것은 과신이고 오만이었다.
대신 일방적으로 진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검술만으로는 어렵겠으나 어둠의 힘이 가미된다면 해볼 만했다.
이것이 가이덴과의 대결에 대한 내 판단이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군.”
가이덴 역시 흡족한 미소로 화답했다.
서로의 감정과 바람, 그리고 이해관계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럼 서로 원하니 굳이 더 끌 것 없겠지. 그렇지 않나?”
더는 입과 말로서 답을 줄 필요가 없었다.
지금부터 입은 검이고 말은 검격의 교환이었다.
대륙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에는 그것이 옳았다.
스릉.
하여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최후의 벽 앞에 선 이 자리, 내 동반자는 여정이었다.
카밀라에게 맡겨 두고 온 심연을 대신하여 조강지처와 함께하는 것이다.
“좋군. 들어오게.”
파앗!
선공을 양보하는 가이덴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도전자의 입장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짓쳐 듦과 함께 시작되었다.
슈라우드와 로만 제국, 나아가 대륙의 운명까지 가르게 될 거대한 대결이.
지이잉!
지이잉!
최고와 최고를 넘보는 자 간의 대결이었다.
이런 대결이 탐색전이라고 해서 가벼울 리 만무했다.
시작부터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블레이드가 마주했다.
그리고 그대로 충돌했다.
그 어떠한 기교도 배제한 채, 순수한 힘 대 힘으로써.
콰가가가각!!
첫 교환이니만큼 가이덴이 내 수준에 맞춘 것일까?
아니면 나와 그의 격차가 생각만큼 크지 않은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이든 일단 첫 충돌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순수한 힘에서 밀리는 일은 없었다.
사선으로 검격을 교환한 채 가운데서 반반의 대치 국면을 형성한 것이다.
콰광! 콰가각! 카득! 콰과광!
이어지는 충돌도 마찬가지였다.
횡 베기, 종 베기, 사선 베기, 찌르기, 올려치기 등등 검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검
격이 교환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뚜렷한 우세와 열세는 가려지지 않았다.
비록 내가 공세를 취하고 있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이덴의 양보에서 도출된 양상에 불과했다.
실제 충돌의 결과는 정확히 반반을 가리키는 중이었다.
따라서 탐색전 자체는 무난하게 흘러간다고 할 수 있었다.
‘감이 잘 안 잡혀.’
단,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유형이었다.
가이덴의 검법이 속해 있는 유형.
내 라인하트 검법이 중검에 속해 있는 것처럼, 지금껏 상대해 온 수많은 검사들 역시 각자만의 유형을 정립한 상태였다.
그리고 난 항상 그런 상대들의 유형을 감지해 가며 대결을 벌여 왔다.
한데, 가이덴에게서는 그것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정확히 어떤 유형인지 감별이 잘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올라운더 형이기에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올라운더 형인 케인 타리우드는 바로 감별이 가능했던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을 터.
아무래도 검에 대한 깨달음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했다.
“끝자락에 다다른 상태군.”
일단 탐색전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애매한 반반의 결과 속에 심어진 약간의 찝찝함.
이것이 탐색전의 결론이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확실히 굉장해. 내가 그 나이일 때는 지금 자네에 한참 못 미쳤으니 말이야.”
“그 말은 결국 아직은 당신에게 안 된다는 뜻이군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자네도 그걸 모르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테고.”
맞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검에 대한 경지 차이는 인정하고 시작한 대결이었다.
따라서 이 정도는 내 입장에서 오히려 괜찮은 결과라고 봐야 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여기까지는 내 판단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 보지.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파앗!
이번에는 반대였다.
본론의 시작은 가이덴으로부터였다.
그가 먼저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내리그었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무리 없이 받아 낼 수 있었던 바로 그 종 베기를.
쿠웅!
“큽……!”
달라졌다.
무게와 강도, 오러의 밀도 등 모든 측면이 전부 다.
탐색전을 마친 뒤 진심으로 휘둘러져 오는 가이덴의 검은 가히 엄청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파밧.
절대 받아 내지 못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받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대치 구도가 지속된다면 내 손해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이 자명했다.
정면충돌은 가급적 피하는 방향으로 가는 편이 좋았다.
하여 지체 않고 몸을 뒤로 빼냈다.
스아악~
콰릉!
“크읏…….”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물러나는 나를 가이덴이 그냥 놔줄 리 만무했다.
그대로 쫓아와 다시금 검을 내려찍는 그였다.
나는 또다시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고 말이다.
타닷~ 슈악~! 쿠구궁!
파밧~ 슈아악~! 콰르릉!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내가 물러나면 가이덴이 쫓아와 검격을 가하고, 이를 버티지 못하고 재차 몸을 빼내면 또다시 따라붙어 검을 내리치는 상황.
누가 봐도 유불리가 한눈에 구별되는 그런 일방적인 상황이었다.
‘확실히…….’
이 상황의 반복을 겪으며 나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와 가이덴 사이에는 명확한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해볼 만해.’
단, 나라면 가능했다.
이 분명한 차이를 메우는 것이.
그리하여 가이덴이라는 절대자에게 맞서는 것이.
이것이 내가 가이덴의 진심 어린 검격 세례 속에서 도달한 최종 결론이었다.
사아아아~
그렇다면 이제 이 결론을 증명할 차례였다.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나의 본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