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장: 북방의 악몽(4)
슈아악~
서걱!
폴바르 아더스가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검격의 경로에 있던 노스페라투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스스스스~
저항 같은 것은 없었다.
고작 걸어 다니는 시체 따위가 소드마스터의 검 앞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잘려 나간 목과 함께 한 줌의 재로 화할 뿐이었다.
“으음…….”
단, 전체적인 상황은 이와 달랐다.
심히 좋지 못했다.
아니, 좋지 못한 정도를 넘어 끔찍하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안 돼! 저리 가, 이 괴물…… 크아악!!”
“으아아아…….”
“사, 살려…… 켁!”
신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폴바르 아더스 휘하 제국 북부군의 그것으로 말이다.
진영 전체가 커다란 패닉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잠들 무렵의 야심한 시각,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방식마저 기상천외했다.
진영 밖에서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반적인 방식의 습격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진영 안에서 시작됐다.
정확히는 진영 안의 땅속에서부터.
땅속에 묻혀 있던 노스페라투들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며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전례 없는 방식의 습격이었다.
오죽하면 총사령관이자 소드마스터인 폴바르조차 일순 당황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주변의 상황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기사나 병사 할 것 없이 전부 패닉에 빠지는 것이 당연했다.
이러한 패닉의 결과가 지금 폴바르의 눈 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이었고 말이다.
우우웅~
이대로는 안 됐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하여 폴바르는 그의 검에 오러를 실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평범한 기사들도 뽑아낼 수 있는 단순한 오러였다.
슈아악~!
서걱!
그러고는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에게 달려드는 또 다른 노스페라투를 향해서였다.
스스스스~
이변은 없었다.
결과는 당연히 앞서와 같았다.
목을 베인 노스페라투는 그대로 재가 되어 흩날릴 뿐이었다.
다만, 이런 똑같은 결과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역시 약해.”
그것은 바로 약함이었다.
이놈들, 약했다.
단순히 폴바르 본인을 기준점으로 놓고 하는 판단이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애초에 노스페라투 중 약하지 않은 놈 자체가 없었다.
판단 기준은 노스페라투 그 자체였다.
지금 날뛰고 있는 이놈들, 여태까지 마주친 노스페라투 중 가장 약했다.
분명했다.
방금 검격을 통해 확인까지 마친 참이었다.
조금 전 폴바르가 뿜어낸 오러는 극히 소량이었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로서의 깨달음이 깃들어져 있다 하나, 이 정도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만도 못한 위력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고작 그런 검격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 한 채로 허무하게 목을 내주었을 뿐이다.
비단 반응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바 역시 그러했다.
한밤중이라 하나 소드마스터인 폴바르는 식별 가능했다.
이놈들의 신체 곳곳이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개중에는 아예 팔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간 것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당연히 그 움직임 또한 상당히 부자연스러웠고 말이다.
이런 점들로 판단할 때, 이유야 모르겠으나 어쨌든 약해졌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좋아, 아직이야.”
그렇다면 아직은 괜찮았다.
당장은 패닉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 차리고 상황만 똑바로 본다면 얼마든지 수습 가능했다.
지이이잉!
이 점을 모두에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만, 이미 진영 전체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소리만 쳐 봤자 이것이 병사들 귀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우선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했다.
하여 이번에는 제대로 힘을 끌어 올렸다.
소드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였다.
“후읍.”
일대의 노스페라투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면 아무리 패닉 상태라 해도 인근의 병사들만큼은 시선을 줄 수밖에 없을 터.
수습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이를 위해 폴바르가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강하게 발을 구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
“각하! 큰일입니다!!”
하지만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부관인 크레도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 왔기 때문이다.
“진정해라, 크레도스! 지금 상황을 잘 보도록. 저것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야. 정신만 차리면 충분히 수습 가능한 상황이다.”
“여기 있는 것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뭐?”
“본대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저 시체들의 본대가요!”
부관인 크레도스가 목소리에 이어 다급한 손짓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북부군 진영의 동쪽 경계선 바깥이었다.
이에 폴바르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
그리고 눈에 담게 되었다.
떼로 몰려오는 검붉은 루비의 향연을.
동시에 폴바르 본인의 것쯤은 가뿐히 상회하는 한 자루 찬란한 오러의 검 역시도.
* * *
송곳 같은 얼음들이 쇄도해 들어왔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족히 수십 개는 될 법한 무더기 송곳들이었다.
더구나 그냥 쏟아져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검과 검이 부딪친 직후의 빈틈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다.
콰드득!!
본격적인 충돌 직후부터 방금까지 나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던 폴바르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공세를 취한 것이다.
비단 정령력 세례만이 아니었다.
폴바르는 맞물린 검까지 억지로 붙들고 늘어졌다.
내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
일종의 필살기라고 봐야 했다.
뒤가 없는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상황에서 억지로 나를 붙들려다 보니 중심이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나를 상대함에 있어 중심의 불안정이란 곧 죽음을 의미했고 말이다.
따라서 이번 공격이 막힌다면 폴바르는 사실상 끝이나 다름없었다.
샤가가각~!!
물론, 그렇다 해도 필살기는 필살기였다.
그 위력만큼은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얼음송곳 하나하나의 힘은 차치하고라도 당장의 포지션부터가 극히 위태로웠다.
나와 폴바르는 현재 검을 맞댄 채로 대치 중에 있었다.
즉, 엎어지면 서로 코 닿을 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한데, 이런 거리에서 갑작스레 수십의 얼음송곳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이 공격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상대 역시 소드마스터임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쿠구구구!
단, 이 공격을 받는 내가 단순한 소드마스터라는 전제하에서.
폴바르에게는 안타깝게도 정령력은 그만 지닌 것이 아니었다.
나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껏 무수한 기적을 써 내려온 엄청난 녀석으로.
후두두두둑~
어둠이 발산하는 중력.
이것이 쏟아져 들어오는 얼음송곳들을 일거에 찍어 눌렀다.
감히 자신의 주인은 넘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폴바르가 펼친 회심의 일격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산산조각 나 버린 채로.
“……!”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대가를 치르는 것.
필살기란 것이 원래 그랬다.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대신 빗나갔을 시 시전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폴바르는 지금 이 필살기를 실패한 참이었다.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아주 대차게.
까각.
“헛……!.”
대가를 치르게 해 주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인력을 이용한 약간의 비틀기면 충분했다.
안 그래도 중심이 불안정한 상태의 폴바르였다.
당장의 그로서는 이런 간단한 수법조차 대처가 불가했다.
끌면 끌리는 대로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렇게 뒤틀린 중심으로 인해 폴바르는 일순 몸을 휘청이게 되었다.
푸욱!
“커헉!!”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정말 순간적인 휘청임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소드마스터 간의 대결이었다.
당연하게도 내 검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가차 없이 폴바르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그리하여 그의 심장을 반으로 갈라 놓았다.
회생의 여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남지 못하도록.
“끄륵……. 라, 라이오넬, 쿨럭, 라인하트…….”
“역시 알아보는군요. 반가면은 효력이 다한 모양입니다.”
“네놈……, 폐하께서 네놈을, 끄르륵…… 절대 용서치 않으실 거다…….”
“그건 피차일반입니다. 저도 그자를 용서할 수 없는 입장인지라.”
“네놈을 기필코…… 쿨럭, 쿨럭, 찢어 죽여…… 주실…… 것…….”
이윽고 폴바르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제국 북부군 사령관이자 소드마스터인 그가 숨을 거둔 것이다.
“먼저 가서 기다리세요, 아더스 후작. 당신의 황제도 곧 뒤따라 보내 드릴 테니.”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제국 북부의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것.
비록 아직 남아 있는 병력 자체는 많다 하나, 딱히 의미는 없었다.
오늘부로 북부군은 궤멸의 길을 걷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각하! 안 돼!!”
촤르륵!
“컥!!”
그 스타트는 테페슈가 끊었다.
절규하는 폴바르의 부관을 가볍게 처리한 그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지시하신 대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주인님. 곧 탈영하는 인간들이 속출할 겁니다.”
“그래. 그리고 사령관이 전사했다는 사실도 퍼뜨려. 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테니까.”
“예, 주인님. 그리고 땅속에 묻어 뒀던 것들은 더 이상 안 될 것 같습니다.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렇겠지. 나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까.”
이번 전투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기습에 있었다.
아무리 노스페라투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시체라 한들 상대는 제국 정규군이었기 때문이다.
정면 대결로는 절대 승산이 없었다.
더구나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은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도 못했고 말이다.
아무리 내가 메운다고 하지만, 이 한계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더욱.
그래서 함정을 팠다.
한 달여 전, 이곳 그란디아 지역에 미리 절반가량의 노스페라투를 묻어 둔 것이다.
애초에 짙은 어둠 속에서만 움직여 온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제국 측은 노스페라투의 정확한 숫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숫자가 갑자기 대폭 줄었다는 사실 역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노림수가 제대로 통했다.
제국군은 아무런 의심 없이 노스페라투를 묻어 둔 함정 위에 야영지를 폈다.
그리고 결국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 쪽에도 손해가 없지는 않았다.
무려 절반의 노스페라투를 더는 쓰지 못하게 됐다.
내 어둠의 영역 밖에 너무 오래 방치되다 보니 몸뚱이가 죄다 썩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 이는 제국 북부군을 완전히 궤멸시킨 대가라는 점이 중요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손해인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주인님? 극지대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 전력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제국을 최대한 휘저어 놓는다. 지금까지 했던 방식 그대로 하면 돼.”
당연히 여기서 그칠 생각은 없었다.
가능한 한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제국을 괴롭힐 생각이었다.
제국과 황제가 완전히 학을 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알겠습니다, 주인님. 다만, 숫자가 줄어 전처럼 속도는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상관없어. 그냥 되는 대로 천천히 하면 되니까.”
“그러면 로만의 인간들이 군대를 모아서 또다시 따라붙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해도 상대는 제국이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와중이라지만, 여유 전력은 여전히 갖추고 있었다.
시일은 좀 걸릴지언정 동부나 남부의 병력을 끌고 오면 되는 것이다.
“원래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쉽지 않을 거야.”
“……?”
“이쪽에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을 거거든.”
단, 그 전력이 움직일 수 있을 때의 얘기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