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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77화 (178/200)

107장: 북방의 악몽(3)

로만 제국 북부의 그란디아 지역.

넓은 평원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에는 현재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어둠에는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도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의 발로일 뿐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밤이 찾아온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말이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창으로 고정시킨다! 찔러!”

푸슉! 푸슉! 콰득! 콰각!

“버텨! 기사님이 목을 베어 낼 때까지 무조건 버틴다!”

“끄으으으!”

“크아아아!!”

슈아악~

서걱!

다만, 이 짙은 어둠의 내부는 사정이 달랐다.

지극히 인위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창을 내지른 뒤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병사들, 이로 인해 운신에 제약이 생긴 몬스터, 그리고 그런 몬스터를 향해 휘둘러지는 기사의 검까지.

무엇 하나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아가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툭.

휘둘러진 기사의 검은 정확히 목을 베었다.

이로 인해 몬스터의 머리와 몸통이 단번에 분리됐으며, 분리된 머리통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보여야 할 것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몬스터의 머리통이었다.

자연스러운 이치대로라면 그것이 옳았다.

퍼석.

스스스스~

하지만 실제 도출된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굴러다니는 머리통이 아니었다.

떨어짐과 동시에 산산이 바스러지며 한 줌의 재가 되어 가는 머리통이었다.

더구나 이 현상은 비단 머리통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본체인 몸통 또한 그러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그 순간부터 천천히 재가 되어 흩날리는 중이었다.

기사도 이런 기사가 또 없는 것이다.

“다음 놈으로 간다.”

“예, 크루 경! 다들 가자!”

한데, 이를 본 제국군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기사고 병사고 할 것 없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심지어 크루라는 이름의 기사와 예하 병사들만의 반응도 아니었다.

폴바르 아더스 후작 휘하의 제국 북부군 전체가 대동소이했다.

모두가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몬스터를 쓸어 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전투를 여러 번 치르다 보니 다들 나름 손에 익은 모양입니다. 오늘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합니다, 각하.”

“흠.”

지난 전투들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겪어 온 바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것들은 그냥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북방 극지대에서만 발견된다는 뱀파이어의 노예이자 걸어 다니는 시체, 노스페라투라는 사실 역시도.

저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방식이 됐든 중요한 것은 저 시체들이 현재 여기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아가 제국 북부를 완전히 초토화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아더스 후작령으로 몰려든 난민의 수만 족히 수십만에 달하는 상태였다.

폴바르 아더스 후작이 출정하던 그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늘어났으니 지금은 더더욱 폭증했을 터.

한시라도 빨리 저 걸어 다니는 시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면 이 혼란이 정말 제국 전체를 집어삼킬지도 몰랐다.

쿵쿵쿵쿵~

“각하, 역시나입니다. 놈들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제국 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려가던 노스페라투들이 갑자기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제국군이 자리 잡고 있는 곳과 반대쪽으로 말이다.

즉, 상황이 불리해지자 곧바로 줄행랑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추격은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래, 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부터는 저것들의 시간이다. 굳이 그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쫓을 필요는 없어. 지금은 밤이 늦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야영 준비부터 마치도록.”

“예, 각하.”

그럼에도 총사령관인 폴바르 아더스는 추격을 명하지 않았다.

노스페라투들은 그냥 도망가도록 놔둔 채 야영을 지시하는 그였다.

지금은 늦은 밤에 접어드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시체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랄까?

이 시간대는 사실상 저들의 홈그라운드라고 봐도 무방했다.

굳이 자발적으로 불리함을 끌어안고 싸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었다.

폴바르의 북부군은 노스페라투들을 무작정 쳐 죽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의 사냥보다는 오히려 몰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놈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확실하게 몰살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이 목표를 90% 이상 달성한 상태였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넉넉잡아 3일 정도면 놈들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을 터였다.

“그보다 크레나인 후작은?”

“현재 하루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내일 중으로 합류할 예정입니다.”

“좋군.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어.”

더욱이 지금은 군의 최고 전력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폴바르 아더스 본인 말이다.

그가 직접 전면에 나섰다면 전투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걸어 다니는 시체 따위가 감히 정령 소드마스터의 힘에 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거의 시작과 동시에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폴바르는 나서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서고 싶어도 나설 수가 없었다.

잘못 나섰다가는 곧바로 표적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사달에는 검은 악마,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개입돼 있을 확률이 높았다.

황실에서는 거의 100%라고 보고 있었다.

노스페라투 무리 사이에서 반가면을 쓴 채 날뛰는 인간 하나가 그 근거였다.

하필 이 타이밍에 나타나서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흉적이라면 역시 그놈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자칫 폴바르가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놈은 곧바로 습격을 가해 올 터.

폴바르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버티기라도 하려면 마스터 급 실력자가 최소한 한 명은 더 있어야 했다.

하여, 동부 국경의 사령관인 크레나인 후작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마침내 그가 도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일부터는 폴바르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럼 야영 준비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 사실을 병사들에게도 전파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분명 모두 좋아라 할 겁니다.”

“그렇겠지. 내일부터야. 내일부터는 양상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테니, 다들 준비하라고 해.”

* * *

“라이오넬 그 새끼는 악마한테 영혼을 판 게 확실하다니까?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시체들을 조종할 수 있겠어?”

노트라는 아더스 후작령 출신의 고참 병사였다.

그는 벌써 10년 넘게 아더스 후작령의 영지병으로 복무하며 제국 북부를 수호하는 일에 이바지해 왔다.

적어도 노트라 본인은 그렇게 자평하는 편이었다.

“하긴, 그렇겠지?”

“하, 이 답답한 친구야, 그렇겠지가 아니라 그런 거라니까 그러네. 이 간단한 걸 왜 아직도 혼자만 몰라?”

“아니, 내가 모른다고 한 적은…….”

“그게 그 말이지 아니면 뭔데? 이렇게 증거들이 넘쳐 흐르는데 아직도 확신을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돼?”

다만, 주변의 평가까지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다.

주변의 동료들은 그를 조금 다르게 인식했다.

북부 수호에 이바지한 것은 그의 창이나 칼이 아닌 입이라고.

그만큼 말 많고 목소리가 큰 노트라였다.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인간도 아닌 것들이 왜 그 새끼를 졸졸 따라다니겠어? 그리핀은 또 어떻고? 악마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니고야 그게 가능한 일이겠냐고?”

그래도 한 가지, 노트라 본인과 주변의 평가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맞아, 안 그래도 수상했어.”

“시체에 노예에 몬스터에, 아주 그냥 부정한 것들투성이구만.”

“더러운 새끼.”

바로 노트라의 입이 가지는 영향력이었다.

노트라는 언제나 입을 털고 다녔으며, 그것으로 병사들 사이의 분위기를 형성해 왔다.

지금 라이오넬에 대한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영향력만큼은 자타공인 나름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보증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봐. 우리 제국군은 죽어라 피하면서, 힘없고 죄 없는 영지민들이나 건드리고 다니잖아. 그게 어디 귀족이라는 작자가 할 짓이냐고.”

그래서였다.

그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지휘부로부터 특명을 받아 왔다.

그것이 지휘부의 입맛대로 입을 터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물론, 그 더럽고 사악한 짓거리도 내일부터는 끝이겠지만.”

“끝이라고? 왜?”

“내가 들은 게 있거든. 그거면 그 X새끼도 더 이상 날뛰지 못할 거야. 확실해.”

“뭔데, 그게?”

“괜히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좀 털어놔 봐.”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아더스 후작의 부관을 만나고 온 노트라였다.

“다들 기대해도 좋아. 저 지겨운 시체들도 이제 곧 안녕이니까. 바로 내일, 크레나인 후작 각하께서 우리 진영에 합류하시거든.”

“오오~ 드디어!”

“그래, 드디어. 그 검은 악마 새끼가 제멋대로 날뛰던 것도 오늘로 쫑이야. 내일부터는 우리한테 소드마스터만 무려 둘이 되는 거니까.”

노스페라투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부군의 사기는 그리 높지 못했다.

일단 진군 과정에서 초토화된 북부 전역의 실태를 직접 목도한 점이 컸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이었다.

힘이 나려야 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전투 때마다 누적되는 막대한 피해 역시 크게 작용했다.

노스페라투는 본질이 시체였고, 당연히 통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인 것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조건의 괴물과 싸우는 일이 쉬울 리 만무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 한들 매번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사기는 지속해서 깎여 나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제 우리 각하께서 직접 나서실 수 있게 됐다 이거야. 그깟 시체들 따위, 내일부터는 싹 다 대가리 깨져 나갈 일만 남은 거지.”

“오오오~”

“부관님 말씀이 앞으로 길어 봤자 일주일이면 끝이란다. 그러니까 다들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하지만 내일부터는 달라질 예정이었다.

소드마스터인 폴바르 아더스 후작이 직접 나선다면 사정은 180도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시체들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할 것이고, 자연스레 병사들의 희생은 최소화될 터였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이 거지 같은 재앙을 종결짓는 일뿐이었다.

재앙의 원천을 깡그리 지워 버림으로써, 아주 말끔하게.

“우오오~”

병사들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러면 더 입을 놀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위에서 원하는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

히죽.

이것으로 오늘도 한 건 한 셈이었다.

스스로의 욕구 충족은 물론이거니와 소소한 용돈 벌이까지 야물고 매끈하게.

덕분에 노트라는 히죽 미소지을 수 있었다.

드드드.

“응?”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왠지 모를 진동이 느껴졌다.

발밑의 바닥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었다.

“뭐지?”

“갑자기 뭐야 이거?”

노트라만이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의 표정 또한 의문으로 물들어 갔다.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드드드드.

그렇다고 이것이 지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지진이라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딛고 있는 땅 전체가 흔들린다는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약간의 떨림이 전해져 오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단순한 느낌만으로는 정체 파악이 어려운 의문의 진동이었다.

드드드드드드.

푸확!

다만 이 의문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해소되었다.

어설픈 느낌이 아니라 직접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형태로 말이다.

“어……?”

그것은 어떤 팔뚝이었다.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크고 두꺼우며 우락부락한 어떤 팔뚝.

이런 것이 갑자기 바닥을 뚫고 올라온 것이다.

푸확! 푸확! 푸확!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북부군 야영지 이곳저곳에서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어……?”

노트라를 비롯하여 병사들 전원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조차 상상치 못했던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덥석.

하나, 그래서는 안 됐다.

얼이 빠져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헙……!”

노트라가 딱 그러했다.

팔뚝 끝에 달린 흉악하기 그지없는 주먹이 그의 몸을 덥석 움켜쥐었다.

노트라 몸통의 족히 절반은 되는 주먹이었다.

당연히 빠져나갈 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안 돼!”

콰드득!

“커헉!”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안 봐도 뻔했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고통과 처절한 비명.

이것이 무슨 수를 써도 뒤집을 수 없는 노트라의 마지막 운명이었다.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동시에 신호탄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 제국 북부군 전체에 드리울 끔찍한 악몽의 신호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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