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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76화 (177/200)

107장: 북방의 악몽(2)

“저게 뭔지 알아, 한센?”

“나도 잘…….”

동료인 트리어의 물음에 한센은 고개를 저었다.

저 루비 같기도 하고 도깨비불 같기도 한 것들이 무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21년 차 고참병인 그조차도 이런 광경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일단 경보부터 울려. 떼로 접근해 오는 걸 보면 예삿일은 아닐 거야.”

“아, 그래. 알겠어.”

다만, 그냥 무시하고 넘길 만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기에는 하나하나가 심히 음침했으며, 그 수 또한 지나치게 많았다.

무엇보다 자꾸만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중이었고 말이다.

따라서 뭔지는 몰라도 일단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땡땡땡땡~

한센의 말에 따라 트리어가 종을 치기 시작했다.

쿵쿵쿵!

“응?”

한데, 이 판단이 잘못됐던 것일까?

종이 울림과 동시에 상황 또한 급변했다.

루비들의 접근 속도가 경보를 기점으로 대폭 상승한 것이다.

쿵쿵쿵쿵!

비단 시각적 효과만이 아니었다.

접근 속도 상승에 따라 지면의 울림이 함께 전해져 왔다.

정체 모를 무언가지만 그 육중함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울림이었다.

화르륵~

경보를 울렸다 해도 이대로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라도 저것들의 정체 파악이 필수였다.

하여 한센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기름 먹인 화살에 불을 붙인 뒤 시위를 당겼다.

파앙!

슈아아~

그렇게 불화살 한 대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저, 저거!!”

옆에 있던 트리어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한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 경악성을 내뱉지는 않았을지언정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화살의 불빛이 드러낸 광경,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당황과 공포 때문이었다.

“저 괴물들이 대체…….”

진동을 유발한 무언가의 정체는 몬스터들이었다.

나이폴리 성을 향해 돌진해 오는 북방 극지대의 몬스터들.

동시에 검붉은 루비의 정체 역시 밝혀졌다.

그것은 눈알이었다.

핏빛 광망으로 가득 찬 괴물들의 섬뜩한 눈알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 괴물들이 대체 왜 여기로 달려드는 거냐고!!”

트리어의 경악이 옳았다.

지금 이 상황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저것들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절대 북방 극지대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으니까.

벗어난다면 간혹 몬스터 부산물의 형태로 죽어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한데, 그런 것들이 제국의 최북단 방어선을 향해 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화살의 불빛에 비친 것은 서넛 정도에 불과하나, 루비로 착각했던 눈알들의 숫자로 짐작할 때 족히 수백은 될 법한 개체 수였다.

“젠장…….”

좋지 않았다.

아주 많이.

쿵쿵쿵쿵쿵쿵!

상황을 파악한 지 채 몇 초 지나지도 않았다.

경보를 울렸다 하나 아직 병사들이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했을 시점인 것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몬스터들은 이미 성벽 근처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더는 불화살도 필요치 않았다.

몬스터들의 거대한 몸체가 맨눈에도 훤히 드러날 만큼 가까워졌으니까.

“안 되겠다. 얼른 내려가서 기사님들하고 병사들 좀 재촉해.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늦어!”

“그러면 한센, 너는?”

“한 명은 남아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거 아니야! 성문 뚫리기 전에, 빨리!!”

“알았어!”

그래도 아직 절망할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쪽은 성을 끼고 있었다.

저것들이 단번에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성문을 뚫지는 못할 테니 약간의 시간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사이에 최대한 빨리 전투 준비를 마쳐야만 했다.

하여 트리어를 내려보냈다.

아니, 내려보내려 했다.

“저, 저건 또 뭐야?”

하지만 이는 이행되지 못했다.

몸을 돌리던 트리어의 눈에 잡힌 또 다른 광경 때문이었다.

이례적인 그것이 트리어의 고개는 물론이거니와 발목까지 붙들고 말았다.

동시에 한센의 시선 역시도.

지이이잉!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시선을 잡아끄는 한 자루 찬연한 빛의 검.

비록 처음 보는 것이지만 한센은 알 수 있었다.

저 검은 종종 기사들이 뿜어내던 오러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을.

평범한 병사인 그의 눈에도 단번에 그 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문제는 저 남다른 것이 향하는 방향에 있었다.

저 찬연한 빛이 하필이면 향하면 안 될 곳을 향하는 중이었다.

바로 이곳 나이폴리 성의 성문.

현재는 굳게 닫혀 있는 성의 유일한 출입구를 향해서 말이다.

“아…… 안 돼.”

최악이었다.

저 검의 정체가 한센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다면, 지금부터 펼쳐질 상황은 최악일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다.

상상조차 끔찍할 지경이었다.

“안 돼!!”

쿠과과과광!!

하나, 현실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격이 다른 한 자루의 검은 끝내 떨어져서는 안 되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하여 가차 없이 끊어 냈다.

나이폴리 성의 마지막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쿵쿵쿵쿵쿵쿵!!!

그렇게 시작되었다.

로만 제국 북부를 휩쓸 처절한 밤의 악몽이.

* * *

지난 한 달, 역사는 다시 쓰이고 있었다.

100년 넘게 외적의 침입을 허락지 않던 로만 제국이었다.

그 긴 세월, 에펜시아 대륙 유일 패권 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외적의 범주에는 몬스터 역시 포함돼 있었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만큼 몬스터들의 준동 자체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을 어지럽힌 사례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완벽한 초동 진압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제국 북부가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 주범은 북쪽 끝에서부터 밀고 내려온 북방 극지대의 몬스터들.

이것들이 제국 내의 농지고 집이고 창고고 보이는 족족 몽땅 짓밟는 중이었다.

100년 만에 외적의 침입을 허용했음은 물론이요, 나아가 제국 내부가 막대한 혼란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제국을 지탱해 온 압도적인 군사력 역시 별반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몬스터들에게 일방적으로 갈려 나가며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군사력의 공백.

드넓은 영토 전체를 아우르던 제국의 군사력에 현재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슈라우드와의 전쟁 때문이었다.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쌓여 가면서 군사력의 태반이 슈라우드 전선에 묶이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내부의 혼란을 잠재울 전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몬스터들의 움직임.

사실상 이 두 번째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지나치게 체계적이었다.

마치 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각 영지의 주요 시설들만을 집중적으로 무너뜨렸다.

복구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말이다.

또한, 파괴적이되 잔인하지는 않았다.

몬스터들이 초래한 북부의 물적 피해는 분명 그 집계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반면, 인적 피해는 양상이 달랐다.

직접 충돌한 병사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지는 습격하되 영지민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먹이로 삼는 것도 없었다.

영지민들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소 닭 보듯 그냥 지나쳐 갈 뿐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계획대로 최대한 많은 피난민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아더스 후작령으로 몰려가는 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소문이 돌고 있어요, 제국이 심상치 않다고. 물론 이쪽에서도 계획대로 소문을 확대·재생산 중이고요.

“황제는 어떻습니까? 역시 저를 의심하지 않을까 싶은데.”

―확신할 수는 없지만 높은 확률로 그렇겠죠. 라이가 반가면 라트로 활약했던 걸 지금쯤이면 모를 리 없을 테고, 더욱이 라이가 슈라우드에서 모습을 감춘 상태이기도 하니까요. 저라도 당연히 라이를 의심했을 거예요.

단, 이 상황에 나를 대입한다면 모든 것이 쉽게 풀렸다.

몬스터들이 북방 극지대를 벗어난 것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까지, 전부 나의 작품이었으니까.

대륙 남부에서처럼 반가면을 쓴 채로 몬스터들을 조종 중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종하는 이것들은 전부 평범한 몬스터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사실 몬스터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생명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전부 죽어있는 상태, 즉 언데드였다.

정확히는 뱀파이어의 언데드 노예인 노스페라투였고 말이다.

그간 테페슈가 만들어 둔 노스페라투들을 싹싹 긁어모아 제국으로 치고 내려온 것이다.

체계적이면서 잔인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였다.

제국 내부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자 굳이 민간인을 학살할 필요는 없었다.

생산과 생활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며, 오히려 그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갑자기 생성된 수십 만의 난민보다 더한 혼란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국 수뇌부는 이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골머리 썩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선 상황은 괜찮습니까? 제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다들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여긴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지난 나로움 요새 전투 이후로 아직 소강상태인 데다, 다들 잘 해 주고 있으니까. 되려 저는 라이가 걱정이에요. 거기서도 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을 게 너무 뻔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나의 말마따나 나는 밤낮으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밤에는 노스페라투들을 컨트롤해야 했으며, 낮에는 땅속에 파묻혀 있는 이것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레나와 통신을 주고받는 지금만 해도 정찰 나온 제국 군의 시체를 깔고 앉아 있는 상태였다.

비록 테페슈가 옆에서 최대한 돕고 있다 하나, 현실적으로 내가 쉴 수 있는 구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저도 괜찮습니다. 제국에 직접 타격을 주는 일이다 보니 오히려 혼자 신바람 내는 중입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좀 쉬지 못하면 어떻겠는가?

이제 정말 목표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인데.

철옹성 같았던 제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들의 동요가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 투정 같은 것이 떠오를 리 만무했다.

물론 몸이야 좀 힘들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또렷했다.

하여 앞으로도 정해진 계획에 따라, 아니 그 이상으로 제국을 강하게 몰아붙일 작정이었다.

이 과정에 어설픈 브레이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고 말이다.

―라이가 그렇다면야. 대신 조심은 해야 해요. 폴바르 아더스 후작이 북부군 규합을 마친 뒤 그쪽으로 출발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예상대로군요.”

―그렇긴 해도 여전히 위험하다는 건 변함없어요. 사실상 라이 혼자서 상대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더구나 가이덴 드라이슬러와의 거리가 멀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요.

현재 나는 로만 제국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실상 단신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이에 따른 위험부담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혹시 공작에게 따로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아직은요. 아직 황제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도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른다는 거, 라이도 알죠?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건 그것대로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움츠러들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더 미쳐 날뛴다면 모를까.

레어 안의 드래곤이 참지 못하고 결국 밖으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도록.

―그렇긴 해도 제게는 라이의 안전이 최우선이에요. 제가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있을 거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라이도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줘요.

“예, 왕녀님.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잠들어 있는 녀석들을 깨우러 갈 때가 다 됐군요.”

―알겠어요, 라이. 그럼 부탁할게요. 오늘도 제국에게 부디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해 주세요.

물론이었다.

제국의 밤은 오늘도 역시 끔찍할 예정이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악몽으로 물들여 놓겠습니다.”

시체들이 선사하는 기나긴 악몽으로 점철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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