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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72화 (173/200)

105장: 자르기(2)

“나쁘지 않군.”

제국군이 나로움 요새의 내성 문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슈라우드 왕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

한데 슈라우드 군 총사령관의 태도는 이런 상황과 심히 동떨어져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는 바르코스 후작이었다.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어.”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충분한 근거를 갖춘 여유였다.

이 상황 자체가 슈라우드의 노림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스트라우스 백작?”

정확히는 현재 후작 옆에 함께 서 있는 복면인이 만들어 낸 그림이었다.

복면인의 이름은 그래플 스트라우스.

마이바크 왕국의 백작이자 현 국왕의 심복이며, 전략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비밀리에 나로움 요새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지금과 같은 그림을 펼쳐 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라이오넬의 친구라는 것.

친구를 돕기 위해 머나먼 타국까지 와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제국군은 지금 그래플이 짜 둔 판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날뛰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각하. 계획대로 적들이 기사 전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군요. 변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외성 돌파 직후, 제국은 일반 병력이 아닌 기사 전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다.

슈라우드 기사들의 필사적인 방어 때문이었다.

기사들이 좁은 입구에서 단체로 벽을 세우고 있으니 일반 병력으로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제국 역시 기사들을 투입했고, 그때부터 슈라우드 군이 천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내성 인근까지 제국의 기사들이 다다른 상태였다.

물론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가 전부 그래플의 의도대로라는 점이었지만.

“그럼 이제 시작해도 되지 않겠나?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용병왕이나 두 후작도 버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말이야.”

슈라우드를 돕고 있는 외인들은 그래플만이 아니었다.

용병왕 지크프리트는 물론이거니와 두 명의 소드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마스터들을 막아서고 있는 카데인 아르스트 후작과 자바니아 그란데우스 후작 또한 각각 마이바크 왕국과 테네시아 왕국의 실력자들인 것이다.

그간 라이오넬이 쌓아 둔 인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의 존재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전부 정령력을 지니지 못한 일반 소드마스터들이었다.

하나같이 정령력을 보유한 제국의 마스터들에게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버거워하는 모습이 성벽 위에서도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예, 이만하면 끌어들일 대로 끌어들였습니다.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좋아, 하면 신호를 보내지.”

끌어들인 제국군을 처리하기 위한 해결책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이 해결책의 설계자인 그래플이 적당한 때가 왔음을 가리켰다.

하면 이제 준비해 둔 것을 꺼내 들 차례였다.

“시작하라.”

그렇게 바르코스 후작의 신호가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후우우웅~!

내성과 외성 사이의 공간에 갑작스러운 돌풍이 일었다.

공간 전체를 뿌연 흙먼지로 뒤덮기 충분한 위력의 돌풍이었다.

“카오오오~!!”

동시에 잠시 모두의 뇌리에서 잊혔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공을 호령하는 지배자의 포효.

이것이 나로움 요새 전체를 가득 메웠다.

제국군을 덮치는 형용 불가의 거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 * *

“젠장!”

그리핀의 포효가 울려 퍼진 직후였다.

아마키데스 치라드가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이 포효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제국의 유일한 대적자이자 제국군의 깊은 트라우마, 라이오넬의 등장이었다.

이것이 그를 잔뜩 동요시키고 있었다.

읊조림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그 방증이었다.

“멍청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백작? 난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인데, 언제쯤 치르게 해 줄 작정인지? 말했다시피 언제든 괜찮으니, 사양 말고 들어오시오.”

“…….”

지크프리트가 이 점을 가지고 깐족였다.

그가 아는 치라드의 오만한 성격대로라면 절대 참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참았다.

아니, 단순히 참는 데에서 그치지도 않았다.

파바밧!

그대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에게 아예 등을 보인 채 필사적으로, 오로지 외성 출구를 향해서.

파밧!

파바밧!

비단 치라드만이 아니었다.

흙먼지로 인해 시야가 가려졌지만, 지크프리트 정도면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강력한 기운들이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라이오넬의 출현에 제국의 마스터들이 일제히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 고작 울음소리 하나로 저렇게 꽁무니 빼게 만들 정도라고? 저 자존심 강한 놈들을?”

이에 지크프리트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저만치 멀어진 이들 모두 소드마스터였다.

심지어 그냥 소드마스터도 아닌 정령석을 섭취한 소드마스터.

그 힘과 위력에 대해서는 그간 직접 검을 맞대 온 지크프리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스터로서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절대 저리 줄행랑칠 이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크프리트가 가진 상식 내에서는 그러했다.

“대체 뭔 짓을 했길래……?”

한데, 그랬던 상식이 와장창 송두리째 깨져 나가는 중이었다.

또한, 그런 만큼 지크프리트에게는 이 상황이 쉬이 와닿지 않고 있었다.

라이오넬을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 없는 그이기에 더더욱.

뿌우우~

“퇴각하라! 전군 퇴각하라!”

물론 그의 인지 상태와 상관없이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제국군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군 퇴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다.

라이오넬의 등장이라는 변수 하나가 소드마스터들뿐 아니라, 군대 전체를 물려 버리는 셈이었다.

“그 복면 쓴 놈 말이 착착 들어맞네. 시장통이 따로 없어.”

단, 이 나팔 소리가 곧바로 제국군 전체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현재 제국군의 포지션이 애매했다.

이들이 뚫고 들어온 것은 외성의 문이지 성벽 그 자체가 아니었다.

즉, 수만의 군대가 좁은 성문 하나를 통해 빠져나가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실제로 퇴각을 시작한 제국군 진영 내에 적잖은 소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들부터 가장 먼저 내빼는 것도 그렇고.”

그렇기에 제국군의 퇴각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순위의 최상단에 위치한 존재가 바로 5명의 소드마스터들이었다.

만약 이들이 뒤에 남아 군을 최대한 보호했다면 작금의 소요도 최소화됐을 터.

하나,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이들이 되려 가장 앞장서서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다만, 이는 슈라우드 측에서 이미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제국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과정에서 제국이 잃은 마스터 급 실력자의 숫자만 무려 8명이었다.

아무리 제국이 엄청난 자원을 보유했다 한들 이 8명이라는 수치는 간과할 수 없었다.

제국조차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수치이며, 당연히 더 이상의 실력자 손실은 절대 금물이었다.

그런 만큼 소드마스터들의 줄행랑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간 전투에서 라이오넬을 극도로 기피해 온 제국 실력자들의 행태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단장, 왜 가만히 계십니까? 지금이야말로 제국 놈들 멱을 따 줄 절호의 기회인데. 돈 벌어야죠. 얼른 쫓아가서 대갈빡을 박살 내 줍시다.”

“됐어, 오늘 우리 일은 여기까지다.”

“예? 여기까지요?”

“그래, 여기까지. 나머지는 슈라우드 쪽이 알아서 할 거야.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거고.”

어찌 됐든 이 상황은 지크프리트 용병단에게 둘도 없는 찬스였다.

제국 놈들 대가리를 하나라도 더 깨뜨릴 수 있는 찬스.

나아가 그것으로 수당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낼 수 있는 찬스.

한데, 지크프리트는 이 찬스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등을 보인 채 줄행랑치는 제국군을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다.

“……저쪽도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요?”

비단 지크프리트만이 아니었다.

슈라우드 군 역시 퇴각하는 제국군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일부러 보내 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잠자코 지켜보면 알아. 어차피 이제 시작할 때가 됐으니까.”

물론, 진짜로 보내 줄 리야 만무했다.

제국 놈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슈라우드 군이었다.

이런 슈라우드가 제국을 곱게 보내 줄 확률은 완벽히 0에 수렴했다.

단지, 지금의 방관 또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었다.

제국군을 보다 철저히 잡아먹기 위한 커다란 계획 말이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때마침 이 계획이란 것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공명하는 마력의 파동이 그 신호탄이었다.

파동의 진원지는 외성 성벽 안쪽의 성문 인근.

즉, 현재 제국군의 병목현상이 일고 있는 곳이었다.

구구구구~

마력의 파동은 곧 땅의 진동으로 이어졌다.

장소는 역시나 제국군이 몰려 있는 외성 성문 부근.

상당한 수준의 진동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럽던 제국군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쿠구구구구!!

그리고 그사이, 마력의 파동과 땅의 진동에 이어 세 번째 변수가 등장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벽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단단함이 도를 지나칠 것만 같은 거대한 강철의 벽.

이 벽이 땅속에서부터 마력의 파동을 타고 일대를 진동시키며 성문 인근에 우뚝 솟아오른 것이다.

돌파당하며 부서진 성문에 딱 알맞은 크기와 높이로 말이다.

“어어……?”

“뭐, 뭐야?”

“나갈 수가 없어! 나갈 수가 없다고!!”

한마디로 새로운 성문이 생긴 셈이었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어떤 벽과도 같은 문이.

그렇게 미처 퇴각하지 못한 제국군은 내성과 외성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혼란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는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진정해라!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그냥 길이 막힌 것뿐이야!”

“겁먹을 필요 없다! 대로만 제국의 기사들이 너희와 함께하고 있어!”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갇혀 버린 제국군 사이에 기사들이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사실상 끼어 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했다.

기사의 수만 무려 8,000가량에 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사란 원래 각 부대에서 중간 지휘관 역할을 도맡는 자들.

이 말인즉슨 번져 가는 혼란에 대한 컨트롤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들 하늘을 봐라! 너희들 눈에는 그 망할 닭 새끼가 보이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나아가 어떤 의문 하나가 이들의 통제에 힘을 실어 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재였다.

울려 퍼진 소리와 상반되는 명확한 실체의 부재.

그리핀의 포효가 들려왔다면 그에 따른 날갯짓 역시 눈에 들어와야 했다.

그간 제국군을 무던히도 괴롭혀 온 괴수의 날갯짓 말이다.

하지만 가라앉은 흙먼지와 함께 시야가 트인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핀의 힘찬 날갯짓은 물론이거니와 그 위에 탔어야 할 괴물의 지독한 위용까지, 응당 눈에 들어와야 할 요소들이 어느 것 하나 비치지 않고 있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는 오지 않았다! 슈라우드 놈들이 사기를 친 거야!”

결국,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제국의 악몽인 라이오넬은 현재 이곳에 없다는 것.

이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모두의 눈에 박혀 들고 말았다.

“놈이 없다면 우리가 긴장해야 할 이유도 없다! 저 벽이 아무리 단단해 봤자 오러 블레이드는 견디지 못해!”

“지금부터 우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버티는 거. 마스터들께서 저 벽을 무너뜨리고 재진입하실 때까지 버티는 것만 하면 돼!”

이로 인해 혼란이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라이오넬의 출현 때문에 생긴 혼란이었다.

한데, 라이오넬의 출현이 거짓이라면 그 혼란 또한 잠재워지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기사들의 말마따나 임시로 세워진 벽은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제국군 측에 어느 정도 병력 손실은 있겠으나, 전황 자체를 뒤집기에는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남은 결론은 결국 앞선 상황으로의 허무한 회귀뿐이었다.

그그그극~!

철컥! 철컥! 철컥!

이대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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