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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69화 (170/200)

104장: 교수님의 과거

“6만의 추가 병력 편성을 완료했습니다, 폐하. 내일 트란두르 백작의 지휘하에 리브나로 백작성으로 출발할 겁니다.”

“나로움 요새와 누바크 백작성 쪽은?”

“따로 특이사항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슈라우드 쪽에서도 병력 보충 외에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합니다.”

카일 이반이 황제 아이단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슈라우드로 보낼 추가 병력 및 전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아이단의 반응은 심히 좋지 못했다.

무표정한 얼굴과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그의 현재 심경을 대변하는 중이었다.

“그럼 여전히 우리 손해가 훨씬 크다는 얘기군.”

“……물론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우리의 손해가 크기는 합니다. 하지만 슈라우드야말로 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이번에 보충된 병력도 다 해서 1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간다면 먼저 무너지는 쪽은 슈라우드가 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지 않으실지…….”

“조급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 일이 슈라우드 정복뿐인가?”

“……송구합니다.”

아이단의 이러한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간 연이은 패전의 과정에서 제국이 입은 손해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제국의 손해는 현재 천문학적인 수준마저도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리브나로 백작성에서의 대참사가 심히 뼈아팠다.

전투 한 번에 무려 3명의 소드마스터를 잃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6만의 병력 손실까지 더하면 거의 왕국 하나에 달하는 전력이 날아간 셈이었다.

특히 크로아티 에르나르 백작의 죽음이 치명적이었다.

빛의 정령석을 섭취한 그의 지위와 존재감은 제국 내에서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비공식적이기는 해도 제국의 두 번째 강자로 언급되던 그였다.

즉, 제국 내에서는 가이덴 드라이슬러 공작 다음가는 존재인 것이다.

한데, 그런 존재가 전장에서 허무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그것도 내심 라이벌이라 여기고 있던 라이오넬 라인하트에게, 제대로 손 한 번 못 써 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로 인해 크로아티에게 투자된 빛의 정령석은 공중분해 됐다.

더불어 라이오넬의 입지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전쟁의 장기화로 흔들리던 슈라우드 내부 정국을 다시금 휘어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 이는 단순히 슈라우드 내부 사정만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이제는 슈라우드를 넘어 제국과 대륙마저 흔들기 시작했다.

로만 제국의 유일한 대적자라는 칭호로서 말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카일 이반의 말도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기세가 어떠하든 슈라우드의 사정은 분명 좋지 못했다.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제국의 승리가 점쳐지는 형국이었다.

기본적인 자원과 국력 면에서 제국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대치국면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제국의 승리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승리를 거둬 봐야 아무 의미 없다는 것까지 따로 설명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쯧.”

“송구합니다, 폐하.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이 상황이 제국에게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바람직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선 승리까지 가는 과정에서 제국이 입게 될 심각한 인적·물적 손실.

이 손실은 지금까지 입은 것만으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앞으로의 것은 감히 추산조차 어려울 지경이고 말이다.

또한, 왕국들의 준동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는 슬슬 제국의 힘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 때가 됐다.

비단 슈라우드가 온전히 버텨 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라이오넬 개인의 힘 덕분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게 축소된 제국의 힘 그 자체에 있었다.

지금까지 죽어 나간 마스터 급 실력자의 수,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0년간 죽어 나간 제국 마스터의 수만 무려 11명에 달했다.

원래 제국이 보유하고 있던 전체 24명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사망한 것이다.

즉, 현재 남아 있는 제국의 마스터 수는 13명.

물론 이것만으로도 왕국들을 씹어먹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여전히 왕국 몇 개 분에 달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권에 관해 묻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제국의 힘이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제국이 유지하던 절대적 패권 역시 위태로운 것이 당연했다.

더 이상의 피해는 제국의 지위 유지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금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선택하는 수밖에.”

“선택이라 하심은 어떤……?”

“동맹국들을 가담시킨다.”

그렇기에 아이단은 결단을 내렸다.

제3자를 끌어들이는 것.

더 이상의 심각한 손실을 방지하고자 내리는 결정이었다.

“동맹국들을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리될 시 주변국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못할 터인데…….”

이 결정에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제국씩이나 돼서 일개 왕국 하나 홀로 처리 못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또한 제국의 지위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선택인 것이지. 지금은 간접적인 시선보다 직접적으로 누적되는 손해를 막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 주변의 시선이야 슈라우드와 라이오넬을 끝장낸 뒤 다시 찍어 누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답은 당연히 하나뿐이었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곳이 어떻게 되지?”

“라투이드, 크레이드, 말라, 하인센다크, 바이젠까지 총 다섯 군데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을 가담시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이었다.

추가적인 자원 소모도 필요 없었다.

그저 지원군을 보내라는 한마디면 충분했다.

바이젠을 제외하면 전부 제국이 권력 구도를 비틀어 버린 곳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국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바이젠이 가장 빠르겠군.”

“그렇습니다. 슈라우드와 붙어 있기도 하고, 또 그들 나름대로 준비해 온 게 있는 만큼 당장에라도 병력 동원이 가능할 겁니다.”

제국이 개입한 적 없는 바이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전자들처럼 개 노릇을 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면 충분한 것은 똑같았다.

바이젠과 슈라우드의 관계 덕분이었다.

이베리아 영지를 사이에 둔 두 왕국의 관계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든 치고 들어갈 타이밍만을 노리고 있던 바이젠이었다.

단지, 제국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애만 태우고 있었을 뿐.

“나머지 왕국들의 예상 소요 시간은?”

“병력 소집부터 시작해서 슈라우드와의 거리까지 생각하면 최소 반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아. 그럼 바이젠에는 바로 전달하고, 나머지 왕국들도 최대한 빨리 준비시키도록.”

“예, 폐하. 분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이로써 전쟁의 판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침략 전쟁에서 제국의 명운까지 걸린 대륙 차원의 전쟁으로.

나아가 슈라우드를 향해 몰아치는 거대한 쓰나미의 형태로 말이다.

* * *

전쟁의 판도가 한창 요동치고 있는 그 시각, 대륙 중남부에 위치한 자유도시 트로니클.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이 자유와 방종, 그리고 용병의 도시를 찾아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게 누구야? 잘 나신 브로든 프라우닉스 남작님 아니신가?”

그의 이름은 브로든 프라우닉스.

슈라우드의 남작이자 왕도 아카데미의 검술 교수이며, 라이오넬의 스승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잘 지냈…… 나, 지크?”

그런 그가 어색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인사를 받았다.

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인사를 건네오는 사내의 눈도 피하고 있는 브로든이었다.

“잘 지냈나? 지금 네놈이 나한테 잘 지냈냐고 물은 거냐?”

사내의 반응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지크라 불린 사내는 브로든을 죽일 듯 노려보는 중이었다.

정말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진득한 살기까지 가득 담아서.

“큽…….”

엄청난 살기였다.

브로든이 절로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브로든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임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브로든 프라우닉스 네놈이, 감히 나 지크프리트에게?”

하지만 지크프리트라는 사내의 정체를 알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브로든이 아무리 최고조로 숙련된 검사라 해도 소용없었다.

신음을 흘리는 것이 당연했다.

상대가 무려 용병왕이었기 때문이다.

용병왕 지크프리트.

대륙 제일로 손꼽히는 지크프리트 용병단의 단장이자, 위계질서 엉망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용병계에서 유일하게 왕의 칭호를 달고 있는 사내였다.

그리고 이 칭호에 대해서는 대륙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소드마스터라는 실력과 용병단을 우뚝 세우며 쌓아 온 수많은 업적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크으읍…….”

이런 거인이 쏘아 보내는 살기였다.

그것을 익스퍼트 수준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미안…… 하다.”

다만,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한 가지만큼은 여전히 이상했다.

그것은 바로 브로든의 반응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꼬리를 말고 있었다.

아무리 실력 차가 나는 상황이라지만, 이건 평소 위아래 없는 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태도인 것이다.

“미안? 지랄하고 자빠졌군. 네놈은 그 말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는 걸 모르나?”

“…….”

“그러니 쓸데없는 개소리 집어치우고 본론이나 말해라. 죽일 때 죽이더라도 옛정을 생각해서 이유 정도는 듣고 죽여 줄 테니.”

저지른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로든이 뭐라 변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잘못이었다.

“말해. 몸 성히 나가지 못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 제 발로 여길 찾아온 이유가 뭔지.”

심지어 브로든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지크프리트의 말마따나 이곳에 발을 들이면 결코 성치 못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이렇게 옛 친구를 찾아온 그였다.

“부탁이 하나 있어, 지크.”

“내 귀가 이상해진 건가? 어쩐지 네놈 입에서 지금 부탁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잘못 듣지 않았어. 정말 부탁이 있어서 찾아온 거야.”

“…….”

“너와 지크프리트 용병단의 힘이 필요해. 도와줘, 지크.”

나아가 부탁까지 했다.

그와 용병단의 힘을 빌려달라고.

…….

이에 두 사람이 독대 중인 용병 단장실에 잠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무저갱을 연상시키는 듯 깊고도 무거운 정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아악!

그 정적이 무참히 깨져 나갔다.

이제는 느껴지다 못해 눈에 보일 지경인 압도적인 살기에 의해.

“커헉……!”

“네놈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나도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슈라우드의 왕녀를 따르고 있다지?”

이어지는 지크프리트의 목소리에서는 높낮이마저 사라진 상황이었다.

대신 주변의 사물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디 얽매이는 건 끔찍하다면서 이안나조차 버리고 떠난 네놈이 말이야.”

“그건…….”

“그런 놈이 감히 나를 찾아와서는 뭐? 부탁이 있어? 내 힘이 필요해? 네놈도 역겨운 귀족 나부랭이가 다 됐구나, 브로든.”

화아아악!!

소드마스터의 진심 어린 살기가 브로든을 정통으로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크으윽……!”

이에 브로든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어찌 대응해 볼 만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에게는 대응할 자격조차 없었으니까.

또한, 익히 예상한 상황이기도 했다.

지크프리트를 찾아가 달라는 부탁을 받은 순간부터 수백, 수천 번도 더 넘게.

‘왕녀님…….’

그래서였을까?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 저도 모르게 한 달여 전의 대화를 떠올리게 되는 브로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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