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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68화 (169/200)

103장: 빛과 어둠(2)

콰우우우우!!!

빛과 어둠의 충돌.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장엄했다.

신화 속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랄까?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배척하기에 절대 섞이지 않았다.

한데, 오히려 그 점이 절묘한 조화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절대 섞이지 않는 흑과 백이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

이것은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신화 속 거인을 연상시켰다.

혹은 세계를 두고 벌이는 신과 악마의 거룩한 한판 승부 같기도 했고 말이다.

“크으읍!”

다만, 그 중심부의 사정은 보이는 것과 많이 달랐다.

보이는 것처럼 경외롭거나 거룩하지 못했다.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오히려 한없이 처연하고 처절했다.

적어도 빛의 근원에게는 말이다.

그우우…….

쿠구구구!

잠식 때문이었다.

어둠에 의한 빛의 잠식.

어둠의 탐욕이 광휘의 신성함을 조금씩 집어삼키는 중인 것이다.

“이게…….”

시작은 분명 반반이었다.

빛과 어둠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흑과 백 각각 반씩 섞인 소용돌이의 지분이 그 방증이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구도가 틀어져 갔다.

소용돌이를 구성하는 어둠의 비중이 반을 넘어선 것이다.

쿠구구구구!!

심지어 그 속도마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잠식되어 가는 빛의 초라함이 이제는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이게 이럴 리가…….”

빛의 근원인 크로아티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여 안간힘을 씀과 동시에 연신 읊조렸다.

이럴 리가 없다고.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아니, 이게 당연한 거야.”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크로아티의 사정에 불과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어둠의 승리는 지극히 정당했다.

각각의 근원에 존재하는 격차를 고려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숙련도의 차이.

직접 부딪쳐 보고 나니 확실해졌다.

크로아티는 이제 갓 유형화의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모여든 빛의 밀도도 그렇거니와 이에 대한 크로아티의 컨트롤 능력 역시 빈약한 수준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처음 이 힘을 깨닫고 막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을 때 정도랄까?

카르가디아 산맥을 거치며 한층 더 짙어진 내 어둠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 심연까지 더해졌다.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심연의 존재는 유형화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둠을 빨아들이고 공명함으로써 그 힘을 배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어둠이 지닌 본질적 탐욕마저 흡수하며 컨트롤의 용이성까지 더해 주었다.

한 마디로 어둠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파트너인 셈이었다.

“크으으…….”

크로아티의 신음이 깊어졌다.

더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현재 빛은 잠식되는 수준을 넘어 뭉텅이째로 소멸되고 있었다.

전장을 수놓던 흑백의 소용돌이는 이제 사실상 어둠 일색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슬슬 마무리 짓자, 크로아티 에르나르.”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승부수마저 실패로 돌아간 이 마당에 더 이상 크로아티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상황의 마무리뿐이었다.

나와 슈라우드의 승리, 크로아티와 제국의 패배라는 자명한 결과로.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이 마무리 과정에서 나는 어쩌면 자비를 베풀었을지도 몰랐다.

크로아티라면 그 값어치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드마스터인 것으로도 모자라 정령석, 그것도 무려 빛의 정령석을 섭취한 최상위 실력자였다.

아무리 제국의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 해도 크로아티는 그 급이 다른 것이다.

사로잡는다면 유효한 협상 카드로 써먹을 여지도 적지 않았다.

“내 사람들을 건드리지도 말았어야 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는 크로아티를 살려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센트럼, 서클을 전부 잃을지도 모르는 베로카, 온몸에 수십 가닥의 혈선이 그어진 다이너, 그리고 막대한 희생을 겪은 그리핀 군단까지.

크로아티와 광휘의 군단은 오늘 너무나도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

그 어떤 변명도 참작조차 불가한 수준의 심각한 잘못을 말이다.

“자, 잠깐…….”

“이미 늦었어.”

쿠구구구구!!

자비란 없었다.

오로지 잘못에 대한 징벌만이 존재할 뿐.

하여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어둠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완전히 집어삼켜 갔다.

빈약해질 대로 빈약해져 이제는 하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크로아티의 반딧불을.

“에르나르 백작!”

그때였다.

또다시 방해꾼이 등장했다.

앞서 난입했다가 내 중력에 짓눌려 무력화됐던 바로 그 소드마스터였다.

그가 혼돈의 와중에 정신을 차렸는지 위기에 빠진 크로아티를 돕고자 나선 것이다.

슈아악~

소드마스터의 검이 내 등을 노리고 들어왔다.

당연히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블레이드였으니까.

적절한 수준의 대응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스윽.

하여 왼발을 떼며 가볍게 검의 경로에서 몸을 빼냈다.

그렇게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심연을 잡고 있던 왼손 역시 풀었다.

심연 위로 솟아 있던 어둠을 한 줄기 움켜쥔 채로.

콰아아아!

“……!”

그러고는 그대로 내리그었다.

유형화된 어둠의 줄기를, 자꾸만 귀찮게 끼어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를 향해서.

“헙…… 크아아악!!”

이렇다 할 저항은 없었다.

그저 끔찍한 비명뿐이었다.

어둠의 탐욕에 영혼마저 갈취당하는 자가 내지르는 무저갱의 비명 말이다.

파바밧.

그리고 그사이였다.

처절한 비명의 틈새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눈을 뗀 사이 크로아티가 움직임을 취한 것이다.

“쯧.”

단, 그 방향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 즉 나와는 멀어지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줄행랑을 치려 하는 크로아티였다.

“예상에서 벗어나지를 않네.”

왠지 이럴 것 같기는 했다.

제국의 실력자가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일은 이미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브루노 다스라는 아주 생생한 선례가 말이다.

이것이 제국 귀족들의 공통적인 성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정령석을 섭취한 제국 실력자들에게서 어쩐지 자주 보인다는 의심은 지우기 어려웠다.

해서 난입자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관심은 끄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예상을 적중시킨 참이었다.

콰우우우~

따라서 이런 경우에 대한 대비책 역시 마련해 두었다.

브루노 다스로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앞으로는 허무하게 놓치는 일을 방지하고자.

그리고 그 답은 유형화된 어둠에 있었다.

애초에 유형화됐다 할지언정 빛이나 어둠에는 정해진 형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조작의 편의를 위해 단순한 기둥 형태를 취하는 것일 뿐.

이 말인즉슨 숙련되기만 한다면 그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내 어둠이 그리하는 것처럼.

콰라라락~!!

굵고 단단하던 기둥은 이제 얇고 긴 채찍으로 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강력한 파괴력보다는 신속함과 유연함에 초점을 둔 모양새였다.

특정 대상을 추격하기에 딱 알맞은 형태인 것이다.

그렇게 변태를 마친 어둠의 채찍은 지체 없이 곧바로 휘둘러졌다.

변태의 목적인 추격 임무를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무, 무슨!!”

그 대상이란 당연히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제는 아예 등까지 보이며 도주 중인 광휘의 주인, 크로아티 에르나르 단 하나로.

갑작스레 휘어져 들어오는 채찍에 크로아티가 적잖이 당황했다.

지이잉!

이에 일단은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올리는 그였다.

워낙 급한 상황이다 보니 가장 익숙한 수를 꺼내 든 것이다.

쿠과과과과과!!

하나, 이 선택은 명백한 실수였다.

오러 블레이드여서는 안 됐다.

단순히 오러 블레이드만으로 대항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형태가 달라졌다 한들 그 힘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그 위력 그대로 크로아티를 덮쳐 들어갔다.

“크허억!!”

대항을 위해서는 빛이 필요했다.

심지어 그냥 빛도 아닌 유형화된 빛이, 아주 절실하게.

그러나 지금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크로아티의 것이라고는 하나 당장 불러낼 여력도, 그럴 만한 여유도 없는 것이다.

동료는 물론이거니와 애써 모아 둔 빛까지 내팽개치고 도주를 선택한 대가라고 볼 수 있었다.

결국, 비겁의 대가를 온몸으로 받아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크로아티였다.

털썩.

“쿨럭, 끄르륵…….”

크로아티가 끝내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연신 피를 토해 냈다.

끊어진 내장 조각마저 드문드문 보이는 검붉은 피였다.

저벅저벅.

그런 크로아티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완전히 무력화된 그였다.

따라서 더는 서두를 필요조차 없었다.

“우웨엑! 쿨럭, 쿨럭, 안 돼…….”

스릉.

“끄르륵, 난 대로만 제국의 쿨럭, 백작…… 이다.”

그렇게 다가가서는 남은 수순을 밟아 갔다.

나와 크로아티 사이에 남은 수순이란 어차피 하나밖에 없었다.

“대륙법에 의거 항복한 귀족은……, 우웨엑! 쿨럭, 신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뭐, 오다가다 들어 본 것 같기는 하네. 그런데 내가 그걸 왜 지켜야 하지?”

“네놈도 귀족, 끄륵, 이라면 당연히…….”

“나도 귀족이기는 해. 분명 그렇긴 한데, 어차피 여긴 지금 우리 둘뿐이야. 내가 그걸 굳이 지켜야 할 이유가 없어. 감히 침략으로도 모자라 내 사람들까지 건든 네놈에게는 특히나.”

“쿨럭, 쿨럭. 귀족의 명예를 생각해서…….”

“방금 그 명예란 걸 스스로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지 않았나?”

“그, 그건…….”

“차라리 입을 열지 말고 조용히 받아들여라. 그럼 최소한 네가 찾는 그 명예란 것도 더는 떨어지지 않을 거다.”

“안 돼. 끄르륵, 난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지이잉!

“안 돼, 안 된단 말이다. 쿨럭, 쿨럭. 제발 멈춰.”

슈아악~!

“아, 안 돼, 제발…….”

서걱!!

남은 수순의 진행 역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크로아티가 애걸복걸하든 말든 거침없이 이어가면 그만이었다.

툭~ 데구르르.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내 손으로 직접, 혹여라도 좀비처럼 부활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후우……, 일단은 끝인가.”

나아가 이것으로 전투는 사실상 끝이라고 봐도 좋았다.

비단 오늘 전투뿐 아니라 리브나로 백작성에서 펼쳐진 전투 전체가 말이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크로아티의 목, 뒤편에 널브러져 있는 소드마스터의 시체, 그리고 지금 막 제압이 끝난 나머지 하나의 소드마스터 등이 그 방증이었다.

물론 아직 수만의 병력이 남아 있기는 하나, 저들은 딱히 신경 쓸 계제가 못됐다.

어차피 입김 한 번 불면 와르르 무너질 모래성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것으로 슈라우드가 맞이했던 첫 번째 위기를 적절히 매듭지은 셈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군단장님.”

“그래, 내가 좀 고생하기는 했어. 무릎 꿇은 채로 애타게 나만 찾고 있을 우리 매제 걱정에 진짜 미친 듯이 날아왔거든.”

그때 소드마스터 제압을 마친 다이너가 다가왔다.

“하아, 제가 뭘 또 그렇게까지 했다고…….”

“그럼 아니야? 나 안 기다렸어?”

“이 양반 또 시작이시네. 백작성을 우직하고 굳건하게 지키고 서서 군단장님을 기다렸다, 뭐 이런 좋은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우직하고 굳건하게 지키고 서서? 정말?”

투욱.

“헉!”

철푸덕.

“우리 매제 참 잘도 지키고 서 있었구만.”

검면으로 오금을 툭 건드린 것뿐이었다.

한데, 다이너는 고작 이 정도에도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인 것이다.

“아니,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어떻게 버티던 중인데요!”

“그러게 누가 없는 얘기 지어내래?”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양반을 주군으로 둬서는……. 끄으으읍!”

“됐어. 무리하지 말고 앉은 김에 그냥 쉬어.”

“쉬긴 뭘 쉽니까? 전장 정리며 뭐며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산더민데.”

다이너는 다시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그의 말마따나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남은 병력을 정리하는 일만 해도 만만치는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고 그냥 쉬라고. 오늘 이후로는 아마 훨씬 힘들어질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런 다이너를 만류했다.

다이너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여기서 억지로 버티려 해 봤자 괜히 몸에 무리만 갈 뿐이었다.

차라리 지금은 쉬면서 몸을 제대로 추스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역시, 아직 끝은 멀었다고 봐야겠죠?”

“그래, 분명 더 크게 휘몰아쳐 올 거야. 이렇게 피해를 봤어도 제국은 여전히 굳건하니까. 반면 우리는 이번에 입은 손실을 만회하는 것조차 버거울 테고.”

이번 전투의 결말은 분명 승리였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제국과의 전쟁 전체로 따졌을 때는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었다.

제국은 여전히 굳건한 반면, 슈라우드는 연이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으니까.

기초적인 국력 차이가 그만큼 압도적인 것이다.

“그러니 괜히 이런 데서 무리해 봤자 좋을 것 없어. 차라리 쉴 수 있을 때는 그냥 푹 쉬어. 오늘만큼은 약골인 우리 매제 사정 좀 봐 줄라니까.”

“아, 쫌…….”

“그럼 적당히 쉬다가 먼저 성으로 들어가 있어. 나도 여기 대강 정리하고 금방 갈 테니.”

그렇기에 나만큼은 더더욱 쉴 수 없었다.

열세인 슈라우드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이 길의 끝에서 내 사람들과 함께 웃음 짓기 위해서라도 나만큼은 단 한 순간조차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것이다.

하여 힘 풀린 다이너를 남겨 둔 채 나는 다시금 전장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늘 그래 왔듯 다시 한번 모든 것을 풀어냈다.

내 사람들과 슈라우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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