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장: 마음과 폭주
“버텨라! 곧 라이 경께서 오실 거다!”
“죽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그러니까 무조건 버텨!”
바비와 레몬드의 외침이 쉼 없이 들려왔다.
아군에 대한 격려의 외침이었다.
이에 그리핀 군단을 필두로 한 슈라우드 군의 결기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러고는 몰려드는 제국군의 일파를 단숨에 잠재워 버렸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러나 센트럼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 결기,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단 센트럼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짐작하는 사실이었다.
외침만큼이나, 아니 외침 그 이상으로 제국군의 파도 또한 쉼 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예정이고 말이다.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외성은 이미 함락된 지 오래였으며, 지금은 내성 성문까지 뚫린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쏟아져 들어오는 제국군을 성문 안쪽에서 억지로 막아 내는 중이었다.
하나, 이곳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애초에 전력 면에서 3배 이상 월등한 제국군을 성벽의 이점과 그리핀 군단의 맹활약으로 커버하던 형국이었다.
한데, 그런 형국이 전부 헝클어지고 말았다.
성문이 뚫리며 성벽은 무용지물이 됐고, 활약하던 그리핀 군단은 발목이 붙잡힌 것이다.
“크엑! 크르르, 빛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흐아으으……, 광휘에 맞서는 것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
“제국의 광휘를 위하여!!”
모든 것이 미친 좀비 놈들의 출현과 함께였다.
더러운 빛이 만들어 낸 거지 같은 놈들로 인해 전장이 요동쳤다.
광휘의 군단 놈들은 머리나 심장을 깨부수지 않는 이상 죽지를 않았다.
죽지 않고 일어나 그리핀 군단에 미친 돌격을 감행했다.
대놓고 몸으로 하는 돌격이었다.
아무리 그리핀 군단이라 한들 쉬이 처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슈아악~ 스각!
“큽!”
그렇다면 마스터 급 실력자들이 뭔가를 해 줘야 했다.
하지만 실력자들의 상황은 그보다 훨씬 좋지 못했다.
당장 다이너의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빛을 내뿜는 크로아티 에르나르에 밀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대지의 힘으로 어찌어찌 버텨 나가고는 있으나, 그저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고 봐야 했다.
파지지직!!
센트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육체적인 부담은 덜하기에 주변을 둘러볼 정도는 되지만, 그게 다였다.
그 역시 미친 듯이 뇌전을 흩뿌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칫.”
센트럼의 뇌전을 경시하지 못한 제국의 소드마스터 하나가 뒤로 물러났다.
두 명의 소드마스터 중 하나를 그가 묶어 두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슈슈슛~!!
콰직! 파각! 콰각!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나머지 소드마스터 하나를 묶어 두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활약이라 할 수 있고 말이다.
구웅!
구우웅!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활약을 가능케 하는 구심점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베로카.
그녀가 신기에 가까운 마력 컨트롤 능력으로 두 소드마스터를 번갈아 붙잡는 중이었다.
이런 그녀의 구속 덕분에 센트럼과 엘프들의 타겟팅 설정이 가능했다.
아니었다면 두 명의 소드마스터를 묶어 두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
파앗!
파밧!
문제는 이것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소드마스터들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 조합의 구심점이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기회가 날 때마다 베로카를 노리고 짓쳐 드는 두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뇌전과 정령의 화살이 방어벽을 치고는 있으나, 기본적인 힘에서 조금씩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르륵.
무엇보다 베로카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소드마스터의 움직임을 마력으로 따라잡기 위해서는 극한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베로카는 이런 집중력을 무려 두 명의 소드마스터에게 발휘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희대의 천재라지만 이는 경지의 범주 자체를 벗어난 활약.
당연히 몸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충혈된 눈, 쉬지 않고 줄줄 흘러나오는 코피가 그 방증이었다.
“…….”
그럼에도 베로카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줄줄 흘러나오는 코피는 염두에 두지조차 않은 채 미친 듯한 집중력을 발휘할 뿐이었다.
슈라우드 군이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사실상 그녀의 활약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언제까지고 이와 같은 균형이 유지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구심점인 베로카의 상태가 지나치게 불안정했으며, 이 불안정성이 급속도로 불어나는 중이었다.
비틀.
이윽고 한계에 도달했다.
베로카가 흔들렸다.
파앗!
소드마스터 정도 되는 실력자가 이를 놓칠 리 만무했다.
엘프들의 화살을 가볍게 흘려 낸 소드마스터 하나가 기회를 포착하고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
센트럼이 커버해 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짓쳐 들기 시작한 소드마스터는 흩뿌려진 뇌전을 이미 통과해 버린 뒤였다.
“……앱솔루트 배리어.”
휘청거리던 베로카가 재빨리 정신을 다잡았다.
그러고는 방어 마법을 펼쳐 내는 데 성공했다.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선보인 가히 엄청난 숙련도와 마력 컨트롤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부족이야.’
하지만 마법을 시전한 베로카도, 짓쳐 드는 소드마스터도, 그리고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센트럼도 알고 있었다.
역부족이었다.
소드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다급히 펼쳐 낸 4서클 방어 마법 하나로 막아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콰지직……, 콰창!!
결과는 금세 드러났다.
기적과도 같은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그대로, 배리어가 와장창 깨져 나갔을 뿐.
지이잉!
당연히 베로카가 무방비로 노출됐다.
배리어를 박살 낸 오러 블레이드가 그녀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레이트…….”
그래도 베로카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메모라이즈 마법까지 동원하려는 그녀였다.
“부질없는 짓.”
하나,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드마스터의 읊조림대로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나 바로 옆에서 이 상황을 전부 눈에 담고 있는 센트럼은 더더욱.
쿠우우우웅~!!
그래서였다.
센트럼의 마력이 폭발할 듯 터져 나온 것은.
그의 5개 서클이 모두 붕괴 직전까지 동원된 결과로서 말이다.
화악!
비단 마력에서 그치지도 않았다.
마력과 더불어 센트럼의 육신 또한 함께 움직였다.
짓쳐 드는 소드마스터의 검과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는 베로카의 사이로.
베로카만을 바라보면서.
파지지지직!!
터질 듯 끌어 올린 마력을 등 뒤로 일거에 폭사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의 뇌전 단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와락!
그럼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아카데미에서의 그날 이후, 맹세한 센트럼이었다.
베로카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 내겠다고.
절대로 아파하는 일 없도록 만들겠다고.
지난 10년, 센트럼을 이끌어 온 단 하나의 명제였다.
그리고 오늘, 이 맹세와 명제에 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로카를 끌어안았다.
“……실드.”
물론 센트럼도 알았다.
베로카는 그에게 딱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센트럼은 그저 라이오넬의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베로카의 답신을 바라고 한 맹세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베로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처럼 그녀를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것만으로도 센트럼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답신이고 보답이었다.
쿠과과과과…… 콰직!
서걱!!
오러 블레이드가 가르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화끈한 감각에도 센트럼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남겨질 베로카에 대한 걱정, 오직 그뿐이었다.
“쿨럭, 괜…… 찮아요?”
“아…….”
“난 쿨럭, 괜찮아요, 베로카.”
“아아…….”
“그러니까, 크륵, 절대…… 로 아프지 마요. 나 때문에 쿨럭, 아파하지도…… 말고.”
이런 그의 마음을 껴안은 베로카에게 전했다.
오직 그녀가 아파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부탁…… 이에요, 베로카.”
“안 돼…….”
“부디…….”
“안 돼, 센트럼. 안 돼.”
“부디…… 행복하게…….”
“안 돼! 안 된다고! 센트럼, 안 돼! 제발 안 돼!!”
그렇게 베로카의 품에 안긴 채였다.
맹세가 향하는 이의 품에 안겨 센트럼은 눈을 감았다.
한없이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게 얼마든 베로카에게는 영겁과도 같았으니까.
센트럼이 그녀를 끌어안은 뒤의 시간은 분명 그러했다.
울컥울컥.
그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피만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음을 인지시켜 줄 뿐이었다.
물론 이것이 센트럼의 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등에서 쏟아져 나온 이것이 베로카의 두 손을 흠뻑 적시고 있음 역시도.
“아…….”
이때부터였다.
손이 흠뻑 젖었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베로카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물들어 버린 그녀의 손, 그럼에도 여전히 피를 쏟아 내는 센트럼의 등, 베로카를 끌어안은 채로 축 늘어져 버린 그의 몸까지.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센트럼에게로 집중된 상태였다.
“…….”
그래서였다.
이런 베로카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넘어간 것은.
센트럼을 이렇게 만든 자, 그리고 그자를 도운 것들.
자연스레 이 비현실적인 상황의 원흉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전장에 피어난 마법사의 순애보, 뭐 이런 것인가? 이거 참, 마치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군.”
센트럼을 벤 원흉은 엘프들의 화살을 피해 다시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당장의 위기는 센트럼 덕분에 넘긴 셈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눈앞의 위기에 불과했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고 봐야 했다.
정확히는 위기를 넘어선 절망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추가 센트럼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원흉의 비아냥거림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는 게 어떻겠나? 그대 정도면 관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중히 쓰실 수도 있을 듯한데.”
아무리 따져 봐도 이 순간 남아 있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이성은 분명 그런 답을 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차라리 항복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병사들의 목숨 정도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우우웅~
평소의 그녀라면 분명 여기서 다른 판단을 내렸을 터였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기에 마탑에서 얼음 마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그녀라면 말이다.
구우우웅~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베로카가 내린 판단은 그녀답지 못했다.
이성이 넘쳐 흐르던 그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쿠아아아아아~!
이성?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센트럼이 쓰러진 순간부터 이성 같은 것은 그녀의 관심사에서 완전히 소멸됐다.
그저 미친 듯이 돌릴 뿐이었다.
센트럼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 센트럼이 그랬던 것 이상으로.
경지의 끝자락에 다다른 5개의 서클을 미친 듯이 돌리기 시작한 베로카였다.
쩌저적.
그렇지 않아도 베로카의 서클은 앞선 전투로 인해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하나,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터져 나가든 말든 상관없이 미친 듯이 돌리기만 하는 그녀였다.
탄탄하기 그지없는 5서클 마스터의 서클에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자폭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나름 실력 있는 마법사치고는 지나치게 미련하군.”
원흉의 말대로였다.
이건 자폭이나 다름없었다.
그 방증으로 현재 베로카의 심장에는 극심한 통증이 뒤따르고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물론 이 또한 상관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스윽.
피범벅이 된 센트럼을 묵묵히 한 번 더 눈에 담을 뿐이었다.
어차피 센트럼이 쓰러진 그 순간부터 결론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쿠과과과과과~!!
베로카의 마력이 폭주했다.
무려 5서클 마스터의, 그것도 역대급 천재라 불리는 이의 폭주였다.
전장 한복판에 마력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눈에 시뻘건 광망을 띄운 베로카의 폭주가.
센트럼의 원수들을 향해서.
* * *
“크읍…….”
가까스로 크로아티 에르나르의 공격을 막아 내던 다이너였다.
그런 그가 이윽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만 것이다.
현재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혈선이 눈에 띄었다.
비록 생채기 수준의 혈선이라고는 하나, 이 혈선을 그어 낸 것은 무려 오러 블레이드.
따라서 마냥 가벼운 상처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이상했다.
크로아티가 내지르는 검의 속도는 분명 빨랐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어렵긴 해도 집중한다면 무리 없이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데, 그러질 못했다.
그러질 못하고 여기저기 내줄 수밖에 없었다.
다이너의 흐름이 자꾸만 뚝뚝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움직임이 크로아티에게 전부 읽히는 것처럼 말이다.
저벅저벅.
“다이너 브란부르크라고 했던가?”
그렇게 무릎 꿇은 다이너를 향해 크로아티가 다가왔다.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였다.
“실력이 소문 이상이군. 기개도 남다르고 말이야.”
“…….”
“아직 30도 안 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아까워. 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었을 텐데.”
내용만 놓고 보면 칭찬에 가까웠다.
실력이 뛰어나다느니, 기개가 남다르다느니, 재능이 아깝다느니 말은 참 뻔지르르했으니까.
“지랄하네.”
하지만 받아들이는 다이너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건 그냥 조롱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대놓고 하는 조롱보다 더 기분 더러웠다.
입가에 곁들여진 여유로운 미소까지 더한다면 더더욱.
“지랄이라…….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귀족다운 교양은 아직 배우질 못한 모양이야. 입이 좀 거칠어.”
“남이야 입이 거칠든 말든. 뭣보다, 교양이라는 게 저 좀비들의 우두머리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나?”
“이런, 좀비라니? 오해했군. 저들은 그저 정의로운 빛을 숭상하는 제국의 숭고한 전사들일 뿐인 것을.”
“정의? 숭고? 남의 나라에 지들 멋대로 침략이나 일삼는 주제에 지랄도 풍년이네.”
“흐음……, 이거야 원.”
물론 다이너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름 개김성 충만했던 성격이 그리핀 군단과 동고동락하며 한층 더 짙어진 상태였다.
덕분에 말발로는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 그대가 이리 뻗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닐 텐데?”
문제는 주변 상황이었다.
말발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슈라우드 군의 절망적인 상황.
“설마 저 마법사를 믿는 것인가?”
크로아티가 베로카를 가리켰다.
그녀는 현재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중이었다.
센트럼이 등에 칼을 맞고 쓰러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무려 소드마스터 둘을 묶어 두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마력이 소드마스터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동시에 압도적인 마력탄 세례를 퍼부었다.
마치 센트럼의 뇌전을 연상시키는 듯한 위력과 모습으로.
따라서 자칫 삐끗했다가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닐 테지? 제 목숨 불살라 가며 폭주하는 것도 몰라볼 만큼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다이너도 알고 있었다.
베로카의 이런 활약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심지라고 봐야 했다.
스스로를 재물 삼아 활활 타오르지만, 다 타고 나면 재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심지.
따라서 저 상태로 오래가는 것은 요원했다.
머지않아 모든 힘을 소진한 베로카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터였다.
더불어 소드마스터를 처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소드마스터가 지금처럼 무리하지 않고 살짝 시간만 끌어 줘도 충분했다.
결국, 폭주의 결말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
“하긴, 저리 눈에 훤한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겠지.”
결말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였다.
베로카의 눈, 코, 입, 귀 등 보이는 구멍 전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베로카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슈라우드 군 전체의 운명까지.
정말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꽈악.
“왜? 아직도 더 해보려는 건가?”
“크읍……!”
“쯧쯧쯧, 애쓰지 말지 그러나? 자네는 할 만큼 했어.”
“개소리 집어치워.”
그럼에도 다이너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생각조차 않고 있는 그였다.
하여 어떻게든 다시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단지, 그의 의지를 한계에 다다른 몸이 따라 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는 안타까워서 못 봐주겠군. 할 수 없지. 어차피 전향 의지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는 듯하니, 이쯤 해서 내가 직접 끝내 주는 수밖에.”
스릉.
이어지는 상황 역시 심히 부정적이었다.
크로아티가 늘어뜨렸던 검을 들어 올렸다.
다이너를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다이너로서는 여기에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안 돼!”
“부군단장!!”
뒤편에서 바비와 레몬드의 외침이 들려왔다.
분함과 답답함 안타까움 등의 감정으로 가득 찬 외침이었다.
하나, 이 역시 별다른 의미는 갖지 못했다.
어떤 감정으로 그득하든 결국 물리적인 힘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저 허망한 외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잘 가도록.”
“젠장.”
이윽고 끝이 도래하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하는 다이너였지만, 소용이 없을 듯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굽혀진 무릎은 펴질 생각을 않았다.
이대로면 정말 무릎 꿇은 채 당하는 비참한 죽음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카오오오~!!”
전장을 가득 메우는 어떤 포효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
다이너는 물론이거니와 슈라우드 군 전체에 아주 익숙하기 그지없는 포효였다.
동시에 신호이기도 했다.
한판 뒤집기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
슈우우~
쿠과과광!!
곧이어 전장 한복판에 한줄기 어둠이 떨어져 내렸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어둠의 것을 탐하는 비열한 광휘의 머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