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장: 라이오넬의 대항마
“피해가 얼마나 된다고?”
“……3만 중 1만 9천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5천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전멸이나 다름없군.”
황제 아이단이 작게 읊조리듯 말했다.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목소리.
하지만 카일 이반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아이단은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마스터 급은?”
“그것이…….”
“말해.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총사령관인 휘센 후작과 기르단 백작, 지바인 백작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총 일곱이 가서 절반인 셋이 죽었다는 건가? 그것도 정령 소드마스터 하나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폐하.”
그렇기에 카일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하나,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야속했다.
슈라우드로 원정을 떠난 제국군이 참패했다.
아이단의 말마따나 전멸이나 다름없을 만큼 처참하게.
그리고 카일은 이것을 아이단에게 소상히 보고 올려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황제의 분노를 돋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슈라우드는?”
“파악된 바로는 대략 1천 정도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스터 급에는……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
“…….”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제국은 황제 직속 군단과 마스터 급 실력자 절반이 갈려 나갔다.
반면, 슈라우드는 사실상 피해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상자 숫자도 숫자지만, 특히 마스터 급 실력자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점이 주요했다.
이는 제국의 원정 목표를 잘근잘근 짓밟아 버리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라이오넬의 등장 이후 슈라우드는 그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마스터 급 실력자의 수였다.
여타 왕국에는 보통 둘에서 셋 정도밖에 없는 마스터가 현재 슈라우드에는 무려 다섯이나 존재했다.
정령 소드마스터 브란부르크 부자, 정체불명의 카밀라, 6서클 대마법사 막시무스 슈러그혼, 그리고 라이오넬 라인하트.
일반 왕국 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인 것이다.
더욱이 여기서 끝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자칫 제국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하여 아이단은 이번 기회에 그 싹을 짓밟고자 했었다.
슈라우드의 마스터 급들을 몰살시키거나 혹은 그 수를 대폭 줄여 놓음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 카일이 보고를 올리는 바와 같았다.
실패도 이런 실패가 또 없었다.
물리적 손해는 물론이거니와 절대적 패권 국가로서의 체면까지 잔뜩 구긴 대실패였다.
“전장에 태풍을 몰고 나타났다는 그 엘프, 루난 상단에서 놓쳤던 하이엘프가 확실한가?”
“그런 듯합니다. 다스 백작이 직접 얼굴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흠, 그 하이엘프의 정령력이 자연 재해급 태풍을 불러일으킬 만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역시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실력이 대폭 향상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라이오넬 그자가 연관되어 있는지라…….”
결국, 핵심은 라이오넬이었다.
이쯤 되면 그에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봐야 했다.
재능을 폭발시키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 슈라우드의 마스터 급 실력자들 전부가 그와 연관돼 있는 것이다.
비단 위의 다섯만이 아니었다.
소드마스터를 묶어 둔 마법 콤비 센트럼과 베로카부터 전장을 찢어 버린 하이엘프 아인한드라까지.
숨겨져 있던, 그리하여 제국에게 참패를 안겨 준 요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라이오넬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라이오넬, 라이오넬이란 말이지.”
따라서 라이오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리가 필요했다.
지금 당장.
이대로 더 놔뒀다가는 얼마나 더 많은 힘을 키워 낼지 알 수 없었다.
“직접 가는 건 어렵겠소?”
이에 아이단이 고개를 돌렸다.
현재 이곳 황제 집무실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을 향해서였다.
“아무래도 공작이 직접 가는 편이 가장 쉬울 듯한데.”
황제인 아이단으로부터 존중을 받으며 공작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인물.
그런 인물은 제국을 통틀어 단 한 명, 가이덴 드라이슬러뿐이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이자 대륙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바로 그 사내 말이다.
그간 라이오넬의 행보가 어떠하고, 또 어떤 기적을 써 내려왔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가이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터였다.
이는 황제가 인정하고 제국이 인정하며, 나아가 대륙 전체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가이덴이라는 존재의 힘은 그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렵습니다, 폐하.”
그럼에도 가이덴은 고개를 저었다.
라이오넬에 대한 직접 처리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자는 그리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면 폐하의 경호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이것이 라이오넬이 두려워서일 리는 만무했다.
이유는 아이단의 경호에 있었다.
평소에도 웬만해서는 아이단 곁을 비우지 않는 가이덴이었다.
한데, 슈라우드와 전면전을 앞둔 현재는 더더욱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라이오넬이 길들인 그리핀 때문이었다.
가이덴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황궁으로 날아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 알겠소, 하면 약간은 돌아가는 수밖에.”
아이단이라고 이를 모르지 않았다.
하여 가이덴의 거절을 별말 없이 수용하는 그였다.
어차피 가이덴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에르나르 백작은? 이제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이단의 시선이 다시금 카일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 다른 방법이란 것의 현황을 물었다.
“지금 트레나 요새를 공략 중입니다. 아마 오늘 중으로 보고가 올라올 겁니다.”
“좋아, 백작에게 전해. 그곳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곧장 슈라우드로 향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크로아티 에르나르 백작.
제국이 보유한 라이오넬의 대항마였다.
그런 크로아티를 슈라우드로 보내는 아이단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명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로 슈라우드는 제국의 적임을 공식 선포하도록.”
당연히 그 혼자만 보낼 리는 없었다.
슈라우드 왕국을 향한 로만 제국의 선전포고가 함께였다.
즉, 대륙의 패권을 움켜쥔 거대한 힘이 오롯이 슈라우드를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아…….”
라투이드 왕국의 근위기사단장 테이튼 드록스터 후작이 탄식을 흘렸다.
왕국의 운명이 걸린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탄식이었다.
현재 그의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탄식을 금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기 때문이다.
“크아악!!”
“안 돼! 커헉!”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라투이드 왕국의 병력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참한 학살.
“미친…….”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상대는 무려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제국군이었으니까.
따라서 지금 상황, 절망스럽기는 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분명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것이 압도적인 실력 차로 인한 학살이었다면 말이다.
“오, 오지 마! 오지 말…… 크헉!”
“각하 사, 살려…… 커헉!”
현재 이곳 트레나 요새를 지키는 병력은 라투이드 왕국의 최정예라고 봐도 좋았다.
근위 기사단과 왕도 수비병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최정예 병력이 하나같이 무언가에 잔뜩 질려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전투는 벌여 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썰려 나가는 중이었다.
“미친 좀비 같은 놈들…….”
소드마스터인 테이튼 역시도 심정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친 듯 덤벼드는 제국군은 마치 좀비를 연상시켰다.
제 몸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어떤 상처를 입든 신경 쓰지 않고 개처럼 달려들기만 할 뿐이었다.
칼에 복부를 관통당하고도 웃으며 달려드는 말 그대로 미친놈들이었다.
“이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쳐? 저런 광경을 보고도 지나치다는 말이 나오나?”
“저 광경이 어떻길래 그러시는지?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넘치는 애국심과 충성심뿐인데 말이지요.”
원래라면 이런 상황에 테이튼 같은 실력자가 나서야 했다.
그리하여 질릴 대로 질려 버린 병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미친 좀비들의 우두머리라는 건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좀비들의 우두머리 때문이었다.
로만 제국의 백작 크로아티 에르나르.
제국의 소드마스터이자 한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이었다.
테이튼이 방금 좀비라 칭한 저 미친놈들로 구성된 군단을 말이다.
“저희에게는 광휘의 군단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습니다. 기왕이면 그 좋은 이름으로 불러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광휘의 군단? 남의 나라 내전에 개입해서 이런 미친 짓거리나 벌이는 주제에 이름만 거창하구나. 차라리 광신의 군단 어떻겠나? 그러면 네놈들 하는 꼬락서니와 훨씬 더 어울릴 듯한데.”
“광신의 군단이라, 어쩌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저희는 제국을 위해 언제든 이 한 몸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미친놈…….”
이놈 또한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연했다.
미쳐 버린 좀비들의 수장이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뭐라 하셔도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패자의 넋두리에 불과하게 될 테니.”
문제는 이놈의 실력 또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라는 점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지금껏 직접 검을 맞대 본 결과, 분명 경지 자체에 큰 차이는 없었다.
적어도 정면충돌 시 기본적인 힘에서 밀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충돌을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이상하리만치 불리해지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급격한 속도로.
“슬슬 주변 정리도 끝나 가고 있군요. 그럼 이제 우리도 끝내 보도록 하지요.”
“…….”
“자, 다시 갑니다.”
잠시 끊겼던 두 소드마스터의 대결이었다.
그것이 크로아티의 쇄도로 재개됐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오러 블레이드 간의 충돌.
슈악~!
콰가강!
‘분명 할 만해.’
이 충돌에서 테이튼이 다시 한번 느낀 점은 분명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쾌검으로 경지에 오른 테이튼임에도 불구하고 힘에서 딱히 밀리지 않았다.
이대로만 이어진다면 최소한 금방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스악~ 스아악!
카각! 카가각!
‘……그런데 대체 왜?’
하지만 이 자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충돌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급속하게 축소됐다.
여전히 힘이 달리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손해만 보는 테이튼이었다.
심지어 충돌 시마다 쌓이는 이 손해의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왜 전부 읽히는 느낌이지? 같은 경지에서 이런 게 가능하다고?’
그랬다.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의 움직임이 전부 읽히는 느낌이었다.
그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약점들이 크로아티에 의해 핀포인트로 공략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수가 하수를 상대할 때 맥을 뚝뚝 끊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로 인해 동급의 대결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양상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대체 어떻게…….’
슈아악~!
“헛……!”
이윽고 파국이 찾아왔다.
철저히 약점만을 공략당하며 축적되어 가던 손해가 끝끝내 터지고 말았다.
수평으로 베어져 들어오는 크로아티의 검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서걱!!
“……!!”
결국, 그 검이 테이튼의 목젖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신속하고 깔끔하게.
“크륵, 크르륵.”
털썩.
더는 버티려야 버틸 도리가 없었다.
테이튼의 몸이 흐려지는 시야와 함께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 안 되는…….’
그러고는 이내 의식마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광신도 좀비 떼에 몰락한 라투이드 왕국의 미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