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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6화 (157/200)

93장: 대격변의 신호탄(2)

스릉.

사아아~

카밀라가 심연을 빼 들었다.

심연이 뿜어내는 어둠과 함께라면 카밀라는 뱀파이어 퀸 본연의 힘을 북방 극지대 밖에서도 끌어낼 수 있었다.

지난 슈라우드 왕궁에서의 활약도 마찬가지였다.

심연과의 공명으로 한껏 증폭된 피의 힘.

카밀라는 이 힘을 마음껏 발산했고, 그럼으로써 제국의 소드마스터를 패퇴시켰다.

“카밀라.”

이곳 나로움 평원에서도 그녀에게 맡겨진 역할은 전과 동일했다.

제국의 소드마스터를 처리하는 것.

이 역할 자체만 놓고 보면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심연과 함께라면 소드마스터 하나쯤은 거뜬했으니까.

심지어 그 상대가 이미 한 번 꺾어 본 상대라면 더더욱.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기르단 백작이라는 자였다.

왕궁에서 카밀라에게 패퇴했던 그 소드마스터.

그자가 이곳에서도 카밀라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이대로라면 오늘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달성 또한 어렵지 않을 터였다.

“확실히 자네 말대로야. 음습하고 요사스러워.”

“역시 지바인 자네에게도 느껴지는 모양이군.”

“저 정도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나? 풍기는 기운은 물론이거니와 생긴 것부터가 완전히 요물인데.”

문제는 이대로가 아니라는 점이었지만.

기르단이라는 자가 혼자서는 안 되겠는지 친구를 데려왔다.

아마 지바인이라 불리는 이 친구 또한 소드마스터일 터였다.

아직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유추 가능했다.

그리고 이 말인즉슨 카밀라 혼자 소드마스터 둘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

어려웠다.

솔직히 어려운 정도를 넘어 불가능이라고 봐야 했다.

카밀라의 힘은 소드마스터 하나에게 약간 우위를 점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조심하게. 특히 저것이 내뿜는 핏빛 강기에는 강력한 독성이 배어 있어. 살짝이라도 스쳤다가는 중독 때문에 점점 힘을 쓰기 어려워질 거야.”

“알겠네. 주의하지.”

지이잉!

지이잉!

심지어 이들은 방심조차 하지 않았다.

카밀라에 대한 주의사항을 공유하며 조심스럽게 검을 겨누는 두 소드마스터였다.

그런 이들의 검에는 처음부터 오러 블레이드가 덧씌워진 상태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지.”

파앗!

이내 기르단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가 먼저 카밀라를 향해 짓쳐 들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카밀라 또한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그녀의 전매특허인 혈강을 꺼내 든 것이다.

그러고는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에 정면으로 맞서 갔다.

카강! 콰캉! 카가각!

다만, 그 구도는 일전의 대결과 정반대였다.

왕궁에서는 카밀라가 밀어붙이는 양상이었다면, 이번에는 다소 밀리는 양상이 펼쳐졌다.

기르단의 검격이 한 방 한 방 이어질 때마다 반걸음에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는 카밀라였다.

힐끗.

물론 그 원인이 기르단에 있지는 않았다.

기르단의 실력은 지난 대결 때와 다름없었다.

기르단이 데리고 온 친구가 그 이유였다.

지바인이라는 소드마스터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밀라로서는 제대로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자칫 틈이라도 내줬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인 것이다.

슈아악~!

“…….”

하지만 계속 이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다가는 눈앞의 기르단에게 낭패를 보고 말 터.

어떤 식으로든 양상을 비틀 필요가 있었다.

손해가 더 누적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촤라락~

콰과광!!

“으음.”

카밀라는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비틀기에 들어갔다.

기르단에게 온전히 힘을 쏟은 것이다.

그러자 둘 사이의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힘에서 밀린 기르단이 더는 짓쳐 들지 못하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하면 이제 카밀라가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할 차례였다.

파앗!

단, 그 전에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하나 존재했다.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던 또 다른 소드마스터, 지바인.

기르단에게 집중하며 생긴 카밀라의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명색이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런 틈을 놓칠 리 만무했다.

그가 곧바로 찌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르단을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이 장애물부터 우선 치우고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아아아~

촤르륵!

“……??”

한데, 카밀라는 이 절차를 무시했다.

편법 따위로 어찌저찌 건너뛴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냥 깔끔한 무시였다.

마치 지바인이라는 장애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하던 대로 기르단에 대한 공세에 몰두하는 그녀였다.

쐐애액!

당연히 지바인의 오러 블레이드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허공을 꿰뚫었다.

그에게 훤히 노출된 카밀라의 옆구리를 향해서.

이렇게 된 이상 카밀라의 낭패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목숨마저 위태로운 아주 심각한 낭패가 될 것이 자명했다.

구웅!

움찔.

“헛!”

다만, 이 낭패 또한 외부 개입의 부재를 전제로 했다.

그리고, 그래서였다.

낭패의 실현이 어그러진 것은.

쇄도해 들어가는 지바인을 향해 외부의 개입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마력이었다.

뜬금없이 등장한 어떤 마력이 지바인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제한했다.

그만큼 엄청난 밀도를 지닌 마력이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소드마스터를 묶어 버렸을 정도니까.

파지지지직!

“크읍……!”

단순한 구속에서 그치지 않았다.

곧이어 뇌전의 탄환이 지바인을 습격했다.

그리고 이 또한 앞선 마력과 같았다.

고작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마력탄 주제에 품고 있는 힘이 굉장했다.

무려 소드마스터로부터 고통 어린 신음을 끌어낸 것이다.

만약 검에 막히지 않고 지바인의 몸통을 직격했더라면,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무사치는 못했을 그런 위력이었다.

“흡!”

파지직…… 퍼엉!

결과적으로 이 기습이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마력 구속의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으며, 뇌전의 탄환은 방금 터져 나간 참이었다.

대신 이것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

카밀라를 향한 쇄도는 중단됐으며, 덕분에 그녀는 계속해서 기르단에 대한 공세를 펼쳐 갈 수 있었다.

또한, 지바인은 일정 시간 묶여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로브 차림의 두 마법사에게.

“네놈들…… 소로나 자작령을 무너뜨렸다는 그 마법 듀오구나.”

센트럼과 베로카였다.

이들이 카밀라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부터 두 사람에 맡겨진 임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스터 급 실력자들 간 대결에서 밀리는 쪽을 지원하는 것.

이 콤비라면 소드마스터 하나를 묶어 둘 수 있었다.

물론 역으로 꺾지는 못하겠으나, 잠깐 붙잡아 두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애초에 이 콤비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충분하기에 맡겨진 임무였다.

“그런데 이 정도 위력이라고? 분명 아직 5서클이라고 전달받았는데……?”

제국도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바이퍼 백작가의 몰락 과정에 있었던 두 사람의 활약이 전해진 것이다.

다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성장 속도가 경이롭기는 하나, 아직은 둘 다 5서클에 불과했다.

개중 센트럼은 이제 갓 다섯 번째 서클을 형성한 비기너였고 말이다.

강하기는 해도 마스터 급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제국의 평가였을 터.

따지고 보면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데, 지금 현장에서 실제로 드러난 바는 그렇지 못했다.

제국 정보부의 판단이 틀렸다.

센트럼과 베로카는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는 마법사들이었다.

그리하여 지바인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심어 준 두 사람이었다.

구웅.

당혹감 전파 시도는 당연히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바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베로카는 다시금 마력 구속을 시전했다.

휘릭~

“흥, 같은 수에 두 번 당해 줄 것 같나?”

물론 베로카의 컨트롤 능력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상대는 소드마스터였다.

지바인이 몸을 빼며 베로카의 마력을 가볍게 회피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아앗!

엄청난 속도였다.

같은 검사가 아니라면 눈으로 좇기조차 어려울 만큼.

그리고 센트럼과 베로카는 마법사였다.

이들의 능력으로 소드마스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능을 가졌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

해서 굳이 따라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그럴 필요 역시 없었다.

대신 센트럼이 뇌전을 난사했다.

지바인이 접근해 오는 길목 전체에, 빠져나올 틈 없이 촘촘하게.

파지지직!!

“큽……!”

이것이 소드마스터의 돌진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지바인은 짓쳐 드는 속도 그대로 돌파하려 했지만, 그리 쉽게 볼 위력이 아니었다.

그냥 몸으로 때우며 지나가려 들다가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몰랐다.

불가피하게 잠시나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구웅.

“칫!”

파밧.

이 잠깐의 멈칫함이면 충분했다.

베로카가 재차 마력 구속을 시전했다.

이에 지바인은 다시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잘못 묶였다가는 그가 낭패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파직! 파직!

구웅.

그 뒤로도 이와 같은 그림이 반복되었다.

접근하는 지바인과 이를 저지하는 마법 듀오.

뚫으려는 오러, 막으려는 뇌전과 마력의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다만 치열하기는 하되, 이 그림의 반복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든 뚫고자 하는 지바인 쪽으로 말이다.

촤라락~!

콰과광!!

“크으……!”

물론 그가 직접적인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의 동료인 기르단이 손해를 보고 있었다.

카밀라의 공세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생채기가 난 몇 군데는 독으로 인해 시꺼멓게 물들어 가는 중이었다.

“…….”

이대로 피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터.

다급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점점 더 심각하게 굳어져 가는 지바인의 표정이 그 방증이었다.

그렇게 균형추가 기울어진 채로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타닷!

지바인의 표정이 굳어지다 못해 일그러짐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 그가 드디어 승부수를 던졌다.

다시 한번 전력으로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이번에는 그 방향이 달랐다.

센트럼과 베로카 쪽이 아니었다.

그의 동료가 고초를 겪고 있는 쪽, 즉 카밀라에게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파지지지직!!

이에 센트럼이 곧장 뇌전의 탄환을 무더기로 쏘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바인의 반응이 앞서와 달랐다.

화아악~!

결심한 것으로 보였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센트럼의 뇌전들을 뚫고 가기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쇄도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 속도를 유지한 채 그대로 나아가는 지바인이었다.

지이잉!

콰지지지직!!!

이윽고 뇌전과 오러 블레이드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뇌전은 대부분 오러 블레이드의 힘에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센트럼의 뇌전은 평범한 뇌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센트럼의 자체적인 재능에 정령력까지 더해진 뇌전이었다.

오러 블레이드의 힘조차 전부를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파지지직.

“크윽……!”

이렇게 남은 뇌전이 검을 타고 올라가 지바인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지바인의 쇄도에 약간의 틈이 발생했다.

하면, 이제 베로카가 이 틈을 붙잡을 차례였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카밀라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오늘 전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 패턴이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베로카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생겨난 틈으로 지바인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 틈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미스틱 포그.”

전장 한복판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스터 급 실력자들의 공간.

현재 카밀라, 센트럼과 베로카, 그리고 제국의 두 소드마스터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이 공간에 새로운 것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나로움 평원의 오늘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현상 말이다.

스아아아아~

바로 안개였다.

베로카의 마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짙디짙은 안개.

이 안개는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투명하게 텅 비어 있던 이곳을 지극히 불투명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무슨……?”

스스스스.

이와 함께 몇 가지 요인들이 톱니바퀴 물리듯 얽혀 들어갔다.

뇌전의 영향으로 늦춰진 지바인의 쇄도.

중독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기르단과 옅어진 그의 감각.

짙은 안개 때문에 극도로 제한된 시야.

마지막으로 이 안개 속에서 자체적인 안개화까지 가능한 카밀라.

이것들을 전부 조합하면 도출되는 결과는 사실상 한 가지뿐이었다.

서걱!

푸확~

“커헉!! 크르르륵…….”

그어지는 목줄과 뿜어져 나오는 피, 그리고 지금부터 전장의 판도를 뒤흔들 어떤 죽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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