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5화 (156/200)

93장: 대격변의 신호탄

“그럴 겁니다, 후작 각하. 바르코스 요새에서는 제가 각하 옆에 설 입장이 못 됐으니까요.”

브라이튼 바르코스.

버팀목이 되어 줄 동지는 바로 이 북부 바르코스 후작령의 주인이었다.

그가 총사령관인 나를 대신해서 군 전체 지휘를 맡아 주기로 한 것이다.

후작이라면 맡기고도 남음이 있었다.

매해 반복되는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바르코스 요새를 지켜 온 세월만 족히 수십 년.

지휘에 있어서만큼은 슈라우드 제일이라 해도 무방했다.

이런 후작 덕분에 나도 후방 걱정 없이 오늘의 작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긴 그때는 채 성년도 안 된 자작가 꼬맹이 차남에 불과했지. 그랬던 꼬맹이가 지금은 이렇게 왕국 전체를 이끄는 중이고 말이야. 트윈 모가지를 땄을 때부터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작 10년 만에 이러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나 같은 늙은이들은 이제 어디 서라고?”

“어디 서긴 어디 섭니까? 그냥 영지에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계시면 라이 경이나 저 같은 젊은이들이 다 알아서 떠먹여 드릴 것을.”

바르코스 후작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나 또한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라이오넬 경은 몰라도 네가? 네놈 주제에?”

“아 거, 아들한테 주제라니요. 그리고 제가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이만하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들이구만.”

트윈 헤드 오우거 사냥 과정에서 함께 사선을 넘나든 동지, 제프너 바르코스 자작이었다.

후작의 아들이자 바르코스 가문의 장남인 그도 후작과 함께 온 것이다.

“어떻기는? 어딜 내놔도 빠지는 놈으로 보지. 다 늙어빠진 제 아비보다도 약골인 모자란 아들놈 아니더냐?”

“아버지만 그리 보십니다, 아버지만.”

이 둘의 사이는 여전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자지간이었다.

“이번만이라도 그냥 좀 영지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슬슬 무릎도 안 좋아지기 시작한 분이……. 에휴, 아버지 그놈의 똥고집 때문에 이 아들만 늙어 가는 거 알기나 하십니까?”

“모른다, 이놈아. 알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모자란 네놈 혼자 보냈다가 무슨 낭패를 보려고? 일 없다.”

따지고 보면 한 가문의 주인과 정통 후계자가 동시에 달려온 셈이었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부에서는 가망 없다 여기는 이 위험천만한 전장으로.

자칫 잘못하면 후작가 전체가 휘청일지도 모르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아아, 경에게 한 말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그냥 똥고집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의 한탄일 뿐이야. 어차피 왕명으로 묶어 뒀어도 끝끝내 달려오셨을 양반이거든.”

“허, 사돈 남 말 하지 말거라. 어차피 네놈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하나, 이들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위인들이 못 됐다.

그렇기에 북부의 방벽이라 불리는 이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전 젊지 않습니까? 아버지랑 다르게요. 젊으면 그래도 됩니다.”

“슬슬 50을 바라보는 놈이 퍽이나 젊구나. 또, 설령 젊다 해도 무슨 소용이냐? 어차피 제 아비만도 못한 약골인 것을.”

“그놈의 약골, 약골.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면 어디 가서 약골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봤자 나보다는 약하지 않더냐? 그럼 약골 맞지. 억울하면 네놈도 최상급에 오르거라. 그 전까지는 뭔 말을 가져다 붙여도 네놈은 약골일 뿐이야.”

“하아, 이거 서러워서 빨리 오르든지 해야지. 두고 보세요. 제가 최상급에 오르기만 하면 아주 그냥…….”

“시끄럽다. 그런 말은 일단 오르고 나서 하거라. 그건 그렇고.”

이렇게 정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부자지간의 짧은 대화가 마무리되고, 후작의 시선이 다시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시선에는 반대로 나를 향한 염려가 담겨 있었다.

“자네와 그리핀 군단이야말로 정말 괜찮겠나? 이 전투, 자네들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짜 둔 전략대로라면 이번 전투의 향방은 내 사람들과 그리핀 군단에 달려 있었다.

오롯이 우리의 활약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 막대한 영향력만큼이나 임무 난이도 역시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살짝만 삐끗해도 적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몰살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괜찮습니다, 각하. 응당 저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거니와, 따로 준비해 둔 바도 있으니까요.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기는 하지. 한데, 정말 자네가 말한 그 정도인가?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보니 솔직히 잘 상상이 안 되는군.”

“얼마를 상상하시든 그 이상을 보시게 될 겁니다.”

그러나 자신 있었다.

난이도가 어떠하든 승리를 쟁취할 자신이.

세간의 알량한 예상과 평가 따위는 오늘 송두리째 뒤집힐 예정이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좋아, 나도 전적으로 믿고 기다리겠네. 자네들이 우리 슈라우드에 가져다줄 찬란한 영광의 순간을.”

끄덕.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또한, 이는 비단 나만의 끄덕임으로 그치지 않았다.

내 뒤편에서도 함께였다.

이 전장의 한복판에 선 또 다른 부자이자, 아예 최전선으로 뛰쳐나갈 두 명의 소드마스터.

내가 거두고 꽃 피워 준 역대급 재능의 마법 콤비와 이 콤비의 막강한 스승.

오늘은 벌써부터 그 음습함을 한껏 뽐내고 있는 요망한 나의 권속.

오로지 내 등만을 보고 무작정 달려왔으며, 또 앞으로도 달려나갈 2,200의 군단원들까지.

지난 10년이 빚어낸 내 사람들 모두의 자신감이고 끄덕임이었다.

“자, 그럼.”

그러므로 여기서 사기를 더 끌어 올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나와 내 사람들의 사기는 최상이었다.

하나로 뭉쳐져 막대한 투기를 발산해 내고 있었다.

우리 모두의 적인 제국을 향해.

“더 기다릴 필요 없겠지?”

고오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내 사람들은 대답했다.

그들의 끓어오르는 눈빛과 넘실거리는 의지로.

“목표는 전방에 있는 황제의 주구들. 오늘 우리는 저 오만한 것들을 짓밟는다. 다시는 이 땅에 발도 들이지 못하도록 처절하고 철저하게.”

고오오오~!

“전군.”

그렇기에 나 또한 지체 없이 응답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사람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단 한 마디로.

“돌격.”

동시에 에펜시아 대륙 대격변의 신호탄이 될 단 한 마디로 말이다.

* * *

슈라우드 군이 겁을 상실했다.

감히 제국군을 향해 먼저 돌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전략을 펼치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돌격해 들어올 뿐이었다.

창과 방패 따위를 앞세우며 지극히 평범하게.

제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비웃음 나오는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륙에서 무적이라 일컬어지는 제국군이었다.

심지어 지금 나로움 평원에 있는 건 그냥 제국군도 아니었다.

무려 황제 직속 군단이었다.

무적의 제국군 내에서도 최강으로 손꼽히는 바로 그 군대 말이다.

따라서 제국군 지휘부는 휘하 군단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마주 돌격하는 것이 전부였다.

황제 직속 군단에게 이것 외의 조치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면승부에서는 지려야 질 수가 없었으니까.

대신 지휘부가 직접 특별한 움직임에 나섰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기 위함이었다.

바로 라이오넬과 슈라우드의 실력자들을 담당하고 처리하는 것.

이번 회전의 결과는 사실상 여기서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딱히 걱정은 없었다.

이 또한 병사들 간의 충돌과 마찬가지였다.

전력 측면에서 제국이 슈라우드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국군이 보유한 소드마스터 급 실력자의 숫자는 6서클 대마법사까지 포함하여 무려 일곱.

다섯에 불과한 슈라우드보다 무려 둘이나 많았다.

더구나 총사령관인 그랑데 휘센 후작은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완벽함을 기하고자 라이오넬이 아닌 그 주변을 우선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완성된 마스터 급 실력자의 배치도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라이오넬에 정령 소드마스터 둘, 에릭스와 다이너에 각각 정령 소드마스터 하나씩, 마법사는 마법사끼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밀라라는 여자에게 일반 소드마스터 둘.

즉, 제국의 최우선 타깃은 이 카밀라라는 괴이한 여자인 것이다.

이 여자의 제거를 시작으로 나머지 실력자들 또한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는 것이 그다음이고 말이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오늘만큼은 네놈을 대륙에서 깨끗하게 지워 버릴 것이니.”

덕분이었다.

이런 빈틈없는 플랜 덕분에 브루노 다스는 자신 있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오늘 그가 그랑데 휘센 후작과 공동으로 맡게 된 상대 라이오넬에게, 네놈을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고.

“이봐요, 백작. 그거 압니까?”

“……?”

“당신 그런 말만 벌써 세 번째라는 거?”

그렇기는 했다.

이베리아 평원에서 한 번, 슈라우드 왕궁에서 한 번, 오늘 이곳 나로움 평원에서 또 한 번.

벌써 세 번째 경고이며, 결이 조금 다르기는 해도 황도 아카데미까지 포함 시 네 번째로 볼 수도 있었다.

“오늘은 다를 거다.”

“그 말 역시도.”

그 결과 또한 매번 같았다.

항상 브루노의 참패와 도주로 끝나고 말았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솔직히 당신에게는 더 이상 기대치 자체가 없습니다. 왕궁에서 당신이 동료조차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인 그 순간, 같이 바닥에 내팽개쳐졌으니까.”

특히 마지막 도주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상황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등을 보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

그리고 라이오넬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짧은 시선이 느껴졌다.

정면이 아닌 측면이었다.

정면의 라이오넬이 아닌 측면의 그랑데로부터 느껴지는 시선.

물론 그랑데도 전부터 알고는 있었을 테지만, 서로가 애써 피해 왔던 그 시선 말이다.

그것이 라이오넬의 언급으로 잠시나마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브루노로서는 느끼지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었다.

“네놈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주마!”

“아니, 당신은 못 합니다. 그럴 능력이 안 돼.”

“건방진!!”

결국,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에 브루노가 더는 참지 못했다.

하여 흥분한 상태 그대로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백작, 진정하게. 흥분을 가라앉혀.”

“하지만 각하!”

“백작.”

“…….”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랑데가 나서서 그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렇게 브루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대화는 자연스레 그랑데가 이어 갔다.

단, 브루노와 달리 짧고 간결하게.

“피차 누구인지는 알 테니, 통성명은 생략하지. 이제 곧 본대 간의 충돌도 벌어질 테고 말이야.”

본대 간 충돌에 앞서 마스터 급 실력자들끼리 먼저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전장 한복판에는 5개의 암묵적인 공터가 마련됐다.

본대는 이 공터를 피해 돌진을 계속 이어 갔으며, 이제 불과 몇 초 후면 선두끼리의 충돌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그랑데의 말마따나 서로 이름이나 교환하고 앉았을 타이밍은 아닌 것이다.

“백작의 말이 통하지 않은 듯하나, 그건 결국 사실이 될 걸세. 그대와 슈라우드의 마스터들은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 못해.”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이겠다?”

“그렇게 될 거야. 특히, 그대만큼은 무조건. 그대는 폐하의 심기를 건드려도 너무 많이 건드렸거든.”

“그런 거군요.”

라이오넬이 고개를 주억였다.

브루노의 위협과 달리 그랑데의 그것에는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이는 그였다.

“그럼 오늘은 나도 특별히 한마디 하죠.”

단, 이 반응이 순응과 굴복일 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그 반대급부인 폭발이라면 또 모를까.

“피차일반.”

콰아아아아~!!

“저, 저건……!!!”

이윽고 터져 나왔다.

라이오넬을 타고 오르는 유형화된 어둠이.

이베리아 평원에서 브루노에게 절망과 굴욕을 선사한, 그리하여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은 바로 그 빌어먹을 어둠이 말이다.

“나도 당신들 무사히 보내 줄 생각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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