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4화 (155/200)

92장: 미친놈들

“흐아압!”

르로이가 있는 힘껏 검을 찔러 넣었다.

그 끝에는 오러까지 되는 대로 잔뜩 실어 넣은 상태였다.

비록 그가 소드 익스퍼트 하급에 불과하다 하나, 이만하면 나름 쓸 만한 일격이었다.

특히 상대가 기사도 아닌 일개 병사라면 더더욱.

적어도 르로이의 판단대로라면 그러했다.

“읏차.”

까가각.

덜컥.

하지만 상대의 손도끼 날과 자루 사이에 검신이 걸려드는 순간이었다.

쇄도하던 검의 방향이 덜컥하며 틀어지는 그 순간, 르로이의 판단은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홰액~ 터컹!

“크엑!”

비단 판단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르로이의 시야 또한 새하얗게 날아가 버렸다.

상대의 팔꿈치가 투구 쓴 르로이의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한 직후였다.

철퍼덕.

판단과 시야 상실에 이어 엉덩방아까지.

순식간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만 르로이였다.

단 한 번의 공격 실패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하아, 댁 귀족 맞아? 그냥 순 돌대가리 아니고?”

나아가 이에 대한 조롱까지 받았다.

심히 천박하면서도 인격 모독적인 어휘들로 말이다.

“이보슈 귀족 양반, 귓구녕에 말뚝을 박아 놨소, 앙? 대체 왜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요? 아니, 내가 대체 몇 번을 말해? 아무 대책도 없이 그렇게 큰 공격을 내지르는 건 그냥 나 죽여 줍쇼 하는 거라니까?”

아무리 상대가 그리핀 군단의 천인장 직책에 있다 하나 신분은 결국 평민.

반면 르로이는 태생부터가 거룩한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런 르로이를 향해 감히 일개 평민 따위가 이토록 참담한 언사를 입에 담은 것이다.

이는 분명 심각한 불경죄로밖에 볼 수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조차 벙끗하지 못하는 르로이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그중 첫째는 현재 르로이의 처지.

르로이는 지금 귀족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금 그를 엉덩방아 찧게 만든 레몬드라는 천인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현재 교육생의 신분이었다.

레몬드 본인은 교육생을 강병으로 훈련시키는 참된 교관이고 말이다.

참 거지 같은 주장이 따로 없었지만, 르로이는 이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다.

당장은 역적 취급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격은 상대를 쥐똥만큼이라도 흔들고 나서 집어넣으라고 쫌! 그렇게 대책 없이 훙훙 휘둘러 대기만 하니 동급인 나한테 쪽도 못 써보고 처발리지, 이 돌대가리 귀족 양반아!”

두 번째는 도출되는 결과 그 자체에 있었다.

벌써 수십 차례 부딪치다 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천인장 레몬드는 르로이와 같은 소드 익스퍼트 하급이 분명했다.

검끼리의 정면충돌에 있어서 부대낌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싶은 정도랄까?

그런데 정작 실제 결과는 그렇지가 못했다.

백전백패.

붙는 족족 깨져 나갔다.

그것도 매우 일방적으로.

육체 및 무기의 활용도, 전투 센스, 각각의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 등 종합적인 전투력 측면에서 전혀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고작 평민 병사에게 이처럼 깨져 나가는 처지에 그가 입을 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쭈? 이 양반 보게? 계속 앉아 있네? 여기가 아주 제집 안방처럼 느껴지나 봅니다그려?”

“크으으.”

물론, 이런 이유들을 감안하더라도 좀 심한 것은 확실했다.

이건 뭐,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굴리는 중이었으니까.

르로이 기준으로는 이러다 골병들어 죽지 싶은 수준이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얼른 일어나슈. 내가 직접 굴러 봐서 잘 알아요. 그 정도로는 아직 안 죽어. 뭐, 설령 댁이 약골이라 뒤진다 해도 우리가 피차 그런 거 신경 쓸 사이도 아니고.”

“그, 말했지 않나? 그때 일은 내가 분명 용서를 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그저 입으로 구하는 용서가 통할 리 없다는 거, 댁도 잘 알 텐데?”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남아 있었다.

이 이유란 바로 르로이와 레몬드 사이에 얽힌 과거의 인연이었다.

악연이라 부르기에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아주 부정적인 인연 말이다.

“그리고 그때 생각하면 이 정도도 많이 봐주는 거요. 난 그때 바르코스 요새에서 반항 한 번 못 해 보고 댁 칼에 맞아 바로 뒈질 뻔했으니까.”

이 인연은 10년도 더 전의 북부 바르코스 요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바르코스 요새에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준동이 있었다.

그리고 이 트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성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떠올랐다.

당시 요새 전체를 진동시켰던 트윈의 위용만큼이나 놈을 처리한 라이오넬의 명성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었다.

문제는 이 자리에 옹졸한 르로이가 함께했다는 점이었다.

르로이는 자연스레 라이오넬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을 키워 나갔다.

동시에 그 히스테리를 주위에 있는 대로 발산했다.

그리고 이 발산의 영역에 불운하게도 레몬드가 걸려들고 말았다.

레몬드는 그저 발터우스 영지병들의 한탄에 대한 동조 차원에서 한마디 한 것이 전부였다.

한데, 이것이 다이렉트로 르로이의 귀에 꽂힌 것이다.

르로이는 당장에 레몬드를 죽이겠다며 검까지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레몬드의 목을 향해 그어 내렸다.

그때의 레몬드는 이에 저항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으면 긋는 대로 그냥 죽어 나가게 될 뿐.

만약 당시 다이너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또 추후에 도착한 라이오넬이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레몬드는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흠흠.”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슈, 귀족 양반. 댁도 그때 나처럼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싶지 않으면.”

그 뒤로 10년도 더 되는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는 둘 사이의 관계도가 정반대로 뒤집힌 상태였다.

레몬드가 절대 갑, 르로이는 절대 을의 입장으로.

“오호라, 계속 퍼질러져 있겠다? 그럼 어디 앉은 채로 곡소리 나게 한번…….”

“자, 잠깐! 일어나, 일어난다고! 크으읍!!”

벌떡.

“쯧, 진작에 그럴 것이지.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

과거가 이러하니 레몬드에게 자비나 관용 따위는 눈곱만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진짜 앉아서 맞아 죽고 싶지 않거들랑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일어나는 수밖에.

그렇게 르로이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고도 계속 비틀거리기는 했으나, 어찌 됐든 다시 자세까지 잡은 그였다.

“그럼 다시 갑니다.”

“제발 조금만 천천히…….”

퍼버버벅!

물론, 어차피 똑같은 그림이 되풀이될 뿐이었지만.

그로부터 5분 뒤.

“아으으으…….”

결국, 르로이는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때려죽인다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레몬드는 르로이가 이 지경이 되고야 끝을 알렸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아주 사악한 미소가.

“대장, 치사하게 또 혼자서만 즐겼네?”

“그러게나 말이다. 하여간에 인간이 쪼잔해서 동료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에이, 됐다. 거, 너무 뭐라고 그러지 말자. 사람이 저렇게 쪼잔하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한 거 아니겠냐? 우리라도 불쌍히 여겨 주자고.”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그리핀 군단 제2 천인대원들이 한마디씩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전부 레몬드를 향한 불만이고 타박이었다.

불만의 요지는 레몬드 혼자서 재미를 봤다는 것.

즉, 자신들도 르로이와 한판 거하게 붙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내 연애사를 또 애먼 데 들먹이네. 대체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엮는 거냐, 이 빌어먹을 것들아!”

레몬드가 고함을 쳤다.

하지만 대원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상관이 있지, 왜 없어? 우리가 누누이 말했잖아. 대장은 그 쪼잔한 성격 때문에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보는 거라고.”

“맞아, 지금도 봐. 제 부하들이 같이 재미 좀 보자는데, 꾸역꾸역 혼자 다 해 처먹는 거.”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말자니까 그러네? 어차피 속 좁은 건 천성이야 천성. 뭔 짓을 해도 못 고치는 거. 당연히 앞으로도 독거노인으로 쓸쓸하게 늘어갈 테고. 저 쪼잔한 인간 우리 아니면 누가 받아 주겠어? 그러니까 이해해 주자고.”

실제로 대원들은 이미 여러 차례 르로이와 붙어 본 상태였다.

당연히 일 대 일은 아니고, 일 대 이나 일 대 삼씩의 대결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일 대 삼은 완승, 일 대 이는 박빙의 승부를 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르로이와의 대결에 재미를 붙인 대원들이었다.

“하아, 어쩌다가 저런 빌어먹을 놈들을 부하로 둬서는……. 에휴, 내 팔자야.”

이런 부하들의 반응에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레몬드.

그럼에도 대원들의 입은 조금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임과 동시에 한층 더 노골적으로 털어 갔다.

그러더니 결국 오늘도 같은 결말로 귀결되었다.

“싹 다 덤벼라, 이 위아래도 없는 것들아!”

“바라던 바다, 쪼잔한 대장!”

“대장이고 뭐고 때려눕혀!”

“어어어? 덤비랬다고 진짜 다 덤비냐? 에라이, 양심도 없는……!”

“싹 다 덤비랄 땐 언제고? 신경 쓰지 말고 밀어붙여!”

“우오오오오!!”

자기들끼리 대련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상 매일같이 반복되는 루틴이었다.

비단 제2 천인대만이 아니었다.

약간 떨어져 있는 제1 천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정은 전혀 달랐지만, 그들 역시 활발한 대련을 펼치는 중이었다.

‘저 미친놈들.’

이런 그리핀 군단을 보며 르로이는 생각했다.

정말 제대로 미친놈들이 아닐 수 없다고.

당장 제국군과의 전투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저리 신나서 날뛰고 있는 것이다.

이 분위기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은 고개만 조금 돌려 봐도 곧장 알 수 있었다.

슈라우드 군 전체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상대가 다른 군대도 아닌 제국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제국의 패권 유지를 가능케 해 주는 바로 그 제국군 말이다.

상식적으로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그리핀 군단 놈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빨리 싸우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놈들 같았다.

르로이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미친놈들인 것이다.

‘심지어 기사단도 없는 군단이 선봉에 서서 대체 뭘 어쩌겠다고?’

그리핀 군단은 특이하게도 기사단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론 이 미친놈들이 강하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병사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

정식 기사단과 비교하면 사정은 180도 달라질 터였다.

그런데도 이 미친놈들에게는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가 없었다.

마땅한 대책도 없어 보이건만 그저 싸울 생각뿐이었다.

오직 한 가지, 라이오넬 라인하트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을 가지고서.

‘전장에서 저 미친놈들하고 끝까지 같이 가다가는 나부터 죽어. 적당한 타이밍에 낙오해서 안전하게…….’

그렇기에 홀로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르로이였다.

하지만 이때의 르로이는 알지 못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이번 전쟁, 결코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의 얍삽한 궁리 또한 결과적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는 사실 역시도.

* * *

이윽고 결전의 날이 도래했다.

결전의 해가 중천에 떠오른 이 순간, 나는 나로움 평원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마주 선 나의 적들을 눈에 담았다.

무적이라 불리는 3만의 제국군과 조국을 등진 8천의 배신자들.

오늘 난 저들을 무참히 응징할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에펜시아 대륙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작정이었다.

내 뒤를 받치고 서 있는 슈라우드의 5만 전사들과 함께.

“우리가 전장을 바라보고 이렇게 나란히 서는 건 처음이지 아마?”

그런 나에게 나란히 옆에 선 한 인물이 말을 걸어 왔다.

오늘을 위해 이곳 나로움 평원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인물이었다.

동시에 오늘 나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줄 최고의 동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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