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3화 (154/200)

91장: 풀려 가는 악연, 반복되는 악연

“그러니까 내가 최선봉에, 그것도 일개 병사로……?”

발터우스 자작가의 장남, 르로이 발터우스.

그는 지금 자신이 들은 바를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곧바로 되묻는 중이었다.

본인이 잘못 이해한 것이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그리핀 군단을 따르는 일이니, 따지고 보면 형님 말이 맞기는 하네요.”

그러나 이는 헛된 바람이었다.

르로이가 이해한 바는 아주 정확했다.

그의 이복동생 사네가 방금 한 말은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왜, 싫어요?”

당연히 싫었다.

미친 듯이 싫었다.

르로이 입장에서 그것은 죽으러 가라는 뜻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고함을 치는 것이 맞았다.

어디 고함뿐인가?

당장에라도 싸대기를 날려 줌이 옳았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애초에 서자 따위가 이런 건방진 태도를 보인다는 것부터가 심히 어긋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어긋남을 결코 그냥 넘어갈 르로이가 아니었다.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그였다.

“싫다기보다는 그저…….”

“그저?”

“그래도 형제인데 한 번만 더 생각해 주면 어떻겠나 싶은, 뭐 그런 거지…….”

단, 얼마 전까지의 르로이라면.

안타깝게도 지금의 르로이는 그러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어긋남 같은 건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지금 그는 못 본 척 넘어가는 정도를 지나 역으로 빌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르로이가 그토록 괄시하고 천대하던 가문의 서자, 사네에게.

“형제? 그 말을 형님 입에서 들으니까 참 감회가 새롭네요.”

“그게 그러니까…….”

“근데 그거 잊었어요, 형님? 형님이 지금 이리 멀쩡할 수 있는 것부터가 나와 형제인 덕분이라는 거?”

“…….”

르로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1왕자의 최측근에 섰던 이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그의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겔포이 드레이크를 장남으로 둔 드레이크 백작가였다.

과거 아카데미 시절 라이오넬과 여러 차례 부딪쳤던 바로 그 겔포이 드레이크 말이다.

이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을 뿐 아니라, 가족 전원이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역모의 본보기로서 그만큼 엄중한 처벌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대꾸는커녕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는 르로이였다.

“형님이 싫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아요. 난 내 옆에 남으라고 강요한 적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고.”

“아, 아니야. 내가 떠나기는 어딜 떠나? 절대 안 떠나.”

그렇다고 훌쩍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르로이는 벌써 10년째 소드 익스퍼트 하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그를 1왕자 쪽에서 반겨 줄 리 만무했다.

그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발터우스 자작가 장남일 때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렇다면 르로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돼 있었다.

기껏해야 어느 가문의 하급 기사나 떠돌이 용병 정도.

하나, 이 또한 평생을 고위 귀족으로 지내 온 그로서는 때려죽여도 못 할 짓이었다.

“그래요? 그럼 내 말에 따른다는 뜻으로 압니다.”

“그게…….”

“들어와, 레몬드.”

그때, 사네가 누군가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이에 웬 사내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굉장히 거칠면서도 어쩐지 묘하게 가벼워 보이는 그런 사내였다.

“부르심에 대령했습니다, 사네 경.”

“그래, 잘 왔어. 이쪽은 못난 내 형님, 르로이 발터우스. 레몬드 너도 잘 안다고 했지?”

“그럼요, 알다마다요. 워낙 깊은 인연으로 얽혀 있는지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럴 리가 없었다.

르로이는 오늘 처음 보는 사내였다.

깊은 인연은커녕 르로이의 기억 속에는 존재조차 없는 인물인 것이다.

B22

“미리 얘기했다시피 너에게 부탁할까 하는데, 괜찮겠어?”

“에이, 사네 경과 저 사이에 무슨 그런 섭섭한 질문을 하고 그러십니까? 당연히 괜찮지요. 저는 환영, 환영, 대환영입니다.”

한데, 레몬드라는 사내의 눈빛은 르로이와 정반대였다.

그의 눈빛은 르로이를 지나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의 눈빛이 분명했다.

너무 지나쳐서 부담스럽다 못해 꺼림칙하기까지 한 그런 눈빛 말이다.

“대체 누구길래……?”

씨익.

“아아, 당장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기억쯤이야 차차 돌아오게 만들면 되는 일이니까. 본 교관 충분히 자신 있으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일랑 싹 다 붙들어 매도 좋습니다.”

그렇게 레몬드라는 사내의 썩은 미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앞으로 르로이가 겪게 될 끔찍한 지옥의 나날들이.

* * *

슈라우드 동부 나로움 후작령.

오늘 아침, 이곳 나로움 후작령에 3만의 제국군이 도착했다.

그리고 정오 현재, 브루노 다스는 이런 3만 제국군의 총사령관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알고 있겠지, 다스 백작? 그대에 대한 폐하의 실망이 꽤 크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회해야 할 거야.”

지난 슈라우드 왕궁 전복 시도 실패 직후, 브루노는 제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이곳 나로움 후작령에 머물며 제국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려 왔다.

추가로 떨어진 명령 때문이었다.

반드시 공을 세우고 돌아오라는 황제의 명령.

물론 지난 실패가 꼭 브루노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예상외 요인들의 중첩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일단 에릭스 브란부르크에 대한 계산 착오부터가 그러했다.

그가 화염의 정령력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브루노가 왕녀를 사로잡지 못한 것은 사실상 이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또한, 설령 그가 왕녀를 놓쳤다 해도 마찬가지.

그렇다 해도 왕녀가 궁을 빠져나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정문 점거가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만 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계획과 다르게 정문이 뚫려 버렸고, 왕녀는 그곳을 통해 유유히 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카밀라라는 괴상한 존재.

이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 자체가 없었다.

이런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된통 당해 버리고 만 것이다.

소드마스터 이상 가는 실력자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적어도 이리 허무하게 국왕을 내주지는 않았을 터.

따라서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실패를 전적으로 브루노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브루노는 조금도 불만을 내비칠 수 없었다.

그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벌써 브루노의 세 번째 실패였다.

과거 황도 아카데미에서 한 번, 이베리아 평원에서 한 번, 그리고 이번에 슈라우드 왕궁에서 한 번.

이쯤 되면 실패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소드마스터, 무려 정령석을 섭취한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말이다.

즉, 현재 그에게 불만이나 변명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지금 브루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여태까지의 실수를 만회할 만큼의 커다란 공적, 오로지 그뿐이었다.

“좋아, 나도 자네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네. 그러니 이번에는 꼭 제대로 활약해 봐.”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이렇게 자네만 따로 부른 것은 이번 전쟁에 앞서 자네의 진솔한 조언을 듣기 위함일세.”

“진솔한 조언이라면?”

“라이오넬 라인하트. 그자가 그간 여러 차례 폐하의 계획을 비틀고 자네에게도 낭패를 안겨 주지 않았나? 그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아야겠어.”

제국군 총사령관 그랑데 휘센 후작.

그는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본인이 정령력을 보유한 소드마스터임에도 말이다.

“오죽하면 폐하께서 직접 내게 신신당부하시더군. 라이오넬 그자만큼은 조심하라고.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고 말이야.”

그간 라이오넬이 벌인 행적들 때문이었다.

라이오넬은 지금껏 단순히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설명 못 할 여러 가지 기적들을 써 내려왔다.

이것이 제국의 경각심을 전에 없이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라이오넬 그놈,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놈입니다.”

“그래, 그렇다고 들었어. 하면 그자에게는 얼마나 붙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

“소드마스터 급의 실력자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난 곧 펼쳐질 회전에서 슈라우드를 아예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릴 계획이야. 그러자면 역시 저쪽의 실력자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최상이겠지.”

단, 그럼에도 전쟁에 있어 제국의 방향성은 명확했다.

제국은 농성을 펼치지 않는다.

제국이 대륙의 패자로 우뚝 선 이래 그럴 이유나 상황 자체가 조성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늘 공격하고 침략해 들어가는 쪽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라이오넬이 강하다 한들 제국에게 농성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라이오넬과 슈라우드가 아직 한참 모자랐다.

따라서 이번 전투 역시 평원에서 펼쳐지는 대회전이 될 예정이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제국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묻는 걸세. 라이오넬 그자에게는 몇을 붙이는 게 좋겠나? 일단 난 정령 소드마스터 하나와 일반 소드마스터 하나를 붙일까 생각 중인데.”

“음, 그 전에 각하께서 품으신 정확한 의도를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놈에게 둘만 붙이려 하시는 걸 보면 1차 목표는 라이오넬이 아닌 듯한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맞네, 정확하게 봤어. 1차 목표는 라이오넬이 아니라 그 주변이야. 그자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하니 일단은 그 주변부터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옳다고 보거든.”

“그러시다면 일반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정령 소드마스터 둘을 붙이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어차피 현재 우리 군 내에 정령 소드마스터만 넷이니, 그 정도는 문제 될 것 없지 않겠습니까?”

현재 제국군 지휘부 내에 소드마스터는 총 여섯이었다.

이 중 정령석을 섭취한 소드마스터는 브루노 포함 총 넷.

여기서 둘 정도 라이오넬에게 붙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 될 것 없긴 하지만, 왜? 슈라우드 왕궁에서 자네와 코넌트 백작 둘만으로도 감당 가능했다며? 오히려 밀어붙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했습니다만, 놈은 왕궁에서 모든 힘을 다 끌어내지 않았습니다. 과거 이베리아 평원에서 보였던 그 불가사의한 힘. 만약 그걸 꺼내 든다면 그때는 어찌 흘러갈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이 부분까지 고려해서 안전하게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것도 고려하기는 해야겠군. 알겠네, 그렇게 하지. 하면 나머지는? 나머지는 어느 정도라고 판단하나?”

“에릭스 브란부르크는 정령 소드마스터 하나 정도의 전력입니다. 제가 직접 겨뤄 봤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이너 브란부르크야 확실치는 않더라도 아직 에릭스의 밑 아니겠습니까? 소드마스터에 오른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나나 참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마지막은 그 카밀라라는 여자인데……. 직접 대결을 펼친 기르단 백작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일반 소드마스터보다는 윗줄인 듯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또 벽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지가 현재 슈라우드의 소드마스터 급 실력자 현황이었다.

라이오넬을 제외하더라도 에릭스와 다이너 그리고 카밀라까지.

이 정도면 보통의 왕국 두 개쯤은 너끈히 상대 가능한 전력이었다.

왕국치고 굉장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다.

“진솔한 조언 고맙네, 백작. 덕분에 계산이 확실히 섰어. 어느 놈을 먼저 타깃으로 삼을지까지도. 약간 까다롭기는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겠군.”

“제가 각하께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단, 어디까지나 왕국치고는 그렇다는 의미였다.

왕국치고 굉장한 힘이라 봐야 어차피 제국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제국은 그 굉장함조차도 가뿐하게 뛰어넘었으니까.

감히 일개 왕국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제국의 힘이란 것은.

“그리고, 다스 백작.”

“예, 각하.”

“내 생각에는 자네도 내심 바라고 있을 듯한데, 어떤가? 맡겨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먼저 각하께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좋아, 그렇다면 내가 자네와 함께하지.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해 보자고.”

“감사합니다, 각하.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이 절대적 힘이란 것이 라이오넬과 그의 사람들을 향해 정조준됐다.

활활 타오르는 브루노의 복수 의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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