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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1화 (152/200)

89장: 여러 죽음

소드마스터는 확실히 소드마스터였다.

어딘손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조차 어떻게든 몸을 비틀었다.

그럼으로써 심장에 대한 직격만큼은 가까스로 피해 낸 그였다.

“쿨럭, 쿨럭. 크르륵…….”

단, 그렇다고 해서 어딘손이 말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 즉사는 피했지만, 다이너의 검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다이너의 검은 현재 어딘손의 몸에 깊숙이 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영 좋지 못한 부위에.

어쩌면 이는 심장을 찔린 것만도 못한 최악의 결과일지도 몰랐다.

“우웨엑!”

어딘손은 피 섞인 기침과 토혈을 거듭했다.

쏟아져 나오는 피의 양은 10분여 전 다이너의 그것 이상이었다.

그만큼 상태가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기침과 토혈, 상당한 피의 양보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었다.

사아아~

시시각각 그의 몸을 빠져나오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바로 마나였다.

어딘손이 소드마스터에 도달하기까지 평생을 모아 온 마나가 지금 빠른 속도로 흩어져 가는 중인 것이다.

검사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타격은 따로 존재하기 어려울 터였다.

“쿨럭, 우웨엑! 크르르륵.”

사아아아~

검이 박힌 부위가 심장 옆의 또 다른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검사의 심장이라 불리는 마나 하트.

어딘손의 두 번째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이 정통으로 찔리고 말았다.

심지어 그냥 검도 아니었다.

무려 오러 블레이드가 실린 검이었다.

아무리 소드마스터의 마나 하트라 한들 그것이 남아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미 산산조각 나 버린 지 오래였다.

“…….”

다이너가 그런 어딘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더는 앞서와 같은 조롱이나 도발을 이어 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검사로서의 어딘손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아가 마지막이니만큼 일말의 자비도 베풀어 줄 생각이었다.

평안한 죽음이라는 최후의 자비 말이다.

덥석.

해서 여정의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힘을 주려 했다.

이대로 비틀어 진짜 심장까지 단번에 터뜨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크르륵. 사, 살려…….”

“뭐?”

“살려, 쿨럭, 줘…….”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힘을 주려다 말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뜻밖의 애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검사로서 이미 죽어 버린 어딘손의 입에서.

“살려 달라고? 지금 살려 달라고 한 거야?”

“크르륵, 살…… 려 줘.”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네 마나 하트는 이미 산산조각 났어. 그런데도 살기를 바라는 거냐?”

“사, 살…….”

“어차피 내가 여기서 그냥 검을 뽑더라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넌 죽어. 단지 죽음까지 고통받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야. 차라리 내 검에 편히 죽는 게 더 나을 거다.”

“……려 줘.”

검사로서는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해적 어딘손은 아직 살아 있었다.

또한, 미친 듯이 삶을 갈구했다.

살아날 확률이 제로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지독하리만치 강렬하게.

“…….”

다이너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갈구고 갈망이었다.

평생을 검사이자 기사로 살아온 그라면 이 순간에 차라리 자살을 택했을 터.

하나, 해적 어딘손은 어떻게든 살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간절히 열망했다.

“알겠다.”

쑤우욱.

“커거걱!! 크르르륵!”

다이너에게는 이런 열망을 접하고서까지 자비를 베풀어 줄 이유가 없었다.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어차피 그것은 자비도 아닐 테고 말이다.

그래서 비틀지 않은 채 그대로 여정을 뽑아냈다.

어딘손의 바람대로 해 준 것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줬다. 그러니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곧바로 죽여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날 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이너에게는 더 이상 어딘손을 어찌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후환에 대한 걱정?

그런 건 현재 다이너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조차 않았다.

여기에는 앞서 열거한 요인들도 분명 크게 작용했다.

어차피 스스로 살아날 확률이 희박하다는 점, 설령 살아난다 해도 검은 다시 쥘 수 없다는 점 같은 것들.

하지만 이 요인들보다 더 큰 이유가 존재했다.

그 이유란 바로 다이너가 감지한 어떤 눈빛들이었다.

어딘손을 향해 분명한 감정을 내뿜고 있는 어떤 눈빛들.

둔감한 다이너조차 도저히 그 의미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눈빛들이기도 했다.

이것들이 존재하기에 다이너가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도 품었던 것이다.

멍청하게도 어딘손 스스로 그 기회를 날려 버렸지만.

“그럼 이번에야말로 진짜 잘 가라.”

그렇게 마지막 작별인사만을 남긴 채 다이너는 자리를 떠났다.

* * *

“끄르륵, 쿨럭.”

어딘손은 죽을 힘을 다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지옥 같은 고통이 수반됐지만, 이 또한 죽을 힘을 다해 참아 냈다.

지금 그는 모든 것에 있어 죽을 힘을 다해야 했다.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룩주룩.

검에 찔린 가슴 부위에서는 자꾸만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흩어지는 마나를 억지로 붙잡아 막아 둔 상태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 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처럼 사라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어서 빠져나가 제대로 된 처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허억. 크르륵. 쿨럭, 허억.”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슈라우드 군의 묵과였다.

다이너의 명령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들은 어딘손을 건드리지 않았다.

적개심 품은 눈으로 바라보기는 하되 어딘손의 걸음을 방해하지는 않은 것이다.

덕분에 그는 방금 막 슈라우드 진영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아……!”

그러자 곧바로 아군이 보였다.

그의 부하인 해적들 말이다.

이들이 어딘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르륵. 어서 짐을 쿨럭, 안전한 곳으로…… 옮겨라.”

“짐? 짐이라고?”

한데, 이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일단 눈빛부터가 그러했다.

어딘손을 향하는 눈빛들이 영 석연치 못했다.

마치 무언가를 벌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어, 어서. 짐은 지금 쿨럭, 치료가 필요…….”

“얘들아, 우리 전하께서 치료가 필요하시단다.”

스릉, 스르릉.

단순히 눈빛에서 그치지 않았다.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며 겨누기까지 했다.

그들의 임금인 어딘손을 향해.

“어이쿠, 그럼 해 드려야지. 우리 전하께서 필요하시다는데.”

“어디 치료뿐이야? 안전한 곳도 원하시잖냐. 당연히 그런 곳으로 옮겨 드려야지.”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말고. 그동안 우리 전하께서 했던 것처럼, 그대로 똑같이.”

그러고는 어딘손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쿨럭,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시퍼렇게 빛나는 날붙이들을 앞세운 채로.

“사, 살려…… 살려 줘! 제발…… 안 돼!! 크아아아악……!!!”

* * *

뚝뚝뚝.

레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머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왕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이다.

다시 그런 머리 위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

그럼에도 머리의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로 계속해서 물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말은 고사하고 이에 대해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머리 주인이었다.

“로튼…….”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지 못하는 것이었다.

머리 주인의 영혼은 이미 이승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즉, 레나가 지금 부여잡고 있는 것은 한 구의 시체였다.

죽어 버린 그녀의 친동생, 2왕자 드로튼의 싸늘한 시체.

그런 드로튼의 얼굴을 적시는 것은 누나인 레나의 뜨거운 눈물이었고 말이다.

“미안하다, 아비가 미안해. 못난 아비가 너희들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렇듯 소리 없이 오열 중인 레나의 옆에는 오브리가 국왕도 함께였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한탄 중이었다.

못난 본인이 자식들을 전부 이 꼴로 만들었다고.

2왕자 드로튼과 3왕자 길리언이 이리 죽은 것은 전부 본인 탓이라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 간 두 혈육을 가슴에 묻고 있는 왕가의 부녀였다.

“…….”

그리고 나는 가만히 서서 이런 부녀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두 아들과 친동생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내가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레나의 슬픔을 어둠으로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줄 뿐이었다.

그녀의 감정이 너무 깊은 곳까지 빠져들지는 않도록.

1왕자 크리스토퍼의 슈라우드 왕궁 전복 사태.

슈라우드 왕족으로 한정할 경우 이번 사태의 생존자와 사망자 리스트는 회귀 전과 같았다.

2왕자 드로튼과 3왕자 길리언이 사망하고, 오브리가 국왕과 크리스토퍼 1왕자, 그리고 레나가 생존했다.

그러나 리스트만 같을 뿐 결과가 지니는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회귀 전에는 크리스토퍼의 시도가 대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크리스토퍼가 대권을 잡았으며, 오브리가 국왕은 완벽한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애초에 제국에 팔려 간 상태였던 레나는 그나마 배경이 되어 주던 친정을 상실하고 말았다.

크리스토퍼가 레나를 지원해 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슈라우드 왕국은 사실상 로만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다 보니, 그 반대급부로 너무 많은 부분을 내줘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아이단 황제의 계략대로 풀려 갔다 볼 수 있었다.

반면, 회귀 후인 지금은 정반대였다.

크리스토퍼의 시도도, 황제의 계략도 모두 대실패로 마무리되었다.

너무 처참한 실패인지라 이론의 여지조차 없었다.

비록 2왕자와 3왕자는 똑같이 죽었다지만, 이것은 오히려 레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터였다.

크리스토퍼는 어차피 아웃이니만큼 레나의 계승에 더는 불안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비정하게 비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명백한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또한, 제국은 소드마스터 하나를 잃었다.

테네시아 왕국에서 잃은 것에 비하면 모자라겠으나, 이 역시 객관적으로 결코 작은 손실이 아니었다.

일반 왕국 기준으로 보자면 국가 전력의 최소 1/4은 소실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까지만 보자면 승자는 분명 레나와 슈라우드 왕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하겠지만 말이다.

저벅저벅.

그때 바깥에서 이곳 국왕 집무실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매튜의 기운이었다.

아마도 실크로 상단에서 획득한 정보에 대해 보고를 올리려는 모양.

달칵.

“라이 경?”

이에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가 밖에서 매튜를 맞이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매튜는 곧장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역시 아직은 너무 이른 모양이네요.”

“조금만 더 시간을 드리자. 그보다 급한 일이야?”

“급하다면 급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동부와 제국의 움직임에 관한 사항들이라. 특히 제국 쪽의 물자 동원이 심상치 않아요.”

“흐음, 확실히 가볍지 않기는 한데……. 그래도 매튜, 네가 사네랑 먼저 처리 가능한 것부터 처리하고 있어. 나중에 응어리 맺히는 일 없도록 지금은 조금 더 기다려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그렇게 할게요. 아, 그리고 다이너 경과 그리핀 군단도 출항했다고 하더라고요. 다이너 경이 어딘손 토르웨이도 처리했겠다, 더는 문제 될 것도 없으니만큼 닷새 안에 도착할 거예요.”

실패한 황제의 이번 계략이 남긴 것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다이너.

녀석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비록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의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카디즈 군도의 해적들과 슈라우드 원정군 전원이 그 증인이었다.

또, 이 증인들 앞에서 다이너의 검에 쓰러진 어딘손 토르웨이가 그 증거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

이로써 슈라우드는 새로운 소드마스터를, 그것도 정령력까지 보유한 소드마스터를 한 명 더 보유하게 됐다.

이만하면 황제의 계략이 슈라우드에 남긴 선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다이너 그 녀석, 돌아오자마자 나나 에릭스 백작님부터 찾겠네. 자기도 소드마스터에 올랐으니 한 판 붙어 보자고.”

“하긴, 다이너 경이라면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죠. 전에도 카르가디아 산맥에서 복귀하자마자 백작님부터 찾아뵀다고 들었어요.”

“그랬지. 그랬다가 백작님께 된통 깨졌고. 이번에도……. 음?”

그렇게 매튜와 다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반대로 집무실 안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달칵.

“왕녀님?”

레나였다.

안에서 한창 슬픔에 젖어 있던 그녀가 직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곧장 매튜를 향해 입을 여는 그녀였다.

“동부나 제국 쪽에서 들어온 소식은?”

“……왕녀님, 조금 더 쉬셔도 됩니다. 사네와 매튜가 알아서 처리해 놓을 겁니다.”

레나의 눈은 그녀가 흘린 눈물로 인해 퉁퉁 부어 있었다.

목소리 또한 깊게 잠겨 있는 상태였다.

“아니요, 그럴 시간 없어요.”

하지만 그런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비록 잠겨 있다 하나, 그 목소리 역시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게 내 대비가 미흡해서 벌어진 비극이에요. 내가 직접 매듭짓는 게 옳아요.”

“…….”

“매튜는 나를 따라와.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으면 바로 들어야겠으니까. 그리고 라이.”

“예, 왕녀님. 하명하십시오.”

“각료들을 지금 당장 대전으로 모아 주세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 형형함과 단단함을 바탕으로 추상같은 명을 내리는 레나였다.

“그 자리에서 선포합니다. 1왕자 크리스토퍼는 오늘부로 슈라우드의 역적이라는 것을.”

크리스토퍼와 동부,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린 아이단 황제와 로만 제국.

이들에게 선포하는 전면전과도 같은 명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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