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장: 실패한 계략이 남긴 것(2)
슈아악~!
머리를 향해 가차 없이 떨어져 내리는 오러 블레이드.
이걸로 무려 네 번째 반복되는 검격이었다.
“…….”
첫 번째 검격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이걸 어떻게 받을까, 이걸 받고 나면 내 힘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오늘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쓰러지면 원정군은 어떻게 될까 등등.
첫 번째 검격은 이렇듯 여러 생각과 걱정거리들을 가지고 받아 낸 다이너였다.
하지만 두 번째 검격을 받는 시점에는 그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원정군과 같이 외적인 부분들에 대한 생각과 걱정은 일거에 날아가 버렸다.
외적인 것들까지 생각을 이어 갈 만큼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다이너 본인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검격에 대한 궁리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한데, 이마저도 사치라는 점이 금세 밝혀졌다.
곧바로 이어진 세 번째 검격.
여기서는 이미 대부분이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남은 거라고는 그저 이걸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정도뿐.
그리고 현재 다이너가 맞이하고 있는 네 번째.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이너의 머릿속은 그냥 백지였다.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품지 못했다.
비단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체내의 마나는 물론이고 육체적인 힘까지, 남은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
그래서였을까?
텅텅 비어 버린 다이너의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다이너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어떤 감각이었다.
‘저게 왜 저기 있지?’
다만, 모순적이게도 이는 다이너에게 지극히 익숙한 감각이기도 했다.
생전 처음 느껴 보지만, 그럼에도 지극히 익숙한 어떤 감각.
심지어 다이너가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다이너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원래부터 저기 있던 건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다이너 본인이 지금 얼마만큼 위험한 순간에 처해 있는지 역시도.
그런 것들은 모든 생각이 날아갈 때 같이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처음이되 익숙한 이 감각을 느끼고 탐구하는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하긴 무게중심이라는 게 원래 어디에나 다 있는 거니까, 저기도 있는 게 당연한 거겠지.’
이 감각의 정체는 무게중심이었다.
다이너가 라인하트 검법을 익히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함께해 온 바로 그것 말이다.
익숙한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특히 다이너가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뒤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익숙한 정도를 넘어 그에게 또 다른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스스로의 무게중심을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고 또 다뤄 왔던 것이다.
단, 처음이라는 것 또한 거짓이 아니었다.
다이너는 분명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타인의 무게중심을 말이다.
그랬다.
다이너는 지금 타인인 어딘손의 무게중심을 느끼는 중이었다.
다이너 본인의 것이라도 되는 양 아주 선명하게.
‘근데 나 바본가? 이 선명한 걸 여태 왜 느끼지 못했던 거야?’
세상 어느 곳에나 무게중심이 존재함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다이너는 지금껏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고 있었다.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 여겼으나, 명백한 착각이었다.
그것들은 전부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스스로의 무게중심에 빗대어 대충 저쯤에 있으리라 짐작하는 불확실한 추정.
반면, 직접 느끼고 그럼으로써 새로이 알게 된 무게중심은 확연히 달랐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중심의 크기는 물론이거니와 매 순간순간 이동을 거듭하는 그 위치까지,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어지러우리만치 다양하고 변동성이 크며 복잡했다.
어렴풋한 추정 따위로 감히 안다고 말했던 것이 심히 민망할 지경이었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이런 당연한 게 이제야……. 으음? 빨라졌다. 내 쪽이야.’
그렇게 한창 느껴지는 무게중심 그 자체에 몰두하던 와중이었다.
어느 순간 이것의 급속한 이동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이동의 방향 역시도.
이것이 다이너 본인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그럼 이 지점이려나?’
다이너는 느껴지는 바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러자 저절로 이동 경로가 예측되었다.
이에 그는 자연스레 검을 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예측 지점에 스윽 가져다 댔다.
딱히 무슨 힘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가볍게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쿠과과과광!!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볍기는커녕 한없이 무거웠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강렬한 충격파가 그 방증이었다.
“뭐 이런 개 같은…….”
또한, 여기서부터였다.
다이너가 다시금 외부 상황에 대한 인지를 시작한 것은.
분노와 짜증, 경악 등으로 가득 찬 어딘손의 목소리가 그 신호탄이었다.
“이 타이밍에?”
다이너의 힘이 전부 소진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원래라면 ‘챙강’이나 ‘서걱’ 따위의 소리가 나왔어야 했다.
다이너의 검이 어딘손의 오러 블레이드에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나온 것은 엄청난 폭음과 충격파였다.
이 말인즉슨 다이너가 네 번째 검격조차 버텼다는 의미.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깨달음을 얻는다고?”
지이이잉!
더구나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정 위로 찬연하게 솟아오른 한 자루 강기의 검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이너는 어딘손의 오러 블레이드와 정면으로 맞서는 중이었다.
같은 오러 블레이드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대등하게.
“그러게. 이게 되네?”
다이너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의 세계를 빠져나와 현실을 인지한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 어딘손 입장에서는 참 개X 같을 거라고.
당연했다.
그간 쉬지 않고 벌여 온 게릴라를 통해 양념이란 양념은 다 쳐 둔 참이었다.
더욱이 방금 세 번째까지의 검격을 통해 조리도 끝마쳤다.
이제 완성된 요리를 맛나게 음미하는 일만이 남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순간에 다이너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 증거랍시고 깨달음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까지 피워 올리고 있었다.
완성된 요리를 포크 한번 못 대 보고 그대로 엎어 버린 셈.
욕지거리가 절로 치밀어 오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쩌겠어, 이미 얻어 버렸는데? 그렇다고 깨달은 걸 도로 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 그래?”
단, 이는 어디까지나 어딘손의 입장.
다이너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소드마스터에 오른 것이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이 순간에 비열한 해적 놈 입장 따위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대로 조롱해 준다면 모를까.
불과 몇 초 전까지 다이너가 받았던 것 그 이상으로.
“…….”
조롱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어딘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오늘 다이너가 뱉은 말 중 처음이었다.
이처럼 어딘손에게 심리적 타격을 안겨 준 것은.
“흠, 이거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덕분에 서른도 되기 전에 소드마스터에 오른 셈이니까.”
“…….”
“그래, 이걸 거르면 내가 경우도 모르는 놈이지. 고마워, 겁쟁이. 네가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 준 덕분에 이렇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이건 내 진심이야.”
“……이제 갓 깨달음을 얻은 햇병아리 주제에 기고만장하구나. 벌써 네놈이 이기기라도 한 것 같으냐?”
“그렇지 않을까? 겁쟁이 소드마스터 정도면 오러 블레이드만 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빠직.
“오냐, 보여 주마. 소드마스터도 다 같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덕분에 도발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계속되는 다이너의 비꼼에 더는 참지 못하는 어딘손이었다.
네 번째 검격 이후 잠시 떨어졌던 그가 재차 짓쳐 들었다.
지이이잉!!
저가 뱉은 말대로 어떻게든 격의 차를 보일 작정인 듯했다.
검 위로 한껏 솟아오른 오러 블레이드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슈아악~!
‘느껴진다.’
깨달음의 순간에서 빠져나왔지만, 감각은 그대로였다.
다이너는 여전히 어딘손의 무게중심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다이너의 의지대로 조작하지는 못하겠으나, 조금 전과 같은 대응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
하여 어딘손의 중심이 향하는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검을 보냈다.
당연히 새로이 가지게 된 그만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올리고서.
그리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과광!
확실히 달랐다.
전처럼 모든 것을 갈아 넣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막을 만했다.
당연히 충돌의 여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더는 다이너에게 심각한 부담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전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시간 지속 가능한 범위 내였다.
슈아악~!
쿠과광!
‘역시 쉽지는 않아.’
물론 깨달음의 그 순간만큼 가볍지는 못했다.
감각의 세계 밖에서 맞이하는 어딘손의 검격은 역시나 위력적이었다.
또한, 시간은 확실히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다이너는 이제 갓 깨달음을 얻은 신출내기 소드마스터.
어딘손의 말마따나 오러 블레이드 운용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하여 이어지는 충돌에서도 수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아까 그 넘치던 기세는 다 어디 간 거지?”
콰광!
“오러 블레이드만 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쿠광!
“애처럼 보채지 좀 말고 기다려 봐. 지금 손에 익히는 중이니까.”
“내가 그런 시간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하여간에 쪼잔하기는.”
콰과광!!
어딘손의 공세는 점점 더 빠르고 격렬해져 갔다.
그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오늘 이 자리가 아니면 그간의 치욕을 갚을 기회가 더는 없으리라는 것을.
오러 블레이드 운용능력이야 금세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어딘손의 경지는 소드마스터 내에서 그리 높은 편도 못 됐다.
따라서 다이너가 갓 깨달음을 얻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파밧.
우위에 있는 상대의 격렬한 공세를 제자리에서 전부 받아 내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계속 가다가는 자잘한 손해가 누적될 것이 분명한 상황.
이에 다이너는 어딘손의 힘을 거스르지 않으며 뒤로 물러났다.
“어딜!”
파앗!
그러자 어딘손도 곧바로 반응했다.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짓쳐들어오는 그였다.
‘온다.’
바로 지금이었다.
다이너가 수세를 거듭하며 기다리던 순간은.
‘중심이 흔들린다.’
소드마스터 대 소드마스터의 대결을 직접 펼치는 것은 분명 처음이었다.
그러나 간접 경험까지 따진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다이너에게는 이를 체험케 해 줄 최상의 교보재, 라이오넬이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딱 알맞은 경험담이 존재했다.
과거 황도 아카데미에서 라이오넬이 벌였던 브루노 다스와의 대결.
라이오넬이 대륙 최연소 소드마스터임을 공표했던 이 대결이야말로 지금 상황과 찰떡궁합이었다.
그때의 라이오넬처럼 지금 다이너도 비장의 한 수를 벼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령력이라는 날카로운 비장의 한 수 말이다.
‘좋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어.’
물론 당시 브루노처럼 어딘손이 정령력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알고 있었으며, 이 점은 분명한 차이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놓고 보면 결국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어딘손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 덕분이었다.
지금껏 다이너의 정령력은 그리 위력적이지 못했다.
정령력 덕에 오러 블레이드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직접적으로 어딘손을 위협하지는 못한 것이다.
기껏해야 약간의 성가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 그 정도가 다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딘손은 딱히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쉼 없이 짓쳐 드는 그의 공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중심은 높아진 상태였다.
높아진 만큼 자연스레 흔들림 또한 커졌고 말이다.
그럼에도 어딘손에게서 거리낌이나 망설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다이너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바로.’
이 점이었다.
과거의 브루노와 지금의 어딘손이 보이는 공통점은.
그리고 여기에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더해졌다.
다이너는 방금 막 라인하트 검법으로 소드마스터에 오른 참이었다.
이는 곧 무게중심을 캐치하는 능력 또한 과거의 라이오넬에 근접했다는 의미.
따라서 그때와 같은 조건은 모두 갖춰졌다고 볼 수 있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그때와 같은 상황의 재연뿐.
‘지금!’
드드드.
망설임은 없었다.
곧바로 정령력을 끌어 올렸다.
이에 어딘손의 착지 예상지점이 아주 살짝,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하게 솟아올랐다.
툭.
삐끗.
“헛……!!!”
그거면 어딘손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안 그래도 불안정하던 그의 무게중심이었으니까.
물론, 이 흔들림은 정말 찰나에 불과할 터였다.
어딘손 정도 되면 눈 한번 깜박이기도 전에 자세를 회복할 것이 분명했다.
쐐애액~!!
문제는 그 찰나조차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이었지만.
이미 어딘손의 심장 어림에 도달한 다이너의 검 때문에 말이다.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