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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45화 (146/200)

84장: 왕궁으로

“으으음…….”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기사 레네톤의 물음에 괜찮다 답하는 에릭스였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바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흘린 신음도 그렇거니와 창백할 대로 창백해진 얼굴, 그런 얼굴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괜찮지 못했다.

“……일단 붕대라도 갈아 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옆구리의 상처 때문이었다.

지난 대결에서 브루노 다스의 검에 왼쪽 옆구리를 베인 것이다.

사실 대결에서라기보다 정식 대결이 끝난 뒤의 일이라고 봐야 했다.

왕녀를 먼저 보낸 뒤 후퇴하는 과정에서 무리하다 입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소정의 성과는 낼 수 있었다.

왕녀의 호위기사 중 둘을 살리고 에릭스 본인도 몸을 빼냈다.

그리하여 왕녀 궁 지하에 마련해 둔 비밀공간에 숨어든 상태였다.

물론, 소드마스터로서의 에릭스가 사실상 봉인됐다는 점은 상당히 뼈아팠지만.

오러 블레이드에 입은 상처였다.

막강한 회복력을 가진 소드마스터라 해도 상처 회복이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곳에는 치료 물품도 마땅치 않았고 말이다.

이대로면 이번 사태에서 에릭스의 활약은 더 이상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이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작님?”

기사 레네톤이 에릭스의 붕대를 가는 사이, 또 다른 기사 아스나가 질문을 던져 왔다.

현 상황을 타개할 대책에 관한 것이었다.

“이곳에 숨어들어 바깥소식과 단절된 지도 벌써 사흘째입니다. 라이오넬 경이 오시기만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이곳 사정이 너무 열악합니다. 백작님을 제대로 치료하기는커녕, 마실 물조차 다 떨어졌는지라…….”

“…….”

“차라리 제가 한번 조심히 나가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가능하다면 바깥소식이나 당장 필요한 물품도 좀 확보하고 말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하염없이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조차 다 떨어진 이 비좁은 공간에서 우락부락한 장정 셋이 더 버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 수를 내야만 하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으음.”

“물론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최대한 조심해서 은밀하게 움직이면…….”

스스스.

“잠깐.”

“충분히 가능…… 예?”

그렇게 한창 고민에 빠져들어 가던 때였다.

에릭스의 감각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잠깐 조용히.”

스스스스.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히 걸려들었다.

“준비한다.”

스릉! 스릉!

하여 곧장 대비에 들어갔다.

에릭스의 명령에 따라 두 기사가 검을 빼 들었다.

그사이 기척은 점점 더 짙어졌고.

스아아아.

이내 현신했다.

사특하고 음습한 하나의 존재로.

“너는……?”

* * *

“아아…….”

슈라우드 왕국의 2왕자 드로튼.

그는 지금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한 그런 탄식이었다.

‘누님 말을 들었어야 했어, 누님 말을…….’

친누나인 레나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그 철없는 어리석음에 대한 깊고도 깊은 한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다면 말이다.

꿈틀꿈틀.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린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피 웅덩이가 고여 가는 중이었다.

즉, 바닥에 엎드린 채 피를 쏟아 내며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길리언…….”

이 사람은 드로튼도 너무나 잘 아는 인물이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비록 어머니는 다를지언정 한 아버지를 둔 형제였으니까.

3왕자 길리언.

드로튼의 동생이자 왕족인 그가 지금 차디찬 바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우리 둘째 차례인가?”

이처럼 길리언에게 죽음을 선사한 장본인 또한 왕족이었다.

“혀, 형님.”

드로튼에게 형님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

그런 존재는 오직 하나, 1왕자 크리스토퍼뿐이었다.

동생을 죽인 크리스토퍼의 잔혹한 미소가 이제 드로튼을 향하기 시작했다.

“형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나도 동생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나를 납득시켜 봐. 너한테 무언가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 그게…….”

조금 전 칼을 맞은 길리언도 똑같은 지시를 받았다.

살고 싶으면 크리스토퍼에게 자신의 쓸모를 납득시키라는 지시 말이다.

이에 길리언은 서부를 언급했다.

자신을 살려 두면 크리스토퍼가 서부를 컨트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혹시라도 길리언처럼 철 지난 얘기나 할 거면 입도 열지 말고.”

그러나 크리스토퍼는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서부는 해적들의 노략질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자연스레 당분간은 피해 복구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컨트롤하고 말고 할 것도 없으며, 따라서 서부는 길리언의 쓸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없어?”

“아니요! 있습니다, 있어요! 분명 있습니다.”

“설마 레나?”

“그게 그러니까…… 맞습니다. 누님이 분명 저를 구하고자 할 겁니다. 그때 협상 카드로 형님께서 저를 쓰시면…….”

“하아, 고작 그게 다야? 그럼 많이 실망인데. 어차피 레나는 몰릴 대로 몰렸고, 결국 나랑 끝장을 볼 수밖에 없어. 고작 네 목숨 하나 때문에 나에게 무언가를 양보할 처지가 못 된단 말이지.”

“아닙니다! 누님은 절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실 거예요. 믿어 주세요, 형님.”

“에이, 믿긴 뭘 믿어? 네 누나가 너를 구할 거였으면 나서도 벌써 나섰겠지. 안 그래? 오늘로 나흘 째잖아.”

레나를 역적으로 선포한 지 오늘로 나흘째였다.

동시에 드로튼의 목숨을 내건 것 역시 나흘째였다.

레나가 나타나지 않으면 드로튼을 처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고작 나흘밖에…….”

“아니지, 아니야. 이제 고작 나흘이라니? 벌써 나흘인 거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너를 나흘씩이나 살려 준 셈이니까.”

레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나타나는 건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이런 당연한 사정 같은 건 눈곱만큼도 고려해 주지 않았다.

“어쨌든 더 없는 거지, 네 쓸모?”

“혀, 형님!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형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요, 형님!”

“이런~ 형으로서 참 미안하다, 로튼. 하지만 난 이제 국왕이 될 몸이라 어쩔 수가 없어. 왕국에 쓸모없는 것은 살려 두지 않기로 했거든.”

“형님! 형님, 제발! 제발요, 형님! 제발 살려 주세요!”

끄덕.

드로튼이 애원하고 또 애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끝내 크리스토퍼의 신호가 떨어졌다.

슈아악~

“아, 안 돼!!”

서걱!

“커헉……!”

기사의 검이 드로튼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그러자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꿀렁꿀렁.

“크륵. 그르르륵.”

털썩.

결국, 드로튼도 조금 전의 길리언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바닥에 엎드린 채 꿈틀거리는 처지 말이다.

‘누님…….’

의식이 급속도로 흐려져 갔다.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죽어 갈 뿐이었다.

“왕자님,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나타났습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어디에?”

그런 드로튼의 귀에 무언가 중요한 내용이 들려왔다.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 될지도 몰랐던 그런 내용이었다.

“지금 놈이 드워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희망이 들려오는 속도보다 정신이 흐려지는 속도가 배는 빨랐다.

즉, 희망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다.

“중앙대로에…….”

그렇게 끝이었다.

완전히 멀어진 의식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드로튼이었다.

* * *

스악~ 슈악~

내가 허공에 대고 연신 검을 휘둘렀다.

검을 손에 익히기 위함이었다.

“음, 확실히 여정이나 심연만은 못하네.”

“그럼, 그 완성된 아이들과 같기를 기대한 거냐? 그건 도둑놈 심보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쯧! 그러게 제 소중한 아이들을 어디다 내팽개치고 와서는.”

타로쉬핸드의 타박대로였다.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은 여정도, 심연도 아니었다.

타로쉬핸드에게 임시로 받은 새로운 검이었다.

아무리 타로쉬핸드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여정과 심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얘기했잖아, 타로쉬핸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니까?”

다만, 타박이 전부 옳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을 이유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쳤을 리 만무했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우선 여정.

여정은 카디즈 군도를 출발하기 전, 다이너에게 맡기고 왔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쯤 되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껏 의도가 불투명했던 어딘손 토르웨이의 기행.

이제는 그 의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상황이었다.

기행의 의도는 결국 유인이었다.

나와 그리핀 군단을 카디즈 군도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이는 것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유인된 사이 슈라우드 왕궁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종국에는 크리스토퍼를 슈라우드의 국왕으로 세우는 것까지.

여기까지가 전부 어딘손의 서부 침략을 기점으로 시작된 아이단 황제의 계략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황제의 계략은 현재 차질을 빚고 있었다.

유인과 뒤집기까지는 원활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레나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나와 그리핀 군단이 다시금 강력한 걸림돌로 부상했다.

왕위 계승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우리를 힘으로 찍어 눌러야만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여전히 황제와 1왕자 쪽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오브리가 국왕이 저쪽에 있는 이상 시간은 저들 편이었다.

또, 당장의 상황 역시 불리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카디즈 군도에 있는 그리핀 군단과 서부군이 그러했다.

내가 떠난 것이 알려지면 꼭꼭 숨었던 어딘손의 재등장은 기정사실.

소드마스터를 이렇다 할 성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막아 내야 하는 처지였다.

여정을 맡기고 온 것은 그런 연유였다.

여정은 데파이 스토스와 타로쉬핸드의 보강을 거치며 완벽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이런 여정이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을 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이너 녀석과 함께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내 분신인 심연.

심연도 현재 내가 아닌 다른 녀석 손에 들려 있었다.

다만, 그 이유는 여정과 정반대였다.

최악을 대비함이 아닌 최상을 만들어 내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 지금 더없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제 새끼들은 그리 쉽게 내주는 거 아니다. 그건 목숨을 내놓는 짓이나 다름없어.”

“그래, 앞으로는 명심할 테니 이번만 네가 이해 좀 해 주라. 이미 두고 오고, 또 벌써 들려 보낸 걸 지금 와서 어쩌겠어?”

이런 사정들로 인해 새로운 검을 손에 익히는 중이었다.

장인인 타로쉬핸드는 궁시렁거렸지만, 뭐 딱히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궁시렁거리면서도 새 검의 특징에 대해 참 세세하게도 설명해 주는 그였으니까.

두두두두.

그렇게 한참 타로쉬핸드의 타박 겸 설명을 들어 가던 중이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중앙대로 오른편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그래, 왔다.”

그 무리를 이끄는 이는 나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브로든 프라우닉스 남작.

슈라우드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회귀 전 내 두 번째 스승인 인물이었다.

그가 마검학연 동아리원 중 기사 생도들을 이끌고 합류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대놓고 나서시는 건 교수님 성격이랑 분명 안 맞으실 텐데.”

귀찮은 거, 특히 정치와 관련된 것은 어지간히도 꺼리는 브로든이었다.

하여 레나가 득세하는 와중에도 줄곧 아카데미 교수직만을 고수해 왔다.

물론 마검학연 지도교수 역할도 꾸준히 이어 오기는 했다.

하나, 실상은 그저 명단에 이름만 올려 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일은 사네와 그 예하 생도들이 전부 알아서 처리했다.

“그럼 어쩌겠냐? 제자 잘못 둔 바람에 이미 찍힐 대로 찍혀 버렸는데.”

그러나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브로든을 레나 세력의 핵심 중 하나로 인식했다.

레나 세력의 실무를 마검학연 출신들이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마검학연은 레나의 둘도 없는 인재 수급처인 것이다.

브로든은 그런 마검학연의 창단 멤버이자 수장이고 말이다.

핵심으로 인식함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리고 어차피 동부군 입성하고 나면 신나게 쫓겨 다닐 거, 별수 있어? 귀찮아도 움직이는 수밖에.”

당장의 타깃은 레나에 한정되어 있었다.

덕분에 브로든과 마검학연은 아직 괜찮았다.

하지만 동부군이 입성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1왕자 측 인력이 충원되는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숙청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터.

브로든은 그저 귀찮음이 많을 뿐, 아예 형세조차 읽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눈에 훤한 미래쯤이야 얼마든지 읽어 낼 능력이 충분했다.

해서 직접 기사 생도들을 이끌고 나에게 합류한 것이다.

내가 왕도의 중앙대로를 대놓고 가로지르는 지금 이 시점에.

“그나저나 생도들은 위험하지 않은 거 확실하지?”

“계획대로만 된다면요. 대신 그건 아시죠? 교수님만큼은 굉장히 위험하실 거라는 거.”

이곳 중앙대로를 이대로 쭉 가로지르면 나오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바로 슈라우드 왕궁.

즉, 나는 지금 왕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모두의 눈에 훤히 보이도록, 아주 당당하게.

사실상 저들에게 선포하는 셈이었다.

내가 가니 준비하라고,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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