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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44화 (145/200)

83장: 부채 탕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왕녀님. 정말 다행이에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나가 무사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 해도 레나만 무사하다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역전 가능했다.

그것이 레나라는 구심점의 힘이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고마워요, 이렇게들 무사해 줘서.”

“다 라이 덕분이에요.”

“제 덕분이라니요? 저는 정작 필요할 때 자리에 없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왕녀님. 제가 있었어야 하는 건데…….”

“이유 없이 자리를 비웠던 것도 아닌데, 라이가 왜 미안해요? 그러지 말아요. 그리고 라이, 전 빈말을 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진짜로 라이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

“……?”

“라이가 제게 보내 준 사람들이요. 브란부르크 백작부터 에치오, 타로쉬핸드까지, 모두 위기의 순간마다 활약해줬거든요.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레나가 이들의 활약상을 간략하게 읊어 주었다.

에릭스와 에치오는 기대했던 그대로의 활약을 펼쳐 주었다.

각각 강력한 힘과 사기적인 육감으로 레나를 지켜 낸 것이다.

반면 타로쉬핸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인상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럼으로써 현재 이곳에 있는 모두의 탈출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한데, 이들이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라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한 명 더 말입니까?”

“네, 한 명 더. 라이가 그 사람에게 심어 둔 씨앗 덕분에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거든요.”

* * *

“움직이지 마십시오, 왕녀님.”

케인이 왕녀에게 경고했다.

움직이지 말라고.

말뿐만이 아니었다.

왕녀의 목에는 이미 그의 검이 겨누어진 상태였다.

“타리우드 경…….”

“설마 정문 쪽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왕궁을 탈출 가능한 루트는 총 네 군데였다.

국왕의 비밀통로, 왕족의 비밀통로, 왕궁 정문, 하인 출입구.

이 중에서도 정문은 국왕의 비밀통로 다음으로 가능성이 낮은 곳이었다.

왕녀의 선택 가능성 및 선택 시 무사히 탈출할 가능성 모두에서.

아예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국왕 비밀통로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낮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이곳을 선택한 왕녀였다.

“또, 여기가 이렇게 뚫렸을 거라고도 예상치 못했고 말입니다.”

단순한 선택만이 아니었다.

탈출 가능성마저 최대치로 높여 놓은 그녀였다.

정문에 배치해 둔 병력 전체를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것이다.

케인은 물론이고 1왕자 측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아무래도 미스였나 보네요, 전부 헛수고로 끝나게 생긴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다른 곳도 이미 병력 배치가 마무리된 상황입니다. 각각에 배치된 병력의 질을 고려하면 확실히 정문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정문을 확보한 직후, 밖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이 내부로 진입했다.

그러고는 세워 둔 계획에 따라 각각의 구역으로 즉각 배치되었다.

그중에서도 하인 출입구는 배치 1순위였다.

탈출을 시도한다면 이곳을 선택할 확률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왕족의 비밀통로는 출구 바깥쪽에 이미 병력을 배치해 둔 만큼 신경 쓸 필요 없었고 말이다.

또, 배치 순위에 따라 배정한 병력의 질에도 차이가 있었다.

하인 출입구에 배치된 병력은 절반이 기사인 만큼 뚫기가 절대 쉽지 않았을 터였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곳 정문 선택이 정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뭐 하겠어요? 지금은 이렇게 경의 손에 붙잡혀 있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타리우드 경도 이 일에 가담하셨군요.”

“……주군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아쉬워요. 경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거든요. 오빠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기회만 된다면 경을 꼭 제 옆에 두고 싶기도 했고요.”

“…….”

왕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케인이 잘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케인을 향한 왕녀의 눈빛은 호의와 진중함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인이 왕녀와는 종종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라이오넬과의 첫 만남 역시 왕녀 덕분에 이루어졌고 말이다.

그래서였다.

케인이 정문으로 온 것은.

길리언 3왕자 확보 뒤 정문 통솔 임무를 맡기로 자원한 것이다.

공을 세울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만큼 왕녀가 이곳으로는 오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으로 왕녀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참 얄궂었다.

이곳으로는 오지 않을 거라 판단했건만 왕녀는 이곳으로 와 버렸다.

그러고는 때마침 정문에 도착한 케인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케인의 검이 그녀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얄궂게도 모든 것이 의도와는 정반대로만 흘러가는 것이다.

꽈악.

왕녀의 목에 겨눈 검을 다시 한번 꽉 쥐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됐다.

되려 이것이 실수였다.

“…….”

검이 문제였다.

케인의 애검 그로운.

이것이 케인의 마음을 한층 더 뒤흔들어 놓았다.

그가 그로운을 얻게 된 경위 때문이었다.

그로운은 일종의 뇌물이었다.

적어도 이것을 건넨 당사자, 라이오넬의 주장은 그러했다.

이것은 뇌물이니 나중에 잘 좀 봐달라는 것이 검을 건네던 그의 첨언이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비단 검에서 그치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케인에게 가르침까지 베풀었다.

과거 대결에서 라이오넬은 케인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단, 어디까지나 케인이 감당 가능한 힘과 속도만으로, 딱 케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준까지.

비록 대결 당일 단 하루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매우 짧았지만, 이는 분명한 가르침이었다.

기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최고의 가르침 말이다.

꽈아악.

라이오넬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최상의 검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최고의 가르침.

검사에게 이 두 가지는 전부나 다름없었다.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타리우드 경?”

왕녀의 진심과 라이오넬의 은혜.

이런 것들이 자꾸만 케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저히 다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그리고 끝내.

스르륵.

마음을 넘어 케인의 몸까지 움직였다.

왕녀의 목에 겨누고 있던 검을 내린 것이다.

“가십시오.”

“타리우드 경, 어째서?”

“라인하트 경에게 진 빚이 있습니다. 그걸 이번 기회에 갚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건 자칫 경이 곤란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전 오늘 왕녀님을 뵙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달하기 전 왕녀님께서 빠져나가신 것으로.”

케인은 크리스토퍼 1왕자를 주군으로 모시는 기사였다.

그런 그가 이래서는 안 되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간 케인 타리우드, 검사 케인 타리우드가 이러기를 원했으니까.

뿌리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아주 강렬하게.

“만약 그런데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마음의 빚을 더는 대가로 제가 감당할 몫입니다.”

결국, 한 인간이자 검사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이것이 케인의 최종 결정이었다.

“……고마워요, 타리우드 경.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얼른 가십시오. 더 늦으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렇게 왕녀가 왕궁을 떠나갔다.

제 일행과 함께 정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그녀였다.

홀로 남은 케인은 이런 왕녀의 뒷모습을 잠시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오늘 그가 한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 * *

“뇌물이 정말 뇌물로 작용했군요.”

“뇌물이요?”

“제가 타리우드 경에게 검을 하나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뇌물이라는 농담을 섞어서요. 그런데 그게 이번에 결과적으로 진담이 되어 버렸습니다.”

케인의 결심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레나와 나, 내 사람들의 운명은 물론이거니와 슈라우드 왕국 전체의 운명까지.

“어쨌든 이렇게 무사하시니 천만다행입니다. 그보다 왕녀님, 이제는 반격을 가해야 할 때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그렇지 않아도 라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이 달라진 운명을 우리 손에 틀어쥘 차례였다.

레나의 신호에 따라 사네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브리핑에 들어갔다.

“라이, 너도 짐작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

“동부의 병력이 여기로 향하는 중이겠지?”

“맞아, 7,000의 병력이 서진 중이야. 사건 발발과 동시에 출병한 상태라 늦어도 20일가량이면 도착할 거야. 그들이 도착해서 왕도 수비군과 합류하는 시점부터는 정말 많이 어려워질 테고.”

누구의 어려움이 될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할지 역시도.

“왕도 수비군의 움직임은?”

“일단 전하께서 저쪽에 계시니 1왕자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중이야. 다만, 아직 상황이 정리된 건 아니다 보니 적극적이지는 않아. 물론 이것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만.”

“핵심은 결국 시간이군.”

“그래. 그래서 최대한 신속하게 국왕 전하를 구출해야 해. 아무리 늦어도 동부군 도착 전에는 반드시.”

국왕 확보를 전제로 하는 1안은 폐기됐다.

그리고 지금은 국왕 구출 자체가 목표인 2안이 진행 중이었다.

레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왕도에 머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브란부르크 백작님과 연락이 닿는 거야.”

“1왕자 측에 잡히지 않으신 게 확실한 거야?”

브루노 다스를 막고자 에릭스가 뒤에 남았다는 이야기는 조금 전에 들었다.

그때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 역시도.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자리에 없던 유일한 한 사람이 바로 에릭스였던 것이다.

“100%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만약 백작님께서 잡히셨다면, 저쪽이 이렇게 조용할 리 없으니까. 본인들의 유리함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선전을 했겠지.”

“하긴.”

“지금은 아마 왕궁 내부에 몸을 숨기고 계신 것으로 판단돼. 만약 왕궁을 빠져나왔다면 바로 이리로 오셨을 테니까. 그리고 정말 내부에 계시는 거라면, 우리는 거기서부터 국왕 전하 구출 작전을 펼 수 있어. 현재로서는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야.”

시작은 에릭스와의 연결부터였다.

이 자체는 그가 무사하기만 하다면 크게 문제없을 터였다.

그가 어디 몸을 숨기고 있을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백작님과 연락이 닿아서 구출 작전에 돌입한다 해도 여전히 걸림돌이 있어. 그것도 굉장히 커다란 걸림돌이. 이걸 제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번 작전의 성패를 좌우할 거야.”

“커다란 걸림돌?”

“1왕자와 함께 국왕 전하 옆에 붙어 있을 게 분명한 제국의 실력자들. 이들을 치워야만 해.”

제국이 1왕자에게 지원한 실력자들.

어찌 보면 이번 사태의 원흉이라고 봐도 좋은 이들이었다.

이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야 국왕 구출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들에 관한 정보는? 누군지 알 수 없다면 대략 몇 명 정도 되는지라도.”

“브루노 다스 백작 말고는 확실한 게 없어. 그래도 추정을 해보면 소드마스터 급 실력자가 최소 둘 이상, 아무래도 셋은 되지 않을까 싶어.”

“셋이나?”

“집무실에는 쉬르더 후작 각하와 근위기사단이 있었어. 물론 이 정도면 소드마스터 둘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빨리는 어려워. 그러니 무슨 특별한 수를 쓴 게 아니라면 실력자가 셋은 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거야.”

“음, 그렇긴 하겠네.”

“그래서 말인데요, 라이.”

그때, 다시 레나가 입을 열었다.

“예, 왕녀님.”

“미안하지만 라이에게 또다시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는 미안함 섞인 어조로 부탁을 해 오는 그녀였다.

지금부터 펼쳐갈 작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에 관한 부탁이었다.

이어지는 부연설명에 따르면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면 나로서도 성공을 장담 못 할 만큼.

“왕녀님.”

“네, 라이.”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

“부탁하지 마시라고, 그냥 명령하시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내 답변은 어차피 한 가지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염려 마시고 그대로 작전 진행하십시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1왕자, 그리고 그 뒤의 제국과 아이단 황제를 향한 우리의 반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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