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장: 급선회
스악~! 슈악~! 스아악~!
서걱! 서걱! 촤륵!!
“커헉!”
“크아악!”
“커흑……!”
근위기사단의 평균적인 실력은 분명 왕국 최고를 자랑했다.
그러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 높은 평균 실력은 딱히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벽을 넘었느냐 넘지 못했느냐의 차이에 있을 뿐.
두 번째 소드마스터의 등장과 함께 이 점이 여실히 증명되기 시작했다.
일검 일검에 터져 나오는 기사들의 피 분수로 말이다.
“부단장, 지금 당장 전하를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이에 카이트가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소드마스터가 무려 둘이었다.
이러면 카이트가 그 어떤 용빼는 재주를 부린다 해도 소용없었다.
답은 오직 한 가지, 탈출뿐이었다.
“1조는 전하를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죽음으로 전하의 뒤를 지킨다!”
“예!!”
물론 이마저도 절대 쉽지 않았다.
솔직히 웬만한 기사단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죽어도 막는다!”
“절대 지나가지 못한다!”
“슈라우드를 위하여!!”
그러나 이들은 슈라우드 최고를 자랑하는 왕실 근위기사단.
왕실에 대한 드높은 충성심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검이 안 된다면 몸으로라도, 기꺼이 고기 방패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인 것이다.
서걱! 촤륵! 서거걱!
“커흑!! 절대 못 간…….”
“부디 무사 하십시오, 전하! 크아악!”
“이놈! 죽어…… 커헉!”
근위기사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향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시간을 벌어 주었다.
덕분에 오브리가 국왕은 부단장의 인솔에 따라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정말 충성스러운 기사들이군.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런데 이상했다.
이 광경 앞에서도 브루노는 조금도 심각해지지 않았다.
자칫 국왕을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그의 목소리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미안하오. 이 말만 벌써 두 번째인데,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구려.”
“……?”
“안타깝지만 두 번째도 끝이 아닌지라.”
“……!!”
파바밧!
두 번째 소드마스터의 검이 만들어 낸 틈 사이로 한 인물이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기사들 사이를 물 흐르듯 가로질러 버렸다.
근위기사들이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할 만큼 빠르고 유려한 움직임으로.
그리하여 순식간에 오브리가 국왕과 부단장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섰다.
탈출 경로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
지이이잉!
그리고 직접 보여 주었다.
브루노가 태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도 안 돼…….”
부단장의 중얼거림 대로였다.
이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최악조차도 가뿐하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뭔가를 시도해 볼 여지조차 없었다.
무려 세 명의 소드마스터 앞에서는 말이다.
* * *
서걱!
“커헉……!”
케인 타리우드의 검이 대기를 찢었다.
그 경로에 놓인 한 기사의 목과 함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그러자 길리언 3왕자의 호통이 쏟아져 나왔다.
“말씀드렸다시피, 왕궁 내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족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해서 제가 왕자님을 모시고자 왔습니다.”
“나를 모셔? 내 호위기사를 내 눈앞에서 베고서?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오?”
그랬다.
방금 케인이 베어 낸 목은 3왕자 호위기사의 것이었다.
길리언이 이렇듯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였다.
“죄송합니다. 그렐 경이 명령을 따르지 않아 부득이하게 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후우, 타리우드 경, 제발 이러지 마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동부의 이름난 기사인 경이 이러는 것은 아니지 않소? 이런 짓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검의 천재이자 진정한 기사로 이름을 떨친 경에게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오.”
10년 전, 슈라우드 아카데미 부동의 최강으로 불리던 케인 타리우드였다.
비록 라이오넬 라인하트에게 패배한 일로 최강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의 실력을 폄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대륙 역사를 다시 쓸 만큼의 초월적인 천재일 뿐이었다.
일반적인 검사의 기준으로 본다면 케인의 천재성 또한 규격 외이기는 마찬가지.
고작 30살의 나이에 소드마스터를 넘보는 케인의 경지가 그 방증이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끝자락에 도달한 상태인 것이다.
소드마스터에 도달하는 실력자들의 평균 나이가 40대 중후반임을 고려하면 이는 규격 외가 분명했다.
비단 검에 대한 천재성만이 아니었다.
케인이 동부의 대표적인 기사로 손꼽히는 것은 그의 성품 역시 한몫했다.
그는 우직하며 기사도를 아는 기사로 인망이 두터웠다.
크리스토퍼 휘하의 기사 중 정말 몇 안 되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길리언이 케인의 인정에 호소하는 것은.
“그러니 타리우드 경, 나를 이대로 보내 주시오. 하면 내가 오늘 일을 불문에 부치는 것은 물론이고, 훗날 경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을…….”
“죄송합니다, 왕자님. 저는 주군의 명에 따르는 기사입니다.”
“타리우드 경!”
“죄송합니다.”
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호소였다.
당연했다.
동부 전체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다.
일개 기사의 명예나 인정 같은 것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자님, 저희가 시간을 벌 테니, 어서…….”
스악~ 샤악~!
“커흑!”
“크아악!!”
“호도 경! 우라트 경!”
둘밖에 남지 않은 길리언의 호위기사들.
저항의 기미가 보이자 케인은 그들마저 순식간에 처리했다.
이로써 길리언 제압 임무가 사실상 완료되었다.
“그럼 이만 모시겠습니다. 왕자님을 모시고 집무실로 가도록.”
“예, 타리우드 경.”
쿠데타는 이렇듯 단계별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단계는 오브리가 국왕 확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완수된 상태였다.
오브리가 국왕을 확보했음은 물론이요, 까다로운 카이트 쉬르더 후작까지 무력화시켰다.
카이트 쉬르더 후작은 브루노 다스 백작의 검에 베여 현재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세 번째 소드마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 원인이었다.
다음 2단계는 현재 진행 중인 왕궁 정문 및 왕족 확보였다.
일단 국왕을 확보하기는 했어도 왕궁 전체를 장악할 병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은 당연히 마련해두었다.
왕궁 바깥에 용병으로 분한 동부의 기사와 병력이 대기 중이었다.
정문을 확보하여 이들을 들여오고자 하는 것이다.
하여 제국의 소드마스터 하나가 정문으로 향한 상태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정문 상황은 종료됐을 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계승권을 보유한 왕족의 확보.
잡음이나 혹시 모를 내전 발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확보가 중요했다.
3왕자는 지금 케인이 확보했고, 2왕자 또한 다른 기사들이 잡으러 간 참이었다.
이들은 딱히 문제 될 것 없었다.
문제는 셀레스티나 1왕녀였다.
그의 곁에는 소드마스터 에릭스 브란부르크가 버티고 있었으니까.
해서 브루노 다스가 나머지 기사들을 전부 이끌고 그쪽으로 갔다.
비록 소드마스터 하나는 국왕 집무실에 남아야 했으나, 왕녀 확보에 크게 지장은 없을 터였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 브루노 다스가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했으니 말이다.
“그럼 경께서는?”
“나는 계획대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하면 거사 종료 후 뵙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타리우드 경.”
끄덕.
수하가 확보한 3왕자 길리언을 끌고 국왕 집무실로 향했다.
반면 케인은 함께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주어진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 국왕 집무실과는 반대편을 향해 홀로 걸음을 옮기는 케인이었다.
* * *
우뚝.
레나가 멈춰섰다.
그녀만이 아니라 함께 국왕 집무실로 향하던 일행 전부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멈춰섰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정면으로 마주친 5명의 기사 때문이었다.
1왕자의 표식을 달고 있는 네 명과 아무런 표식도 없는 한 명의 기사.
“왕녀님…….”
특히, 이 아무런 표식도 달고 있지 않은 한 명의 기사가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사실상 이자 때문에 멈춰섰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머지 기사들과 달리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어떠한 표식도 지니고 있지 않은 자였다.
그러나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클로렐라의 신호도 신호이거니와 레나 역시 폼멜의 문양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브루노 다스 백작.”
제국의 소드마스터, 브루노 다스 백작이었다.
그가 일단의 기사들을 이끌고 레나 일행 앞을 막아선 것이다.
“으음? 어떻게 아셨습니까? 일부러 인피면구까지 쓴 상태인데.”
“그럴 거였으면 검도 바꿨어야죠.”
“허어, 검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는데……. 이것까지 알아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왕녀님. 역시 폐하께서 눈독 들이실 만해요.”
브루노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대놓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그였다.
“이리 다급히 달려오시던 것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다만, 굳이 힘을 뺄 필요까지는 없으셨습니다. 제가 왕녀님을 직접 모시러 가던 길이었으니 말이지요.”
“……아바마마께서는 무사하신가요?”
“당연히 무사하십니다. 그리고 굳이 여쭤보실 필요 있겠습니까? 저와 함께 가시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텐데.”
“…….”
그래서 더 좋지 않았다.
숨길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의미가 됐기 때문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인물인 국왕을 확보한 것이다.
클로렐라가 소식을 전하고 레나가 곧장 달려와 이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말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국왕 집무실로 달려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계획을 변경합니다.”
하여 레나는 지체 없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일행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하면……?”
“예, 1안은 폐기합니다. 지금부터 2안으로 갑니다.”
물론 이 속삭임은 소드마스터인 브루노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무리 속삭인다 해도 이만한 거리에서 그의 귀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계획 변경이라. 1안이 뭐고 2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시는 대로는 안 될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왕녀님은 저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이에 대한 브루노의 반응은 비릿했다.
그가 입가에 지은 비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허락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브루노에게서는 그런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먼저 가십시오, 왕녀님.”
“에릭스 경.”
“저자를 막은 뒤 바로 따르겠습니다. 하니, 먼저 가십시오.”
이런 상황에 에릭스가 나섰다.
사실 그밖에 없기는 했다.
소드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같은 소드마스터뿐이었으니까.
그가 레나의 호위기사들을 이끌고 브루노와 1왕자 측 기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 부탁해요, 백작. 그리고 꼭 무사하셔야 해요.”
“염려 마십시오. 왕녀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에릭스라면 문제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단순히 친분에 기반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에릭스의 힘과 실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릴 수 있었다.
“모두 뛰어.”
그리고 명령했다.
모두 뛰라고.
이에 따라 일행 전체가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국왕 집무실과는 정 반대쪽을 향해.
드드드드!
그런데 그때였다.
우뚝.
막 가속을 붙이려던 레나가 다시금 우뚝 멈춰섰다.
당연히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다 같이 멈춰섰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앞서와 같이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단, 길을 막은 것이 사람은 아니었다.
레나 일행이 몸을 돌린 방향에 사람이라고는 전무했으니까.
“글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왕녀님? 그렇게는 안 된다고.”
사람이 아닌 사람의 힘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솟아난 바닥이 통로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
정령력, 그중에서도 대지의 정령력이었다.
“그런가요? 그런데 어쩌죠? 나는 여전히 될 것 같은데.”
하나, 레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통로 자체가 막혀 버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막혔다면 뚫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숙여!”
콰과과광!!
“다시 뛰어!”
잠시 후, 레나 일행은 멈췄던 뜀박질을 재개했다.
솟아오른 바닥 한가운데로 뻥 뚫린 통로를 통해.